◈신부의 옷은, 제사장의 옷이며 성막의 축소판 겔16:7~14, 출28:1~3
김성수 목사 창32강 중 발췌, 출처
◑지난 31강 복습 ☞하나님의 영의 임하심과 떠나심 (정리)
우리는 지난주에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행2장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까지를 두루 살피면서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첫 창조의 하나님께서
-노아에게는 무지개로 나타나시고
-출애굽 광야에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나셨으며
-성전에서는 광채(빛)와 구름과 소리로 나타나셨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도 불의 혀와 같은 광채와 바람과 소리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연결해서 보았습니다.
-모세는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을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덮는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황무지에서 건지시고 보호하시는 것으로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신32:10‐12)
-에스겔서에서는 당신의 옷자락으로 벌거벗은 적신의 신부를 덮어
자신과 하나로 연합시키는 신랑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확인 했습니다.
-그 모습의 실체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치르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첫 창조를 위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신과
-홍수 심판 후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당신의 백성 노아에게 나타난 무지개,
-그리고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독수리의 날개로 새끼들을 덮는 모습,
-적신의 신부를 자신의 옷자락으로 덮어 신부를 삼는 모습,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불의 혀처럼 임하신 성령 하나님의 모습은
모두 한 이야기의 각기 다른 그림인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인 당신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당신의 영광의 옷자락으로 덮으시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셔서
그들을 당신과 한 몸인 어린양의 신부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만을 점진적이며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에게 화려한 옷을 입하시는 하나님
오늘은 우리가 지난주에 마지막 부분에서 찾아 읽었던 에스겔서 16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읽어보았듯이
겔16:7~14절까지에는 부끄러운 적신이었던 신부에게
화려한 신부의 옷을 입히시는 신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물로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물 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금은으로 장식을 하고,
베로 된 옷을 입히는 등 화려하게 옷을 입힙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주에 찾아 읽었던 계19장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화려한 세마포를 입은, 신부인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항상 성전에서 그렇게 화려한 신부의 모습으로 씻겨지고,
기름부음을 받고, 금은 장식과 세마포 옷으로 단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제사장입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에스겔서 16장의 그 신부의 모습은
그 옷의 재질이나 외관에 있어서 출28장과 29장의 제사장의 옷차림과
거의 동일한 옷차림입니다.
그것이 함의(含意) 하는 의미는, 제사장의 옷과 신부인 교회가 입게 되는 옷이
같은 옷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신부의 옷과 제사장의 옷을 동일하게 묘사를 함으로 해서
혼인 언약하의 신부가 담고 있는 상징적인 내용과
구약의 제사장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내용이 같은 것이라는 걸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어린양의 신부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신부의 옷과 제사장의 옷의 관계가 연결이 되시지요?
▲그런데 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성막과 동일한 재질과 패턴으로 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구약의 제사장 옷은 성막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성막을 입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잘 보시면 하나님은 출25~31장까지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어떠한 식양과 재료로 지어야 하는지에 관해 아주 상세하게 지시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 중간의 28~29장을 할애하셔서 제사장 옷의 재질과 식양에 관한 설명을
끼워 넣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성막을 짓는 천과 금은 재료들을 축소하여
제사장의 옷을 짓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왜 성막을 짓는 재료와 식양 사이에,
제사장의 옷의 재질과 식양에 관한 설명을 끼워 넣었는지 아시겠지요?
성막과 제사장의 옷은 같은 상징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성막을 싸는 천과 제사장의 옷의 재질은 정확하게 같은데
그 지성소와 제사장을 감싸는 천의 순서는 정 반대입니다.
제사장의 에봇과 겉옷과 속옷을 만드는 식양과 재질은 지성소를 감싸는
세 겹의 천의 식양과 재질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막에서는 그 천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나타나는 지성소 안의
법궤를 감싸고 있는 반면에
제사장의 옷에서는 지성소에 해당하는 열 두 보석으로 만들어진 제사장의 흉패가
가장 밖으로 나와 있고 그 아래에 에봇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겉옷과 속옷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렇게 성막과 제사장의 옷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감싸고 있는 것들이
정확하게 거꾸로 배열이 된 것은
성막이 하나님의 영광을 감싸고 있는 것이라면
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을 밖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의 옷은 에스겔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혼인 언약 하에 있는 신부의 옷차림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삼단 논법에 의해 어린양의 신부인 성도들이 입고 있는 새하얀 세마포 옷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뿜어내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성경이 어떻게 정의하지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성품 등의
하늘의 것들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
즉 성령의 열매들이 향기로 풍겨져 나오게 될 때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했지요?
그 말은 단순히 순종이나 복종의 차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당신이 누리고 계신 좋은 것을 나누어주시고 공유케 하신다는
의미에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문득 문득 보여 질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것들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때를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신부의 옷, 즉 하나님의 영광을 입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선하시고 크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당신의 생명력,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그 분의 영광과 존귀와 기쁨과 행복을 동일하게 함께 나누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혼인 언약의 비밀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으로 가보세요.
(마19:5‐6)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은 단순히 이혼을 금하시는 사회법상의 경고가 아니라고 했지요?
이 구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혼인 언약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하나가 되셔서
당신이 누리시는 것을 모두 누리게 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언약이며
그 언약은 반드시 깨어지지 않고 이루어 질것이라는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경고인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 성도들이 신부가 입고 있는 그 영광의 세마포를 입게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성경에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신부의 옷은 제사장의 옷이 담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고
제사장의 옷은 성막이 담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라 했지요?
따라서 우리는 먼저 제사장의 옷이 담고 있는 내용을 찾아서
성도가 입게 되는 세마포 옷의 의미를 밝혀 보겠습니다.
제사장의 옷에 관한 내용은 출애굽기 28장과 29장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 중에서 출애굽기 28장의 몇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출28:1~3) ‘너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불러내서, 나를 섬기는 제사장 일을 맡겨라.
2 너는 너의 형 아론이 입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룩한 예복을 만들어라.
3 내가 슬기로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 준 모든 재주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나를 섬길 아론이 제사장이 되어서 입을 예복을 만들라고 하여라.’
여기 보시면 제사장의 옷이 의미하는 것이 몇 가지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성막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로 제사장이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성막을 입고 있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처소를 자신의 처소로 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을 그들의 옷으로 입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제사장이 함께 한 처소에 머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막에 거하게 하고 따로 처소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은 대제사장의 옷과 같은 신부의 세마포를 입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임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신랑이신 하나님의 신부로 서게 될 자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특권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2절을 보시면 제사장의 옷은 그 제사장들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셔서
그들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라는 상징인 것입니다.
영화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는 것이라 했지요?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성품과
그 분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나누어 받게 되어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추하고 더러운 모습이 다 사라지고 아름다운 하늘의 것들로 다시 재창조 된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3절을 보시면 제사장은 제사장의 옷을 입음으로 해서
그들이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다른 이들과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사장은 그렇게 제사장의 옷을 입음으로 해서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인 지성소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이외의 세상은 지성소 안에 들어가게 되면 즉사(卽死)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제사장 예복을 올바로 갖춰 입은 대 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한번 속죄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그 순간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의 신부인 우리도 신부의 옷을 거룩하게 차려 입고
그렇게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3절이 함의(含意)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제사장의 옷을 차려입은 제사장에게는 기름이 부어집니다.
구약에서 성막의 기름, 성전의 기름은 항상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져서
영원히 하나님과 우리가 한 영으로 묶이게 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리시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 옷과 신부의 옷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신부들을 창조하셔서 그들과 당신이 누리시는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을 나누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설명해 나가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가 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바로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의 모형으로 이 땅에 창조가 되었던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존재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 이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따라서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던 처소는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질과 공간을 만드시고 그 속에 존재하는 것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물질과 공간인 우주를 당신의 처소 삼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 창조입니다. 그 중에서도 상징적인 하나님의 처소가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하시며, 말씀하시고, 교제하시고,
그들을 이끄시며 당신이 누리시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상징적인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같은 왕’이라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하담과 하와에게
선악과와 생명나무열매를 주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서 지속적으로 거하게 됨을 암시해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면,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면
생명나무 실과를 먹게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살 수 있다는 상징이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에 담겨 있는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되면
그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선한 것들을 그들에게서 반사하여
하나님처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곳을 우리가 하나님 나라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 때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처소를 자신의 처소로 삼아,
다른 말로 하나님을 자신의 처소로 삼아 살게 되는 것이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때에 인간은 자신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 하게 되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성도가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이 인간의 처소가 되어 주시고
인간을 당신의 처소로 삼아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모든 성품과 하늘의 좋은 것들을 공유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처소가 되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union christ라 하지요.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네피림이 되고, 용사가 되고, 유명한 자가 되어 보겠다고
불순종의 길을 택하게 되자 그 모든 것들이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에게서 떠나가고 인간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과 우주의 역사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림으로 보여주시고
그들에게 인생이라는 것을 허락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인간들에게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 주신 믿음과 삶의 경험을 통하여,
또 성경에 기록된 불순종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는 길만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과 역사와 신앙생활의 참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된 자들을 모으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시고 그 곳에서 영원히 반역과 불순종을 모르는 당신의 백성들과 거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커다란 청사진을 가지고 이 역사와 우주를 경륜(經綸)해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제사장의 옷은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인 성막의 축소판이며
그 옷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성도가 입는 화려한 신부의 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