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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의 독신 / 존 파이퍼

LNCK 2019. 2. 22. 17:18

 

◈그리스도 안의 독신                         이사야 56:4~5                          스크랩, 출처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이름

 

존 파이퍼

 

    

먼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 저희의 세계관을 놓고 기도하오니

성경의 조각들에 맞추려 하지만

실은 비성경적 가설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셔서

예수님이 일으키신 근본적 변화 안에서

결혼과 독신에 대한 관점을 갖게 하소서.

 

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통해 주의 영이 하시는 일이오니

주께서 이 일을 행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몇 가지 생각이 결함 있는 패러다임(사고체계)

맞아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전체 세계관이 통째로 날아가고

그것이 성경적 사고로 대체되게 하시고

 

이를 통해 결혼이나 독신 같은 더 작은 것들이

영원을 예비하며 사는 이 짧은 세대 안에서

주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설계하신

방식에 맞춰지게 하소서.

 

그러하오니, 오셔서 제가 말씀에 충실하게

도우시며 저희에게 듣는 귀를 주소서.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은 시작과 끝에 요점을 밝히고

중간에 많은 성경 본문을 제시할 겁니다.

그래서 설교 시작 후 토대를 세운 후

설교 끝에 다시 요점을 말할 겁니다.

 

저의 요점은 하나님이 독신으로 남을 이들에게

결혼과 자녀의 복보다 더 나은 복을 약속하신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헌신으로 이루어진 독신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도록

여러분을 부르신다는 겁니다.

 

그 진리는 결혼을 통해서보다 독신을 통해서

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네 개의 진리가, 결혼한 삶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된 독신의 삶을 통해 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가족은 성관계를 통한 번식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에 의해 증가합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관계는

가족관계보다 더 영속적이고 더 귀합니다.

물론 가족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도

가족이라면 정말 멋진 일이겠지만

많은 경우 이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셋째, 결혼은 일시적이며 결국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에게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말입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 사진이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이 삶의 가치를 규정하며

다른 모든 관계는 이로부터 그 의의를 갖습니다.

어떤 가족관계도 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궁극적입니다.

 

이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이게 오늘의 요점이에요.

이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중반부에서 시작해서 맨 앞으로 갔다가

다시 성경 끝으로 가면서 성경 여기저기를 보겠습니다.

이 설교는 독신에 대한 성경 신학이니까요.

 

이사야 56:4~5, “여호와께서 고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들은 생식을 못하는 자들로서

왕 등을 섬기는 특별한 직분에 종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그러니까 하나님은 순종하는 고자들에게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복을 주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독신으로 남은 여러분에게

결혼하여 자녀를 갖는 것보다 더 나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점을 더 명확하게 보기 위해

성경 첫 부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죄가 생기기 전의 창조 질서 안에서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의 초림 사이의

언약적 질서 안에서

하나님은 주로 생식이란 수단을 통해

자신의 언약 백성을 형성하셨습니다.

 

즉 결혼해서 자손을 갖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일이었지요.

원래 민족적 이스라엘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으니까요.

 

따라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서

이름과 유업과 언약을 보전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지요,

 

창세기 2:18, 인간 타락 전이죠

여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나가서 별들을 보라고

하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라가 임신을 못하자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고서 하나님께 말하지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시죠.

 

즉 육체적 자손이 중요했으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되어질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26:3에서 이삭에게

이 점을 재차 확인시키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리라

 

여기서도 육체적 자손이 극히 중요해 보입니다.

자손이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언약을 미래까지

보전하고 연장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멸절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무엇을 간청하였나요?

자기 후손을 끊지 말아서

이름이 도말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무엘상 24: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아주 복잡한 결혼 관습이 있었지요.

계대혼인법이라는 관습 기억나십니까?

누군가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죽은 이의 형제가 미망인을 거두어

종족 안에서 그 형제의 이름이 없어지지 않게

해 주어야 하지요.

이 계대혼인으로 처음 태어나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야 합니다.

 

신명기 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정말 놀라운 규정 아닙니까?

죽은 이의 아내와 그의 형제 사이의 육체적

후손을 통해 이름을 영속시키는 규정입니다.

계대혼인법의 가장 유명한 예가 보아스와 룻 이야기입니다.

 

기억하시죠? 보아스가 룻과 결혼함으로써

엘리멜렉과 룻의 전 남편 말론의 이름과 기업이

없어지지 않게 됩니다.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4:10)

 

이름, 기업, 언약을 보전하는 데 결혼과 후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말씀이지요.

 

입다의 딸이 두 달의 기한을 달라고 한 것은

무리가 아니지요.

임박한 죽음 때문이 아니라 처녀로 죽는 것을

애곡하기 위해서였죠.

 

놀라운 이야기이죠.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가라하고

 

이런 것이 이사야 56:5의 배경입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다음 말씀에 경탄하여

입을 벌리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이 사람들에게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도대체 이 약속은 어디서 유래된 것이고

이 약속은 어디를 가리킵니까?

53장에서 유래된 것인데요. 같이 한 번 가볼까요?

 

이사야 53장은 메시아에 대한 영광스러운 예언의 말씀이지요.

그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합니다.

그런데 10절을 묵상해본 적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7백 년 전에 예언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이로써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요.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사실 그의 날은 부활 이후 영원합니다.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 하리로다

그가 씨를 보게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은 전혀 결혼하신 적이 없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영화 따위 믿지 마십시오.

 

전체의 요점은 그분이 결혼을 하지 않으셨고

죽으시는 날까지 그분은 마른 나무, 고자,

신실한 미혼이었습니다.

그것이 요점입니다!

다른 종류의 후손이죠.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연합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는 그분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후손을 낳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옛 방법을 우선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장인 54장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 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가족을 증식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이 시점에 예언적으로 등장합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죠.

 

세계관을 바꾸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니고데모는 아예 감을 잡지 못했어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나는 자녀를 만들어 여기 왔다.

가족을 만들러 여기 왔노라.

너희가 전혀 모르는 방식으로

생명을 낳기 위해 내가 왔노라.

 

바울도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요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육체적 자손이 아닙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즉 하나님의 가족을 구성하는 이들은

육체적인 자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3은 이 주제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유업을 받기 원하십니까?

올바른 아버지를 가져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듭나게 하사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예수님, 바울, 베드로 모두 결혼이나 출산이 아닌

믿음과 중생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독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잉태하는 데에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여러모로 중요한 이점들이 있지요.

 

바울은 평생 독신이었어요.

적어도, 그의 삶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부분만큼은

독신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아내가 없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미혼인지 홀아비였는지는 모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바울은 아내가 없었지만

그는 아버지이기는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1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바울이 교회에게 하는 말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지금 이 말은 배우자가 없는 독신 남성이 한 말입니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다.

내가 비록 독신이고 미혼이지만

 

또는 여자 입장에서 말한다면

데살로니가전서 2:7이 있죠.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주 안에 있는 많은 독신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해질 수 있겠죠.

그녀는 교회 안의 위대한 어머니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자칫하면 제 설교 내용을

축소시켜서 존 파이퍼 목사가 독신을 감상적으로

다룬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듣는

독신자들의 기분을 맞추려고요.

저는 누구의 기분이든 간에 맞춰 줄 생각이

없습니다만, 교회의 영원하고 주된 성질에 비해

결혼과 가족은 일시적이고 부차적입니다.

오늘 저는 그걸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영원하고 주된 성질에 비하면

결혼과 가족은 일시적이고 부차적입니다.

귀담아 들으십시오. 사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의 땅과

문화에 안주해서 가족을 우상화하고

결혼을 우상화할까 두렵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수증기처럼

잠깐 있다가 없어져 버립니다.

부활 후에 있을 일에 비하면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제가 하는 말은 사소한 게 아닙니다.

마태복음 22:30에서 예수님은 부활 때가 되면

사람들은 장가도, 시집도 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인간 가족 안에 속하는 게

영원한 복의 징표가 아니라는 급진적인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는 게 영원히 복 받은 것입니다.

 

가족에 근거한 관계는 일시적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근거로 한 관계는 영원합니다.

결혼은 영원한 것을 나타내는 일시적인 제도입니다.

 

즉 결혼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

교회와 신랑의 관계를 나타내는 제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야?”

그리고 팔을 뻗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 내 형제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이보다 더 급진적인

말씀을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예수님의 어머니는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외쳤었죠.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말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말씀이 여러분의 세계관을 변화시킵니까?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당신을 밴 태에 복이 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대가 내 어머니라.”

 

생식, 출산, 결혼 같은 자연적 과정을

실제보다 더 위대하게 격상시키지 마십시오.

세상을 지속시키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인

일시적 육체적 수단은 본체가 나타나면 사라질 겁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미혼자들이여, 기혼자들이여,

많은 어머니를 원하십니까? 많은 자녀를 원하십니까?

많은 형제자매, 전토를 원하십니까?

밤에 머무를 곳을 원하십니까?

교회의 일원이 되세요. 하나님 가족이 되세요.

 

교회를 향한 거대한 소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주 잘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러니 교회여,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들으십시오.

 

위의 성경에서 언급한 것들을 버리면,

이것들을 대신할 것을 교회 안에서 백배나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혼과 출산이 부차적, 일시적이라는

이런 성경적 관점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무엇을 말해야 하나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또 예수님을 따라 말한

바울처럼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9: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간에 스스로 된 고자라는 구절을

물리적 거세라고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네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면 빼어 내버리라는 구절을

우리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두 말씀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된 독신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결혼과 자녀로 인한 이름보다

더 나은 이름과 기념물이 약속됩니다.

7장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더없이 강력하게 역설합니다.

 

미혼 성도들 대부분은 이 말씀을 읽고

자신에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 봤을 겁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8, 32~33, 35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로 하여금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7장에서 바울은 각 사람이 받은 은사에 대해 말합니다.

한 사람은 이런 은사, 한 사람은 저런 은사

즉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기반이 되는 성결 말씀을 끝까지 다 살펴봤으니

오늘 설교의 요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늘 설교의 요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미혼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결혼과 자녀보다 나은

복을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 저도 그랬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는 어때? 두 가지를 다 누리는 편이 낫지 않나?

결혼과 자녀의 복도 누리고 영원한 복도 누린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거나

조만간 터득하게 될 사실이 있어요.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복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복보다 훨씬 탁월해서

둘다 누리는 편이 더 낫지 않나?” 라는 질문은

저에게 바다를 주실 거면 골무도 가질 수는 없나요?”라는

질문과 같다는 겁니다.

 

뭔가 힘을 잃게 되지요.

여러분은 천국만 바라보면 됩니다.

사물을 적절한 관점에서 보기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대답입니다.

태평양과 함께 골무도 가지면 안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결혼과 독신은 둘 다 성화를 위한 특유의 시련과

특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특유하며 같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고 둘 다 중요합니다.

각기 특유한 보상이 있을 것인데

어는 쪽이 더 나으냐는 결혼한 여부에 달린 게 아니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지요.

 

따라서 앞으로 장기간 미혼으로 있을

그리스도안의 독신자들에게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내세의 더 나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결혼과 자녀의 복보다 훨씬 더 나은 복입니다.

 

한편 책임과 부르심도 따라옵니다.

누군가는 제 말을 달갑잖게 여기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이 독신자 무리들이 정말로 들어야 될 말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거의 30년을

질질 끌어 온 청소년기를 끝내라는 충고예요.“

 

저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한 겁니다.

제가 여러분더러 컴퓨터 게임이나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지는 말고

청소년기를 25, 30, 35세까지 연장시킬

허가증을 주고 있는 걸로 여기신다면

제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저는 독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헌신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장해서 25세에 영적 아빠가 되고

주의 뜻이면 남은 인생도 독신으로 사는 것을 뜻하며

25세에 자신이 제자로 훈련시키는 영적인 가족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독신은

죽을 때까지 처녀인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또한 얼마나 위대한 상급입니까!

이를 두고 세상은 낭비라고 말하겠죠. 낭비라고요,

그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세계관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말을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사라지고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 세상에서 독신자들이 기혼자들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진리가 네 가지 있습니다.

 

제가 부부들한테는 9주에 걸쳐

그리스도와 교회를 드러내는 방법을 설명했는데

독신 남녀에게는 그에 대응하는 드라마에 대해

한 주 동안에 설명하네요.

 

독신들은 무엇을 드러내야 합니까?

나와 노엘이, 우리 부부가 우리 관계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드러내야 한다면

독신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음 네 가지 진리를 드러냅니다.

 

첫째, 하나님의 가족이 증가하는 방법은

독신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에 피하고 금하는

성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중생으로 인해서이며

여러분은 그런 자녀를 낳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줍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관계는

가족관계보다 더 영속적이고 더 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지속될 관계를

양성하기 위해 우리 목숨을 내어 줍니다.

 

노엘과 저는 천국에서 결혼한 관계가 아닐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죠. 독신인 분들, 결혼하신 분들,

사람들과의 관계나 친구 관계, 그리고 언약으로 묶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셋째, 결혼은 일시적이며 결국은 그것이 내내 가리켜 온

관계에 그 자리를 내줍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죠.

 

넷째,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이 삶의 가치를 규정합니다.

여타 모든 관계가 바로 여기서 그 의의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요.

어떤 가족관계도 궁극적이지 않으며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궁극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결혼의 드라마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설교는 우리가 사물을 성경적으로 보게 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적 설교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많은 질문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했는데

저는 그 질문 모두에 답해줄 수가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가 있사오니,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여, 주께서 대답해 주실 수 있나이다.

결혼해야 하는지 독신이어야 할지 말입니다.

 

늘 우리가 원할 때 응답을 받지는 못하오니

모든 독신자들이 주님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인내하면서

그들이 주께 철저히 헌신되게 하시고

 

혹 결혼하게 되면 그 때도 주께 철저히 헌신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독신자들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옵고

기혼자들의 삶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좌정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타자 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