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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 맺으신 은혜언약

LNCK 2019. 3. 23. 20:42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4163939

 

◈아브람과 맺으신 은혜언약         창17:1~8         2013.06.23.

 

서론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른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은혜언약’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은혜언약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은혜언약은 어떤 언약입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결코 어길 수 없는 약속입니다.

언약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맺으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시겠다는 언약을 맺으셨고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완성하신 속죄를

택한 백성들에게 빠짐없이 적용하겠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맺은 언약을 가리켜 별도로 ‘구속언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속언약도 크게 보면 은혜언약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언약(Covenant)이라는 개념은 창세기 2장과 3장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첫 사람인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혼자만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아담을 대표자로 해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가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행위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행위언약이란,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하지만 창세기 3장에 나와 있듯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와 그리고 아담이

차례로 행위언약을 어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도 행위언약을 어긴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인으로 태어나

결국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을 어긴 이후

인간은 자신의 노력이나 선행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관원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이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27).

 

사람의 어떤 행위나 어떤 노력으로도 영생을 얻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가능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행위언약에 실패할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시간상으로 훨씬 먼저 은혜언약을 체결해놓으신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은혜언약을 체결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이 체결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체결되었고 (삼위일체 간에)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여자의 후손'이 단수로 사용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복수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괴롭히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사단의 종 되었던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내신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은 창세 전에 체결된 것이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시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많은 언약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9:8~17절에는 노아언약이 있습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

다시는 물로 땅을 멸하지 않고 생명체를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 표징으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과 17장에 나타난 아브람의 언약은 그 범위가 좁아져

아브람의 후손과 그 후손들이 살아갈 땅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브람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이 번성하여 큰 나라를 이루고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아브람의 아들인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

그리고 먼 후손인 다윗에게까지 계속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부터 레위기까지 나타난 모세언약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과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것을 지켜 영생을 얻거나 구원을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닙니다.

 

렘31:31~33 등 새언약에서는, 은혜언약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새언약>관련글

 

이처럼 많은 언약들이 있는 이유는

은혜언약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측면들을 하나씩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만졌을 때 어떤 사람은 코를 만지며 뱀 같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다리를 만지며 기둥 같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만지며 드럼통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조합해보면 그것이 코끼리라고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많은 언약들이 있지만 그것을 종합해보면 결국 은혜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언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집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인데 두 언약이 다른 언약이냐?

그런 것은 아니고 한 언약이지만 집행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옛 언약은 그림자와 예표로 집행되는 것이고

새 언약은 실체로서 집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도 은혜언약을 알아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고

신약도 은혜언약을 알아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언약의 창시자는 성부 하나님이시고 은혜언약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은혜언약의 집행자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은혜언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인 것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7장 1~8절 말씀을 통해서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과 아브람이 맺은 은혜언약의 여러 가지 측면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은혜언약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아브람이 맺은 은혜언약의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한쪽은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다른 한쪽은 누구입니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창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7~8).

 

하나님이 누구와 언약을 맺으셨냐면 ‘너와 네 후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아브람과 그의 육신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것입니다.

아브람의 자손이 번성할 것이고, 가나안 땅에 살게 될 것이라는 언약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 언약은 이런 역사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눅1장을 보면 아브람 언약의 영적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부친인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 제사 드리러 갔다가

‘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될 것이고 그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 사가랴의 입이 풀렸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말을 합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눅 1:72~73).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맹세하셨습니까?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눅 1:77).

 

제사장 사가랴는 아브람의 언약을 주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얻는 언약이라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아브람의 자손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영어나 히브리어에는 단수와 복수가 동일한 단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sheep’이라는 단어가 그렇습니다.

이처럼 ‘자손, seed’도 마찬가지로 단수나 복수가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의 자손이라고 하면 단수가 될 수도 있고, 복수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단어가 단수로 사용될 때 예수님으로 해석하고,

복수로 사용될 때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로 해석한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9).

 

그러므로 아브람의 언약을 하나님과 맺은 당사자는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2).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이 택하여

성자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의 언약

성부 하나님이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2. 은혜언약의 ‘시간성’은 어떠한가?

 

창17:7절에 보니까 아브람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아브람과 그 후손인 유대인만을 당사자로 하는 언약이라면

‘영원한’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이라는 것은 기원이 영원 전에 있고, 효과도 영원한 것을 뜻합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자신과 맺은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삼하 23:5).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 13:20).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입니다.

영원 전에 성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딛 1:2).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택하여 그리스도께 주신 백성들에게 영생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원 전과, 영원한 미래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영원 전에 시작되어 영원히 계속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눈부신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택한 자들에게 주신 은혜는 눈부시고 황홀한 은혜인 것입니다.

 

 

◑3. 은혜언약이 약속하는 ‘영원한 미래’는 무엇인가?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8).

 

역사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도 역사적인 의미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 11:9~1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동일한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어떤 약속이냐면 ‘가나안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이 장막에 거한 이유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은 하늘에 있는 가나안 땅을 바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에게 약속된 미래는 다가올 천국입니다.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이 지으실 성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없어질 땅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럽게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더 나은 본향으로 가는 관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깐 누리는 것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리고 잠시 피었다가 지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헛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어 예수님을 믿었으니 영광된 미래가 있는 것을 확신하시고

지금 조금 배고프고 서글퍼도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이 세상은 속히 지나가지만 우리에게 약속된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복을 생각하며 잠시의 고난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4. 은혜언약이 주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인가?

 

은혜언약은 천국뿐만이 아니라 최고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7).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8).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린 아들에게 아주 좋은 아빠가 있었습니다.

퇴근할 때마다 아빠가 사탕을 사서 아들에게 주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사탕이 좋아? 아빠가 좋아?”

 

아들은 한참 고민하다가 아빠가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지혜로운 대답을 한 것입니다.

만약 사탕이 좋다고 했으면, 다음부터는 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좋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사탕에 과자까지 사줬다는 것입니다.

아빠만 계시면 사탕이나 과자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복을 다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도 되시고,

혜도 되시고, 힘도 되시고, 소망도 되시고, 위로도 되시고, 돈도 되시고, 떡도 되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결코 언약을 어기지 않으시겠다는 증거로 인증샷을 주셨습니다.

파리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을 인증샷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결코 언약을 어기시지 않겠다는 증거로 주신 인증샷은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의 의미는 ‘존귀한 아버지’인데

이것을 ‘아브라함’ 즉, ‘열국의 아버지’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길거리에 지나가는 노숙자가

자신의 이름이 이건희라고 한다면, 당신이 무슨 이건희냐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아브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본부인인 사래에게서 낳은 자식이 한 명도 없는데

자신의 이름이 아브라함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자식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이 무슨 ‘열국의 아버지’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이 바꿔주신대로,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은 것입니다.

 

우리도 은혜언약을 따라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직 죄인 같지만 예수님을 완전히 닮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 크리스티아누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닮은 사람들)

 

이처럼 놀랍고 황홀한 은혜를 받은 우리도 아브람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창 17:3).

 

참된 종교는 하나님을 높이고 인간을 낮춥니다.

어떤 종교든지 인간을 높이는 종교는 이단이고 아주 불건전한 집단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놀랍고 황홀한 은혜에 감사하고 엎드려 경배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