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제5장 비용 / 존 라일 눅14:28 스크랩
◑제5장 비용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14:28)
매사에 “비용이 얼마나 들까?”라고 자문해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특별히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한 데가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진실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얼마일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하는 위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던 사람이 두 해 또는 세 해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신앙에서 떠나 이전에 짓던 죄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그들은 거룩한 그리스도인, 견실한 신앙인이 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라 영생으로 가는 길이 즐거운 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은 좁은 길이다. 십자가를 짊어진 후에 면류관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1.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무엇인가?
제 취지를 오해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사람이 드려야 할 희생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단지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예배에 참석한다. 주중에도 웬만큼 도덕적으로 산다.
주변 사람이 믿은 것만큼만 믿으면 된다. 값싸고 쉬운 일이다.
자기 부인이나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의 구원이 이런 것이라면,
생명의 길을 묘사한 말씀도 바뀌어야 한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광대하니!”
하지만 성경의 표준에 따르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꼭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원수들과 싸워야 한다. 희생을 드려야 한다. 애굽을 떠나야 한다. 광야를 지나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 경주를 해야 한다.
안락의자에 앉아 편하게 천국으로 가는 것이 회심이 아니다.
회심을 통해 위대한 갈등이 시작된다. 승리를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자기 의를 버려야 한다.
모든 자긍심과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른 이의 의와 공로에 힘입어 값없이 구원받아야만 하는
가난한 죄인으로 천국을 누리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한다.
“길을 잃은 양처럼 그릇 행하고 잘못된 길로 다녔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했고,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도덕성,
존경받을 만한 점, 자신이 하는 모든 신앙생활에 대한 신뢰를 버려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 한 경건한 농부가 유명한 제임스 허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죄악된 자신을 부정하는 것보다 교만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2) 자기 죄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릇된 모든 습관과 행실을 기꺼이 버려야 한다.
주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상관없다. 그것을 대적하고 싸워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고, 다스려야 한다. 정직하고 분명하게 해야 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특정한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일시적으로만 그 죄를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든 죄를 지독한 원수로 여겨야 한다.
큰 죄든 작은 죄든, 공개적인 죄든 은밀한 죄든 모든 죄를 완전히 거부해야 한다.
“악을 씹어 단맛을 즐기고 혀 밑에서 살금살금 녹이면서 아까워서
내뱉지 못하고 입 속으로 우물거리고 있지만”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악을 버려야 한다(욥20:12).
3) 안락함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
천국으로 난 길을 완주하려면,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진지에 있는 초병처럼, 날마다 눈을 부릅뜨고 깨어 서서 지켜야 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누구와 어디에 있든지, 매일 매 순간 자신의 행실에 주의해야 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성품을 나타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며 동기가 무엇인지, 모든 관계에서 자신의 행실이 어떤지 살펴야 한다.
모든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기도와 성경 읽기와 주일 성수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귀한 체험을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대리적” 기독교를 은근히 바란다.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는 것”이 우리의 영혼이다.
4) 세상의 평판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사람의 어떤 악평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조롱받고, 놀림받고, 비방받고, 핍박받고, 미움을 사기도 할 것이다.
신앙에서 비롯된 생각과 습관 때문에 멸시를 받고 조롱을 당한다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요15:20).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보았다.
나열한 목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하나라도 배제할 만한 것이 있는가?
자기 의와 죄악과 나태함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누리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담대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천국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십자가 없는 값싼 기독교는 결국 면류관도 없는 쓸모없는 기독교로 드러날 것이다.
▲2.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사람의 영혼에 왜 중요한가?
그리스도가 정하신 의무를 소홀히 하면 항상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며 살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용을 계산하기 싫어하는가?
죄에 관대하고, 자긍하고, 안락함과 세상을 사랑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떨쳐 버리기가 훨씬 어렵다.
조금 싸우다가 절망하여 포기한다. 아무 희망도 은혜도 없이,
하나님을 만나기에 부적당한 영혼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믿음의 “뿌리”와 “터”가 부실한 사람들이 있다.
많은 경우 믿는 가정에서 자라고 양육되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얻은 신앙 지식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내면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다.
마음에 분명한 은혜의 역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아주 위험하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 비용을 계산하도록” 촉구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과 가나안 사이 광야에서 비참하게 쓰러져 갔다.
열정과 열심을 가지고 이집트를 나섰다지만, 노정에서 여러 위험과 어려움을 마주하자
그들의 용기는 곧 시들해졌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죄 가운데 죽어 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도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6:66).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던 헤롯왕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자신의 옛 죄로 다시 돌아갔다.
데마 역시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곁을 떠났다.
이것은 참 엄중하고도 슬픈 사실이며, 거룩해지고 싶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용을 계산하는 것을 강조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모든 교회에서 이 설교의 주제를 분명하게 강조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를 나타낸다.
“비용을 계산하라.” 신앙고백자가 많이 나오는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오래 참지 못하고 서두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복음을 통해 바라는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회심과 즉각적을 느낄 수 있는 평화뿐인 것 같다.
세상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고 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용사로 싸우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군대로 떠밀어서는 안 된다. 먼저 비용을 계산해보라고 정직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5-27).
현대의 많은 종교 교사들의 가르침과 이 말씀이 어떻게 조화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교리는 정오의 해처럼 분명하다.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분명히 경고하지 않고
사람을 성급하게 재촉하여 제자도를 고백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서간 탁월한 복음 설교자들은 어떻게 했는가?
루터와 라티머, 백스터, 웨슬리, 윗필드와 존 베리지, 롤런드 힐 같은 사람들.
그들은 끊임없이 “미혹받지 말라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외쳤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감동이 곧 은혜는 아니다.
느낌이 곧 믿음이 아니다. 피어난 모든 꽃이 다 결실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 따라가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열심을 내라. 기꺼이, 값없이 주시는 온전하고도 즉각적인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권하라.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진리 가운데 하라. 온전한 진리를 말해 주라.
병사를 모집하는 일에 천박한 술수를 사용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라.
멋진 제목과 보수와 영광만 말하지 말라.
원수와 전쟁과 무기와 보초를 서는 것과 행군과 훈련에 대해도 말해 주라.
기독교의 한쪽 면만을 말하지 말라. 우리의 구속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말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지고 가야 할 자기부인의 십자가는 뒤로 감추어 두지 말라(마16:24).
기독교가 수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 주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사람들에게 간청하라. 동시에 비용에 대해서도 일러 주라.
▲3. 비용을 바르게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힌트.
1)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득과 손해를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잃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을 얻는다.(막8:36)
2)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칭찬과 비난을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사람에게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3)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친구와 원수를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한편에는 악인과 마귀가 원수로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우정과 호의를 받아 누리게 된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4-5).
4)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이 시대는 편안히 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깨어 기도하고, 싸우고, 분투하고 믿고, 일할 때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곧 끝난다. 도래 하는 시대는 안식과 생명의 시대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7-18).
5) 여러분이 진실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죄가 주는 쾌락과 하나님을 섬기는 행복을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행함으로 얻게 되는 쾌락은 공허하고,
비실재적이고, 만족함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행복은 견고하고,
영원하고, 실재한다. 건강이나 환경에 좌우되는 행복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 행복이다.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얻게 하는 행복이다.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20:5).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전7:6).
6) 참된 기독교 신앙에 따르는 어려움과 무덤 너머에서 악한 자의 몫으로 예비된 어려움을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지옥에서 한 날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평생의 삶보다 더 가혹할 것이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고통은 사람이 온전히 감당하거나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막9:48).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16:25).
7) 죄와 세상으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의 숫자와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의 숫자를 생각해 보고 비교해 보라.
많은 이들이 매년 세상의 넓은 길에서 돌이켜 좁은 길로 들어서고 있는 데 반해,
진실하게 좁은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그 길이 지겨워 넓은 길로 돌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지옥을 향해 내리닫는 걸음은 자주 그 길을 잃어버리지만,
천국으로 난 길을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한 길을 간다.
이런 계산을 항상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한다(왕상18:21).
이러한 잘못이 거듭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히 11장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강력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
노아는 어떻게 끝까지 방주를 완성할 수 있었는가? 믿음이다.
모세는 어떻게 바로의 궁전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버리고,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명예를 거절할 수 있었는가? 믿음이다.
자신이 얻게 될 “큰 상”이 이집트의 모든 영화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라 믿었다.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는가? 믿음이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만난 예수님이,
자신이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분임을 믿었다.
그들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하는 믿음이야말로,
우리 영혼에 대한 바른 결정을 내리게 하는 비밀이다.
이 믿음을 갖고 볼 때, 우리는 모든 것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믿음이 충만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 무엇을 더하지도 않고, 면류관에서 무엇을 빼지도 않게 된다.
우리의 결론이 모두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계산은 틀림없이 들어맞게 된다.
▲결론적으로,
1) 자신의 신앙 때문에 치르고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 전지하게 생각해 보라.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신앙으로 인한 어떤 어려움도 없고,
시간도 들이지 않고,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고, 고통도 없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자기부인도 없고, 갈등도 없고, 노력도 없고, 수고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신앙을 가진 여러분은 평화를 얻지 못하고, 죽을 때도 희망이 없다.
고통의 날에 아무 힘도 얻지 못한다. 임종 때에도 여러분을 북돋아주지 못한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신앙은 가치 없는 신앙이다. 너무 늦기 전에 깨어나라.
깨어 회개하라. 깨어 돌이키라. 깨어 믿으라. 깨어 기도하라.
2)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동기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이 진 빚을 하나님께 갚고 완전한 구속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늘을 떠나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시고, 무덤에 내려가셨는지를 생각하라.
아, 게으른 사람이여, 진정 당신은 수고하기가 싫어서 천국을 잃어버리려는가?
단지 애쓰는 것이 싫어서 영원히 파선하기로 작심했는가? 비겁하고 무가치한 생각을 버리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기를 얻으라. 죽음과 심판과 영원을 내다보고 진지하게 나아가라.
확실한 보상이 있을 것이다.
3) 여러분 가운데 실제로 자신은 이미 비용을 계산했고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탁한다.
인내하고 계속 행진하라. 마음이 약해지고 절망에 빠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원수들이 너무 많게 느껴지고, 자기를 둘러싼 죄악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인내하고 계속 행진하라. 시간이 얼마 없다.
깨어 기도할 시간도,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떠밀려 다닐 시간도,
죽음과 여러 변화를 맞이할 시간도, 몇 번의 겨울과 여름을 더 맞이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내 끝에 도달할 것이다. 이제 최후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동행하시고 현존하신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모습을 보고 우리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면,
자신의 무기력함에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십자가는 무겁게 여긴 반면에, 우리가 받을 면류관은 너무나 작게 여겼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집에 거의 다 와 간다. 참된 그리스도인,
견실한 신자가 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이는 확실한 보상이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