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다양한 강조점 요3:16 02.05.24. 도서 정리
저는 개신교의 특징인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음’임을 믿는다.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써 죄씻음 받고 영생 얻음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적 내용은 → 복음을 ‘믿음’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마다 복음에 대한 다양한 강조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 ‘복음’의 다양한 강조점
우리는 성경 전체 문맥을 벗어난 어느 한 구절을 놓고 자기 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인용할 수는 없다.
그 중에 중요한 한 두 구절만 뽑아서 인용하더라도, 전체 문맥을 숙지한 가운데서 해야한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복음을 전할 때 강조점이 조금씩 달랐었다;
♠ “세례”의 강조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다른 구절을 거의 무시하고 오직 이 한 구절만 강조해서 가르칠 수 있다.
구원받는데 있어서 믿음과 더불어 ‘세례’가 유독 강조된다.
이것이 발전하면 → ‘비록 믿어도 세례를 안 받으면 안 된다’ 까지 치우치게 된다.
사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기독교가 ‘세례’를 무척 강조했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는 오늘날까지 이 전통이 남아있어서, 일부 천주교인들은 교회에서 세례만 잘 받으면
만사 OK!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유아세례부터, 구원과 관련지어,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들도 유아세례식을 매우 성대하게 치른다.
아기의 친척들까지 멀리 타지에서 비행기타고 와서 교회의 조카 유아세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 날은 한국의 돌잔치보다 몇 배 더하다.
친척들은 모두 거금의 축의금을 아낌없이 낸다.
유아세례를 하찮게 여기는 한국 교인에게는 문화충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성대하다.
이런 성대한 유아세례식은-전통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세례’를 강조했다는 뜻.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연히 맞다. 단, 다른 성경구절을 일절 무시한 체
오직 이 한 구절만 강조한다면....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이 된다.
물론 처음에는 안그랬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세례’ 쪽으로 너무 치우친 결과이다.
♠ “고백”의 강조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특별히 초대교회가 극심한 핍박을 받을 당시 이 구절이 유행했다고 본다.
당시에는, 시인하느냐/안 하느냐 말 한 마디 차이로, 죽느냐/사느냐 갈림길이 결정되었다.
당시에는, 예수를 마음으로 믿어도, 공중 앞에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 입술로 고백/불 고백의 여부가, 구원/불 구원의 결과로 인식되어졌다.
여기 제시한 모든 케이스에 “믿음”은 공통분모다. 모두가 기독교를 믿는 성도들 얘기니까.
그러나 복음에 있어서 그 강조점이 시대마다 약간씩 달랐다.
그런데 이 강조점이 정도를 넘어서 치우치고 기형적으로 발전되면,
‘믿음의 공중앞에서 고백/비고백’이 구원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잘못된) 신학이 고착된다.
또한 ‘믿음을 공중앞에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로도 발전된다.
성경의 그 외 다른 구절을 보지 못하고, 한 두 구절에 너무 치우칠 때 생기는 문제다.★
♠“회개”의 강조점
베드로가 사도행전의 예루살렘에서 설교할 때 (구원에 있어서) 강조한 포인트는 ‘회개’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행 3:19)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과 동시에 특별히 회개를 강조했다.(사도행전에서)
그것은 특별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구세주를 잡아죽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복음주의 진영에서 ‘믿음과 회개’를 동전의 양면처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전도자는 “회개하라!”를 18번처럼 늘 입에 달고 다닌다. 모든 설교 주제는 “회개”이다.
(특별히 스스로 개인적 삶에서 죄의 권능, 죄의 형벌을 많이 체험할수록 그렇게 하기 쉽다.)
‘회개’는 분명 ‘복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신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일절 무시하고,
오직 회개만 동그라미 치며 성경 읽고 가르치다 보면... 나중에 잘못된 극단에 빠질 수 있다.
복음에는, 회개 이외에도 많은 중요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 “믿음”believing의 강조점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위에서 살펴본 것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듣고 구원받음에 있어서 ‘믿음’은 필수적인 요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복음’에는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 전체가 복음이다. 예수님은 ‘믿음’만 전하신 것이 아니다.
‘믿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일절 보지 않고,
오직 ‘믿음’(believing, 사실적 믿음)에만 매달린다면...
요 3:16,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으리니...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위의 말씀들은 진리임에 틀림없다.
다만, 성경에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강조점이 다른 구절들도 있는데,
다른 구절들은 모두 일절 무시하고 이 구절만 암송해서 전한다면....
♠ “신앙적 믿음 faith"의 강조점
로마서와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faith였다.
그것은 ‘신앙적 믿음(신앙생활 전반적인 모습을 통칭하는 의미로서의 '믿음'’을 뜻한다고 본다.
즉 '마음으로만 믿는 지적 동의'를 뜻함이 아니다.
로마서의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로마교회 교인들이었다. 이미 신자들believer이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역시 신자들이었다.
이미 신자believer들에게 believe!(믿으라!)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신자들에게는 더욱 신앙적인 믿음의 삶faith이 당연히 강조되었다.
♠ 기타 강조점
사도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의, 절제, 심판을 전했다.
그 이유는 벨릭스 총독이 “이 도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행 24:22)
그래서 (우리가 늘 전하는 복음인) 요 3:16절을 전하는 대신에,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행 24:25)
예수님도 3년반 공생애 동안 “복음”을 전하셨는데,
항상 “믿으면 구원받는다”(요 3:16)만 전하신 것은 당연히 아니다. ‘믿음’과 더불어,
‘회개’와 ‘세례’와 ‘고백’과 ‘의’와 ‘절제’와 ‘심판’과 그 외 모두 모두 골고루 전하셨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예화
교회에서 양순 자매는 참으로 모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훌륭한 며느리 감이다.
권사님들은 서로 중매해 주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A권사: “남자가 믿음 하나만 좋으면 되여!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어여!”
(강조가 총각의 ‘믿음’에 있다는 것, 그 외 인품, 직장 등이 진짜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님)
B권사: “남자가 똑똑하면 되제, 학교 잘 나왔겠다, 직장 좋은데 다니겠다, 좋은 신랑감이여!”
(강조가 총각의 ‘똑똑함’에 있다는 것, 그 외 믿음과 인품 등은 당연하므로 언급 안 함)
C권사: “뭐니뭐니해도 남자는 성격이 좋아야 해, 성격 나쁘면 아무 소용없어!”
(성격을 강조하지만, 믿음과 직장 등의 요소들을 무시하는 것 아님)
▶ 마치는 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강조한다.
맞다. 복음의 여러 요소를 말할 때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공통적인 분모가 ‘믿음’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요한복음 3장16절 등 몇 개의 성경 구절만 뽑으면 안 된다는 뜻.
그렇다고 모든 구절을 모두 나열할 수는 물론 없다.
비록 한 두 구절만 뽑아서 전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성경전체문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전체문맥’을 무시하고 어느 한 두 구절만 뽑아서 복음을 전파해서는 안 된다.★
복음이 ‘값싼 은혜’cheap grace에 치우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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