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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로마로

LNCK 2020. 2. 25. 21:34

성경대학: 바울의 일생 10강 (이근 목사) - YouTube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이전 글 보기 
     AD57~59년경                        *사도행전의 배경 이해에 도움을 줍니다.

◑3차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바울의 보고 
행21:18~21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이 전도해서 세운 각 이방 지역의 교회 대표들이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걷었어요. 

그리고 먼 여정을 거쳐서, 예루살렘 모교회로
다같이 한마음으로 이렇게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바울도 흥분된 마음으로, 그 무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자기가 선교했던 지역의 이방인 교회 대표들을, 직접 선보여 주는 셈이 된 거죠.
바울이나 함께 한 일행(이방교회 대표들)이나 모두 마음이 들떴을 것입니다.
 *이방교회 대표들의 이름은 20:4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방 교회 대표들은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을까?'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예수님은 예루살렘 어디에서 설교를 하셨고, 저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구나' 
이런 궁금함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3차전도여행 끝때, 가이사랴에서 나손이 그 일행에 합류하게 되고요. 
그 나손(예루살렘에 자기 집이 있음)의 집에, 모든 팀들이 같이 여장을 풀게 됩니다. 
자, 예루살렘에서 일주일의 시간이 시작이 됩니다. (바울이 일주일만에 체포됐다는 뜻)
먼저는 구제헌금을 빨리 전달해야 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헌금을 전달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로 야고보사도가 있었고 *예수님 동생 
야고보사도는 감사함으로 그 연보를 받고 
바울이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서
이 귀중한 헌금이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는지, 그 소식을 다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여기서 다른 사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사도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지역이 아직은 좀 위험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 모여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도들이 흩어져 있는데, 

도마는이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가면, 지도로 보면, 
요르단,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도마가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러 갔었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다른 사도들은 세계 온 곳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유대인들이거든요. 우리가 이 개념을 잘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허용이 됐지만, 그렇게 막 자유로운 시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방인 교회에서 헌금을 걷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회에게 
헌금을 전달했다 라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영적으로 하나 됐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전체 그리스도의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게 점점 자라가고 있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요? 이방인 교회들이 헌금한 것을, 
유대인 교인들이, 전혀 이방인이라고 꺼리낌을 갖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우려

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그런데 그 이방인 교회 대표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또 분위기를 봐야 되는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그냥 유대인들이었고요, 
유대인 크리스찬들은 아주 소수였죠. 
그러니 길거리에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그득한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어도, 
유대인 크리스천조차도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를 다 지키고 있던 시기였다 라는 겁니다. 

행15장 예루살렘 공의회 결정에서, 
'이방인들은, 요긴한 것 외에는 율법의 규례를 안 지켜도 된다고 결정했지만'

여기 예루살렘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대세이고,
유대인은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모세 때부터 지켜오던 율법을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모두 버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일단 이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갈라디아의 각 지역 교회 대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으니까,
아마 구경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성지순례를 했던 거죠.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이방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곳곳을 돌아다니게 되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습니다. 
왜냐면 거긴 다 유대인들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유대인의 문화와 규례는 다 버리고, 저렇게 이방인들하고만 노는구나'
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고 이제 자유하게 되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유대인의 문화 속에 있고,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그 문화 사회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함께 지켜 나가야 되는 아주 애매한 딜레마에 빠진 시기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딱 보니까, 바울이 너무 오해를 받을 것 같은 거예요. 
왜냐면 바울이, 마치 유대인을 무시하는 듯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합니다. 

:23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나시인의 서원 기간은 영구적인 것이 있고(삿13:7, 삼상 1:11),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것이 있었죠(민6:8, 12). 

서원한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죠. 
23절의 '네 명의 서원'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서원이라 여겨집니다.

:24 '결례를 행하고...머리를 깎게 하라' 
결례를 행하라는 것은, 바울이 서원한 자들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서원 기간동안 지켜야 할 규범을 지키라는 의미이며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은, 
결례(서원) 기간이 끝나는 날에 머리를 깎고 희생 예물을 드리는데,
이 때에 드는 경비를, 바울이 부담하라는 말로 이해됩니다.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년 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이었으므로(민 6:1-21) 그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죠. 

이 비용을 바울에게 부담하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죠.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그가 물질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율법을 부정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들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었죠.

근데 바울이 선뜻 그 일을 행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알죠. 바울은 이미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라고 말하는 바울이 
이것을 흔쾌히 수락하게 됩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거죠. 

바울이 우리가 2차전도여행 때,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풀고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이와 비슷한 규례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18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천하의 바울이, 유대인의 규례를 지키기로 약속을 하고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전서에 썼던 적이 있죠.
고전9:19~20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은 이미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다 괜찮다. 나는 이방인이 주님 앞에 돌아가는 것도 원하고,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것도 원한다. 
나는 그들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다면, 다른 거는 다 별거 아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일(나실인 서약 끝의 정결례)을 이제 하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일어나 체포되다

이 예루살렘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은 오순절 기간
로마제국 다른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외부에서 온 정통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 정통 유대인들이 우연히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바울을 보게 된 거예요. 
바울을 보니까, 자기가 에베소에서 왔는데, 
자기 고향 에베소의 어느 이방인이,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화가 났어요. 

'어 바울이 이제는 이방인을 예루살렘까지 데려와?' 
그리고 바울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까, 
성전 근처에도 들어가고 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합니다. 

 

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것은 거짓 증거입니다.

21: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바울의 적대자들이 선동하기 위해 외친 소리가 
사실의 목격,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 설명되고 있죠. 
그들은 얼마 전에 바울과 드로비모가 예루살렘 시내에서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죠. 
그런데 지금 성전에서 바울을 보자, 지레 짐작하기를, 
드로비모가 그를 따라 성전에 들어갔다고 본 것입니다. 

바울에 대한 적대감, 더 나아가 바울을 해치려는 음모가 없이 
이러한 오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순간적이고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그를 죽임으로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의 사명을 중지시키는 불손한 의도죠.
 
그러자 갑자기 마치 에베소에서 있었던 큰 소요가
예루살렘에도 갑자기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절기에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 하니까, 소요가 일어난 거죠.

21: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소요가 최초로 성전 안에서 일어났다는 거죠.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무슨 말이냐면,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억울했을 때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성전 안인데 
성전 바깥으로 내쫓아서 문을 닫아 버렸다는 것은 
바울이 보호받을 곳이 없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야고보 사도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결례를 지키게 하는 등 애를 썼는데, 
그게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게 모두 다 하나님의 역사였던 거죠.

이제 급히 로마 군인들이 출동하게 됩니다. 
'바울 치기를 그치는 지라' :32
일단 군대가 출동하니, 바울이 폭도들에게 몰매를 맞던 일은 그쳤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최대 임무는, 점령지의 안정입니다. 치안 유지입니다.
그리고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출동을 하고 
바울을 보자마자 쇠사슬로 결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잠시 착각을 한 거죠.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4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갔던 애굽인이 아니냐?' :38
이 천부장은 오해했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은 막 따라오면서 막 고소합니다. 고함지릅니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저 자를 죽여라, 잡아넣으라' 막 별소리를 다 했겠죠.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바울을 끌고, 안토니오 요새로 들어가 버립니다. 
우리가 연상이 되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그날 많은 군중들이 외치던 그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복선이라고 하죠. 
안토니오 요새는, 마치 미국대사관이 한국에 있으면, 그곳은 미국 땅으로 인정해 주듯이,
안토니오 요새라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지만 로마 땅입니다.

근데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갑자기 안토니오 요새로 끌려갔다는 것은,
뭘 암시하냐면, '바울이 이미 로마로 갔다' 라는 것과 같은 의미죠. 
즉 바울의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줍니다.

그는 안토니오 요새에서 며칠 붙잡혀 있으면서
자신이 '로마로 가야 된다'는 사명을, 더욱 확실히 붙잡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 주님이 나를 로마에 가라고, 여기 로마 진영(요새)에 나를 이끌려 오게 하셨구나'

22: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진지 안)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시민'이라는 말을 듣고는, 
이제는 자기 맘대로 시시비비를 판단할 수 없고, 
정확한 법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받게 되는 법적 절차가 바로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그 지역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로마가 어느 수준의 법적 권한을 그들에게 줬습니다. 

그 정한 범위를 넘어가는 것은, 
가이사랴로 가서 총독이 해결해야 되었습니다. 
당시에 가이사랴는, 팔레스틴의 로마군대나 정부의 본부였습니다.

22:30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여기 나오는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탐욕스럽고 포악하고 십일조를 횡령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죠. 
AD 48~59년까지 직위를 유지했나 봅니다.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자기 간증을 하고,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믿었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또 자기가 이방인들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 라고 말하니까 
그는 '바울의 입을 치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23:2

'(바울의) 입을 치라'는 얘기는, 아주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죠.
그러자 바울도 발끈해서, 강력히 말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23:3

근데 산헤드린 공회원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합쳐져 있어요. 
그리고 바울이 자기가 바리새인이고, 부활과 영생을 말하니까,  23:6
공회원 중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나뉘어져서 갑자기 서로 싸우게 되는 거예요. 

 

바울을 가운데 놓고, 바리새인들은 보니까 '큰 문제 없네'  23:9
그런데 사두개인들과 제사장 쪽은 '아니다. 바울은 정말 죽을 죄인이다'
막 이렇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사두개인은 부활, 천사 등을 믿지 않으니까요. 23:8

근데 어느 정도로 실랑이가 벌어졌냐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바울을 가운데 두고 
심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이 우갈 정도의 일들이 막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바울이 크게 다칠까 봐 염려되어서 
천부장은 바울을 다시 요새 안으로 바울을 피난시키게 되는 겁니다. 23:10

바울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일이 막 급격하게 격랑치며 흘러갑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런 말입니다. '바울아, 걱정하지 말고, 오늘 잘했다. 
네가 저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 라고 정확하게 밝혔듯이,
이 일을 로마에서도 똑같이 하게 될 것이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오늘 밤에 찾아오셔서, 제 곁에 서셔서 
'담대하라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될거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체포되고, 재판을 받게 되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생기면
아무래도 좀 마음이 약해 지겠지요.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23:11
두려워할 상황에서, 전혀 두렵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담대하게 모든 상황을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천부장이 보니까,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게 해결될 일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바울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근데 유대인들이 또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매복해서 기다리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결심한 열심당(시카리 파)들이
40명의 암살단을 구성합니다. 
그들은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23:12

이 첩보를 천부장이 입수하게 돼죠.
그리고 바울이 로마사람인 걸 알았으니까, 특별하게 이송 결정을 내립니다.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을 동원을 해서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호송하게 됩니다. 
중무장한 470명의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호위해서 가이사랴로 가는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 전날 밤에 '담대하라'라고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호송되면서 아마 깨달았을 거 같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드디어 바울은 가이사랴의 벨리스 총독에게 당도를 하게 됩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그곳 헤롯 궁에 구금됩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를 대동해서 
이제 바울을 고소하러 가이사랴로 내려옵니다. 

벨릭스 총독은,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24:23

이 시기에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뀝니다. 
유대인들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에게 청원하기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예루살렘에서 재판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죠.
이유는, 길에서 매복했다가, 바울을 죽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25:1~3

이에 베스도가 바울에게 묻습니다.
25: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이때 바울은 '나는 로마로 가서,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라고 정확하게 말합니다. 

이때 베스도 총독은 부임하자마자 너무 머리가 아파서 
당시에 유대의 왕이었던 아그립바를 부릅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로마에서 파견하는 총독 말고도, 현지인 출신의 왕을 임명해서
가급직 식민지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총독과 왕에게 번갈아 심문을 받으면서, 
사실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요 인사들에게 다 전하게 되는 거죠.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왕족 여인)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바울은, 여기 가이사랴 로마군 부대 수감시설에서 2년 이상을 지내게 됩니다.  24:27
사실은 유대인 폭도들로부터, 하나님은 바울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계시는 겁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이제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가이사의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됩니다.
호송 책임자는 백부장 율리오 였습니다.

율리오는 바울은, 그냥 다른 중범죄자처럼 그렇게 막 다루지 않고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고, 나름대로 그 호송하는 기간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유권도 좀 주었습니다. 

그래서 누가와 아리스다고 (데살로니가 사람) 가 로마까지 바울과 동행합니다. 27:2
 
당시 중죄인들은 갑판 아래에 쇠사슬로 묶여 있어야 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정은 가이사랴에서 출항해서, 시돈을 거쳐서, 무라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27:5

사도행전에 보면, 누가가 배의 항해 여정을 자세하게 적어 놨잖아요. 
앞서 빌립보에서 가이사랴로 올 때도 그랬고, *3차전도여행
지금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갈 때도, 상세하게 여정과 경유지를 기록해 놨어요. 27:4~5등 

그런데 19세기 중엽의 스코틀랜드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다가
이 뱃길이 정말 정확한가 하고, 이 뱃길대로 한번 항해를 해봤답니다. 
그랬더니 지금도 가장 최적의 항해 길(항로)이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당시에는 엔진이 없고, 배가 바람과 해류와 노에 의존해서 항해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항로가 가장 편리했다는 거죠.

바울의 일행들은 무라에서 배를 갈아탑니다. 
알렉산드리아 호 라는 로마행 배로 갈아타고 갑니다. 27:6

그런데 미항까지 왔는데, 계절이 겨울이 되어버렸습니다.    주1) '미항'
겨울에는 매일 같이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춥고 비가 내리니.. 비가 내리면 또 폭풍우가 따라오죠. 그래서 항해가 매우 어려웠죠.

이때 바울은 여기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자고 합니다.
그런데 선장이나 선주는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고 합니다.
뵈닉스 Phoenix 그레데 섬의 서남쪽 끝에 있으며 미항으로 부터는 약 65Km 떨어진 항구죠.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27:11

미항에서는 왜 겨울을 나기가 어려웠을까요? 

가이사랴에서 떠나올 때부터 배가 기후 때문에, 천천이 오는 바람에   27:7
일찍 겨울이 닥쳐버린 거예요.

이제 겨울로 들어가면 우기가 되고, 폭풍이 많은 계절이 오기 때문에 
어디에선가는 쉬어야 되는데,
선원들이 뵈닉스를 원한 것은, 그사람들이 원하는 여흥을 즐길 수 있는 술집이나 
그런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뵈닉스 라는 거죠.
지금 배가 정박한 미항은, 그런 것들이 많이 없는 조그만 항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항에서 뵈닉스로 가다가.. 그만 유라굴로 광풍에 휩싸이게 되죠.
당시 배는 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거센 풍랑을 만나면, 떠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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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미항... (칼루스 리메나스)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항구'라는 뜻인데 
이곳은 지금도 동일한 뜻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죠(Limeonas Kalous).
크레타(그레데) 섬에 있는 항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