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안나는 신자, 겁 나는 신자 눅9:22~23 2020.11.28.큐티묵상
눅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제까지 한 번도 십자가에 대한 언급을 하시지 않다가
‘주는 그리스도이시다’는 신앙고백을 들으시자마자 :20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이 십자가에 관한 ‘묻기조차 두려운’ 말씀을 비로소 꺼내놓으셨다.
▲내가 이방종교의 기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유
회교, 힌두교, 불교.. 이런 분들의 기도생활을 보면.. 처음엔 두렵기까지 하다.
어떤 이들은 하루에 5번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무릎 꿇기도 어려운데...
동남아의 회교, 힌두교 사원에 가면 .. 기도자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신발도 벗어야 하고, 발도 씻어야 하고, 절하는 데도 있고..
그 기도자의 ‘정성’으로 비교한다면 기독교인과 상당한 수준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런 타종교인의 정성어린 기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면 방송국 앵커가 그 사원 뒷문에 서서, 막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저 사원에서 방금 뭐 기도하고 나오셨나요?’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즈니스 잘 되게 해 주시고, 결혼 잘 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 건강 지켜 주세요!’
그 다음부터 나는 그 수만명의 인파, 매일 혼잡한 사원의 그 거대한 기도행렬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저 거대한 기도 인파가 별 거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몇 번씩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한다는 회교신자들도 마찬가지다.
뭘 기도하느냐고 한 번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물어보시라. 그들의 기도제목도
세계 만국 이방종교의 공통된 기도제목과, 한국의 샤머니즘의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정성 갸륵한 그 기도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20세기부터 도시가 대형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대도시로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 교회도 덩달아 커졌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보면, 교회에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들어오고 나오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별새벽기도’가 생겨서
그 캄캄한 새벽에 수많은 인파들이 마치 대낮처럼 운집하는 모습은 솔직히 보기에 감동적이다.
그런데 거기 모인 분들에게 ‘뭘 기도하러 오셨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동남아 사원에 기도하러 모이는 수많은 인파의 기도제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가정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인다면
모인 신자의 숫자에 관계 없이
마귀가 아주 두려워서 벌벌벌 떨 것 같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처음 대면하시자마자, 그 초신자들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겁박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배운 제자들에게
결국 요구하신 것은 ‘나는 십자가를 질 것이다. 너희도 너희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다!’ 였다.
십자가는 타협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었다.
십자가는 타협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정체성이다.
‘운명 destiny’ 이란 말이 있는데,
예수님의 운명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제자들의 운명, 우리들의 운명도... 십자가의 길이다.
만약 그 레일을 벗어난다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기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다.
▲쉽게 납득 안 되는 간증
데이빗 파슨 David Pawson 박사는 약7년 전 미국에서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가 예수 믿은 지 도합 50년이 되었는데,
최근 10년 동안의 고난이, 앞선 40년간의 고난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파슨 박사는 오래 전에 30대의 딸이 요절하더니
이제는 늘그막에 아내가 암에 걸려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집회 차 왔지만
마음이 늘 긴장되고 졸이는 것이다. 암 투병 중인 아내 때문에!
그 외도 여러 가지 환란이 있어서.. 자기 주변의 사람은 자기가 겪는 고난을 다 안다는 것이다.
더 큰 사명을 감당하니까, 더 큰 도전이 오는 것이겠지만,
이게 만약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니, 신앙 연수가 지날수록 예수를 더 진실하게 믿으면..
삶이 더 평안해져야 정상일 것 같은데.. 더 힘들어진다니..
그러면 누가 예수 믿겠나.. 싶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십자가의 운명 때문이다.)
‘예수 좀 살살 믿고, 고난도 좀 살살 받고.. 그러다가 천국에 가야 되겠다’
이런 엉뚱한 꾀가 생길지도 모른다.
▲제자, 사명자에겐 십자가의 고난이 필수적이다.
만약 그런 고난이 없다면,
그의 삶이 복을 받아서 평탄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아예 그가 제자, 사명자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일평생 사명자로서 주님을 섬기며 살 때
노년에는 좀 평안을 주시고, 쉼을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은 자기 종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신 것일까?
구약에 야곱을 보면, 얍복강에서 그는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된다.
이때 ‘한 손으로 치시나, 다른 한 손으로 도우신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야곱을 점점 더 궁지로, 점점 더 격렬한 씨름(레슬링)으로 몰아가시면서
참으로 이상하게 다른 한 편으로 야곱이 그 씨름에서 이기도록 도와주신다.
병주시고 약주시는 방식이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시는 방식이다.
십자가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십자가 멍에를 주시고,
동시에 다른 편으로 내가 십자가 멍에를 잘 지도록 도와주신다.
사명자에게 십자가가 없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아니 그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고 한다.
데이빗 파슨 박사의 경험담에 의하면!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단단히 지고 가기’ 위해 특새를 해야지
안 그러면 어린 신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내벗어 던지고, 내팽개치고 달아나기가 쉽다.
실제로 초신자들은 예수 믿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사업이 기울거나 중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시험에 들어서 기도도 안 하기 일쑤이다.
십자가 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당한 큰 고난이 자세하게 두 번 나오는데
먼저는 행16장에서 빌립보 성에 들어갔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낫게 해 주었는데
그 일로 붙잡혀서 옥에 갇혀서 아주 흠씬 매를 맞았다.
아니 하나님이 드로아의 환상을 통해 바울 일행을 거기로 보내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아시아 전도에서 유럽전도를 시작하는
어떤 역사의 중대한 터닝포인트 였다.
이 중차대한 새역사(유럽 전도 시작)를 펼쳐가는 가운데,
우리 주님이 바울에게 내려주신 선물은, 뜻밖에도 감옥에서 흠씬 매를 맞는 십자가였다.
한 손으로 치시고, 한 손으로 도우시는 것이다.
유럽전도를 막으려고 마귀가 바울을 마구 괴롭힐 때,
주님은 그런 마귀 역사를 허락하시면서, 동시에 그를 도우신 것이다.
또 한 번 중대한 역사의 터닝포인트에서, 바울은 또 크나큰 십자가 시련을 당하게 되는데
행27장의 유라굴로 광풍이었다.
이 시기는 바울이 로마 선교를 시작할 찰나였다. 마귀가 광풍으로 극심하게 훼방했다.
말이 폭풍 속 14일이지, *행27:33
정말 보통 사람 같으면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버럭 화를 내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을 것이다.
우스갯소리인데, 과거에 코미디에 보면
배역을 맡았다고 좋아하다가, 연기하는 중에 뺨을 세게 맞으면
그냥 눈물이 핑 돌면서 대본을 바닥에 확 내동댕이치고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 그런 코미디가 있었다.
우리가 바울 같았으면, 로마로 선교하러 간다고 큰 포부를 품고 나아가는데
주님이 난파선에서 폭풍우 물 폭탄을 며칠 밤낮으로 계속 주시면...
글쎄 바울처럼 버텨낼 수 있을까? 과연 그 십자가를 견뎌낼 수 있을까?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십자가를 주신다.’는 말이 있다.
주님은 한 손으로 나에게 십자가를 주시지만, 다른 한 손으로 내가 십자가를 지도록 도우신다.
성도들이 십자가를 지도록 독려하고 인도하는 목자.. 숫자에 관계 없이 그는 참 목자가 될 것이다.
교인들을 가내안전 사업번창으로 인도하는 목자.. 참 목자로 주님께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거창고등학교에 전영창 교장선생님이 계셨다고 한다.
그분은 거창고 학생들에게 ‘직업구하지 십계명’을 가르치면서
십자가를 지는 길, 가족이 반대하는 길,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길을 가르치셨다.
정말 십자가를 올바로 가르치신 존경스런 참 스승이셨다.
십자가 끝에 참 구원, 참 성공, 반석위에 집, 참 승리가 있지
그것 없이 그저 축복만 추구하다가는 .. 그 성도들은 모두 모래위에 세운 집이 될 것이다.
보통 때는 별 차이가 없지만
비바람 치고 홍수가 나면, 모래 위에 세운 집들은 모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질병의 십자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이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혹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특별히 쓰시려고 중병의 십자가를 주시고, 그를 젊을 때 일찍 헌신시키시는 것이다.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절름발이 만들 듯이, 한 손으로 치시고 다른 한 손으로 도우시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리석고 연약해서
자기가 계속해서 영원히 젊고, 건강하고, 늙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생활하며 살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세월은 살같이 빠르게 지나며
자기가 이제 곧 늙고, 병들고, 직장을 잃고, 처량한 신세가 올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젊을 때, 자기 잘난 맛에
국내외로 여행 다니고, 세단 차타고 뽐내며, 멋도 한껏 부리고, 상류인사로 사는 폼을 잡는다.
그렇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하는 일에 정말 젊어서부터 일찍 철이 들어서
세월을 아껴서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찾기는 대단히 힘들다.
겨우 주일 오전 예배나 한 번 참석하고 배추 잎사귀 몇 장 내면.. 대견한 신자 축에 속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녕 사랑하시는 사람은, 그에게 젊어서 십자가를 주신다.
늙어서 십자가를 지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어서 지는 면이 있다.
그런데 젊어서 십자가를 지기란 쉽지 않은데.. 주님이 그에게 실패와 질병을 주실 때,
그는 ‘사람이 결국 늙고 병들어 처량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그 나이에 벌써 깨닫는다.
그래서 해외여행이 낙이 아니라 주님께 헌신하게 되고
그래서 저 푸른 초원 위의 전원주택이 소망이 아니라, 천국의 영원한 맨션을 소망하게 된다.
오늘도 마귀가 아주 겁을 내는 성도가 있다. 바로 십자가를 지는 성도이다.
오늘도 마귀가 아주 낮잠 자며 냅두는 신자가 있다. 십자가가 뭔지도 모르는 신자이다.
오늘도 마귀가 아주 겁을 내는 교회가 있다. 바로 십자가를 지는 길로 인도하는 교회이다.
오늘도 마귀가 아주 신나 하며 미소짓는 교회가 있다. 타종교들처럼 기도하는 교회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는 성도를, 한 손으로 치시나 다른 한 손으로 도우신다.
우리는 어떤 십자가를 지더라도, 원망, 불평, 한숨, 탄식, 짜증, (주님께) 폭언을 하면 안 된다.
요일5:4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 즉 믿음이다.
이것이 세상을 승리하게 한다! 우리에게 이김을 준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면 안 된다.
오늘 나는 큐티 묵상을 통해서, 십자가의 길을 성실히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오늘 나는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가내안전 사업번창을 기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