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보다 죽은 다음에 결판 난다 눅13:18~21 2020.12.03. 큐티묵상
눅13:18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오늘은 그 유명한 ‘겨자씨 비유’를 잠시 묵상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작은 것이.. 나중에 아주 커진다는 내용인데
<그것은 살아생전보다 죽은 다음에 결판 난다> 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다.
요12:24절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가만히 그대로 있으면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겨자씨도 마찬가지다. 겨자씨 작은 한 알이 나중에 큰 나무가 되려면
일단 먼저 <죽어야> 한다.
여기서 ‘죽는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자아의 죽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문자적으로 진짜 '육체의 죽음'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여기서는 후자, 즉 진짜 육체의 죽음으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30년 전에 설교시간에 들었던 예화가 생각난다.
오랜 옛날에 중국의 어느 사냥꾼이 달을 따러 (사냥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자기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출발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왜 사냥에 거추장스럽기도 한 아들을 데리고 떠나는가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만약 내 당대에 달을 못 따고 늙어서 죽으면,
우리 아들이 나를 뒤이어서 달을 반드시 사냥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어떤 결기가 느껴지는 각오이다.
그 어떤 과업을 자기 당대에 만약 못 이루면, 자기 후손의 대에서까지라도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그 멀리 장래를 내다보는 시각이 참 인상적이었다.
▲오늘 본문의 ‘겨자씨의 비유’ 역시 그런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하리라 본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하신 것인데
내가 정말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고 있으면
그게 지금은 비록 겨자씨처럼 아주 미미하지만
반드시 그 열매는 맺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열매는.. 그 겨자씨가 죽고 나서.. 오랜 세월 후에 맺힐 수도 있다.
즉 내게는, 자기 아들을 등에 업고 사냥을 떠난
그 고대 중국 사냥꾼의 심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 나라 사역에 투신해서
자기 당대에 열매를 거두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이들은
자기가 죽고 나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자기가 진정 하나님 나라 사역에 헌신했다면
(설마 우리 예수님을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그 열매는.. 마치 많은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가 반드시 되든지,
적은 누룩이 온 반죽덩이에 퍼지든지.. 반드시 열매 맺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시기와 시점은.. 장담할 수 없다.
겨자씨든지 밀알이든지.. 한 알이 죽어야 한다고 했으니,
죽고나서라도 반드시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다.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그의 사역의 열매는 사실 ‘그가 죽고 나서’
진짜 그 열매의 진위가 가려진다.
예를 들면, 탤런트나 운동선수 같은 유명인사들 중에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아주 인기가 높았으나
그가 은퇴하고 나서, 또는 그가 사후에는
완전히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버리는.. 그런 유명인사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죽고나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셀럽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소위 ‘레전드(전설)’라고 부른다.
기독교 사역도 그와 비슷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현역 시절에는, 또는 그의 살아생전에는 아주 큰 바람을 일으켰으나
은퇴 후에는, 또는 그의 사후에는 존재감 제로인 사역자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은퇴 후에, 또는 그의 사후에
살아생전에 못지 않은, 오히려 살아생전보다 더 활발하게
신자들은 그를 그리워하고, 그를 생각하며, 그를 존경하며 그의 영향을 받는다.
소위 전자는 모래 위에 세운 사역이고,
후자는 반석 위에 세운 사역이다.
더욱이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서,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런 SNS를 통해
그분이 벌써 10년 전에 소천하셨지만,
마치 오늘 살아계신 것처럼, 그 분의 음성을, 그 분의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
그리고 살짝 놀라게 된다.
‘아니 십년 전에, 이십년 전에 어떻게 이런 살아있는 메시지를 전하셨을까?’
그런 분들이 미국과 세계에도 많고, 한국에도 계신다.
인터넷이 없던 지난 세기의 선조들은, 그들의 설교가 책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누가 무슨 거대한 바람이나 돌풍을 일으키더라도
진짜 그에 대한 판가름은.. 죽고 나서 정확하게 판가름 나게 된다.
지금 무슨 유명 셀럽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우리 각자 자신도
내가 정말 진실하게 하나님 나라 사역에 헌신했다면
죽고 나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살아생전에도 열매가 맺어지겠지만
더 정확한 열매는.. 죽고 난 뒤에 맺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 ‘역사의 평가는 정확하다’는 말은
성경에는 안 나오는 말이지만 옳은 말이다.
▲너무 열매를 급하게 얻으려 하다가는 실패하기 쉽다.
우리는 다 ‘급한 성격’의 민족적 DNA를 갖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빨리 빨리!’
그래서 교회개척을 하든, 선교를 하든
2~3년 만에 열매를 보려 하고, 5년이 지나도 별 열매가 없으면
무능한 사역자로 보여진다.
그래서 교회 건축도 빨리 크게 하고,
뭐든지 자기가 몸 담은 일에
하루빨리 가시적 성과나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건 사람인 이상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런데 기독교 사역의 특성상
사람이 개종하고, 회심하고, 변화되어,
이제 제자가 되어 재생산이 가능한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속전속결로 되지 않는다. 아주 긴, 긴,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자기 당대에 그 열매가 안 나타나기가 오히려 더 쉽다.
그래서 한 알의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죽어서,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는 역사가 나타나려면
정말 죽고나서.. 그 시간까지 기다려 봐야 된다.
예수님도 공생애 3년 반의 진정한 열매가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죽고 나서’ 였다.
예수님 당대에, 살아생전에 변화된 제자는 .. 12사도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알의 겨자씨가 커서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은 진리이다.
그런데 이 진리가 내게 적용되려면
어쩌면 나는 등에 어린 아들을 들쳐업고 출발하는
중국 사냥꾼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매를, 내 당대에는 혹시 못 본다 할지라도
내 자식 대에는 반드시 보겠다는 .. 그런 각오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포석을 둘 때,
30년 후를 내다보는 포석을 둬야지,
당장 1~2년 만에 열매를 얻겠다는 식으로 (바둑의) 집을 지으면
그건 모래위에 짓는 집이요, 필패가 보장된 집이요 사역이다.
▲최근 어느 분의 간증을 들었다.
노인은 이제 구십세를 넘으시고 이제 천국에 가실 날을 기다리고 계신데
자기 삶을 되돌아보니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은 부산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1945년 해방 당시에는 교회의 청년 서리집사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분이 젊어서 기독교 신앙을 버리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하루는 그 분의 아버지 OOO장로께서
부산의 초량에 삼O교회를 지을 당시 *당시 한O동 목사
초량의 언덕배기에 있던 3백 평의 집을 팔아서 전액 건축헌금을 드린 것이었다.
그때 당시 막 신혼생활을 하던 아들 서리집사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자기가 장남으로서 그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장로님이 독단적으로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었다.
그 집사는 단단히 시험이 들었고, 그때부터 기독교를 끊게 되었다.
그 후로 빈털터리가 된 부친 장로님을 자기 집에서 모시고 살았는데 (그때는 장남이 모셨다)
장로인 아버지가 ‘아들, 용돈 좀 줘!’ 하면
‘하나님께 타서 쓰세요!’ 하고 박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그 젊은 집사님은 기업에 들어가서 아주 승승장구 하고,
지역 유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부친 장로님 때보다 훨씬 더 나아졌다.
젊어서는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자수성가, 출세한 줄 알았는데
이제 늙어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기 부친 장로께서 그렇게 집을 팔아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소천하셨는데
그 열매는 부친이 소천하신 후에, 아들인 자기가 고스란히 받았다는 고백이었다.
자기는 그 일(집 바친 것)로 시험들어서 오래도록 교회를 떠났다가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로 젊어서 신앙을 등진 것이 지금 돌아보니 후회스럽고,
또 부친 장로님을 야속하게 생각해서 용돈도 안 드린 것이 후회스럽고,
지금은 아버지 장로님의 공로로
자기를 필두로 여러 후손들이 다 복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것이
뒤늦게나마 감사하다는 것이다.
지금 ‘교회에 헌금을 많이 냈더니 복을 받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장로님이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대로 순종했더니,
결국 그 열매는 그 장로님 당대보다는,
장로님이 소천하신 후에 그 후대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겨자씨 한 알이 커서 큰 나무가 되는 것은.. 진리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 겨자씨가 먼저 죽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다음 세대에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면
그가 헌신했던 일은, 하나님 나라 사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관련글 :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http://blog.daum.net/rfcdrfcd/15976666
편집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