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의 대가 눅14:25~35 2020.12.04.큐티 묵상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장 흔히 알고 있는 교리가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이다.
주님의 십자가 공로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가 받은 구원은 ‘거저 free’ 이다.
그래서 세상에 쉬운 것이 ‘구원 받는’ 것이다 라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갖게 된다.
그런데 본문 눅14:24~35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당황스런 말씀을 하신다.
정반대로 제자가 되기는 ‘아주 까다롭고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구원 받기는 아주 쉽다는 뜻은, 그것이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쉽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는 아주 어렵다.
그럼 구원 받기도 쉽지 않고 어려운 것이다.
이 딜레마에 대해선, 아래 특공대 비유에서 간단히 설명해 놓았다.
◑본문 간단 해석
눅1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걸어가시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다 보셨다.
뭔가 꼭 가르쳐야 하는, 뭔가 꼭 말해야 하는 중대한 내용이 있으셨던 것이다.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제자도의 대가 1. 자기 가족을 우상화하지 말라.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제자도의 대가 2. 자기 목숨을 우상화하지 말라. 그러면 제자 못 된다.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구원은 공짜이지만, 제자도에는 대가가 따른다. Cost of discipleship 이다.
그 비용을 한 번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본문은 평소 예수님의 워딩과, 평소 내가 알고 있는 개념과 .. 상당히 차이가 있다.
마치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뭐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요?’
‘공짜 아니었나요?’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구원 받은 사람들 가운데
‘기초만 쌓고 그것으로 끝내버리는’
건축물로 치면 마치 흉물같은 그런 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소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나, 제자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제자가 안 되면, 하나님이 너를 치러 오신다. 너는 절대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잘 계산해보고 하나님께 순순히 굴복하는 게 낫다. 제자도의 요구에 항복하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제자도의 대가3. 자기 소유
여기서 소유란, 꼭 물질만이 아니라 명예, 안락함, 지위 등 모든 소유를 뜻한다.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제자도의 대가를 치르기를 거부하는 자는 맛을 잃어 길에 버려지는 소금(흙)과 같고,
거름, 즉 똥무더기에도 쓸 데 없을 정도로 완전히 버림을 받는다.
◑구원은 거저인데, 왜 제자도에는 대가가 따르고 이렇게나 어려운가?
미국의 특공대를 뽑을 때는 입학은 쉬우나 졸업은 어렵다고 한다.
미국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조건부 입학이라도 시켜줘서 다 뽑아 준다. 다 기회를 준다.
그런데 그 어려운 훈련 과정, 그 어려운 공부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하는 것은 각자 개인에게 달려 있다.
입학의 문은 넓으나, 졸업의 문은 아주 좁은 것이다.
들은 얘기에 의하면,
네이비씰 특공대도 5백명이 입학하지만, 지옥훈련을 참고 거쳐서 진짜 특공대가 되는 사람은
그 절반 정도만 된다고 한다.
우리 구원도 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누구든지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입학은 된다.
그러나 입학이 곧 졸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제자도의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하는, 즉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적지만 우리는 은혜로 주님의 이끄심을 받는다. 막10:27참조
지금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입학문으로는 들어왔으나, 중간에 자진해서 탈락한 자들은.. 결국 온전한 구원을 못 받는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이렇게 나와 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34~35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도의 대가로 말씀하신 것이 3가지이다.
-자기 처자, 형제 자매, 부모 등 자기 가족 :26
-자기 목숨 :27
-자기 소유 :33
이 세 가지를 미워하고, 버려야 내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인데
왜 예수님은 이런 소중하고 좋은 것들을, 꼭 버려야 된다고
어쩌면 상당히 무리가 되는 그런 요구를 하시는 걸까?
현대에 이런 것을 버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데는 이단들이다.
이단들이 이런 구절들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악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구절을 오해해서,
가족도 도외시하고, 집도 다 팔고... 그래서 사회 문제가 가끔 되기도 한다.
그럼 예수님의 진의는 무엇일까? 이렇다고 본다.
영어에 The good is the enemy of the best 라는 말이 있다.
‘최선 the best’ 의 적은 ‘좋은 the good’ 이다. 또는 '차선은 최선의 적이다'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자기 가족
-자기 목숨
-자기 소유 (즉 자기 명예, 자기 지위, 자기 물질 등 모든 소유)
위 세가지가 다 좋은 the good 것들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만약 방해가 된다면
‘미워해야 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들이다.
본문의 직전 단락에도 보면, 주인의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눅14:16~24
밭을 산 사람,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 결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다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차선은, 최선의 적이었다. 좋은 일, 선한 일 하다가.. 주인의 초청을 거절한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는데 시금석, 어떤 잣대는 ‘자유’이다.
1) 참 제자는, 자기 가족에 대해서, 또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유한다.
늘 하나님이 생각나고, 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데,
자꾸 가족이 생각나거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뇌리에 자주 떠오른다면,
그래서 자기가 <자유>하지 못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버려야 하고, 미워해야 될 대상이다.
그걸 아까워서 못 버리는 사람은, 한 번 비용을 계산을 해 보라는 것이다.
제자 되다가 포기하면... 29절에 사람들이 다 비웃는다고 했다.
마치 집 짓다가 중도에 포기한 사람처럼.. 비웃음을 당하게 되고, 온전한 구원도 받기 어렵다.
그런데 가족 식구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 제자는,
결국 자기 가족 식구를 보다 더 진실하고 성숙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 소위 아가페 사랑으로!
2) 참 제자는, 자기 목숨을 사랑해야 하지만, 자유해야 한다.
요즘은 자기 건강 우상화 시대이다.
사람이 50대 중반이 지나면 모두가 암에 대해 초긴장 하며 사는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자기 목숨, 생명에 대해서 자유하라는 것이다.
자기 목숨이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목숨에 대해 자유롭게 사는 사람..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그럼 구원의 입학은 했으나, 제자도를 감당 못 해서 졸업을 못한 신자들의 영원한 운명은?
나는 '바깥 어두운 데' 간다고 본다. 그도 잔치 자리에 까지 왔으나,
예복을 준비하지 못하여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겼다. 마22:13
3) 세 번째 제자도의 대가 ‘자기 소유’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서 소유란, 물질, 명예, 안정감 등 포괄적인 의미일 것이다.
이거 안 버리면, 주님이 강제로 버리게 하신다.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다.
눅14: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괜히 하나님과 전쟁해서 깨지지 말고,
미리 미리 항복하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소유에 대해 자유한가? 어떤 염려가 없는가? 그러면 소유를 버린 사람이다.
그러나 소유를 버리지 못한 사람은 <자유함>이 없다.
늘 소유로 인해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시달린다.
하다 하다 안 되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셔서 강제로 버리게 하신다.
내가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화친하는 것이 좋다. 백기투항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발에 밟히는 소금, 똥 무더기 dunghill 보다 더 쓸데 없는 인간 된다. :34~35
내가 제자도의 대가 중에 아직 치르지 못한 것이 무엇이며,
진정 자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다.
그렇게 자유하는 것이, 하나님께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결국은 좋은 것이다.
제자도는.. 나의 자유를 얽어매는 어떤 속박이 아니라
진정 나에게 참 자유를 주는, 다른 말로 참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모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