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에 덫을 놓는 자와 걸리는 자 눅17:1~4 2021.01.29.출처
눅17:1~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하늘 길에 덫을 놓는 자와 걸리는 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하늘 길에 덫을 놓는 자가 있고 그 덫에 걸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덫을 놓으려고도 하지 말고
놓여진 덫에 걸리지도 말라.. 라는 의미를 오늘 본문이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너무나 기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한, 죽는 날까지 기억해야만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늘 길이 '내 운명의 길'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위하는 인생'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고 이병철 씨나 정주영 씨가 '기업'의 길을 자신의 운명에 길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조수미 씨가 '소프라노 가수의 길'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선민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하늘 길을 그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늘 길이 (자기) 운명'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순신 장군도 마음에 만족을 위하여 살았고
이병철, 정주영 씨도 자기 마음에 만족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라를 위하는 길,
돈을 벌고 기업을 일구는 일에서
자기 마음에 만족, 채움을 기대하고 살았습니다
이게 바로 "자기 운명, 자기 팔자"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 길이 운명'이라는 것은
신자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으로 만족과 기쁨을 찾는 것이 내 운명, 내 팔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하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선민의 인생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직장에서 동료가 승진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승진한 동료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거나
승진 못한 나에 대해 뭐 섭섭하거나 아니면 열등감을 느낀다 라고 하면
그 선민의 하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 친구는 승진을 기쁨으로 삼지만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삼아야 됩니다
이것이 내 운명이고 팔자 라는 겁니다
이 팔자가 싫으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식들의 형통을 기쁨으로 삼습니다
근데 내 팔자는, 자식이 잘 돼도 기쁨이 될 수 없고,
내 팔자는 자식이 잘 못 돼도 그걸 슬픔으로 삼을 자격도 없습니다
그게 내 (크리스천의) 운명이고 팔자라는 거예요
돈이 있으면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들은 슬퍼합니다
근데 하나님을 입으로 부르고 있는 동안 내 팔자는
돈이 있어도 기쁨이 안 되고
돈이 없어도 슬픔이 될 수 없는 팔자라는 거예요
오직 기쁨과 슬픔은,
하나님이 있으면 기쁘고,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슬픈..
그런 운명을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선민입니다
그 팔자가 싫고, 그 운명이 싫으면.. 하나님을 안 믿고, 하나님을 안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르면서, 이 세상 것들이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된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실족'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평강' 얘기를 참 많이 해요
평강을 어떻게 이해를 하십니까?
사람의 마음이 공백이라서 채우고 싶은 흡입력이 작용을 하잖아요
평강의 상태는 흡입력(갈급함)이 작용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채워졌기 때문에!
그래서 이 평강의 마음은, 오직 운명적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게 선민이고, 하나님의 백성인데
이 평강, 하나님으로 인한 평강이 어떤 부차적인 효과를 가져오냐면
나는 하늘길을 갑니다.. 하늘 길을 가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팔자요 운명이다..
라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으로 평강을 얻고, 하나님으로 만족을 이루기 위해 사노라 보면
즉 하늘 길을 가는 것을 인생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행하다 보면
이 땅은.. 하나님이 땅의 길을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신다는 거예요
땅을 사는 사람, 땅의 길을 가는 사람은 선민이 아닙니다
운명적으로 하늘의 길을 내가 가면,
하나님이 내 삶의 땅에 길을 걷는데 동행해 주십니다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는 그 길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나의 인생의 되고, 나의 이력이 되는 겁니다
▲근데 하늘 길을 가기 위한 가장 절대적인 필요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이게 바로 소유를 버리는 거예요
오늘 <실족>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
실족은 바로 <소유>와 연관되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본문의 성경 흐름상) 소유의 주제를 주님이 쉽게 버리지 않고 계십니다
마치 별세하러 가시는 예루살렘 여정속에서
이 소유의 문제를 아예 종지부를 찍을 만큼 결정적으로 끝장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 <소유>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매듭 지어지지 않으면
당신의 별세 사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의 별세 사건(십자가)을
이루시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 "소유"의 문제만큼은 하여간 끈질기게
주님이 고래 힘줄처럼 강하게 붙잡고 끝장을 보려고 하시는
주님의 의지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는 <소유>의 문제를 "실족"에 연결시켜서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 하고 계시는 <소유>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소유는,
-마음의 소유와
-의식의 소유입니다
1) 마음의 소유는, 이미 실제로 내 손에 쥐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까워하면서 소유합니다
아직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을 내 마음이 어떻게 소유합니까?
가지기를 소원하면서 바라면서 소유합니다
내가 만약에 돈 10억을 소원하고 있다 그러면 (아직 수중에는 없지만)
소원의 형태로 내 마음은 10억을 소유하는 거예요
내가 건강을 소원하고 있다 그러면
소원의 형태로 내 마음이 건강을 소유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버리라는 거예요
이미 갖고 있는 것은 아까워 하면서 마음이 소유하고 있고
아직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소원의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데
이걸 둘 다 버리라는 겁니다
2) 그리고 우리 "의식"도 뭘 소유합니다
내가 돈을 벌려고 생각을 하면,
내 생각(의식) 속에 돈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유하는 것이고
돈이 안 벌려서 기분이 나쁘고
돈이 벌려서 기분이 좋다 라는 것은
내 감정 속에 돈을 소유하는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야 되겠다 라는 것은
내 의지 속에 돈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재료들이
곧 우리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버립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유가 무엇인지를 보고
내게서 계속 그렇게 소유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진단을 해내는 겁니다
우리는 소유를 못 버려요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소유하고 있는 나 때문에 일어난 (소유를 버리라고)
죽음의 사건이라는 것을 또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주님이 죽으셨다는 걸 인정하면.. 소유가 버려집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 여기서 실족을 생각해 봅니다.
실족은 헬라어 '스칸달론'인데,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서 놓는 덫, 올무, 함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실족은, 하늘 길을 가는데 덫이 놓여졌음을 말합니다
그 덫에 걸려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내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찾는 것을
내 팔자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겁니다 실족하면!
하늘 길로 가서 하나님으로 기쁨을 삼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렇게 실족이란.. 덫, 올무, 함정을 말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사람에게 하늘 길을 걸어 가지 못하도록
덫을 놓느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덫에 빠진 것이냐 하는 겁니다
본문에 '작은 자'가 나오는데,
작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자에 대해서 듣는 자가 '작은 자'고,
전하는 자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고 듣는 자가 '작은 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전하는 자가 듣는 자를 실족하게 하고,
즉 듣는 자가 걸어가야 될
선민이 된 작은 자, 말씀을 듣는 사람을
하늘 길로 가려고 하는데 덫에 걸리게 해서 못 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실족시킨다' 입니다
또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에게
덫에 걸려서 하늘 길을 못 가도록 덫을 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 앞에 덫을 놓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다 보면
덫에 걸려 가지고 하늘 길을 못 가게 만드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누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앞에서 이미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하늘(천국) 길을 가는 선민들 앞에
덫을 놓는 사람들인가요? 즉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사람들인가요?
또 어떤 사람들이 덫에 걸리는 사람들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듣고 "돈을 좋아하는 자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눅16:14
자 여기서 드러나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하늘(천국) 길을 가려는 선민 앞에
함정을 파고 올무를 놓는 사람들입니까?
바로 이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늘 길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내 마음의 소유와 의식의 소유 하나 하나가
덫이고 올무고 지뢰가 됩니다
내가 결혼한 사람으로서 내 아내를 마음 속에 담고 아까워합니다
소유하고 있습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아내를 아까워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아내는, 내 하늘 길에 놓여진 덫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근데 어떤 사람들이 덫을 놓는 사람들입니까,
본문의 표현대로 '실족케 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아내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아내를 (우상처럼) 소유하고 있는 그 상태에 대해서
조금도 문제시 하지 말라는 겁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소유의 문제'를
'실족' 이라는 단어로 다시 한 번 뒤집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거예요
'실족하는 자들, 또한 실족케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실족하게 하지 말 것이며, 실족하게 하는 자들에게
실족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설교방송을 들을 때
목사님들이 설교하시는 중에
'여러분이 마음에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고,
여러분의 의식이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그 소유를 버리라>고 하는,
<그 소유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은 자로 여기라>는
말씀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 주님의 말씀대로 하자면,
'그들이 세상 것을 소유 하면서도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말하는..
하늘 길에 덫을 놓는 자들이요, 실족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눅17:1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천국 백성에게는
조금이라도 마음과 의식 안에,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것을 찌르고 깨고 타파해 나가야 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돌을 던질지라도!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 앞에 덫을 놓는 게 되어버려요
▲항상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과 대화를 한다든지
여러분들이 보내 주신 메일을 볼 때는
'도대체 이 성도님의 마음과 의식 속에 지금 무엇이 소유되어 있는가?' 만
탐정이 실마리를 찾듯이 제가 찾습니다
그리고 모든 답변 이라든지 대화의 내용은
어떻하든지 이 의식과 마음 속에 소유되고 있는 것들을
"버리도록"(십자가에 못 박도록) 말씀을 전하고 유도하고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동해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17:2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낫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살기 위해서는 (제가 연자맷돌 매고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죽어라고 여러분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을 받고 욕을 먹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에 아까워하며 소유하고 있는 것들,
소원하며 소유하고 있는 것들,
여러분의 감정과 의지와 생각 속에 소유되고 있는 것들을 버리도록
끊임없이 귀찮을 정도로 제가 여러분을 찌르며, 권하며,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연자맷돌을 밧줄에 매고 바닷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늘길(천국 가는 길),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만족 해야 되는 것이
내 팔자로 (운명으로)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것입니까/ 말 것입니까?
돈이 벌려도, 돈이 벌려서 기쁨이 막 솟으려고 할 때
그 기뻐하는 나를 십자가에 죽여야 되는 거예요
하늘(천국)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돈이 안 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안 벌릴 때는 소원의 형태로 사람들은 돈을 소유로 갖는 것이니까요
이게 지금 기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에게 있어서
출발점에서 부터 꼭 인식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어져야 되는
신앙생활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이 기본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한 지속되어 나가야 됩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소유를 버리는 삶,
그리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으로 만족을 누리며
하늘 길을 걸어 가는 삶!
그러는 동안에 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걸어주시는 땅의 길로만
내 인생을 사는 사람! 이것이 성도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 기본이 전부입니다 기본이자 전체인 거예요
▲그런데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이 끼어들어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하늘 길만 있으면 될 것을
땅의 길을 나보고 걸어가라는 겁니다
땅의 것들을 소유한 채, 그 소유를 늘리기 위하여 땅의 길을 걸어가라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가 설교를 듣거나, 우리가 어떤 기독교서적 같은 것을 읽을 때도
이 사람이 지금 내 하늘 길에 덫을 놓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늘 길을 원활히 가도록 뚫어 주는 사람인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얘기합니다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지어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9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설교를 잘하지는 못해도
이거 하나 만큼 확실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소유하려는 나를 죽은 자로 여기고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 사건을 나의 죽음으로 여기며
날마다 걸어가는 것이 진리의 길이다'
이것이 하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나와 동행해서 걸어가신다.. 라는
이 진리에 제 자신의 마음과, 제 자신의 의식과, 제 자신이 전하는 말씀의 내용들이
다 묶여 있다 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잘났건 못났건 이게 진리에요!
주님이 이렇게 집요하게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본문 눅17장에서 또 이 문제를 거론하시니까)
소유의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시는 겁니다
그 의미와 그 의도를 우리가 알아야 되잖아요
이제는 적어도 십자가복음방송을 듣는 분들은
누가 덫을 놓는 자인지?
어떤 상태가 덫에 걸려 실족하고 있어서 하늘 길을 못 가는 자인지를
알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면서
갑자기 '용서' 얘기가 나옵니다
눅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이건 무슨 뜻입니까?
내게, 누가 잘못하고 죄를 지을 경우에
나는 아예 내 마음의 바탕 자체가
그 죄 지은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미움이 안 생기는
마음의 바탕을 갖고 있으라는 겁니다 ('자아' 라는 내 소유를 버렸으니까)
일곱 번째까지 가다 보면 너무 너무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고,
그 잘못한 것을 사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든지 네 마음에는 화가 안 생기고, 분노가 안 생기고
미움이 안 생기는 마음의 바탕을 유지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스스로 실족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 이걸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3절 부터는, 다른 사람이 실족하게 덫을 놓고
또 다른 사람이 그 덫에 걸리는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실족하게 되는 것을 스스로 조심하라는 거예요
근데 실족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소유를 버려야 됩니다'
근데 내가 소유를 버렸다는 증거가 뭡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잘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소유를 다 버린 사람이면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했을 때, 나는 하나도 화가 안 납니다 그렇지요?
자기 자아 라는 소유를 버렸으니까요!
나아가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행할 수 있는 범위는
내가 세상 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만 가능해집니다
뭐 세상 것을, 돈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아니면 내 명예 라든지
몸이 있기 때문에 마음과 의식이 소유할 수 있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물질적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이 세상에 몸이 있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타인이 내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내 소유라고 했을 때
하나님을 내 소유로 가진 사람에 대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습니까?
근데 그 하나님을 갖기 위해 하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절대 불가결한 조건이
이 세상 것을 마음에서, 자기 의식속에서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버려서 하늘 길을 원활하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정말 세상 것을 버려서 하늘 길 가는 것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져서
평생동안 죽을 때까지 하늘 길 가는 것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그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사람들이 내게 잘못했을 때,
그러니까 사람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내가 쿨하게 용서하는 겁니다
나는 세상 소유가 어떤 것도 없으므로, (손해볼 본전이 없으므로) 손해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세상 밖으로 내가 탈출 해가지고
내 몸과 연관되서 사람들이 나를 부쉬던 깨든
뭐 무시하든, 발로 밟든, 밀치든, 때리든, 내버려두라는 겁니다
왜 이게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내 인생을 밟든, 뭉개든, 짓누르든, 욕하든, 모함하든
내가 내버려 두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내가 그렇지 않고 거기에 대해 발끈하고 반응을 보이면
하늘길을 가는 길에서 내 스스로가 나를 덫에 걸리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실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눅17:3
절대로 스스로 말려들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내 운명 입니다 우리의 팔자입니다
누가 뭐라고 우리를 비난하고, 욕하고, 모함 하더라도
우리 팔자는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늘 길을 가는 길 가는 자들은
절대로 내게 잘못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스스로 덫에 걸려 실족하지 말 것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지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마음의 소유, 의식의 소유를 다 버리게 하시고
그리하여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외치며
덫을 놓는 사람들의 그 덫을 충분히 피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나 스스로도 덫에 걸리는 일 없이
하늘길을 왕래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