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지식은 다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지식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어요. 공부를 많이 하면 지식을 얻죠. 책을 많이 읽고, 또 내가 수고해서 공부하면 지식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지혜는 공부를 많이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지식이 많은데도, 지혜가 없으면, 그 지식은 돈 버는 데는 좀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근데 정말 내 삶의 퀄리티를 바꾸지는 못해요.
오히려 그 지혜 없는 지식이,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지혜는 노력으로 주어지기 보다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약점이 무엇인가요?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그거예요. 자세히 보세요.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지성 사회'라 그래요. 엄청난 고학력 사회입니다. 웬만하면 다 석박사입니다.
지식은 양적인 것이라면, 지혜는 질적인 것입니다. 요즘은 지식이 폭주하는 시대입니다. 지식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흘러넘쳐요.
이렇게 지혜가 없는 가운데 지식이 폭발하게 되면.. 굉장히 무서운 사회가 될 수 있어요. 정보가 넘쳐나고 지식은 폭증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혜는 이전보다 더 후퇴한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당장 써먹을 정보는 많아졌지만 인생을 길게 보는 눈(지혜)이 부족한 것입니다.
부분은 보는데 전체를 보질 못 해요. 파트, 즉 한 부분은 잘 보는데, 전체를 보는 눈이 없어요. 통합적인 것을 보지 못합니다.
또한 물건 값은 잘 아는데, 가치를 보는 눈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가치를 분별 할 줄 모르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심각한 일이죠.
그래서 엉뚱한 것에 낭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쏟아야할 곳에는 많이 인색한 삶을 삽니다.
즉 낭비와 헌신이 헷갈리는 겁니다. 헌신해야 할 곳에 헌신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낭비를 하다 보니..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이지요.
▲잠언서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라 그랬죠. 잠1:7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지식들도 지혜와 연결이 돼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순간 지혜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지식은 지식으로만 있게 됩니다. 지혜와 연결이 안 돼요.
하나님 없는 지식은, 내 인생을 어디로 이끌지 알 수가 없어요. 지식으로만 사는 우리의 삶은.. 미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지식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혜가 빠진 지식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오늘날 시대가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모르면, 세상적으로 아무리 잘 나도 결국은 자기 어리석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지요.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지혜는 더 깊어져 갑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진정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눈(영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아는 게 매우 중요해요.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누구인가를 알거든요.
◑내가 한 므나를 받았음을 깨닫는 지혜 눅19:12~26
본문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날 때 열 명의 종들에게 공평하게 한 므나씩 준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와서 결산을 하게 되죠.
한 종은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때 주인은, '너는 열 고을을 차지하라' 하며 상을 주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종들이 각각 자기가 충성한 분량대로 영광과 특권이 주어지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고을을 차지한다'는 말은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므나'는 당시 화폐단위로 가장 큰 액수로서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한 므나씩 공평하게 나눠줬다는 말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평가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평가를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됩니다.
우리 각자가 받은 내용은 다를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받은 것과 내가 받은 게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공평하게 주신 거에요.
모든 것을 우리는 물량적으로만 자꾸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하나님의 공평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물량적인 것, 그것은 평가하기가 쉽지만 질적인 것들은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무 물량적으로만 볼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각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시는 거죠.
'공평'에 대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있는데, 건강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건강은 있는데, 돈이 없어요.
건강도 있고 돈도 있는데, 가정이 깨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이래 저래 모든 면을 견주어 보면, 하나님이 공평하게 주셨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춰요. 불평하는 사람들 보십시오. 항상 자기에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힘들어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되죠? 불평이 나오는 것이죠. '왜 나에겐 저 사람이 가진 게 없을까?'
근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공평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면 원망과 불평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님이 주신 것에 초점을 맞추면 감사가 나옵니다.
그 눈을 뜨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므나는 '기회'라고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모든 사람 각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그걸 보는 눈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한 므나씩을 다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자 근데 본문에,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으로 싸두었다가 고스란히 가져온 종이 있어요. :20
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쳤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 귀한 한 므나를 받았다는 사실을 지혜가 부족해서인지.. 그는 깨닫지 못하고, 그 한 므나를 수건에 꽁꽁 싸두었다가, 그냥 주인 앞에 가지고 온 것입니다.
나중에 그 한 므나 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손에 무엇이 있는 게 아니고 남의 인생에 열 므나가 있든, 백 므나가 있든 그게 상관 없고, 중요한 것은, 내 손에 쥐어진 하나님이 주신 한 므나입니다.
남의 것, 남의 손에 있는 것.. 그건 상관 없습니다. 남이야 돈을 백억, 천억을 가진다 해도.. 내게는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는 것! 남이 뭐를, 어떤 걸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뭐냐 하는 거죠. 여기에 눈을 떠야 됩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내 삶에 어떤 것이든.. 그것은 어쩌다가 내게 걸린 게 아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공평하신 분이라는 거죠. (각자에게 한 므나씩 나눠주시는.. 재능을 골고루 나눠주시므로 공평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중 하나는 불공평입니다.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불의, 불법, 거짓이 있고, 구조적으로 모순이 있으니까 우리는 공평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소홀히 대할 게 아니라는 거죠.
오늘 나의 삶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입니다. 그래서 한 므나에 대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 한 므나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적용 / 코로나 사태를 통해 얻는 것 -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것(한 므나)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 불행한 삶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겁니다.
여러분, 건강이 귀중한 줄 모르고 있다가 건강을 잃고 난 다음에야 그 가치를 뒤늦게 알죠.
평소에 내가 걸어다니고 호흡하고 맛을 느끼고 오감이 살아있는 것을 우리가 별로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그러다가 병에 걸려보면, 내가 가졌던 건강(한 므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것을 건강할 때 깨닫는다면 얼마나 지혜로운지요!
여러분, 젊을 때는 젊음의 귀중함을 잘 몰라요. 나중에 늙은 뒤에 깨닫는다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경험하는 게 뭐냐면 우리가 이전에 누렸던 작은 행복들.. 그게 그때는 행복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때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축복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던가? 우리는 그때는 몰랐어요.
그걸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지나고 나니까 지금 깨닫게 되는 겁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마스크 안 쓰고 살 때가 얼마나 좋았는가요!
더욱이 아기들인데 마스크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숨쉬는 데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과거에 우리가 마음껏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소그룹으로 모이던 때가 얼마나 좋았던지요! 서로 허그도 하고, 악수도 자유롭게 했고...
지금은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고, 거리두기 하고, 모임 인원 제한 하고... 예배 드릴 때도 누가 재채기 한 번 하면, 주위가 싸늘해 집니다...
그때 우리가 자유롭게 마음대로 예배드릴 때 그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어요.
그때 주어진 것들이 예사로운 게 아니고, 너무도 놀라운 것들이고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요, 행복이요 기쁨이었는데 우리가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잖아요. 그때 우리가 감사를 드렸습니까?
요즘 여러분, 결혼식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들어 합니까? 그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인데.. 하객들을 마음대로 초청할 수도 없고... 장례식도 마찬가지고요.
특별히 요양원에 들어가 있는 부모님들, 얼굴도 자유롭게 보지도 못하고 그러다가 마지막 이별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때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하게 보내요. 한 므나.. 이거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무슨 대단한 것이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한 므나 받았을 때,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고 살았다는 거죠.
'우리 일상의 작은 것도,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이었구나!' 이게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 준 삶의 통찰력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나쁜 것만 주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주는 면도 있다니까요.
▲빌 게이츠가 이번에 한 말이 그거잖아요. 코로나를 지금 통과하고 이제 극복하는 걸로 지금 인류가 정신없는데 다음에 올 코로나는 지금 전혀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 거예요. 코로나가 다음에 또 온다는 거잖아요.
다음에 코로나가 올 때도 2년 이상 끌고 가면 어떡하겠어요? 인류가 그걸 준비해 된다는 거잖아요. 빌 게이츠의 말에 의하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까요? 우리가 작은 것에 무관심하게 여기고, 소홀히 여기고 일상의 평범한 행복에 대해서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고, 그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 이런 삶에서 우리가 변화되어야 돼요.
우리는 오늘날 풍요의 시대를 살잖아요. 풍요의 극치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에 진짜 요즘처럼 이렇게 인류가 풍요롭게 살던 때가 없었어요.
풍요속에서 살면서, 인간의 자만심이 생겼어요. 모든 것이 넘치는 삶을 살면서.. 인간이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배가 부른 거죠. 교만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치고... 그렇게 살던 것을.. 코로나로 통해서 겸손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인류 문명이 엄청난 첨단을 달리고 있어요. 인간이 그냥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가고있고..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게 없다..' 하는 이 자만의 태도!
그 외에도 지나친 소비주의! 이것도 우리에게 지금 이 코로나 가져다 준 하나의 메시지 거든요.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한 각성!
하나님이 주신 자원에 대한 무분별한 파괴, 환경 문제가 지금 전지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끝도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끝도 없이 생산해 내고.. 쓸데없는 것들을 마구 무차별하게 생산해 내고.. 끊임없이 우리는 소비하고.. 쓰레기는 끝도 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고등학생들이 가장 염려하는 게 지구의 환경 이슈입니다. 장차 자기들이 이끌고 갈 시대에 현실적으로 다가온 문제거든요.
지금 너무 많은 풍요에 치여가지고, 작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보다 풍요로운 시대이면서도 어떤 시대보다 사람들이 불만족을 느끼고, 결핍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역설적이죠.
여러분, 우리의 공동체의 가치를 아는 것 - 이게 복입니다. 나에게 있는 가정의 가치를 아는 것 - 이것이 지혜입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그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기회라는 사실!
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 하는 성도들이 고백을 들어보세요. 지금 나에게 작은 건강이라도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에 대한 귀중함을 깨닫는 것과, 그것에 대한 감사!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요, 이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 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를 일종의 테스트를 하고 계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보시는 거예요.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기고, 다섯 므나를 남기니까 열 므나를 주시는 거예요. 열 고을을 맡기시는 겁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거죠. 나중에 주어질 것 말고, 지금의 상황, 지금 주어진 조건, 지금 내게 주어진 자원,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 이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것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차 좋은 상황이 내게 주어지면 무엇을 하겠다'.. 이게 아니에요. 지금 코로나19 상황이고 모든 게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게 중요하죠.
사람들은 그저 쉽게 '코로나가 지나고 나서 뭐 해 보지..' 하는데 그러다가 지금 2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렸어요.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코로나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한 므나를 그냥 보자기에 싸두고 있는 게 나을 줄 알았어요..' 종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가진 것으로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면, 무엇을 더 맡길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온 사람이 그 왕위를 가지고 충성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겁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어요. 주인이 왕위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관리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거죠.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본래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죠. *섬긴다는 의미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이 다스려야 할 인간이 도리어 피조물의 다스림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저주가 뭡니까? 저주는 딴 게 아니에요. 다스림을 받는 삶입니다. 다스리지 못 하는 겁니다. 지배를 받는 겁니다. 그게 저주입니다.
내가 다스릴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게 ... 저주의 형태입니다.
지금 코로나19를 인류가 못 다스리고 있습니다. 인류가 어떤 면에서 질병이라는 전염병의 저주 아래에 있는 거예요. 지난 2년동안 완전히 코로나의 지배를 당한 거죠.
뭐 어디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가고.. 이게 저주의 형태입니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게 자주 일어나면.. 그게 인류를 저주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을 때는 죄를 짓기 전에는 모든 것을 인간이 다스리게 하셨어요. 만물이 인간의 다스림 아래에 있었어요.
근데 죄를 지어서 모든 게 뒤집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 복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 지배, 그 다스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그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공생애 동안 하신 게 뭡니까?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것.. 이게 다스리시는 거잖아요.
모든 걸 다스리시는 그분이 오신 것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모든 세상의 저주를 끊어 버리고 사망의 권세를 뚫고 승리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저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납니다. 내게서 저주가 끝이 난다는 것은, 더 이상 환경에 굴복 당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거예요.
죽음도 우리의 통제아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망한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막 명령하잖아요. 왜냐면 성도는 부활의 능력을 얻었기 때문에 죽음이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육체적인 죽음은 맞이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멸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영생으로 가는 관문이에요. 그래서 죽음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 해요.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가 현실 상황의 통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란에 무릎 꿇지 않고 십자가로 맞서서 이긴다는 것입니다. 롬8:28
지혜는 무엇으로 나타나요? 다스림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고 사는 것이죠.
돈을 예로 들면,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돈을 얼마나 다스릴 줄 아느냐.. 이게 관건입니다.
복권 당첨 등으로 한꺼번에 많은 돈이 주어지면, 보통 사람들은 그 돈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어요. 그 다스리는 지혜가 없어요.
지혜가 없는데 많은 걸 가지면.. 그건 오히려 자기에게 불행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에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벌었는데 그게 그의 인생을 불행으로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 소유든지 권세든지 많은 것이 좋은 게 아니에요. 내가 다스릴 수 있어야 좋은 거예요.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므로 돈을 잘 쓸 줄 모르면, 잘 버는 게 별로 소용 없습니다. 세상에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꽤 있는데, 그들 중에 돈을 잘 쓰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돈을 잘 벌기만 하면.. 그 돈으로 오히려 불행하게 됩니다. 자기만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사람까지 다 불행의 늪에 빠뜨립니다.
자 돈을 버는 것은 지식으로 가능해요. 그러나 돈을 잘 쓰는 것은 지혜로만 가능합니다.
돈을 잘 쓸 줄 아는 게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이에요. 하나님은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열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게 돈이든지, 권세든지.. 다스릴 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은 맡기실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고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시간은 관리가 돈 보다 더 어렵습니다.
돈은 카드를 긁어야 빠져나가지만,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술술 빠져나가요.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 있죠? 늘 피곤하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 시간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겁니다. 늘 지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무엇이 주워지는 것 보다,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가가 중요하고 그걸 잘 다스리는 힘은 지혜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제일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한 므나)에 눈을 떠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면서 세월을 다 보냅니다. '나에게 무엇이 주어지면 나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후회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은 다 지혜가 없는 거예요.
변명할 것도, 불평할 것도 없어요. 그냥 지금 내게 있는 그대로의 형편과 환경에서 내가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내 한 므나의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시죠. 그는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쫓기면 쫓기는 대로, 잡히면 잡히는 대로.. 감옥안에 가면 감옥 안에서.. 어떤 조건이 주어지던지 주님을 섬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이 오면..' 하고 기다린 게 아니에요.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충성한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도 '코로나가 끝나면, 내가 뭣뭣을 하겠다' 하면 안 됩니다. 지금 현재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님이 내게 시키시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코로나 상황이 우리 모두를 어렵게 하고 있는데,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도 마치 강펀치를 맞은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가 다 어렵고 선교적 상황을 보면, 정말 한계 상황에 봉착한 곳이 많아요.
그렇지만 모든 게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라진 것, 할 수 없는 것, 빼앗긴 것, 상실된 것, 이런 어떤 한계 상황만 계속 쳐다보면.. 그러면 답이 없어요.
'그러나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루터기를 남기십니다. 나무의 둥치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는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주권적으로 뭔가를 남게 하십니다.
'남은 자, 남은 것'을 언제나 조금이라도 남겨두십니다.
어려운 현실 상황에만 눈을 고정하면 길이 없어요. 원망과 불평 밖에 안 나와요.
원망과 불평은 낭비요, 백해무익입니다. 지금 코로나 19 시국이 어렵지만, 여러분 입술에서 원망과 불평하는 말이 떠나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다 뺏어 가지 않았어요. 때로는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의 손에 쥐어 준 게 있단 말이에요.
저도 그걸 보고 있어요. 목회 현실을 보면 정말 오늘날 이 코로나 상황이 한국교회 전체를 어둡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다는 걸.. 제가 보고 있어요.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 이런 지금과 같은 전염병이 없었겠습니까?
1세기 로마시대에도 몇 번이나 있었어요. 중세 시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2천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전염병.. 지금까지 다 통과해 왔어요.
근데 여러분, 많은 제국이 넘어지고 뭐 모든 무슨 별게 다 사라지고 무너져도 교회는 2000년 역사 속에 지금까지 변치 않고 이어져 왔잖아요.
여러분, 최고의 백신 중의 백신은 '예수 백신' 이거든요. 그거 맞은 사람은 (영혼이) 안 죽는다니까요.
다른 거는 소멸되는데, 예수 백신 맞은 사람은 죽어도 부활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되.. 너무 극도로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교회가 전염병을 맞았을 때,
그 위기 가운데 교회는 더 정결해지고 더 거룩해지고 더 강력해지고 더 순수해지고 더 본질 집중해서.. 오늘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잃어버린 거만 자꾸 보니까 속이 상하지만 '네 손에 지금 쥐어진 게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가진 한 므나가 작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제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지금이 중요합니다. 상황이 좋아지고 난 다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는 자에게 막연히 부어 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죠.
하나님은 필요한 자에게 주세요.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 가치에 눈을 뜬 자들에게, 그 한 므나를 잘 감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입니다. 눅19:26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게 믿음의 삶의 모습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한 므나 마저도 빼앗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열 므나를 맡겨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지만 여러분 나에게 남아있는 게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마치 오병이어를 가진 소년처럼, 자기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남들은 보기에 초라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세요. 내가 가진 것에 가치를 발견해야 돼요. 그걸 소중히 여기십시오.
나에게 지금 건강이 있으면, 건강을 감사하십시오. 자신이 가진 신앙에 대한 감사를 해 보세요. 어려운 가운데 있어도 이런 좋은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해보세요.
가장 안 좋은 것은, 어려울 때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자기 연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을 바꾸면, 이런 어려운 길을 통하여 나의 자만심이 다루어지면서,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모든 기준이 너무 물량적인 것으로 바뀌어져 버렸어요.
그 풍요로움을 좇아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동분서주 했으며 우리도 모르게 물량주의 세상을 좇아가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세상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아졌지만, 영적으로 더 풍성해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설문을 조사하니까 코로나 이전보다 신앙이 더욱 깊어졌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20% 이내인데...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 위기가 오히려 신앙 성숙의 기회가 된 성도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얻은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가진 한 므나를 살펴보고, 이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의 본질을 추구할 때인 것입니다...
미래학자들은 내다보기를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 구조, 사람들의 가치관, 문화,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까지 미세한 변화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는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신앙적, 영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다가는 지금(코로나 통과 시기)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로서,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비해서 기도를 많이 해요. 코로나를 지날 때는 막 긴장하고 했는데 지나고 나서 코로나 후기(포스트 코로나)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코로나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해 주목하기보다, 얻은 것이 무엇인가 찾아 내셔야 돼요. 이전에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을 해야 됩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게 뭐냐? 여러분 곰곰이 기도하며 생각해 보세요. 위에서 설교 중간에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일례로 예배를 재발견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맞아요.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우리 일상에서, 우리 삶의 공간에서 예배하는 법을, 우리는 이전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요. 이게 코로나를 통해 우리가 재발견하게 된 것 중 하나입니다.
또한 코로나로 통해, 우리 삶이 많이 심플하게 되었습니다. 해외도 못 나가고,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고, 가족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코로나 사태로 통해 얻게 된 유익 중 한 가지입니다. 모두가 더욱 가정적이 된 것이죠.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심플해 져야 돼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았어요. 우리 한국사회는 뭐가 붕붕 떠다니는 것 같이, 정신 없이 살 때가 많았어요.
그렇지만 복음이 주는 힘이 뭐냐? 우리의 삶을 심플하게 만들어요. 복잡하지 않아요. 과녁에 집중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거든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라고 하신 삶을 살아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