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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2편 해석, 오직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랍니다

LNCK 2021. 11. 23. 20:15

 

◈시62:편 해석, 오직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랍니다    시62:1~12     여러 설교 정리

 

본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지은 시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들도 잃고, 왕의 자리도 잃고, 많은 백성들과 신하들도 잃었습니다.

 

마치 그는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았고

언제 압살롬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이 아주 많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럼에도 다윗은 그 불안을 이기고 잠잠하게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라 (1~4절)

 

▲1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대신 세상을 너무 많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나 자신만을 너무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만을 너무 바라보면 우쭐해져서 자만하게도 되고

반대로 낙심해서 좌절하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바라보는 대신

내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만을 바라보면

원망 불평하며 절망 좌절하게도 됩니다.

 

그럼 다윗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굳이 다른 데 도움을 호소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인 움직임들을 바라보는 대신에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기본인 것입니다.

 

▲2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본문 1, 2, 4, 5, 6, 9절에는 모두 ‘아크’로 시작됩니다.

그 뜻은 ‘오직’, ‘진실로’, ‘확실히’입니다. 자기 말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크'를 넣어서 번역했는지 살펴보면,

 

1절 '(오직)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봅니다'라고 하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집니다.

    개역에 아크(오직)가 빠져 있습니다. 

 

2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개역에 아크(오직)가 들어가 있습니다.

 

4절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오직)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개역에 아크(오직)가 빠져 있습니다.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개역에 아크(오직)가 빠져 있습니다. 

 

6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개역에 '아크(오직)이 들어가 있습니다.

 

9절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개역에 '아 슬프도다'로 의역했는데, 원래는 '정말 허무하구나'      *아크 헤벨

      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1, 2, 4, 5, 6, 9절에 '아크'를 반복해서 쓴 것은

'오직 only 아크' 하나님만이 의지할 대상이시며

'정말 surely 아크'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사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이것이 본 시편의 전제 주제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고통과 절망 중에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과 절망 중에서도 요동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은

우리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들의 인생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어지고

우리들의 삶이 바뀌어지고 우리의 기질과 습관이 바뀌어지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고통과 좌절과 절망 중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그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특별히 ‘잠잠(히)’는 ‘침묵’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입을 닫아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금요일에서는 소리를 내어서 기도를 드리지만,

새벽에는 침묵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너무 분주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심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려면, 이른 아침 시간이 좋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역사가 아주 또렷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3절,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절,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여기에서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다윗 자신을 가리킵니다.

원수들의 간악하고 계속적인 도전을 받고 있던 다윗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다윗은 이 당시 압살롬과 그 무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또한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여

앞날을 전혀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삼하15;13~17:26 참조)

 

그런데 이때에 다윗을 반역한 사람들은

실상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합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이 비록 위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반역한 무리들에게 담대히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당시 그의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 성문 길 곁에 서서

거짓말로 백성들의 마음을 미혹하였을 뿐 아니라

사울 왕가의 시므이도 다윗을 살인자로 몰아 붙였습니다. (삼하 15:3-5, 16:7-8 참조).

 

사실 이들은 겉으로는 충성스러운 체 했지만

속으로는 다윗에게 재앙이 임하기를 바라며

은밀히 그를 칠 계획을 세웠고 또한 그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과 상황은 기울어지고 있는 담과 같고,

무너지는 울타리와 같이 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대적자들은 그 때를 다윗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동사들을 보면 ‘죽이려 하다’, ‘공격하다’, ‘떨어뜨리려 하다’는

모두 잔인한 장면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특히 4절 앞에도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적들은 오직 다윗을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의 높은 자리’는 틀림없이 ‘다윗의 왕위’를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목에 칼을 겨누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높은데서 떨어져야,

비로소 자신이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대적들이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다윗은 다시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

 

 

◑하나님을 바라봄을 재차 강조 (5~8절)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5절은 ‘잠잠히’라는 단어를 사용해 1절과 병행하는 내용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갑니다. 여기서는 명령형입니다.

즉 ‘잠잠히 바라라’ 1절에서 믿음을 확인한 것과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언제나 지속적인 확신 가운데 머물기 어렵습니다.

그가 기만하는 적들에게 위협을 당할 때마다,

더욱더 하나님만을 잠잠히 신뢰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스스로 권면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의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그가 믿는 대상을 다시 생각나게 하며,

믿음 가운데 조용히 있어야 할 필요를 상기시킵니다.

 

▲6~8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다윗은 왕에게 찍혀서 쫓김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현직 왕에게 찍히면, 모든 사람이 자기 곁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다윗 자기 옆에 있으면, 같이 화를 당하니까요.

그러니 수많은 다윗의 친구들, 측근들이 다윗을 등돌리고 떠나갔을 것입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참으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배신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보다 더했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등돌림과 배신을 당해 본 다윗이 경험한

생생한 체험담을 여기서 이렇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6절,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8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 

 

우리가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그를 의지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평소에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코 누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낄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오직 내가 의지할 분, 나의 산성과 구원과 요새가 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도와줄 사람들이지, 의지할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고,

그 정서적/물질적/관계적 모든 의지를 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혹시 누가 나를 떠나간다 하더라도.. 그를 축복하며 보내주는 것입니다.

 

 

◑인간과 다르신 하나님 (9~12절)

 

▲9절,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여기서 사람의 본질을 ‘허무, 허망(헤벨-전도서의 핵심단어)’로 표사합니다.

오늘 우리 성경에는 ‘입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낱 입김에 불과한 사람이 자랑과 자만에 찬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만들어진 화려함 뒤에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입김”과 같고, 인생이 속임수와 같아서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겨울에 유리창 입김을 “호”하고 불면, 뭔가 존재하는 것 같아서

거기에 글씨도 써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62:9 인생은 전제입김 입니다

 

▲10절,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힘으로 무엇을 빼앗으면 잘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 재물이 늘어난다고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생도 입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압살롬을 지지하던 무리들은 이스라엘에 행포와 박해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의 힘을 의지하지 말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닌 힘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의하여 그들에게 대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탈취물로 기뻐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어리석은 자의 소행입니다.

 

▲11절,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권세)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두 가지를 배웠는데,

첫째로 권능(권세)은 하나님의 것이고, :11

둘째는 인자(한결같은 사랑)하심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2

 

다윗은 자신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녀로 살게 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를 어떤 자리든 거기에 있게 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살아가게 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한두 번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능도 모두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틀림없이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어려움 가운데서 승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12절,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행위 따른 심판을 하시는 것은

당신의 인자하심, 즉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행한 대로 보상을 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와 공의의 표현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와 같은 행위는 무죄한 자가 억울함을 당하였을 때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발견하게 해주는 당신의 사랑임에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은밀히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추구해 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제공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현세에서 비록 불평등과 불이익의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사정을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인정해 주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62:12 신약에도 행한대로 갚으신다 .

 

▲마치는 말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를 하게 됩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고, 사도 베드로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만을 바라보면

내가 죄인인 것을 모르게 됩니다.

내가 괜찮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못되게 보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게 되고 분노와 증오심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 되고 자칭 의인이 됩니다.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이

교만하고 교만했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또 만나고 바라보았을 때

그는 자가기 “만물의 찌끼”가 되었고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이때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 베드로, 사도바울, 그리고 나의

막혔던 담을 허물어 주시고, 둘러싼 대적들을 처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내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내 인생이 바뀌어지고, 내 운명이 바뀌어지고, 내 삶이 바뀌어집니다.

죄 사함과 구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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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표제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라는 말은

여두둔이란 사람이 지은 노래에 따라 부른 노래라는 뜻입니다. (작사 다윗, 작곡 여두둔)

 

여두둔은 아삽과 헤만과 더불어 다윗 시대의 악사였습니다.

여두둔은 기브온 성막에서 노래와 관현악으로 봉사하던 찬양대의 지도자였습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이 지은 시를 악장 여두둔이 붙인 곡으로,

인도자를 따라서 회중이 부른 찬양입니다.

여두둔이 만든 곡조에 따라서 부른 시편은 세 편이 있는데

39편과 오늘 본문 62편, 그리고 77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