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거는 심각한 행동이죠. 하나님께서 미디안의 13만 대군에게서 대승을 거두게 하신 후에 백성들로부터 들으신 고백이 바로 이거(왕 세워달라)였어요.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불쌍한 하나님인지 몰라요. 저는 여기서 바로 이런 경우가 생각났어요.
어느 어머니가 자식 뒷바라지 하려고, 시장에 가서 생선 팔고 야채 팔면서 정말 뼈가 휘도록 고생해서, 아들을 대학 보내고, 유학보내고 해서 성공하게 해줬어요.
근데 그 아들이 성공하고 돌아왔는데 그 어머니가 초라해지고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또 어머니가 가끔 뭐 이런 저런 얘기할 때 듣기 싫고 성가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를 양로원이나 시설에 보내버리는 거예요.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면 이거 사람도 아니죠.
근데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자기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모든 걸 내어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버리는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잘 되건/ 잘 안 되건, 그분은 내 아버지입니다.
그분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거 잊으면 죽음입니다.
▲자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에 기드온은 점잖케 거절을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서 귀고리 금을 취합니다.
근데 그 금의 무게가 20킬로 였어요. 여러분 이건 평민이 가질 수 있는 금의 양이 아닙니다.
이 정도 양의 금은, 당시 왕의 금고에 들어가 있는 금이라고 그래요. 그니까 기드온은 왕의 행세를 시작한 것이고 왕이 받을 영예와 대접을 지금 다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대적들로부터 전리품(금귀고리)을 갖는 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그런 어떤 전리품을 요구하는 것도 자신에게 복종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지금 왕이 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겁니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실제로 왕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이런 기드온의 모습을 볼 때 정말 보기가 너무 불편하지만 '그냥 전쟁 수고비로 금 탈취한 것 다 가져가라..' 이렇게 이해를 일단 해보자고요.
▲근데 그 다음 일은 우리가 결코 용납할 수가 없어요. 왜 기드온이 금을 달라고 그랬냐면, 여기 진짜 본심, 자기 꿍꿍이가 따로 있었어요.
그 금으로 뭘 만듭니까? 에봇을 만들어요. 이게 자기 본심이에요.
여러분 에봇은 대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입는 조끼 모양의 예복이에요. 여기 에봇의 가슴에는 열두개의 보석이 달려있는데, 12지파를 의미하고요, 그 에봇의 판결 흉패(가슴 주머니)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돌이 들어 있어요.
우림과 둠밈은,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여러분 그 에봇은 바로 성막에만 있는, 아주 거룩한 제사장의 의복입니다. 그래서 이 에봇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봇은 제사장 권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기드온이 그 금을 모아서, 가난한 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에봇을 만들어, 자기 집에 그걸 둡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고향은 오브라
자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자기가 왕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대제사장 급이라는 거예요.
그때 당시 성막은 실로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사 지내려면 사람들이 실로의 성막으로 갈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에봇을 만들어서 자기 집에 보관해 놓으면 사람들이 이제 어디로 가겠어요? 자기 집으로 오겠죠.
지금 기드온은 대제사장을 제끼고, 자기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겁니다.
아주 철저한 계획 아래 착착 진행하고 있어요.
기드온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에봇이라는 승리의 기념물을 만들어 자기 집에 두었습니다.
'집에 두었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느냐?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찾아오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집이 어디 있었냐?
므낫세 지역 오브라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삿6:11
바로 자기 아버지의 바알 제단이 있었던 곳 아닙니까? 삿6:24~28 그때 기드온이 다 허물어버리고 거기에 여호와의 제단을 세워놨죠.
그 여호와의 제단에, 자기의 야심이 들어있는 에봇을 걸어둔 것이죠.
자 기드온은, 말로는 '하나님이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며 아주 점잖케 말했지만 행동으로는 자기가 다스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진짜 무서워요. 차라리 '나는 죄인이에요. 나는 이런 죄를 지었어요.' 이러면 그냥 불쌍해서 그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잖아요. 그리고 사고 쳐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아요.
그런데 과묵하고 신중한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소리 소문없이 슬그머니 가서 죄 짓고 사고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겉으로 보면, 너무 얌전하고 착해 보이는 자매인데 밤에 우연히 길에서 보니까 화장을 진하게 하고, 막 껌을 씹으면서 밤거리를 활보하는 자매도 보았어요.
여러분 차라리 생긴대로 평소에 보여주는 게, 사람을 놀래키진 않습니다. 기드온은 그렇게 얌전 떨고, 거룩한 체 했다가 이건 뭐 완전히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어가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자기 집에 에봇을 둘 때,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아세요? 성경에 보니까 '온 이스라엘이 모였다'는 겁니다.
삿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여기 27절에, 두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될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에붓을 음란하게 섬겼다. -'그 에봇이 올무가 되었다' 는 표현이에요.
여러분, 이 표현들은 사사기에서 우상을 섬길 때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와 같이 에봇이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우상이 되고, 덫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가 막힌 장면들을 접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사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재판관이라는 뜻, 아직 왕이 없으므로 통치자 라는 뜻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돌이키고 인도해야 될 사명을 가진 사람인데 세상에.. 자기 야심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며.. 결국 영적으로 황폐하고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에요.
제가 예전에 옥한흠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설교 준비하는 시간에 생각났어요. 옥목사님이 자주 설교 때, 무섭게 질책하는 메세지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뭐냐면, 교회 안에 사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자기 야망을 위해서, 여기저기서 돈을 받고.. 또 '돈 받았냐?'고 물으면 '나는 안 받았어!' 하고 거짓말을 쉽게 하고..
그 돈으로 직함을 얻어내고, 건물을 세우고 .. 이런 사건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의 목회자 라는 영적 권위를 이용해서 성도들의 돈을 얻어내고,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신의 야망과 야심을 위해 그걸 다 쏟아붓는.. 삯꾼들이 너무나 많다고 지적하셨던 옥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삯꾼들은 에봇을 세울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하나님보다 에봇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도 각자의 에봇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학위일 수 있고 -그것이 어떤 직함일 수 있고 -재산일 수도 있고 -교희 건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순전히 그것들은 다 자기 야망인데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하고 그것을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비전 완수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둔갑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에봇은 무엇입니까? 말은 못하고 있지만, 숨겨둔 에봇이 있습니까?
내 자랑이 되는 그 에봇이 무엇입니까? -성공한 자녀입니까? -연봉 많이 주는 직장입니까? -고생해서 딴 내 학위입니까? -경제가 다 어렵다고 하는 이때, 불같이 일으킨 내 사업입니까?
사람들안에 각자 자기가 내세우고 싶은 에봇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섬기는 대상에 하나님인지, 자기 야망에 쩔어있는 에봇인지 살펴보세요.
지금 또 이 설교를 듣고 있으면서도 이 설교를 마침과 동시에 또 어디선가 가서
나만의 에봇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쉬라는 싸인이 오면, 쉬세요!
여러분 그런데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에봇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기드온도 처음부터 에봇까지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영광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을 방치한 순간 그것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서 기드온을 잡아먹고, 온 나라를 어려움과 도탄에 빠뜨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괴물이 되는 게 아니에요. 초기에 찾아온 유혹을 방치했기 때문에, 괴물이 되는 거예요.
▲기드온이라는 이름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그 뜻은 '도끼로 찍다,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hewer, 자르는 사람
하나님은 바알 우상을 찍어버리라고 하셨는데 기드온은 황당하게 여호와 대한 신앙을 찍어 부셔버렸어요.
또한 사람들이 기드온의 업적을 보고, '여룹바알' 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바알과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이름이 너무 민망하지 않습니까? 기드온은 더 이상 바알과 다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거 라는 구약학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스토리는 아이러니 하다. 바알을 대적한 하나님의 챔피언이 국가적인 배교를 관장했다..' 이해되셨습니까?
바알을 대적했던 하나님의 챔피언이었던 기드온이 국가적인 배교, 하나님을 향한 배반을 집행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맞습니다. 바알이 오히려 하나님의 챔피언을 이겼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에, 온 나라는 다시 바알 숭배로 들끓게 되었어요.
여러분 사탄이 이긴 전쟁이 '미디한 전쟁'이에요. 이 전쟁은 절대 승리한 전쟁이 아니에요. 실패한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은 당장 눈앞에서 쫓겨난지 모르겠지만 그 사역자(기드온)가 영적으로 죽은 전쟁이에요.
자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사역은 얼마든지 잘해 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사역을 치러내는 그 사역자가 영적으로 죽어버린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국의 설교의 황태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자기 영혼을 구원하고 싶으면, 목회에 뛰어들지 마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이게 해괴망측한 소리가 아니에요. '자기 영혼을 구원하고 싶으면, 목회에 뛰어들지 마라!' 이게 무슨 말이에요?
아예 목사가 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너 목회하다가 정말 정신차리지 않으면, 너 목회하다가 네 영혼이 죽는 수가 있어!' '목회 하다가, 하나님 이름으로 뛰는데, 사단이 너의 삶과 신앙을, 마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어! 차라리 그럴 바에야 목회 하지 마! 차라리 그럴 바에는 승승장구 하지 마!'
사도바울은 '선 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의 겉행위가 아니라 우리 마음 중심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내가 죽은 자인지, 산 자인지..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사역을 잘 마치고 현실에서는 왕으로 살았어요. 그 증거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다는 것 말고도 계속 성경에 나온다는 것이, 우리를 정말 놀랍게 만듭니다.
삿8: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여러분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인데요.
-기드온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여룹바알 이라고 말씀하는 것과 -자기 집에 '거주했다' 하는 이 동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1) 여룹바알, 이건 바알과 다투었던 기드온을 희화화 하는 말입니다. '너는 이제 바알에게 진 자가 되었니? 너는 이제 바알과 싸우지 않잖아?'
완전 망가져버린 기드온이 바로 여룹바알이다.. 이런 식으로 사사기 저자가 (비꼬아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예전에는 바알과 다투었지만, 지금 결국은 바알에게 졌어!' 이런 식의 기록이죠. 2) 그 여룹바알이 자기 집에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주했다'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왕좌에 앉아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자기 집에 돌아간 것이 아니라 거의 왕궁을 꾸며놓고 왕좌에 앉아서 왕노릇 했다는 겁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왕으로 살았다는 증거가 성경에 나오는데, 삿8:30~31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자 이게 무슨 말입니까? 기드온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왕이 되니까 아내를 많이 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여자 문제에 넘어진 것입니다.
아들만 70명 낳았대요. 그러면 딸까지 치면 도대체 몇 명이에요? 근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성적 만족을 위해서 첩을 둡니다.
기드온이 여자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여러분, 여자를 많이 두는 것은, 그 당시에 가나안 왕들이 했던 짓입니다.
율법에는 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을 가르치지 않아요. 그런데 기드온은 음란에 사로잡혀서 첩까지 두고 그 첩이 또 자기 동족이 아니에요. 세겜 여인이라고 하잖아요. 가나안 여인, 통혼하지 말라는 그 여인을 첩으로 맞이했어요.
그 첩에게서 난 아들 이름이 뭐예요. 아비멜렉이에요. 아비멜렉 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 기드온은 '내가 왕이야'라는 뜻의 이름을 아들에게 지은 거죠. 자기 첩의 아들에게.
이렇게 기드온이 왕으로 살았다는 증거는 너무 많죠. 여러분 이렇게 아내를 많이 두고, 애를 많이 낳았다는 것은 단순히 기드온이 음란에 넘어졌다.. 이것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자기소견대로 살았다'는 거죠.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명을 위해서, 큰 용사로, 크게 들어 쓰셨는데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서 스스로 왕으로 살아갔어요.
더욱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은, 온 나라를 우상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한 사람이, 쓰임받던 이 사람이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어요.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셨던 기드온, 성령의 옷을 입혀준, 성령의 임재가 가장 강력했다는 표현을 '라바시'를 통해서, 기드온에게 그 성령이 그토록 강하게 임하셨는데,
그거 에봇을 스스로 금으로 만들어서 입고, 왕으로 살았다는 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이렇게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어요. 우리도 보십시오. 기드온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우리는 쓰임받지 않은 채로, 우리 안에서 교만이 올라오는 일은 또 무엇이고,
황당하게 우리가 기드온 같은 큰 성과를 얻어낸 것도 아닌데도 우리 안에서 교만해서 넘어지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게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일이겠어요?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우리도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드온의 길을 걸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기드온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초심을 견지해야 됩니다. 자 여러분, 기드온이 언제 확 추락해 버렸냐면요. 시기적으로 보면, 요단강을 건너가면서부터 기드온의 증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삿8: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요단강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을 그들이 건너면서 확 지쳤어요. 왜 그들이 확 지쳤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치게 하신 것일 수 있어요. '야 너희들 잠시 멈춰서 생각 좀 해 봐!'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을 하라는 그 장치로 유단강을 건너며 지치게 하신 거죠.
여러분 잘 가다가 우리가 갑자기 힘들어질 때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돼요. '내가 지금 이렇게 가는 게 맞나?'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쉬지 않았더니.. 자기의 교만을 돌아보지 못하여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화풀이 하는, 그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물론 (요단 동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처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떡을 안 준다는 그들에게 분노해서 보복을 하기로 마음 먹는 것은, 기드온이 몇 배나 더 큰 잘못을 한 거죠.
만약 요단강을 건너서.. 피곤할 때 좀 충분히 쉬었으면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일은, 좀 지체되었겠지만) 적어도 동족인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그렇게 엄청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바와 살문나를 죽인 후에, 숙곳과 브누엘로 돌아와서는 정말 자기가 말한 대로, (아마 맹세한 모양) 숙곳와 브누엘을 엄하게 처벌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하나님이 피곤하게 하신 것은, 8:4
속도를 늦추고 생각해 보라고 하는 주님의 메시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달려가는 일만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멈춰서서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드온이 엉뚱한 결정이나 내리는 거죠!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지금 나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요즘 부쩍 지칩니까?
왜 지치는지도 모르고, 숨이 갑자기 차오르는 경험이 있으십니까? 혹은 건강하던 몸이 갑자기 아프십니까?
그거 하나님이 멈춰라는 뜻일 수도 있어요. '지금 네가 하는 그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냐? 아니면 네가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냐?'
이렇게 하나님이 한번 우리에게 제동을 거시는 거죠.
여러분 저도 요즘 부쩍 갑자기 힘이 좀 들어요. 이게 날씨가 더운 탓인가? 생각을 해봤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때 제게 뭔가를 가르쳐 주시려고 이런 피곤을 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임목사야, 네 삶에 하나님을 더 놓치지 않도록 해! 과거에 받은 훈련 가지고 만족하면 안 돼! 너는 지금도 동일하게 훈련을 받아가야 돼! 네 삶에서 지금 안주하면 안돼!'
그리고 또 주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너 겸손해야 돼, 교회가 조금씩 커지고 있으니까 네 마음이 편안하니? 너는 지금 네가 잘 가고 있다고 혹시 생각하니? 착각하지 마!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깨어있어야 돼!'
이럴 때 잠시 멈춰서서 다시 정리하고 달려가라는 이런 메시지를 주님이 제게 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는 일을 계기로 우리를 잠깐 지치고 힘들게 만드시는 이유는 뭡니까? 우리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느 날 내 마음에 욕심과 유혹이 가득한 상태인데 집에서 자녀들이 찬양을 흥얼흥얼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사가 딱 내 마음에 꽂힐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으로 그게 들리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내게 딱 맞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가 있는 것이죠.
또는 내가 나태하고 게을러질 때, 어떤 유혹에 내가 마구 사로잡히려 할 때 갑자기 내 핸드폰에서, 어떤 설교 영상이 뜹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떤 영상이 핸드폰에 뜰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설교를 호기심을 갖고서 한 번 들어보면, 정말 그 시간에 내게 꼭 맞는 메시지, 즉 성령의 음성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삶속에서 여러분이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한 번 제동, 브레이크를 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장치인 거예요.
이렇게 요단강을 건널 때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초기입니다. 아직 진도를 많이 나간 게 아닙니다. 아직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그때 얼른 돌아서서 여러분의 초심을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2. 두 번째 우리가 기드온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나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나의 분수를 알고, 거기에 지나치지 않도록 늘 주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라는 것은 뭘까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은혜란, 자기 자리를 아는 것을, 저는 은혜라고 생각해요.
그 분의 크심을 알고, 나의 작음을 아는 것! - 이게 은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드온을 살펴보던 중 유독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정말 멋진 사람이더라고요.
당시에 여러분, 그 사회에서 최고의 스타가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열광했고, 그에게 세례를 받고 싶어서 줄을 섰어요.
그때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아요?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요?' 그때 세례요한이 바로 고개만 깜빡거리면 바로 메시아가 되는 그런 슈퍼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때 뭐라고 그럽니까? '나는 메시야가 아니오. 내 뒤에 그분이 오실 텐데 그분이 메시아요,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풀기를 감당하지 못하오. 내가 주는 세례는, 그분이 주시는 세례와 비교할 수 없소. 그 분은 성령과 불로 여러분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나는 메시아가 아니요, 나는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요!'
이렇게 자기 자리를 정확하게 알았어요. 그런데 기드온은,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고 할 때, 은근슬쩍 스스로 왕으로 살아버리잖아요.
기드온과 세례요한은 영적 퀄리티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 두고서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니라!'
왜 그럴까요? 은혜를 알기 때문에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알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를 그렇게 칭찬하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례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 승리와 성공이라는 그 덫에서 그 동전의 양면같은 정말 무서운 그 승리 앞에서
그 승리가 위험요소로 다가오지 않았던 바로 그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은혜를 잊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면 성공 후에도, 승리 후에도.. 우리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고 산다면 초심도 계속 지켜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병적으로 늘 꺼내어 봅니다. 제 눈에 눈물이 마르는 것 같고, 마음이 식어진 것 같은 때는 습관적으로 떠올려요. 저를 만나주셨던 주님의 은혜를 떠올립니다.
제가 어릴 적에 그 힘든 시절에 그 교회 골방에서, 그 교회 기도실에서 나를 만나주셨던 그 하나님,
군대에서 이상하게 마음으로는 죄를 짓고 있는데 찬양만 부르면 그렇게 눈물의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
죄가운데 빠져있던 나를, 종으로 불러주신 하나님! 이 자격 없는 죄인을,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성지에서 종으로 훈련 받게 하신 하나님! (그 은혜를 회상하고, 기억합니다)
어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만일 누군가가 특히 저를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람들이 제 설교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면, 저를 비웃을 것 같더라고요.
피식 웃을 것 같더라고요. '야 쟤가 저러고 있네?' 이럴 것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해도 저는 아무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만약에 그 사람들이 저를 조롱할 때라도
저는 저 같은 사람을 주님의 은혜로 이끌어주신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저는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드온이 생각이 나요. 기드온도 숙곳 사람들의 조롱 앞에서, 기분이 좀 상할 수는 있겠지만 '야 그래, 너희들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안다..' 하면서 보복으로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비천한 자기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그 시간에 생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러분 저는 제 자리가 어떤지 잘 압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이 뭐냐면 저의 과거 수치와 죄와 허물의 시간들이 꼭 나쁘지만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제 마음이 높아지는 것을 막아주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붙들수 있게 해 줬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평소 삶속에서, 과거에 주님이 내게 주셨던 은혜를 많이 묵상하게 되면 지금 이렇다할 승리가 없어도, 성공이 없어도.. 이미 만족한 상태가 됩니다. 그걸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에게 승리가 없어도 돼요. 성공 없어도 돼요. 은혜를 알면요. 주님만 나와 함께 계셔주면 돼요.
말씀을 마치면서요. 정말로 놀라운 것 한 가지는 삿8:28 '이와 같이 하여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은 전쟁이 없이 평온하였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지금 제가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여러분 우리 같으면, 기드온을 어떻게 했겠어요? 미디안 군대를 이긴 공은 있지만, 그 이후로 무지막지하게 타락한 그를 하나님께서 딱 지옥으로 보내셔도 돼요.
'네가 감히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너를 얼마나 그 수많은 시간을 참아주고 너를 배려해 주고 기다려 주었니? 그런데 결국 네가 높아지자 내 영광을 가로채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드온이 다스린 이스라엘,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다 잊어버렸잖아요.
기드온의 집에 어슬렁거리면서 그 에봇을 섬겼던 그 백성들이잖아요. 그런 나라를 하나님이 40년간 평화를 주셨대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내가 내 백성을 지킬거야! 내가 미디안에게서 건져낼 거야!'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서였어요.
삿6: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