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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한다고 그에게 굴복하라는 것은 아니다 잠25:26 출처
잠25:26절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가져다 줘라
목 말라 하거든 마시게 하거라
원수까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라'
하는 말씀을 이제까지 하셨잖아요.
근데 오늘 그 말씀을 하다가
또 한쪽으로 치우쳐서
한쪽을 놓칠까 봐
하나님이 균형 잡히는 말씀을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는 21절 말씀
뒤에다 이렇게 본문 26절을 놓으셨어요.
원수를 사랑하되, 원수에게 굴복하지는 말아라
하는 것이에요.
악인이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어라
미워하지 말아라
그렇지만 그게 악인에게 굴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싸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 없다..
그거 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내버려 두어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악한 사람들의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하고
그냥 네 할 일 하고 잠잠히 살아라..
여러분 그게 겸손하고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근데 뜻밖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온유하라 그러니까
성내지 말라, 화내지 말라 그러니까
'무조건 불의를 보고도
눈감고 못 본 척하고
그냥 네 갈 길이나 가라!'
그런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다투지 말아라
싸우지 말아라'
무조건 그렇게 얘기해요.
누가 특히 그렇게 유도하는가 하면
악인들이, 죄인들이
'너 성경에 겸손하라 그랬잖아
성내지 말라!' 그랬잖아
'온유하라' 그랬잖아
'너 왜 그렇게 화내고 그래?
너 겸손하라 그랬잖아!'
이렇게 해서 자신과 싸우지 않게..
그게 성경적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하나님의 가르치심이신 것처럼 생각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언제나 옳은 줄 아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불의를 보고 불의와 싸우는 사람
옳지 못한 사람을 보고 그와 다투는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겸손하지 못한, 온유하지 못한
예수 믿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오해하기가 쉬워요.
근데 성경은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웃과 다툴 때
변론만 하고..'
옳다/ 그르다.. 변론은 하라는 거예요.
'변론만 하고
그의 약점을
노출 시키지 말아라' 잠25:9
약점을 잡아서 이기려고 하지 말아라!
싸우긴 싸우는데
비겁하게 싸우지 말아라 라고 하는 교훈이에요.
로마서 12장 21절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에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러분 여기에 기독교의 정신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악에게 지지 말고..'
악과는 싸우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악은 싸워야 돼요.
비겁한 것을 보고 숨으면 여러분 안 돼요.
그것은 같이 죄짓는 것이에요.
불의를 보고 외면하는 것은
불의에 굴복하는 것은요.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에요. 같이 죄를 짓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듯이
아무리 악이 강하여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것과 싸우는 것이에요.
▲저희는 개신교잖아요.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라 그러잖아요.
프로테스트 protest 는
저항한다는 뜻이잖아요.
여러분 교회가 잘못되면
잘못된 권위에 대하여 도전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마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그때 왕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교권, 교황, 추기경
이런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여러분 정말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그들은 싸웠잖아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하고 나가 싸우는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근데 '원수를 사랑하라
겸손하라, 온유하라' 라고 하는 말을
여러분 한쪽으로만 듣고
'그러면 원수하고 싸우지도 말고
불의를 보고 상대하지 말고
난 나만 착하면 돼, 나만 죄짓지 않으면 돼!'
여러분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악에게 지지 말고
악과 싸우는데
기독교는 선으로 싸운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선으로 싸우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그것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게 이기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 불의를 보고 못 본 척하고,
또 타협하고, 담합하고, 침묵하고
여러분 이것은 기독교의 정의가 아니에요.
▲과거 군사정권 때
많은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죠.
특히 629 선언 전에
시위가 아주 치열했었죠.
저는 데모 잘 못 했는데요.
그때 한 번 광회문 새문안교회 쪽에 데모가 있었어요.
그 데모는
목사, 전도사, 신학생, 교회 장로
이런 사람들만 모인 특별한 집회였어요.
새문안교회에 모여서
마당에서 모여서 예배하고
그 문을 열고 시위하러 나갔어요.
최루탄이 터지고
그때 처음 최루탄 맞아봤네요.
그래서 최루탄 피해서 골목으로 도망가고
사람들이 또 이렇게 숨겨주고
그런 일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위 현장에 있으면서
제가 곰곰이 생각한 거 있어요.
그 시위는 하는 것이 저는 옳았다고 생각해요.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프로테스트 하는 일
저는 그게 기독교 정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늘 그 자리에서 생각한 게 뭔가 하면
저항하는 것은 맞는데
저항하는 방법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이 데모하는 모습과 같아서는 되지 않지 않는가?
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서 그걸 발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기독교적으로 데모하는 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좀 한번 주도해 봐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고
비겁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되
기독교적으로 성경적으로 싸웠던
대표적인 싸움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은 우리나라의 3·1운동이라고 생각해요.
3·1운동이 기독교 운동이냐?
그렇게 이제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이 얘기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 중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거 여러분 아시죠.?
교회사 가르치는 교수님이 이 말씀 하실 때
제가 참 자랑스럽고 피가 끓었어요.
3·1운동이 일어났을 당시에
만세 운동 일어났던 곳을
다 붉은 점을 찍어 나가고
그 당시 교회가 있었던 곳을
검은 점을 찍어 나간 후에 보면
위치가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삼일운동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고요.
그래서 감옥에 갇힌 숫자만 해도
기독교인들이 절대다수 였어요.
그래서 그 3·1 운동에는
기독교 정신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저는 3·1 운동 독립선언서
난 세계의 역사적인 명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독립선언서는 지금도 읽으면은요.
피가 끓어요.
'아, 근사하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나?'
그런 문장은 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삶에서 마음에서 나온 거기 때문에
난 이제껏 읽은 어떤 문장보다도
우리나라의 독립선언서가 참 좋아요.
그런데 거기 공약삼장 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우리가 시위하고
이제 저항을 할 터인데
3·1 만세운동을 할 텐데
이것을 우리가 세 가지를 유념하자, 약속하자
하는 그런 뜻이겠지요.
공약삼장
'제1장. 금일(今日) 오인(吾人)의 차거(此擧)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나'
'오늘 일으키는 의거 3·1운동은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즉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전 이게 참 좋아요.
싸우자, 죽기까지 싸우자
그렇지만 우리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
배타적인 감정으로
저를 원수 삼고
"죽어라" 그러고 싸우지 말자!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하지 말라!
이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는 정신이
가장 많이 들어간 말씀이 아닐까 싶어요.
그다음에
'둘째,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셋째는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광명정대하게 하라'
여러분 악에게 굴복하지 않아요.
싸우는 거예요.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이게 기독교예요. 여러분
그런데 배타적 감정으로 하지 않고요.
그다음에 공명정대하게
질서를 지키고...
이게 기독교의 실력이에요.
여러분, 악에게 대적하는 일은 참 무서워요.
무서워요.
그래서 피하고 못 본 척하고 싶어 해요.
그게 우리 본능이에요.
그건 비겁함이에요.
겸손함과 비겁함은 다른 것이에요.
근데 참 속상한 것은
자신의 비겁함을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가장하는 것이에요.
의에 굴복하지 않고 선으로 싸우는 사람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신앙이 없는 사람
성경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잠25:26
의인이 악인을 사랑할 순 있어도
굴복할 수는 없어요.
여러분 사랑하는 척하고
비겁하게 굴복하는 것은요.
그러면 우물이 더러워지는 것이에요. 흐려져요.
샘이 더러워지는 거예요.
그럼 이 세상이 약해져서
먹을 물이 없게 되는 것이에요.
그럼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겠어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랑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절대로 비겁하면 안 돼요.
절대로 비겁하면 안 돼요.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어디를 가거나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싸웠어요.
▲그래서 기득권자들이 기독교인들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핍박했어요.
그래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어요.
기독교에는 순교자가 많았어요.
순교가 뭐예요?
악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 기독교의 정신
원수를 사랑하면서도 악에겐 굴복하지 않는 것
죽기까지 싸우는 것
사자 밥이 되어도
화형을 당하여도
십자가에 달려도
굴복하지 않고
악에게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그 정신
사랑과 싸움
이 양면의 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승리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참 귀한 말씀 주셨습니다.
어제 악인을 사랑하고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라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근데 그 말씀을 오해하고
한쪽으로 치우쳐 적용하며
악인의 굴복하는 것까지를 할까 봐
악인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
악인은 사랑할 순 있어도 굴복하면 안 된다.
악과는 싸워라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라
악에게 지지 말아라 싸워라
다만 선으로 싸워라
하나님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좀 흉내라도 내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세상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과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 날마다 기막힌 새벽 가족들
다 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저는 기독교의 이런 면이 참 좋아요.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
오른쪽과 왼쪽
어제 말씀,
'원수가 주리거든 먹여라
목말라 하거든 마시우라' 잠25:21
원수까지도 사랑해라.. 하는 말씀과
또 오늘 말씀,
악에게 굴복하지 말아라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하면
우물이 흐려진다.
샘물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잠25:26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더럽혀진 물을 마셔야 된다.
네가 싸워라
최후의 일인까지
죽기까지
이 양쪽 정신이 모두
기독교 정신인데
이 발란스를 잘 가지고 살아가는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살아가는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를 잘 맞춰서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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