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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6장, 두 번째 인구조사

LNCK 2022. 10. 3. 11:31

◈두 번째 인구조사               민26장            여러 설교 정리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에서 바알브올 사건 이후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때가 출애굽 40년 5월이었습니다.

본문 모압 평지에서의 인구조사는 두 번째 인구조사입니다.

 

첫번째 인구조사는 출애굽 2년에 시내산 아래에서 있었는데

그 때 조사 목적은 광야 행진 대열 편성과

행진 중 전쟁을 대비한 군대 편성이었습니다 (1:1-19).

 

그런데 광야 40년을 지내오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이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질서를 위해 인구조사를 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나안 진입을 앞 둔 상황에서 가나안 정복을 위한 군대 편성이 필요했고

가나안 땅 분배를 위한 조직 편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두번째 인구조사가 실시됩니다.

 

<민26장의 개요>

1-51절은 제 2차 인구 조사가 실시되고

52-56절은 가나안 땅 분배 원칙이 제시되고

57-65절은 가나안 땅 분배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

 

 

백성의 숫자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의 민수기는

1장에서 출애굽 둘째 해인 2월 1일에

백성들의 수를 계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1차 인구조사입니다.

 

레위인을 제외하고 전쟁에 나가 싸울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계수했을 때

603,550명 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6장에 기록된 것처럼 40년간의 광야 방황 생활을 마친 후,

모압 평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인구조사를 합니다.

이것을 2차 인구조사라 할 수 있는데 601,730명이 계수되었습니다.

 

1차 계수와 2차 계수의 차이가 1,820명입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에는 인구가 70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430년 만에 남자 장정만 603,550명이 되었을 정도로 자손이 번성했지만,

광야 40년 동안에는 인구가 증가되지 않고 도리어 1,820명이 감소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지파라 따로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1개월 이상된 남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22,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레위인은 23,000명이었습니다.

1천 명이 늘었습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의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전쟁에 나가서 싸울만한 남자만 계수했습니다.

 

여자와 20세 이하, 그리고 레위인은 모두 제외됐습니다.

1차와 2차 계수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미 언급한대로

인구가 1,820명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도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1차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생을 하고난 직후 시행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장자를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인구는 왕성하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동안에는 불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부패하였고, 하나님께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과 핍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핍박과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더욱 부흥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내부적인 부패는 큰 문제가 됩니다.

내부적인 부패가 있을 때 교회는 약화됩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성하도록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내부적인 부패가 있으면,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과 고난보다 내부적 부패와 죄악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고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내부적인 부패와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내부의 부패와 죄악,

그리고 동기를 살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를 비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가운데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적용 1. 징계하시고 회복해주시는 하나님

 

▲1. 징계하시는 하나님

본문에서 우리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한 명도 들어 가지 못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줄었습니다.

 

38년 지나서 인구가 줄었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약 200만명이 38년간 죽었다면 계산하여 보니 매일 150명 가량이 죽은 셈입니다.

한 가족을 5명 씩만 잡아도 매일 750명이 가족이 죽는 아픔을 가진 셈입니다.

(150명 X 5명)

 

우리는 성경에서 중요한 영적 법칙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라는무서운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죄의 결과 consequence of sin'라는 말도 씁니다.

 

다윗이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건에서.. 나단 앞에서 회개하고

죄는 용서 받았지만, 삼하12:13절에 나옵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죄의 결과는, 그 후 처참하리만큼 심하게 그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아들도 죽고, 압살롬의 반역으로 한 때 왕위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는 용서하셨어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출애굽 백성들을 수없이 용서하셨지만

믿지 못 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모조리 데리고 가셨습니다.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심리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목회하는 것을 보고 목회가 싫었습니다.

가장 싫은 것은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심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매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상담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매일 죽은 남편이 칼을 입에 물고 들어와 괴롭히기에 잠을 잘 수 없는 여인 상담,

꿈에 피를 토하고 죽는 귀신을 만난 사람 상담,

무덤을 파헤치며 송장을 먹는 귀신을 만나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사람들의 상담이 연일 계속 되었습니다.

 

그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른 상담학 교수를 찾아 가서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반드시 죄에는 징계가 있음을 본문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씨앗만 심으며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죄는 용서받아도 징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2. 회복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본문에서 회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만명을 광야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1,820명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 150명 가량이 죽었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40년 동안 하루에 거의 150명 정도씩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대단한 역사입니다.

 

성경에 조사된 수는 다 군사의 수입니다.

하나님은 군대의 수를 비슷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하나님이라고 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6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7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 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욥5:18-21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43:3-4

 

하나님의 성격은 회복입니다.

크게는 잃어 버린 에덴 동산을 회복하는 것이 성경의 역사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실낙원하였습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복락원하게 하시고, 역사를 끝내시는 것이 성경역사입니다.

 

하나님은 200만명을 멸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그 분을 지금 영접하시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혈루증은 여자들이 앓는 병중에 부정한 병입니다. 피가 흐르는 병입니다.

그래서 그런 병이 있는 동안에는 성전을 출입하지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앉은 자리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몸이 닿으면 닿은 사람도 부정하여 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댄 물건을 대기만 하여도 부정하여 집니다.

하나님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집에 감금시켜 놓고 치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2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12 년을 예배를 드리지 못 하고 12년을 사람들과 접하지 못 하고 산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옷 자락을 몰래 붙들었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이제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정하여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 들어오더니, 그 여자의 혈루병을 회복시키시고 말았습니다.

https://rfcdrfcd.tistory.com/15980332

 

죄인은, 거룩한 것에 접촉해서, 그 거룩한 것을 더럽히지만

주님은, 불결한 것에 접촉해서, 그 불결한 것을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과 접촉해서, 불결한 것이 거룩한 것으로 회복될 뿐만 아니라

주님의 통로가 되어서, 나와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거룩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지금 병든 몸을 건강한 몸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영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단락 출처

 

▲3. 그 가운데 사명을 맡은 지파는, 인구가 줄지 않고, 늘어났습니다.

 

전체 총수가 시내산에서는 603,55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601,730명으로서 1,820명이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광야 1세대가 죽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는 동안

전체 인구는 오히려 줄은 것입니다.                            주1) 지파별 증감 보기

 

1) 레위인은 오히려 숫자가 늘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지파라 따로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1개월 이상된 남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22,000명이었습니다. *3:39

 

그런데 본문의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레위인은 23,000명이었습니다. *26:62

1천 명이 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성막 봉사를 계속 해야 되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시내산에서 행진을 시작할 때, 동서남북 4대로 나누어서 진용을 갖추었는데

그때 유다 진영에 속한 지파는 유다 지파와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였는데,

세 지파 모두..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10:14~16

 

유다 지파는 그리스도가 날 지파로서 광야 행진에서 가장 앞섰고,

전쟁이 벌어지면 선봉대가 항상 제일 위험하죠.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대표로 하는 동쪽 지파(유다, 잇사갈, 스불론)을

인구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게 하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3) 반대로 가장 많이 감소한 지파는 시므온 지파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시내산에서 59,3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22,200명으로서

37,100명이 줄었습니다. 무려 63%나 감소했습니다.

 

가장 많이 늘어난 지파는 므낫세 지파입니다.

므낫세 지파는 시내산에서 32,2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52,700명으로서

20,500명이 늘었습니다. 64%나 증가한 셈입니다.

처음에는 가장 적은 지파였으나 여섯 번째로 많은 지파가 되었습니다(28-34절).

 

시므온 지파 수가 가장 많은 줄어든 것은

야곱의 예언과도 관련이 있지만 (창34:25-30, 49:5-7),

실제적으로는 바알브올 사건 때 많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의 미혹을 받아

우상숭배에 참여하고 음행했다가 교수형과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때 시므온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면 그 사건의 주동자가 시므온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이 염병으로 인해 회막문에서 울고 있을 때

시므온 족장 시므리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장막에 데리고 들어가 음행하므로

죽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들이 죽임 당하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풀려 염병이 그친 사실로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시므온 지파는 범죄하다가 후손이 줄어들었습니다.

 

나중에 모세가 임종 시에 12지파를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를 제외시켰고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유다 지파의 남은 땅을 얻어, 그 틈에 섞여서 살게 됩니다(신33:1-19, 수19:1).

 

4) 므낫세 지파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조금 지나면 사사기에서 므낫세 지파에서 기드온이 나왔습니다.

미디안의 십만 대군을 물리쳤죠. 

 

사사기 시대의 전쟁은 국지전이었지, 나라 전체가 동원되는 전면전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전체 역사를 4백년으로 잡지만, 국지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때

2백년으로 전체 역사를 보는 설이, 더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즉 (상상이지만) 므낫세 중심으로 미디안을 물리칠 때,

아마도 기드온과 그의 출신인 므낫세 지파가 주축이 되었으리라 보는 거죠.

그 사명을 위해서, 므낫세 지파를 하나님이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증가시키셨습니다.

근데 정작 전쟁 때, 2만2천 명이 모였지만, 결국 3백명만 남기고, 모두 돌려 보내셨습니다.

 

5) 그리고 단, 아셀 지파가 늘어난 것도,

광야 행진에서 가장 후미에서 적을 막아야 하는 사명 때문이 아니었겠나? 추측해 봅니다.  *10:25

 

그래서 "사명이 있는" 지파는.. 인구가 감소하지 않았다.. 라고 보는 거죠.

 

 

 

◑적용2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 단락 출처

 

▲1. 변화한 것

 

먼저 이스라엘 구성원 전체가 바뀌었다는 것이 변화된 사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두 죽었습니다.

국가의 구성원 전체가 다 바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이 있었기 때문에 40년 안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첫째,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다할지라도

결국은 모두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히 9:27)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모세는 광야 40년의 경험을 시편에서 이와 같이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여기서 ‘신속히 간다’는 말은 영어성경에서는 soon cut off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되 곧 죽습니다.

이것은 부정해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평번하지만 엄청난 진리를 기억하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2. 둘째,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습니다.

 

언제 죽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모든 해답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죽음을 대할 때에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히2: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죽음의 두려움(fear of death)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가 불행하고 어두운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넘어선 세계가 더 행복하고 영원한 세계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만큼이나 현실적인 세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이란, 우리가 그 아름다운 세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들의 죽음 이후의 세계는

아름다운 세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 가운데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대가 바뀌는 것도 유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지금 이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보다

세대가 바뀌는 과정들이 유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1세대는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대마다 할 일이 다릅니다. 세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김일성이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히틀러가 지금도 독일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는 것은 유익이 있습니다.

세대는 흘러왔다가 다시 흘러가고 이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네 번째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얼마나 학벌이 좋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죽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봉사하고 일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봉사는 현세를 넘어서 내세까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명예와 권력은 내세의 효과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은 내세에 영원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은 모두 바뀝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불변성의 교리 (Immutability of God)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라기서에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I the Lord do not change)” 말3:6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에도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6-27)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완전성, 그리고 작정하신 목적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언약도 불변하십니다.

 

우리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2. 변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교회입니다.

1차 인구조사와 2차 인구조사에서 백성들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국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켜서 광야교회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영원하도록 작정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죽었을 때에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울고,

장정들은 엎드려서 슬피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어도 광야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론은 죽었지만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살이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고,

모세는 죽었지만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는 어떤 면에서 모세보다 부족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수종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각각 특성있게 사용하셨습니다.

 

모세가 책의 사람(the man of the book)이었다면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계시를 받아서 위대한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쳐서 멸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했던 거죠.

 

새 시대에는 새 인물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도 새 사명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의 목사가 바뀌고,

장로가 바뀌고, 집사가 바뀌어도 교회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현세로부터 내세까지 영원히 지속됩니다.

 

건물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졌듯이

우리 교회도 우리의 육신의 자녀들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교회 출석을 강력하게 권면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비해 오늘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능력이 좋아서입니까? 아니면 똑똑해서입니까?

똑똑해서라면 왜 과거 반만년동안에는 이와 같은 성장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똑똑해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교회를 세우고 기도하며 전도하는데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새벽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민족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데

그 축복의 비결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 할 것을 늘 강력하게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 나와서 교회를 채워줘야 우리의 세대가 지나가도

다가오는 세대에 또 다시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전쟁터에서 싸웠던 용장들인데

왜 생명을 위협받을만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화살의 위험, 질병의 위험, 칼의 위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든 위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지켜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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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①르우벤 지파는 시내산에서 46,5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43,730명으로서 2,770명이 줄었습니다(5-11절).

 

②시므온 지파는 시내산에서 59,3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22,200명으로서 37,100명이 줄었습니다(12-14절).

 

③갓 지파는 시내산에서 45,56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40,500명으로서 5,150명이 줄었습니다(15-18절).

 

④유다 지파는 시내산에서 74,6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76,500명으로서 1,900명이 늘었습니다(19-22절).

 

⑤잇사갈 지파는 시내산에서 54,4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64,300명으로서 9,900명이 늘었습니다(23-25절).

 

⑥스불론 지파는 시내산에서 57,4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60,500명으로서 3,100명이 늘었습니다(26-27절).

 

⑦므낫세 지파는 시내산에서 32,2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52,700명으로서 20,500명이 늘었습니다(28-34절).

 

⑧에브라임 지파는 시내산에서 40,5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32,500명으로서 8,000명이 줄었습니다(35-37절).

 

⑨베냐민 지파는 시내산에서 35,4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45,600명으로서 10,200명이 늘었습니다(38-41절).

 

⑩단 지파는 시내산에서 62,7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64,400명으로서 1,700명이 늘었습니다(42-43절).

 

⑪아셀 지파는 시내산에서 41,5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53,400명으로서 11,900명이 늘었습니다(44-47절).

 

⑫납달리 지파는 시내산에서 53,400명이었는데

모압에서는 45,400명으로서 8,000명이 줄어들었습니다(48-5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