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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 P1

LNCK 2022. 10. 3. 14:32

[북한선교] 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북한의 사도 바울 [1편 정다운 자매 Youtube 

 

◈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 P1                      P2 

  

(안녕하세요. 김성근목사 입니다. 오늘은 정다운(가명) 자매님 모셨습니다.
정다운 자매님은 북한에서부터 지하교회 성도님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장해 
북한에서 신앙생활한 자매님 이세요. 

정다운 자매님의 가정은, 4대째 기독교 집안으로서 
증조부 때부터 계속해서 신앙을 지켜 온 
정말 찾기 힘든, 만나기 힘든 가정에서 성장을 해온 자매님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오셨고, 현재 요양원을 하고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자매님,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부모님들, 조부모님들은 4대, 5대째 기독교인 집안이라고 들었어요. 
그러면 자매님이 북한에서 태어나서부터
자매님이 살면서 경험했던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성근 목사 진행 : 괄호 및 검은색
정다운 자매 간증 : 괄호 없이 파란색

아 저는 북한 OO에서 태어났고요, 이미 태어나고 보니까 
제가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는 그 단어가 어려서부터 익숙해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시작되는 5세, 6세 때부터
저희 집안은 명절이라던가.. 
지금 생각하면 주일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일요일이죠.
일요일에는 어른들이 삥 둘러 앉아 가지고 
머리 숙이고, 막 웅성 웅성 하고, 수근수근 하는게 
제 눈에는 뭐 수상해 보이기도하고, 무서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요. 

근데 지금에 와서, 그러니까 제가 성장해서 보니까 
'아~ 그 날이 주일이었고 기도였구나' 
'그리고 누가 아프면 안수기도도 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저희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영적으로 강하신 분들이라 
안수기도도 해주시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기억이 그렇게 나는데.. 
제가 한 13살, 14살 돼서 부터는 
할머니께서 그 아담과 하와, 그러니까 인간이 창조되어서 부터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됐다.. 라는 것까지 
옛날 이야기처럼, 저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해 주셨어요.


(저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많이 가르치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아닙니다. 저희 외할머니는 정말 많이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도 빡세게!

(굉장히 위험했을 텐데요!)
 
저희 외할머니는 조금 남자 기질이 있으셔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거는 죄짓는 일이다. 그게 바로 죄다..." 이렇게 얘기를 하셔서 
제가 되물었죠. 그때 제가 14살이었거든요. 

"할머니, 그러면 북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 자체를 모르는데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불쌍한 거 아니냐? 그런데도 그게 죄입니까?"

그랬더니 "그래도 죄다! 모르는 게 죄다" 그러시면서 
할머니는 엄청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전도 하셨습니다. 
북한에 계실 때! 

(손녀딸인 자매님 한테만 전도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전도했다고요?) 

네,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위험했죠.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하지 말라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하니까 하지 말라고... 

 

(잠깐만, 그때가 몇 년도였죠?)

그때가.. 열심히 전도하셨을 때가.. 그러니까 제가 7살 때도 그렇게 하셔 가지고.. 
제가 1986년도에 태어났으니까, 그 때가 1992년 즈음이었죠.

(아이고 그 때는 전도하다 잡혀가기 딱 좋은 시기였네요)

그래서 한 번은 잡혀 갈 뻔했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 번 있었는데 

원래 저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두 분이 OO에서 사시다가 추방을 당해서 
심심산골로 가셔서 사시다가, 

(기독교 때문에 산골로 추방되었나요?)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누가 그거를 이제 고자질을 해서 
가택수택이 왔고, 
얼른 저희가 가택수택이 오면,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뭐 할아버지가 벽도 뚫어 가지고, 성경책을 숨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집에 성경책도 있었어요?)

네 많았습니다. 17권이나 있었습니다.

(성경책을 본 적이 있었나요? 어떻게 생겼던가요?)

그럼요! 성경책이 까만색이었고요. (변색되어 누렇지 않고) 하얀색 종이였어요. 
이렇게 굉장히 두꺼웠고, 종이가 얇아서 찢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안 찢어지더라고요. 

지금 한국의 성경책보다는 좀 두꺼웠습니다.

(그러면 그게 한국에서 들어간 성경책이겠네요?)

네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중국말도 잘하시고, 일본어도 잘 하시는데 
중국에 친척이 있으니까, 중국에 가서 구입하시거나, 얻으시거나
해서 가지고 오신 거고요.

(그러면 옛날 정말 해방 전에 북한 성도님들이 보셨던 옛날 성경은 아니고, 
하얀색 종이니까요.. 현대에 제작된 성경이네요.)

네, 1990년대 때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성경이 17권이나 있었고, 
여러 명이 모여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그러니까 완전히 진짜 교회 생활을 하셨네요..)

교회,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였지요. 

(안수도 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같이 했고
성경도 같이 이렇게 보고 그랬는데, 놀라운 건
그러면 거기에 오셨던 분들은 주변에 있는 동네 분들이었어요?
어디선가 모르는데서 오시는 분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동네 분들도 있었고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 말씀부터 먼저 드리자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원래 한국 분이셨습니다. 남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저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원래 권사, 장로 집 자녀분들이셨답니다. 
결혼 하셔가지고 자녀를 6남매를 낳았습니다. 3남 3녀를 낳으셨는데,

이북에 오셔서 6남매에게 다 복음을 전파하셨죠.
그래서 6남매가 다 이미 모태신앙 이었었고 
태어나서부터 주일이다, 교회다, 예수님이 이렇다.. 계속 가르치셨겠죠. 
손녀 딸인 저한테 가르치셨듯이요.

그래서 저희 큰아버지, 삼촌, 이모 "외가 쪽 6남매" 분들한테 다 가르쳤고 

그분들의 짝(배우자)들도 다 믿었어요.
그러니까 집안 통째로 예수 믿는 가정이었지요. 

저희 이모부, 뭐 삼촌의 어머니.. 이런 분들과 
자녀 6명의 그 배우자까지 하다 보니까 12명이었고 
그 6가정에 또 자녀들도 2명씩 있었어요.

그 자녀들까지도 다 할머니께서 전도를 하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식구만 모여도 대가족이었습니다.

이런 넓은 방이 있으면, 여기에 삥 둘러 다 앉고 
아이들은 그 안쪽에 이렇게 앉혔습니다. 

제 기억에 예배를 드린 거예요. 
이제 특별하게 누군가가 아프거나, 위험한 상황이거나 

믿음으로 인해서 정치 수색이 올 것 같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운데 앉으셔서 
이렇게 양 손을 좌우로 벌리시고 선포하듯이 기도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책도 있었고.. 설교는 누가 하셨어요?) 

성경책은 하나씩 다 가지고 계셨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대로.. 
오전에는 할아버지가 설교 하셨고, 오후에는 할머니가 하셨고요.

하루종일.. '주일은 온전히 지켜야 한다' 라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정적인(확고하신) 그런 생각이 있으셔 가지고.. 

(근데 그걸 안 들켰어요?)

그 날은 (장사하는 집인데) 장사도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장마당에 가서 사탕도 못 샀습니다. 

(잠깐만요. 그러면 예배를 계속 지속하면,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이상하게 보거든요. 
북한은 사람이 좀 모이면, 반드시 감사하고 주시하는데,
어떻게 그러면 예배를 지속할 수 있었나요?)

그래서 (예배보는 날은) 어떻게 했냐면 
할아버지 뭐 특히 환갑잔치나, 뭐 무슨 생일잔치나
그런 거 있을 때는 무조건 모였지만 

그럴 때는 '누구의 생일이다'
그러니까 자녀가 많지 않습니까. 

첫째 큰아버지 생일이다. 
그다음에는 둘째 큰아버지 생일이다
그 다음에는 누구 손자 돐잔치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다
맨날 구실을 만들어서 모인 거지요.

(그러면 저 집은 맨날 일요일이면
무슨 누구 돐잔치고, 생일이고..)

그래서 '왜 일요일만 하느냐?' 라는 얘기를 
옆집이나 반장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의심을 하고서.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어떻게 둘러댔냐면 
이제 저희 가족들 중에 고위급 간부들이 있었습니다. 

여기로 말하면, 시청이나 구청의 공무원이 식구들 중에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공무원이니까 노는 날이 그날 밖에 없다' 이런 구실을 대고 
그날 만나서 (예배)했고

더 나아가서는 이제 그 주변.. 그 동네 사람들이죠. 
여기로 말하면 어떻게 되나? 전철역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사람들까지도 
다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모이면 의심을 사니까
수요일 날이나, 이렇게 교회에 모이는 날을 날을 바꿔서 약속해서 모이자... 

그래 가지고 모일 때, 그럼 어떤 빌미로 모일까?
계획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짰습니다. 

어떻게 짰냐면, 저희 집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수단이 좋으시다 보니까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다 보니까 
여기로 말하면 '나눔이다!' 해가지고 
'한 끼를 나눔 한다!' 이렇게 해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냥 못 사는 사람들에게 나눔한다.. 이런 식으로 말했지요.
'꽃제비들에게 나눔한다' 뭐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모여서

'너희도 궁금하면 와서 봐라!' 
그 안전원이나 보위부에도 '올테면 와라, 밥 같은 거 나눠 주겠다..' 

초반에는 의심을 해서 '정말 너네가 밥만 나누는지..' 
뭐 수상한 거 쑥떡대는지, 꿍꿍이가 있는지 
한 달 주기로 한 서너 번 와 봤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제 안전원들 안 오고, 보위부에서 안 오고, 경계가 풀리고 
반장님도 안 오시고 할 때, 

그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살 '성경책, 이런책 봤냐? 
너네 이런 책 봤어?' 하면서 펼쳐 놓고 '옛날 이야기다!' 이러면서
이제 (전도를) 시작을 했죠.

처음에는 '하나님'이란 얘기는 안 했고
'너네 귀신이라고 아냐?' 이런 식으로 했더니
'아~ 귀신이 있죠!' 이러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 있는 건 아냐?' 그랬더니

 

'하나님이 누구예요, 뭐예요?'
'먹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그들이 묻죠.

그래서 그 다음에 하나씩 하나씩 설명했고 
그때 전도했던 분들이, 제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열심히 믿었습니다. 

남이죠. 남! 
그러니까 저희 친척이 아니고 남이었어요.

(그러니 친척 중에 공무원들도 있었고.. 
그런데 끝까지 안 들켰나요?)

끝까지 안 들켰는데, 
저희가 이제 나눔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조금 나눔 하다가.. 이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 번 챙기다가 그 다음에 못 챙기면 좀 서운하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는 예뻐하고, 누구는 안 예뻐 한다'고 착각을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이 신고를 해서, 가택수색이 여러 번 왔습니다. 

갑자기 문 두드리면서 '어디라고!' (어디서 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안 걸렸습니다. (오기 전에 성령님이 싸인으로 알려 주시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 번도 안 걸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벽에다 구멍 뚫고, 성경책도 거기에 다 집어넣어 놓고..)

그러니 벽처럼 보이게끔 해놓고, 저희 집이 마룻바닥이었습니다. 
복도나 마룻바닥에 장판 다 들추고, 거기 아래에도 숨기고

정말 급할 때는 어디다 숨겼었냐면, 이불장에 이불을 착착 넣는데,
그 이불장 뒷면에 구멍을 뚫어서, 손을 집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급할 때는 거기에다 숨겼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제가 어린 나이에도 심장이 막 콩닥콩닥 뛰었고
갑자기 (예배 중에) 들이닥치면 성경책 막 숨기느라고 정신이 없고 
그래서 심장이 콩닥콩닥 했었습니다.

(그 성경책을 어디서 공급 받았는지는 혹시 모르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 9~10살 때 듣기로는,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를 흘러 듣기로는, 
그러니까 중국에서 선교하는 분들이.. 
할아버지가 '지하교회입니다. 북한에서 사역을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도와주셨던 적도 있었고 

근데 이제 저희 친척들이 하나씩 다 가져가고 나면, 성경이 떨어지니까 
그러면 또 다시 가서 이제 저희 중국 친척들한테 
'(선물로) 사 달라'고 손 벌리는 것도 한 번이지 

두 번 요구하면, 친척이라도 싫어하잖아요.
그들도 사다가 줘야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한 번은 얻지만, 어떤 때는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사람에게)
'성경책 만 달라고, 쓰던 것도 괜찮고, 사서 줘도 좋다고..'
그렇게 말했던 적도 있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그럼 성경책을 중국에 가서 가져오셨네요)

네, 할아버지가 한국까지는 못 오셨죠.
 
(그러면 자매님은 어려서부터, 본인 뿐 아니라 주변의 이모, 이모부님들까지도 
할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잖아요. 
그럼 자매님이 학교에 가면, 기독교를 반동이라고 교육을 엄청 받았을 텐데..) 

 

그래서 집에서 그 주의를 엄청 제게 시켰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유치원이나 학교나 어디에 가도
'하나님 뭐 이런 얘기 절대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죠. 

그래서 제가 어떤 질문을 했냐면
'그럼 선악과 따먹었던 얘기, 사과 맛있는 거 먹었던 얘기.. 
그런 거 옛날 얘기 해 주면 안 되냐? 그랬더니
그런 것도 하면 안 된다.. 고 입단속을 받았죠. 

그래서 그때 제가 항상 그게 의문이었어요. 
'왜 (할머니는) 우리에게는 열심히 열변을 토하시고 
왜 학교나 친구들한테는 얘기하지 말라는 거지?' 
그게 의문이었는데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때가 되면 네게 알려 주겠다'고 만 얘기 하셨습니다. 

(그럼 가족들 가운데 실수 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저희 막내 이모의 남편분, 즉 이모부께서 
항상 그게 불만이었던 거 같습니다. 

'왜 나는 이걸 믿어야 되고,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왜 해야 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고, 밥 먹을 때 밥을 빨리 먹고 장사 나가기도 벅찬데, 
밥 먹기 전에 왜 기도를 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이혼하자고 했던 거예요.

(그러면 이혼하면 남이 되잖아요. 그럼 위험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다 또 온 대가족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막내 이모부를 불러서 '네가 이혼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결국 '바람'이었습니다. 

다른 여자가 생겨서 만나고 싶은데, 그런 이혼의 빌미를 잡고 싶어서...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혼을 해주겠지만, 대신 절대적으로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만약 얘기하면...' 거기는 이제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우니까 
만약에 말하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고...
야반에 너가 길을 왔다 갔다 할 때, 네 직장이 어디고 다 아니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저희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도 체격도 크고 
군사복무 하시면서 (경력이) 있으니까 
그 분은 '예 알겠습니다. 절대로 그 여자는 안 만나겠습니다' 
해서 그 후로 잘 살고 있죠. 그렇게 입도 뻥긋 못 하고 깨갱 했습니다. 

여기 말로 하면, 협박을 한 것이죠.
'절대로 누설하면 안 된다! 우리가 남을 해꼬지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영과 생명을 알려주고 싶고, 
이 삶이 끝이 아닌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일인데... (네가 발설하면 안 된다)'

그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그랬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자 하는 건데 
그걸 네가 들고 일어서면, 나는 더 큰 협박으로 다가가겠다.' 

그런데 그 분이 젊은 나이에, 37세에 사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데려 가셨을 수도 있네요. 위험하니까!)

안타깝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참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놀라워요. 
듣는 저도 막 가슴이 벅차고, 우리 북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지금 그래서 눈물이 날 지경이거든요

그러면 제가 지금 들어 보니까, 한국에 오기 전부터 
뿌리가 내려온 기독교 집안인데, 그런 집안이 북한에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럼 그 자매님의 신앙공동체와, 다른 그런 신앙공동체와
이렇게 연결이 됐다거나, 연결이 돼서 같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하셨어요, 아니면 홀로 독립된 공동체였나요?) 

처음에는 독립된 무리였습니다. 
처음에는 독립이어서 외로운 사투를 벌였던 걸로 제가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13살 쯤 됐을 때    *1999년 경
그때 쯤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시면서 
같은 고향에 있는 분인데, 사역하시는 분... 
그러니까 믿음의 집안을 만났다고... 그것도 두 집이나... 

(OO에서요?) 네!

그러면서 막 할아버지가 '할렐루야!' 이러면서
막 들어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랑 연계, 연락하다가 
그분들이 '도청장치가 설치된 거 같다. 그러니까 연락을 하지 말아라' 

저희 집에 전화가 있었거든요. 
그 집도 전화가 있었고... 
서로 그렇게 통화 했었는데 
'어머 도청장치가 있는 거 같다'는 얘기를 듣고, 그 다음부터는 통화 안 하고 

이제 그 다음부터는 뭐 도보로.. 아니면 거기에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이제 그렇게 되니까 조금 왕래가 뜸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들었어요. 그런 분들은 결혼할때도 
굉장히 신중하게 결혼해서,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 할머니께서 6자녀를 결혼 시킬 때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시키려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랬습니다. 할머니가 고집이 상당하셨거든요. 
그래서 특히 외할아버지보다 외할머님이 '한 고집'하시는 분이시라 
약간 여장부 스타일이거든요. 공동체의 리더이기도 하셨고요.

음식도 잘 하셔가지고, 식당도 하시고 했는데 
식당을 하시면서 거기 들어오는 손님도 막 전도 하시고요. 

(식당을 했는데, 거기 손님들에게도 전도 했다고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약간 좀 소심하시고, 좀 심사숙고 하시는 분이신데
할머니는 막 나가는 분이라 할아버지가 늘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죠.
'(전도, 신앙 얘기) 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가서 혹시나 (신고하면)..' 

할머니가 식당도 하시면서, 빵 장사를 하셨거든요. 
빵도 무료로 나눠 주시고.. (그러면서 신앙 얘길 곁들여 꺼내셨는데)

'사람들이 빵 받을 때만 네네! 해 놓고 
가서 고자질하면 어떻하냐?'고 
할아버지가 그런 얘기도 하시는 걸 많이 들었습니다. 

근데 할머니는 '아니라고 또 올 거라고.. 빵 받으러 올 거라고.. 
식사하러 올 거라고.. 생활이 어려우니까.. 
그러니가 고자질은 안 할 거라고...'

(와 이거는 완전히 하나님과 같이 일을 하신 거네요!')

처음에는 6남매 중에 처음에는 한 3, 4남매는
'너네가 결혼하게 해 주겠다. (우리 자녀와 결혼을 허락해 주겠다)
그럼 대신에 우리 얘기를 전적으로 따르겠느냐? 그것은 모든 것이 포함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답니다. 

그러니까 배우자들이 다 그런 식으로 믿게 된 거죠.
그래서 (결혼은 하고 싶은 거니까) 꼼짝달싹 못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냥 무슨 얘기냐 했더니 

'이제 하나님 예수님 얘기..'가 나오고 
그냥 빼도 박도 못 하게 '믿어라!' 
그래서 '예!' 그래서 그런 식으로 전도가 된 거죠.

그러면 할머님께서 경제력이 상당히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제가 8살 때인가? 제 기억에 서랍을 열면 달러가 나왔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 연결이 되어 있었네요. 바깥 조직하고요) 

그러니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중국에 친척이 많았으니까 
중국 돈을 가져다가 환전해서 사용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식당) 서랍을 열면 
이제 중국 돈이 막 이렇게 튀어나오고, 
양말 찾으려고 옷장을 뒤지면 돈이 막 튀어나왔지요.

할머니가, 다른 말로 하면 여자치고는 꼼꼼하지는 못한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돈을 아무 데나 그냥 넣어두셨어요.

그래서 며느리들이 오셔서, 슬쩍 슬쩍 챙기시는 것을 제가 어렸을 때 봤어요. 
'어~ 큰어머니 말도 안 하시고 가져가시네?' 
제가 안 볼 때 말을 하셨을 수도 있겠죠.
또 그런 자금으로 (전도비로) 할머니가 열심히 퍼 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식당을 하면서도, 공짜로 밥 먹이고 
그러면서 전도도 하고 하셨네요) 

성경책은 할아버지가 '증거가 되면 위험하니까 절대 주지 마라' 
구두로만 전달해라며 신신당부 해서  

할머니가 또 '(성경을) 찢어서 드리면 안 되냐?' 하자
할아버지는 '성경을 찢으면 되나?' 그래서 두 분이 싸우시고 

그래서 외부 인에게 성경책은 못 나눠 드렸고 
할머니가 56세 가량 되시니까, 여기는 반죽하는 기계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는 기계가 없으니까, 할머니가 새벽에 손으로 다 반죽을 하시니까,
그걸 막 70킬로, 80킬로 반죽을 하니까 
이게 어깨가 탈골 되시고, 나중에는 화장실 가면 
팔이 돌아가지 않아서 밑에도 못 닦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안 되겠다고, 사람 잡겠다고 해서 
식당 일을 그만두시고, 다른 사람에게 다 인수인계 하려는데

6자녀들 중에, 식당 일이 힘들어서 물려받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가지고 
결국 식당을 파시고, 이제는 집에서 그냥 쉬어라..

할아버지가 외화벌이 하시니까 이제 그때부터 할머니는 집에서 쉬셨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수시로 왔다갔다 하시면서
그렇게 하시면서 했더니 (돈이 궁해서) 퍼줄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할머니는 처음부터 돈 벌겠다고 식당 하신 게 아니었네요.
사람들 만나서 퍼 먹여주고, 공짜로 막 먹이니까 
'하나님 믿어라' 해도 신고 안 하는 거죠.)

아마 제 생각에는 그런 거 같습니다. 
신고도 안 한 것이, 또 와서 공짜로 얻어 먹어야 되니까요.
(할머니가 잘못 돼면, 누가 밥을 먹여 주겠습니까.)

먹으면서 또 그 (전도) 얘기 듣고... 
듣는데 1탄, 2탄, 3탄..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 주셨어요.

'다음에는 내가 노아 홍수 얘기 해 줄게!' 막 이러면서 하셨지요.

저는 손녀 딸이니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야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도 계속 얘기하시고... 

(야 정말 놀라우신 전도자 분 얘기를, 우리가 지금 듣고 있거든요)

나중에는 식당을 접고 나서, 뭐 줄게 없으니까..
돈을 줄 수 없지 않습니까. 

할아버지가 '돈을 주면 절대로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해 가지고... 
왜냐면 '돈 주면 안 온다. 얘기 안 듣는다. 돈 받으면 땡! 하고 즉시 가 버린다. 

식사를 해야, 그 시간에 얘기도 듣고 해야지 
돈 주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가 버리고,
또 다음에 와서 '돈만 주세요!' 하면서, 돈만 타 가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난 전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 이런 식으로 의논하다가 

그러면 '할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랬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파트로 이사 오셔서 살았거든요. 


근데 그때는 장마당에 나가셔 가지고 
그 장마당에 꽃제비(거지들, 노숙자들) 들을 아파트로 오라고 하셨어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꽃제비들 다 모아서 
저희 할머니 집 아파트에서 

그때 제가 잠깐 거기서 같이 살았습니다. 
12명이 같이 살았는데 
아무리 넓은 아파트도 12명이 같이 사는데, 좁지 않습니까. 

거기 그 마룻바닥에 일렬로 다 앉혀 놓고, 밥을 다 드리고 
그 다음에 이제 할머니가 일어나서 강의하셨죠. 

'너네가 밥 먹을 때, 밥만 먹으면  안 되고, 귀를 열어라! 
너네가 이 밥을 먹는 거,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농부가 농사를 그냥 짓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셨다)

이제 그래서 태초부터 이제 설명을 막 하시는데 
제가 나중에 저도 컸지 않습니까. 15살 정도 되었어요. 그래서 말씀 드렸죠.

'할머니 이거 너무 길다. 잘라서 진짜 필요한 얘기만, 핵심만 해라' 
'그럼 어떻게 잘라서 얘기하면 되겠냐?'

'그러면 이 사람들은 뭐 누가 태어나고, 아담, 하와, 노아, 
이런 거 다 얘기하려면 끝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은 (얘기가 길어져서) 꽃제비 노숙자들이 자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이가 온 집에 퍼져 가지고...

그 전에는 그 집에 이가 없었는데, 
그날 노숙자들이 하루 자고 간 다음부터는, 제 머리에도 이가 나오고..

이 뿐만 아니라 벼룩도 퍼지고...
꽃제비들이 하루 잤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 다 세탁하고... 뭐 아무튼 한 달 열흘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절대 재우지는 말아라, 식사만 해도 그 마룻바닥에 
벼룩이 마룻바닥 틈새로 숨었다가 나중에 다시 올라오는데...' 
막 그런 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핵심만 잘라서 얘기하자' 그래 가지고 
그러면은 '생과 삶, 죽음과 삶(영생)에 대해서만 얘기해라'

그래서 '너네가 죽으면, 까딱하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그거를 핵심적으로 얘기를 해서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지금 상황에서도 죄 짓지 않도록 해라. 
어디 가서 얻어 먹더라도, 식기도를 해라! .. 이런 얘기를 간략하게 해라' 

그래서 (강의)안을 짜 가지고, 
할머니가 서서 그렇게 선포 하시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면 그 현장에서 직접 보셨죠?
그 듣는 사람들이 믿던 가요?)

그래서 제 기억에, 만약에 20명이 그날 왔다 그러면,
20명 중에 한 5~7명은, 정말 자기 몸이 아프고,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렇게 눈동자를 보면 알잖아요.

식사하시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진지하게 듣고,

마치면 집에 가지 않고 더 듣겠다고...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 중에.. 그러니까 물론 반반일수도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다음에 또 와서 식사하려고 (들어주는 척) 하시는 분들도 있었겠죠. 반반이겠죠.

그런 분들이 점점 늘어나서, 또 소문을 냈겠죠. 
'저 집에 가면, 식사도 주고 재미난 얘기를 해 준다.' 

그래서 할머니가 그 꽃제비들 입단속을 잘 시켜 가지고 
'절대로 나가서 하나님, 예수님.. 이런 얘기 절대로 하면 안 되고 
돌아다니면서 불쌍한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모시고 오되,
그냥 재미난 얘기를 한다고 해라... 옛날 얘기,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왜 어떻게 죽으면 잘 죽게 되는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라' 

이렇게 해서 뭐 매주 월, 수, 금, 점심 저녁에 
계속 꼬박꼬박 오시는 노숙자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또 먹여 주시고, 된장 퍼 주시고..
또 성경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이제 나중에는, 저희가 어떻게 머리를 썼냐면
그분들이 오는 것은 이가 자꾸 퍼지니까, 
와서 목욕도 시키고요. 별 방법을 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왜냐면 목욕하고 깨끗하게 했는데, 
그분들이 다음 날 나가서 또 오물을 묻혀가지고 오니까요.

그래서 비닐 있잖습니까. 북한에서는 비닐에서도 목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비닐을 50장을 비싸게 주고 샀던 기억이 납니다. 

노숙자들이 오시면, 그 비닐에 이름을 써 가지고 
그 분이 오시면, 그 목욕 비닐을 뒤집어 씁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 머리 위에 숨구명이 있는데, 숨이 차면 머리만 내 놓고 씻기도 합니다.
(*몸은 비닐에 허옇게 증기가 차서 밖에서 안 보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할머니 얘기를 듣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중에 돌아가시면, 그 비닐을 이제 그대로 들어서 밖에서 털고, 
보시면 이렇게 비닐 그 벽에 이, 벼룩이 다 붙어 있는게 보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털어내야 되는 거죠.

근데 그래도 열심히 하시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열심히 이렇게 전도 했는데 

어떤 분은 '이 집에서 내가 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싶다.' 하셨죠. 
왜냐면 이렇게 10분 단위, 20분 단위로 듣고 

뭐 한 번 자기가 오면, 10~15명 이상 이렇게 모이니까 정신 집중이 안 된다... 
왜냐면 질문하면 그 사람한테 답변해 주고... 하다 보면 자기 (질문) 차례가 안 오니까.. 

 

그때 나는 또 어떻게 생각했느냐면
'그분들은 이렇게 열심히 듣더라도, 또 나가서 뭐 주십시오(구걸) 하면서
살아야 되는 사람들인데...' (적당하게 섬깁시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더 듣고 싶다. 그러면 어디 가면 교회가 있냐?' 
이런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북한에는 교회가 없다. 여기가 너네에게는 교회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여기 우리나라 북한만 빼고 모든 나라에는 교회가 있다. 
너무 부럽다.' 이런 얘기를 하시면 
'나도 거기 (교회에) 가고 싶다. 거기 가게 해 달라!' 이런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럼 그런 분들을 계속 관리는 하셨어요?
정말 믿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잖아요. 그러면 관리를 하셨겠네요?)

그렇죠. 주일 날에도 오시고...
그래서 같이 살고 싶은데, 집이 좁아서 할머니가 같이 못 살고

그 옆에 집을 얻어 드린 걸로 제가 압니다.
땅 집인데, 
북한은 지방에는 집 값이 그리 비싸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서 생활하시면서.. 자녀분들도 있었고요. 
그 자녀 분까지 전도하고.. 

그분이 지금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 온 걸로 제가 들었는데 
지금도 연락하자면 할 수는 있죠. 

그 분이 저희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은 분인데 
나중에는 한국에 넘어 오실 때쯤 되니까 
혹시 돈 갚으라고 할까봐, 연락을 끊으시더라고요. 

언젠가는 여기로 말하면, 한 5톤트럭 정도 되는 차에 
감자를 한 트럭 실어서, 이제 그 분한테 주면서 

공짜로 준 것은 아니라 '네가 전도하면서 이걸 밑천으로 삼아서 해라' 
이렇게 하고 줬는데, 사실 받을 생각은 없었겠죠. 

그분은 좀 아무래도 부담을 좀 느끼신 것 같아요.


(할머니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도 하시고 
그리고 아픈 사람 있으면 기도도 해 주시고 그랬잖아요. 

제가 궁금한 것은, 자매님은 어린마음에 
할머니 얘기를 들을 때, 그 말씀이 믿어졌나요?) 

저는, 믿는다/ 안 믿는다.. 이걸 떠나서 
어렸을 때부터 그냥 맨날 듣던 얘기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환경이었으니까요.

그냥 엄마 아빠 따라다니면서 믿게 된 거죠.
여기로 말하면 모태신앙인 셈이었죠.
여기 아이들이 태어나서 엄마 아빠 따라다니면서 믿듯이요.

집이 교회니까, 교회에서 태어난 셈이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믿었고, 
뱃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수기도도 하시고 했답니다.

그래서 '얘는 이제 커서 잘 될거다!'
뭐 이런 얘기도 하시고 했는데 
전혀 그런 걸 뭐 의심? 이런 거 전혀 없이 그냥 고대로 믿었고 

제 기억에는 제가 5~6살 정도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제가 자고 일어나 보니까, 집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섭던지.. 제가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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