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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 P2

LNCK 2022. 10. 4. 15:00

[북한선교] 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북한의 사도 바울 [2편 정다운 자매]  - YouTube

 

◈북한에서 쓰여진 사도행전 P2                      P1 

 

김성근 목사 진행 : 괄호 및 검은색
정다운 자매 간증 : 괄호 없이 파란색

 

제 기억에는 제가 5~6살 정도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제가 자고 일어나 보니까, 집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섭던지, 제가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뭐 아멘 이런 것도 모르니까, 그냥 어른들이 기도하는 그것만 생각하고 
'무서우면 기도 해야지' 하는 본능이었어요.

본 건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 빨리 오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던 것 같아요. 
방에 창문이 이렇게 있었고, 거기 방바닥에 이렇게 앉아서 
'엄마랑 동생이 없어요. 빨리 집에 오게 해주세요. 무서워요.' 
막 이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하다가 한 1시간이 된 걸로 느껴지는데 
엄마 말씀으로는 석탄 가지러 밑에 창고에 갔다가 
동네 아줌마랑 마주쳐가지고 몇 마디 대화하다가 올라왔대요. 
근데 저는 한참 있다 온 줄 알고, '나 혼자 두고 어디 갔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집에서 밥 먹을 때 식사기도 하고.. 이렇게 습관이 됐을 거잖아요.
그러다가 학교 나가서 학교생활 할 때 혹시 실수 안 했어요?)

했습니다.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너 자냐?'고 
그래서 제가 '아니야!' 

또 한 번은 제가 이렇게 눈 감고 있으면 
'또 뭐 해? 밥 안 먹고 자?' 하면
제가 '아니야'

 

'그러면 뭐 했어?'
그러면 제가 그랬죠. 할머니 말씀이 그 때마다 떠오르거든요. 
'그렇게 하면 너 혼난다' 하며 막 겁을 주셨거든요. 

그 다음에 경찰 아저씨가 뭐 때찌 때찌하고 
아무튼 뭐 무섭다는 말은 다 말하여 주의시켰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아니야.. 나 잠깐 생각했어!' 

'무슨 생각했는데?' 친구니까 꼬치꼬치 물어보죠.
'이게 맛있는지, 저게 맛있는지 생각해 보고 있었어!'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어려서부터 기도생활을 했잖아요. 
그 기도를 해서 하나님과 교감이 있었고, 응답받은 경험이 있나요?)

어릴 때는 아마.. 그런 걸 잘 못 느꼈고요. 
'기도해야!' 라고 하니까 하는 건데 

사실은 아버지가 먼저 한국에 오셨거든요. 
저는 아버지와 제가 13살에 헤어졌고요. 

제가 기억나는 한 가지를 말씀 드리자면 
제가 한국으로 오기 전에 19살 때, 제가 함흥이라는 곳에서 생활했는데 
그곳에서 이제 아빠의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오겠지' 
또는 '아빠가 중국에 사시겠지..' 했는데 
한국에 사신다는 얘길 듣고 너무 큰 충격이어가지고 

그래서 제가 (아빠를 만나려고) 신분증을 가지고 기차를 타야 하거든요. 
국경선까지 오려고 하는데, 근데 출생증 가지고는 이게 해결이 안 돼요. 
그러니까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냥 출생증 가지고 출발해보자' 
저는 아버지를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게 됐는데 어머니가 '안 된다. 뭐 옆집도 아니고 어떻게 가냐? 
출생증으로 누가 너를 믿어 주냐?' 

출생증은 북한에서 17살까지인가 쓸 수 있거든요. 
근데 저는 이미 19살이고 성인이지 않습니까. 

(국경 쪽으로 가려면 허가된 통행증이 있어야 하죠)

출생증만 갖고는 안 되죠. 그렇죠. 
그러면 돈도 있어야 되고, 왜 국경 가는지 따져 묻고, 
허가 안 해주면 못가고.. 그러면 오히려 감시 대상이 되고.. 

그렇지만 그냥 출생증으로 가보겠다 하고 출발을 하는데 
그 출발하기 한 30~40일 전부터 
제가 엄마랑 동생이랑 다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집 안에서 기도하고 하면서, 그거 (출생증) 가지고 출발해가지고 가면서 
단 한번도 걸린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그게 은혜가 아니고 뭡니까! 

(그렇죠!)

만약에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그러면 
제가 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성숙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너 몇 살이냐, 몇 년생이냐?' 하고 따져 물었다면 
제가 거짓말을 만약에 할 수도 없고, 그러면 거기 전화해보고 그러면 
바로 들통 날 일인데.. 

그 거리가 얼마나 됐냐면.. 제가 4박 5일을 같습니다. 
기차가 섰다 갔다 그러거든요.

그동안에 한 번도 한 번도 그런 (검문 받은) 적이 없었고 
오면서 도시락을 제가 하나도 안 싸가지고 왔거든요. 

오면서 하나님이 제가 배곯을까봐,
기차 안에서 앞에, 옆에, 뒤에서 (음식을 나눠 주셨어요.)

그러다가 그분들이 내리면, 또 다른 분이 타시고
다 밥을 해와서 저에게 나눠주셨습니다. 

(북한에서 밥을 나눠준다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근데 진짜 거짓말 안하고 
이제 밥 한 덩어리 나눠주시고, 불쌍해 보였는지... 
그때 삐쩍 마르긴 말랐었는데, 불쌍해 보인 것보다는.. 
아니죠. (기도의 응답이었겠지요)

그렇게 국경에 도착해서 '할머니, 내가 4박 5일 돈도 그대로 안 쓰고, 밥도 안 굶고 
(검문에) 걸리지도 않고 내가 무사히 왔다' 했더니 
할머니가 막 우시면서 저를 붙잡고 기도부터 하시더라고요. 
감사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막 기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또 한바탕 울음바다를 만들어 놓고 
꼬질꼬질하니까 씻고.. 그다음에 할머니가 
'(한국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도를 해야 된다'

그래서 삼 일 동안 못 가게 하고 
기도를 내리 하고...

할머니가 '여기 우리집에 도청 장치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말을 조심해야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란 말을 빼고 '너 잘 다녀와라' 이런 얘기를 이제 하신 거죠. 

이제 일부러 장마당도 나가시고.. 할머니가 무릎이 안 좋으셨거든요. 
그래도 나가서 거기서 이제 기도 하시고.. (집에서 도청 되니까)

그러면서 (탈북해서 중국으로) 나갈 때 제가 기억이 생생합니다. 
문 열고 나갈 때, 새벽 4시에 제가 나왔거든요. 

그때 할머니가 말하면 안 되니까, 양 손 검지 손가락 2개로 교차해서 십자가를 만드셨어요.
그리고 나서 또 검지 손가락으로 할머니 머리(관자놀이)를 두어번 찌르면서
'기억하지?' 하셨어요.

그건 '네가 어디를 가도 하나님 믿어야 된다, 그걸 머리에 잊지 말고 기억해라'
는 뜻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길을 떠나는데
뒤돌아보니까 할머니가 끝까지 계속 이렇게 검지 손가락 2개로 십자가를 만들어
저한테 보여주셨어요. 그렇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파트니까 할머니가 3층에 사셨거든요. 
밑으로 내려오면서 까지 
제가 '들어가시라고.. 추운데 들어가시라고' 하니까 
말은 못 하시고, 십자가만 만들어 보여주셨죠.
 

(그리고 제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어렸을 때부터 할머님이 이렇게 막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러면
아팠던 사람들이 그 기도를 받고, 병이 낫고 몸이 회복되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요즘도 지금 북한에 계신 분들은 약도 없고, 병원도 없잖아요. 특히 지방에는.
그래서 예수 이름을 막 부르면, 병자들이 그렇게 잘 낫는다고 얘기들을 들어서.. 
그래서 그게 궁금해서, 체험이나 간증이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 

네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생판 모르는 남을 전도해서 
그분이 50대인데 벌써 풍이 왔습니다. 여기로 말하면 뇌졸중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보기에는, 이렇게 (반신이 마비되어서)
입이 이렇게 한 쪽으로 마비되시고, 그 쪽 눈도 뭐라 그럴까..
턱도 절반 돌아갔고, 한쪽 손 발은 아예 못 쓰시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그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그분을 위해 백일기도를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금식기도를 자주 하시는데,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분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 하셨는데 

그분이 팔 다리를 완전히 쓰지도 못했고  
얼굴 반쪽이 입이 안 움직였지 않습니까. 

근데 입도 움직였고, 왼손을 이렇게 들어서 물건을 잡을 수 있을 정도까지 
자유롭게는 못해도, 물건을 잡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움직이게 됐고, 
다리도 이렇게 질질 끌던 게, 이제는 걸으시고.. 그렇게 되었거든요. 

근데 이것 말고도, 저희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죠. 
자궁에 근종이 너무 심해 가지고, 그냥 고름이 가만 있어도 질질질 나오는 
그런 병이었답니다. 그리고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시고 
엉덩이 이렇게 쳐들고 고양이 자세로 계시던 분이셨는데 

기도를 엄청 열심히 하셨고, 저희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가 
과거에 안수집사로 계셨다고 합니다. 하셔가지고 몇 날 며칠 한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해서 싹 다 나아서, 그 동네에서 '진짜 무슨 일이냐, 무슨 약을 썼냐?' 
이렇게 물어올 정도로 깨끗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그때는 이제 하나님 그런 거를 전파할 때고, 얘기할 때니까 
모여가지고 그때부터 이제 믿으시고 (아마 1948년 이전 때를 말하는 듯)
그 동네가 전도되던 일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외할머니께 일어난 그 일로,
어쨌든 그분들이 이제 다 모여서 그렇게 믿으시고 다 그렇게 됐답니다. 
그래서 그런 적이 있었고, 

저희 외할머니가 이제 꿈으로 비몽사몽 사이에 (환상 등을) 많이 봤는데 
어느 날은 새벽 꿈에, 하늘에서 우리 할머니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개야 빨리 일어나서 집을 정리해라!' 이런 얘기를 들으시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집에 성경책이란 성경책은 다 꺼내서 아궁이에 다 넣고 
다 불태우고, 그 재가, 막 이제 불씨가 막 꺼져가는데 
십 분도 안에서 가택수색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안 그랬으면 다 (붙잡혀 갔겠지요)

그러니까 북한에는 한 집 건너 하나로 다 감시사회 아닙니까. 
'저 집은 이상하다고' 누가 신고를 했는지 
그렇게 돼가지고 걸릴 뻔 했다고.. 할머니가 그런 얘기도 하시고 
참 그런 (성령님의 계시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께서 전도하셨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남아서 지금도 
신앙생활 하고 계시잖아요..)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제 전기가 잘 끊어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아무 할 것도 없고, 누워서 천정 보면서 
할머니가 '야 그래서 그 다음에 이제 몇 부 (성경 이야기) 할까?' 그러면
'네, 이야기 해주세요!'

그러면 '할머니가 졸릴 때까지 한다' 이러면서
이제 성경 얘기를 해주셔서, 제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이제 할머니가 그때부터 뭐 성경 이야기들,  
뭐 아브라함은 이렇고, 이삭은 어떻고, 모세는 이렇고... 이런 얘기를 쭉 하셨는데 
제가 이제 먼저 졸려가지고, 오히려 제가 먼저 잠들곤 했습니다.

제가 그때 어릴 때는 의문점이 많았습니다. 
'할머니, 근데 왜 하와는 아담을 꼬셔가지고 사과를 먹였어?
자기만 먹으면 되는데..' 이런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하고 

나중에 할머니가 집에서 이제 (전도) 하다가 
나중에는 장마당에서 서 가지고 전단지 돌리듯이 
할머니가 '밥을 드립니다!' 하고 종이에다가 써서... 

북한은 종이가 귀하지 않습니까. 
종이도 작은 종이가 아니라 큼지막한 종이에 '밥을 드립니다' 하고 써서
'어디 어느 동으로 오세요' 이렇게 까지 하셔가지고 

(그러면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 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가지고 할아버지가 '이거 하루에 10 장만 돌리라고!'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은 다 알죠. 
'저 할머니 또 이제 왔다. 밥 주러 왔다!' 이러시면서... 

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아파트 복도 끝까지 사람들이 앉아 가지고 
그 복도 길바닥에 까지 몰려온 사람들에게 밥 주고... 

그래서 안전원(경찰)이 와가지고, 자기도 밥달라고 해서 
진짜로 밥 먹고 싶어서 온 거예요.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밥 먹고 싶어서 오는 안전원(경찰)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들이 무슨 돈이 저리 많아서?
그래서 자금 출처에 대한 조사가 나올 텐데요..) 

그런 의심도 받았습니다. 
근데 다행히 할아버지가 외화벌이(중국에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 자녀분들도 고위급 간부들이고 하니까요.

(굉장히 풍요롭게 사셨네요. 그러면) 

그런 건 아닙니다. 중상층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산다는 걸 아셨나요?)

할머니가 계속 얘기해가지고요. 알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죽을 먹어도 감사하라'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완전히 북한이 아니라, 딴 세계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놀랍습니다.
그러면 제가 궁금한 게, 할머니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상당히 깊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그런 성경지식을 습득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성경책은 물론 집에 있었지만, 주님을 믿는다고 그렇게 습득할 수는 없거든요...) 

어디서 이렇게 교육을 받거나 그런 건 없었던 걸로 아는데 
할머니가 중국에서 거의 40대 때 이렇게 북한으로 넘어오시다 보니까 
그때 할머니 말씀으로는 '중국에는 교회가 많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받았던 교육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셨던 것 같군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진짜 할머니는 새벽에도 일어나서 엉덩이 들고 있으면 
'기도 하시는구나!' 생각했죠. 

저는 할머니가 기도하라고 하시니까
같이 따라서 기도하는 척 하다가 졸려가지고 엎드려 잠이 들고 했지요.
그러다가 틱 구불러서 자면.. 할머니가 발로 엉덩이 팍 차요. 
그럼 이제 다시 일어나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새벽에 기도를, 날을 정해서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하는 건 아니라 
뭐 예를 들어서 3월 달이면, 3월 달에 언제는 이렇게 해야 된다... 
뭐 그렇게 날을 정해서 해주셔가지고 

저는 어린 나이에 너무 피곤해서 '새벽기도는 안 하면 안 되냐?' 했더니 
안 된다고... 
그럼 '나는 졸려가지고 기도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그러면 
그래도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도 계속 하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전도하신 사람들 중에, 국경지역에 사시는 분들도 있으시거든요. 
그분도 이제 우리 외할머니의 능력을 알고, 
그 분에게 아들 하나, 딸 둘인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분의 애가 아파가지고 이제 막 고열이 나고 했는데 
북한은 그 새벽이나 밤에 병원 갈 길도 멀고, 밤길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할머니를 부르고 할아버지를 불러서 기도를 요청했는데 
할아버지는 이제 할머니보고 '당신 혼자갔다 오라고,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할머니가 혼자 가서 진짜 밤새 땀으로 온 몸이 다 젖도록 
않은 방석이 다 젖도록 기도하셨답니다. 

그러니까 몇 시간을 오래도록 기도해 주신 것이죠.
가서 그렇게 기도를 하시고 했는데 
애가 온전해져가지고 
원래는 고열이 나면, 애들이 귀가 안 들리거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후유증이 있는데.. 그런 거 없이 잘 돼가지고... 
그 다음부터 그분들이 더 열심히 믿고, 더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고 
그렇게 열심히 믿었던 기억도 납니다. 

(간증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북한 안에서 사신 사도바울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희 할머니보고 '사도 바울'이라고 하면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왜요?)

'나를 어디 감히 바울한테 비교하냐고...' 
입에 꺼내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지금 잡혀가셨나요?) 

제가 한국에 넘어와서 듣기로는 
정치범수용소에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 엄마 바로 밑에 외삼촌, 외숙모
이렇게 네 분이 잡혀가신 걸로 제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잡혀가죠. 그렇게 하면 안 잡혀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됐냐면, 원래 다 (한국으로) 오시려고 하다가 
할머니가 전도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네도 데려갈 테니까, 이제 가자' 이렇게 됐고 

그 자녀분들까지 데려가겠다 해서 
그 자녀분들과, 그 부부와, 그 다음에 이제 다른 분까지해서 
같이 6 명을 먼저 보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머니 먼저 오시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그분들을 먼저 보냈는데,

그 6명이 넘어가다가 2명이 국경에서 붙잡혔습니다. 

잡히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불어버렸죠. 
그러니까 '하나님 얘기하고 뭐 뭐 한다' 하고 다 얘기한 것 같습니다. 추측으로는. 
그러니까 정치범 수용소로 가신 거죠.

 

(거기에 들어가신지 몇 년 되셨어요?)

한 8년 전이니까 
이미 저희는 엄마랑 식구들하고는 
명절날이든, 무슨 날이든, 이모 생일이 엊그제였거든요. 

이모 생일이든, 할머니 생신이든, 할아버지 생신이든
절대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할아버지 생신인데..' 이렇게 얘기 안 합니다.
하면 이제 고통스럽기만 하니까요. 힘들기만 하니까요. 

(혹시 하나님이 위로는 안 해주시나요?)

저희 어머니도 지금 권사님 이시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됐다고 말씀하신 지 
한 일년 이년 가까이는.. 저도 그렇고, 어머니도 울고, 
길 가다가도 생각나면 울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나 저나.. 이제 '아~ 하나님이 또 다른 계획이 있어서 
할머니를 그렇게 인도해 가셨겠구나..' 분명히 이거는 정말 단언컨대 
할머니는 거기서도 전도하셨을 겁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그 감옥 안에서도 전도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면서 아마 데려가지 않았을까.. 고통 없이 데려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한지가 벌써 이젠 6~7년이 되었네요. 

(제가 보기에는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하나님이 순교자의 반열에 데려가시려고 
그러시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잠시만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눈물이 나오네요. 

(정말 대단하신 할머니이세요!)

물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잠시간 말을 멈춤)
이것도 (수용소와 순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고 제가 믿습니다. 
그런데 인간인지라 정이 있어서... 

(제가 볼 때는, 지금은 가슴 아프지만, 이제 천국에 가서 
이 아픔이 다시 우리에게 큰 기쁨으로, 보상으로도 돌아올 거예요. 
이런 분들이 있으니까, 북한 안에 그렇게 지금 기독교인들이 막 굉장히 확산됐고 
많다는 얘기를.. 제가 이 일을 하다 보면요... 생각 밖으로 많이 들리는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많은지...

(수면 아래 있어서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너무 갑자기 이렇게 턱 하고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까 
생각 밖으로 북한에 기독교인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많아졌지?' 했는데 ... 이런 분들이 계셔서 그랬군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뭐 이제 여기저기 돌아다니셨지만
뭐 차가 있긴 합니까, 뭐 말이 있긴 합니까?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도 못 타시는 분이라서 

그러니까 그 동네에 사람, 그 주변 주변 연결된 사람들이 
또 이제 나가서 퍼지고.. 퍼지고 하면서 
(퍼져)나갔던 사람만 해도 굉장히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이런 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나보면요. 
자기가 이렇게 후원받고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잖아요. 
견디지 못한데요. 말하고 싶어서요. 
그렇죠. 하나님이 또 막 은혜를 주시고 감동을 주셔서..
또 이렇게 가서 전하고 전하고...) 

네 저도 압니다.

(그래서 지금 계속 어떤 상황을 만나냐면요. 
한 10년 전, 15년 전에 한 사람을 들여보냈는데 
최근에 와서 이렇게 '도와주세요!'
그 한 가족 분량을 도와주면 안 된대요. 

지금 이미 우리 동네에, 지금 6가정이 있고 7가정이 있어요. 
이래 버리면 그렇게 늘어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당히 '좀 더 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또 더 보내드리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제 말하고 싶어서 못 견뎌서, 막 전도 하기도 하는데 
그분들이 이제 그걸 (신앙을) 빌미로 
'(내 요구를 안 들어주면, 그러면 내가 꼰지르겠다 (고발하겠다)'
이렇게 하게 될까봐, 오히려 약점이 잡힐까봐 
(현금은 안 주고) 저희는 조심스럽게 전도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전도를 하다가 많이 잡혀 가시니까요... 
저는 최근에 '전도 안 해도 됩니다. 전도하지 마세요.' 합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지금 너무 어려우니까.. 고난의 행군이 또 왔기 때문에.. 
살아만 있으세요. 이러고 저희는 지금 도와드리거든요. 

본인이 살아 있는 게, 지금 도움 되는 거다...
이렇게 하고 막 도와드리는데.. 이분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분들이 또 도움 받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자기 주위 사람들을 또 도와주고, 그들이 또 도와주면서... 퍼져 나가죠.) 

그런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주변에 사람들한테 전도하면 
그 사람들이 입이 간지러워서 못 살거라고... 

(그렇죠. 할머니도 그걸 보신거죠.) 

그러니까 할머님이 이미 경험을 하셨고 
'내가 그래서 떠드는 거다' 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시거든요. 

그래서 그 (전도) 얘기를 주변 사람들한테 하면은 
'얘기 하지 말라고 해도 네가 할 걸!' 

왜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복을 경험하면 
'너가 말하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다. 못배길 것이다.' 

그래서 저희 가족들, 그리고 이제 전도한 사람들이 오면 
같이 주패놀이 (카드놀이) 하면서  (*누가 들이닥치면 카드놀이 하는 걸 보여줌)
성경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만약에 누군가가 신고가 들어와서 가택수색이 들어와도 
'아니 우리는 그냥 이거 주패놀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떤 분이 믿고 나서, 이제 자세히 처음부터 최소한 1년 넘게 걸렸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알고 나서, 할머니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 보니까 그 북한체제가.. 그러니까 김일성이 김정일 이런 체제가 
그대로 성경을 옮겼더구만요.' 그 분 눈에 그게 이제 보인거죠. 

그게 보이니까 '이게 우상숭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거를 그대로 옮겼구나!' 
그러면서 (김일성 모친) 강반석 여사도 권사님 이셨다는데 
왜 그 아들에게는 전도를 잘 못 했냐? 이런 얘기까지 하면서 
아무튼 신앙 얘기를 나누는 장소입니다. 그렇게 일반인 눈에 그렇게 보일 정도로.. 

그러니까 이제 뭐 십계명 이런 것까지 다 외울 정도가 됐으니까 
그분이 이제 '할머니한테 검사 받을게요.' 이렇게 말해요. 

그러면 '아이고 됐어! 너 말하는 거 보면 내가 다 알아' 하시면서 
검사하는 시간도 있었거든요. 얼마나 외웠나 보자.. 하면서요.

저도 그랬지만, 그분들이 이제 오시면 
'까먹었난 까먹었나 보자!'고 이렇게 하시고 

그때 저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주기도문도 다 외우라 해서 
달달달달 외워 가지고, 그냥 뭐 자다가 툭 치면 나오게끔 했습니다.

근데 그분도 그렇게 해서 오셔가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면 
결국은 또.. 물론 이제 하나님 얘기는 처음에 안 하다가 
얘기하다 보면 다시 성경 얘기로 가고.. 다시 성경 얘기로 가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저녁까지 드시고 간 적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궁금해요. 그러면 할머님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지금 이렇게 목회를 하셨잖아요. 
그건 뭐 '나 잡아가라!' 이런 식으로 지금 내가 볼 때는 목회를 하셨거든요. 
그 자녀들에게 어떤 축복이 임했는지 제가 궁금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육남매 중에 복은 수시로 받았죠. 
왜냐하면 일단 한국에 넘어온 것 자체가 이거는 복이고요. 

저는 한번도 잡히지 않고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복이고 
그래서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인데 
저는 중국에서 살면서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직행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냥 쭉 넘어왔습니다. 

저는 2006년에, 
저희 엄마랑 동생은 이제 한 번씩 잡히고 (나서 오셨는데)
그 속에서도 이제 또 간절함이 더 나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오셨는데, 엄마 보고 제가 물었어요.
'할머니의 6 남매중에 엄마, 복을 누가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애?' 그렇게 물어보면 
엄마가 '6 남매중에 글쎄..' 그러면서 이제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제 남아있는 이모는, 워낙에 처음부터 복을 받아 가지고... 
왜냐하면 6남매 중에 믿음을 잘 지키고, 할머니 말씀을 잘 따른 사람은 
시집도, 장가도 잘 갔습니다. 짝을 잘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고생 안 시키고, 아이 낳아도 힘들지 않게 낳고, 자녀들이 안 아프고, 
건강하고 다 그래요. 

그런데 이제 조금 엇나가고, 주일도 잘 안 지키고, 그래서 예배에 잘 안 오고 
그랬던 자녀 분들은.. 
아프거나, 그 배우자가 사망을 하거나... 이렇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6명 중에 저희 둘째 이모, 북에 계신 그 이모가 
처음부터 복을 받아서 잘 지금 살고 있고, 자녀분들도 아프지 않고 잘 낳아서 
지금 잘 살고 있고... 그리고 저희 어머니죠. 

저희 어머니는 고생도 많이 하시긴 하셨는데 
여기 한국에 오셔서 권사 직분까지 받고.. 그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정다운 자매님도 지금 요양원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탈북민이.. 
2006년도에 오셨는데, 벌써 이렇게 사업을 해서 일어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명목상으로는 '사업'이라고 하는데, 저는 일단 제가 온전히 홀로서기 하고 
그 다음에 이제 할머니들도 도와드리려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했으면, 제가 이 사업을 안 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때 크게 아팠습니다.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아파서 식은땀이 나기도 했지만, 기도 하고 살아난 목숨이고 
그리고 신장이 망가져 가지고, 이제 거의 죽을뻔 하다가 살아나서 
그때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일들이 뭔가? 
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 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유치원 교사 했거든요. 북한에서. 
그럼 여기 와서 유아교육과를 나왔어야 되는데, 애기들이 저랑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간호조무사를 해 보니까 '어, 간호 일이 나랑 맞네?' 
그래서 그 일을 하다가 보니까, 간호 조무사로서는 남을 돕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간호학과를 들어가서 4년을 졸업하고 
졸업하는 동안에 살펴 봤죠. 엄마가 항상 '기도해라, 기도해라' 하니까
나한테 맞는 일이 뭔지 기도하며 살펴보니까 
'아 저는 노인학과 이구나, 젊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뭐 하는 것보다는 
어르신들과 얘기하고, 어르신들의 고충을 해결해 드리는 게 
훨씬 더 저는 편하고, 좋고.. 그래서 그때부터 계획을 해서, 
지금 이렇게 (요양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제가 볼 때는 정다운 자매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축복은 당연히 받았지만 
또 마음의 축복.. 그쪽으로 또 하나님과 가까이 살고 
하나님의 마음의 뜻을 이루는.. 이쪽으로도 축복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네, 저는 '다원요양원'은 제 힘으로 된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쪽으로 역사를 해주셨고
제가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하면, 이쪽으로 밀어 붙이시고, 일이 착착 진행되었고.. 

혹시 시간이 걸리는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라, 그게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다. 
시간이 걸려야만 되는 거니까 기다려라' 이렇게 하니까 

저는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뭐 지금 여기 제가 이 자리에 온 것도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자리라고 저는 생각해서 바로 달려온 것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정다운 자매님, 출연해 주셔서 
정말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없었던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님들이 
그 안에서 얼마나 놀랍게 기죽지 않고,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더 용기 있게 일어나서 활동을 하시는지... 우리에게 잘 들려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