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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

LNCK 2022. 11. 19. 08:40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           잠20:27, 요6:63       05.12.16. 설교스크랩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20:27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입니다. 
인간의 등불은 지식과 지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지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식적인 목회나 신앙생활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등불을 켜면 길이 보입니다. 
등불을 켜면 깜깜한 것이 사라지고 방향을 알 수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혼의 인도를 받으면 안 됩니다.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 받았습니다. 

성소(성막)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성소는 예수님의 모형이기도 하고, 사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성소는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성전 뜰은 인간의 육신이고, 성소는 인간의 혼이고, 지성소는 인간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임재 해 계셨습니다. 법궤는 지성소에 있었고, 
법궤 속에는 만나 항아리,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적 권위를 혼으로 인정하지 말고 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리고, 그래야 양(羊)이 되고, 동역자가 됩니다. 

혼으로 인정하면 혼의 생각에 의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고개를 들 수 있고, 대적할 수 있고, 반역할 수 있고, 
파당을 지을 수 있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영으로 영적 권위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바르게 반응하고 안전합니다. 

▶성경에서 반역을 하기 제일 쉬웠던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합법적이었습니다. 그는 차기 왕으로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선지자인 사무엘이 와서 기름 부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귀신들려 있었고 다윗은 성령 충만해 있었습니다. 
다윗은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주셨습니다. 
반역을 하려면 제일 쉬웠던 사람이었지만 다윗은 절대로 반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혼으로 생각했다면 
'내가 왕으로 선택(기름부음)받았는데 사울이 왜 아직 왕으로 있는 거야? 
나는 성령 충만하고 사울은 귀신들려서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죽여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혼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으면, 그 사람은 상황이 좋을 때는 순복합니다. 
교회가 부흥할 때는 순복하고 목회자가 성령 충만하고 기름부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폭풍같이 역사할 때는 그 권위 아래 들어가서 순복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도 힘들 때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반역을 하고 비판을 하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의 전철을 밟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지성소 안 법궤 속에 있는 것처럼 
영적 권위를 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영으로 영적 권위를 인정하게 될 때 
그때 목자의 음성을 듣고 진정으로 따르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혼이 아닌 영 속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어야 합니다. 
혼이 아닌 영으로 인정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목회자이면 그 교회를 가면 안 됩니다. 
그런 목회자를 따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법궤 안에는 돌 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해설교와 제자훈련을 치는(부분적 비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혼이 아니라 영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성소가 아니라 지성소의 법궤 속에 돌 판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혼에 주입되도록 있는 것이 아니라 
혼과 영을 찔러 쪼개며, 혼이란 루트를 통해서 결국은 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 그 마음 밭에 심겨져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으로 배우지 말고 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영 속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혼으로 받지 말고 영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법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이시지만 그 만나는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혼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혼으로 알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썬다 싱에게 말씀한 것처럼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적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고,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혼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성구를 우리가 다 알고 암송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영에서 온 것입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여기서 너는 영입니다. 혼이나 육은 내가 아닙니다. 
영이 나입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즉 이를 네 영에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혼에서 나오는 자는 모두 지옥에 갑니다. 
그것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입니다. 
신앙고백을 혼으로 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혼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고 혼으로 안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는 혼으로 도덕을 다 알고 법을 다 알지만, 그대로 살아지지 않잖아요? 
영으로 알아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영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내 영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여러분, 영으로 주님을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막은 사람입니다. 육이 있고 혼이 있고 영이 있는데 
지성소는 영을 뜻하고 법궤 안에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영(지성소, 법궤로 비유) 속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십계명을 적은 돌 판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은 혼 속에 있으면 안 되고, 여러분의 영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성막은 예수님의 모형이기도 하고, 사람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뜰은 육신을 말하고, 성소는 혼을 말하고, 지성소는 영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가나안을 향해서 갈 때 성막을 메고 가다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 자리에 성막을 칩니다. 
그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어디에 머무느냐 하면 지성소 위에 머뭅니다. 

우리는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불기둥, 구름기둥은 반드시 지성소의 법궤 위에 머무는 것입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름기둥은 말씀이고 불기둥은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말씀으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성령으로만 인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단순히 성경 지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계시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성경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계시가 아니라 그것이 말씀에 입각해야 합니다. 
이 둘로(말씀과 성령)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을 통한 진정한 인도는 
우리의 영에 머물고, 우리의 영에 나타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에, 지성소에 머물러 있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 영에서부터 움직이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을 가지고, 오감을 가지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이런 것 가지고 결정하면 안 됩니다. 환경 보고 결정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어느 땅을 택할래?" 할 때 
롯은 눈에 보이는 것, 육을 가지고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 
우리는 오감,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환경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또 우리는 혼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기 지혜나 명철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내 영에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내 영에 말씀과 성령님의 계시들이 올 때, 그 움직임이 시작될 때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광야에서 헤매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영이 가나안 땅이 됩니다. 

그런 삶을 살면 내 영 속에 젖과 꿀이 흐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내 경제에, 육신에, 건강 문제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육으로 사는 사람이, 혼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영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방언기도가 중요합니다. 방언기도는 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방언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영이 작동하고,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계시는 혼에 오는 것이 아니고 계시는 영에 부딪혀 옵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하다 보면 영의 눈과 영의 귀가 밝아집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하다 보면 심령(영)이 예민해져서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영이 작동하게 됩니다. 

잠자는 사람을 막 흔들면 일어나는 것처럼 
방언은 영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치 영에게 "일어나! 일어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영이 잠자고 있다가 "아, 왜 자꾸 깨우는 거야? 좀 더 자고 싶은데." 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솰라솰라' 하니까 영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자겠네.' 
하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의 눈과 귀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오는 주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도를 따라가면 가나안 땅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안 살아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 번도 안 가본 광야를 통과했던 것입니다. 

광야에는 이정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후좌우가 다 광야고 아무도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약도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다른 약도가 없습니다. 
인간의 계획은 전부 허망한 것입니다. 

자기 지식을 의지하는 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지식을 헛것으로 보십니다. 여러분, 영을 작동시키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서 열심히 기도하므로 
영을 작동시키시고 영에 임하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영이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범사가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도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꿈을 꿨다고 환상을 봤다고 예언을 받았다고 
함부로 따라가면 큰 일 납니다.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여러분의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어두운 데 있으면 답답하고 불안한 것처럼 
여러분의 영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답답하고 불안할 때 무슨 결정을 내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영에 불어 들어와서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영에 전혀 걸림이 없이 평안이 와야 합니다. 내적인 확증이 와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등불인 영에 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계시가 옴으로, 주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옴으로 내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져 있으면 안 됩니다. 
꺼진 등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꺼져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꺼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건이 좋은데도 뭔가 걸리고, 
석연찮고 찜찜하고 뭔가 불길하면 절대로 그것을 따라가지 마세요. 

혼적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면 아무리 전망이 좋아보여도 
절대로 그것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영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등불인 영에 불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 불은 계시입니다. 그것은 꼭 환상을 봐야 하는 것도, 
꼭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내 영에 임하는 계시요 내 영에 임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영에 불이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환히 보이는 것입니다. 
보면서 길을 가는데 뭐가 불안하겠습니까? 
그때부터는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도 막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도 받는 삶입니다. 

절대 음성 들었다고, 환상 봤다고,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입신해서 무엇을 들었다고 따라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첫째 하늘이 있고 둘째 하늘이 있고 셋째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