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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4장,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LNCK 2022. 11. 24. 21:02

◈슥4장,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여러 설교 정리

 

◑슥4장의 해석  ☞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 (tistory.com)

 

 

◑슥4장의 적용

▲1. 천사가 나를 깨우게 하소서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4:1

천사가 청년 스가랴를 깨웁니다. 
마치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처럼 깨웁니다만 
이것은 정말 잠을 자는데 깨우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계시를 받도록 하는 깨움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 일에만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은 
잠자는 것과 마찬가지 일 수도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세상 일에 열심히 살아간 사람들은 잠자는 사람들이고 
노아 방주를 예비한 사람은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나라고 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롬13:11

△어거스틴도 젊어서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천사가, 그의 영혼을 일깨우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후 387년 어느 날 어거스틴이 밀라노의 어느 정원에 앉아서 묵상할 때, 
그의 귀에 ‘집어 읽으라, 집어 읽으라’는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 읽었습니다. 
그때 그는 로마서 13:13-14절의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주예수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읽는 중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고, 과거의 부끄러운 삶이 기억나 눈물로 회개했죠.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복음송을 통해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를 전격적으로 회심시킨 것입니다.         주1)

이런 어거스틴의 극적 회심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의 영향이 컸습니다만
그런 와중에 “그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 반응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보통 ‘청년’으로 이해합니다. 
슥2:4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기서 "그 소년"이란 보통 스가랴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를 아주 나이 젊은 청년으로 보죠.

말세에 ‘청년들은 환상을 보리라’고 했는데,  행2:17
스가랴서에는, 청년 스가랴가 본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4:1에는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스가랴는, 천사가 자기를 깨울 때, 깨어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꼭 ‘밤에 자는 잠’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어느 때 부지불식간에 계시가 임했을 때, 
청년 스가랴는, 그걸 정확하게 받아낼 정도로, 영혼이 깨어 있었던 거죠.

평소에 영혼이 잠들어 있으면, 
아무리 천사가 깨우고, 하나님이 음성으로 말씀하셔도...
하나님이 말 못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서 음성을 발하셔도
발람 선지자 같은 이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4:1

△수많은 청년들은 ‘하나님/성령님이 내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라고들 공통적으로 말합니다만... 그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한나절만 집중해서 읽어보십시오.
기도를 두 시간 이상 계속해 보십시오.
금식을 이틀만 해 보십시오.
미디어 금식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잠들어 있었고,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일할 줄 아는 사람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젊을 때 꼭 외워두어야 하는 요절입니다. 

성전재건이, 16년 동안이나 미뤄져 왔습니다.
그렇게 미뤄질 수 없을 만큼.. 안 되는 이유가 99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그 안 되는 이유 99가지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학습무, 내린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학습무 입니까, 내린무 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나는 내린무 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습무란.. 배워서 무당이 된 사람을 뜻하고,
내린무란.. 신기(신의 기운)가 내려서 무당이 된 사람을 말하는데,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성령이 임해서 주의 종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고 그저 공부해서 주의 종이 된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둘 다 해야죠. 그런데 ‘학습무’는 많은데, ‘내린무’는 많지 않습니다.
본문의 청년 스가랴는, 청년 시절부터 ‘내린무’였습니다.
예레미야도 십대 시절부터 ‘내린무’였죠. 렘1:6

1904~5년 웨일즈의 부흥을 일으켜 10만의 영혼을 주께로 이끌었다는
이반 로버츠도 26세의 청년이었지만 ‘내린무’였습니다. (*표현이 죄송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쉽게 안 되는 것이, 다윗이 전쟁에 나가서
백전백승한 것입니다. 전쟁을 했다 하면.. 이기는 것입니다. 
한 번도 질 때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내린무’라면 가능합니다. 신들린 장수를 누가 당하겠습니까?

자기가 신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슥4:6절을 약속의 말씀으로 외우면서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달 지나면.. 서서히 ‘성신’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신이 내려 신들린 스가랴는 이렇게 큰 소리 쳤습니다.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성전건축을 방해하고 있던 ‘큰 산’을 향하여,
호기 가득하게 큰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너는 평지가 되리라!’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죠.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인근 총독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기어들어가고 말았죠.
왜냐면 악메다 궁에서 고레스 칙령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스6:7~8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4:7b

설명이 필요한 구절입니다.
‘머릿돌’은,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기념비로 세우는 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머릿돌을 내놓을 때’란, 머릿돌을 세울 때,
즉 성전을 다 지었을 때를 뜻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은총’이라고 스룹바벨에게 외친다는 것입니다.(스가랴의 예언이죠)

‘은총’(히브리어, 헤)는 ‘아름다움 또는 즐거움’을 동시에 뜻합니다.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사람들은 완공된 그 성전을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게 될 것이란 거죠.

지금 그들 눈앞에 보이는 것은, 16년 전에 닦아놓은 기초(지대)밖에 없어요.
16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기초, 즉 지대마저도 황폐화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아름다운 성전이 완공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성령의 사람은, 꿈을 꾸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니까, 자신 있게 미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슥4:9 

오늘 우리의 현실이 황폐화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죠.
혹자는 1993년 이후로 한국교회는 한 번도 반등한 적이 없다고 말하죠.

그럼 어떻게 반등할 건가요? 반등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꿈부터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패턴이죠!
꿈/환상/비전/예언이 없으면... 앞으로 반등도 없을 것입니다.
꿈/환상/비전/예언이 있으면... 장래에 반등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꿈꾸는, 환상을 보는 청년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데이빗 파슨 목사는 행2:17절을 인용해서 설교할 때
그는 항상 ‘나는 환상을 봅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행2:17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구절에서 예언/환상/꿈이 다 본질상 같은 것이지만
파슨 목사(1930년생)가 ‘나는 환상을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는 늙은이가 아니라, 여전히 젊은이란 뜻이지요!  humor 입니다.

그렇습니다. 환상vision을 보는 사람은, 나이에 관계 없이 아직 젊은이고,
환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에 관계 없이 노인입니다.
오늘날 스가랴처럼, 환상을 보고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평지가 되리라’ 4:7 라고 예언하는
성령의 ‘청년’들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3.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4:10
개역개정은 보통, 히브리어 원문을 있는 그대로 문자적으로 번역합니다.
이런 구절은, 의역을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죠.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새번역
‘보잘것 없는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현대인

당시 성전 재건을 하는데, 재정이나 규모면에서, 동원 인력 면에서
보잘 것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주변 이방인들인지, 내국인 중에서도 
비웃고 멸시하는 자가 있었나 봅니다.

△연말이 되면 각 언론매체에서 올해의 십대뉴스를 발표합니다. 
그 결정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죠.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 스가랴 선지자가 계시를 받았는데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보았다는 것은 몇 번째 뉴스에 들어가겠습니까? 
백대, 천대 뉴스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세상일에만 중요관심사를 보이고 살아갈 뿐이죠.
성도는 그런데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거죠.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5:2

너무나도 크고 엄청난 일이.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 산골마을에서 시작되었죠.

1904년 웨일즈 부흥의 주역, 에반 로버츠가 그랬듯이
앞으로 우리 교회를 살릴 주역은.. 정말 무명의 청년 가운데 나올 겁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저 이북동포들 가운데 나올 가능성도 큽니다.

△20세기 후반을 이끌었던 세계적 무게를 지닌 선지자라면
데이빗 윌커슨 목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31~2011

그분도 신학을 1년 밖에 하지 않았어요. 당시 오순절 교단은 그랬나 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서 1952년에 안수받았으니, 
21세에 목사가 된 겁니다.

Central Bible College in Springfield, Missouri. (A/G교단 소속)

그리고 20대 초반에 펜실베이니아의 어느 탄광촌 마을에서
20여 명의 성도들을 목회하던 무명의 젊은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주중에 뚜렷이 할 일이 없어서, 자동차를 숲속 어귀에 대놓고
거기서 샌드위치 도시락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이 그에게 임했는데,
1958년 (27세 때) 자기 집 마당의 헛간에 <라이프>잡지가 놓여 있었는데
뉴욕에서 7명의 십대들이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었죠
그는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그 십대들을 전도하기 위해서였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그 후 50년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책임지는 ‘당대 최고의 설교자, 선지자’로
활동을 했고, 또한 그렇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4:10
Who despises the day of small things? 

데이빗 윌커슨 청년 목사가 (당시 27세)
뉴욕 법정에 가서, 전도를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가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영적 지도자가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죠.

법정의 판사도, 아주 그를 무시하며, 재판을 방해하지 말라고 제재했죠.
당연하지 않습니까. 대학도 못 나오고, 어디 명함도 못 내밀
무명의 지방신학교 1년 졸업한 시골 목사가
뉴욕 같은 도시에 나와서, 법정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홀홀단신으로!
성령이 감동하시니까..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이죠! 

 

오늘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현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신 겁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는 사람은, 뭘 해도 안 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성령이 임하는 사람은, '뭘 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주2)

어쨌든 Who despises the day of small things? 
작은 일의 날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무시 dispise 하는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니까요!

하나님의 역사 운행 방식입니다!

 
.....................................................

주1) 
이후 참 기독교인이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회개하며 
조용한 곳에서 수도자의 삶을 살기 원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으로 매우 탁월한 학자라는 소문이 
교회에 널리 퍼지자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교회의 주교가 될 것을 종용했다. 
그는 극성스런 사람들의 요구에 못 이겨 주후 391년에 정식 성직자로 
서품을 받고, 395년에는 히포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주2)

어느 선교사가, 선교지 청년 사역자들에게

본국의 후원자 명단을 서너 명씩 맡겼습니다.

그래서 후원이 들어오면, 그 청년 사역자에게 분배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후원이 오는 사람은 오고, 안 오는 사람은 안 왔습니다.

그래서 분배 받는 현지인 사역자가 있었고, 못 받는 현지인 사역자도 있었죠.

 

못 받는 사람들이 항의했습니다. 후원자를 다시 뒤섞어서 정해 달라는 거죠.

그래서 다음 해에는, 정말 리셔플 뒤섞어서, 새롭게 다시 배정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후원을 받는 현지인 사역자가 있었고, 못 받은 사람은 여전히 못 받았죠.

 

즉 그것은, 후원자 문제가 아니라, 현지인 사역자 문제였던 것입니다.

뭘 해도 되는 사람은 되고,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다..는 예였습니다.

'성령의 사람' 과, '자기 힘의 사람'의 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