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그 증거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 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왜 하나님을 알면, 죄를 짓지 않습니까?
1~2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
이것은 온전해지고, 성숙해진다는 뜻이지.. 도덕적 완전주의란 뜻은 아니죠.
그런데 말씀의 맥락을 잘 보면 '하나님을 정말 친밀히 아는(믿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데요,
그건 하나님의 무조건적 용서에 감화감동 받아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불효자식이 부모 사랑을 깨달으면, 효자가 되는 것과 같죠.
그래서 죄를 함부로 짓지 않는 거죠. 2:1 완벽주의는 아니고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죄를 짓지 말라' 라는 명령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은 '죄를 짓지 말라'는 율법만 주시고 우리가 언제 죄를 짓나/안 짓나 지켜보시다가
죄를 짓는 순간 우리를 처벌 하시면서 '너 딱 걸렸다' 라고 통쾌하게 여기며 우리를 형벌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아시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대언자를 마련해 놓으십니다. :1
이것이 2:1~2절의 배경에 깔린, 하나님의 의도요, 목적입니다. 본문 1~2절이, 그런 뜻으로 쓰여졌다는 거죠.
그래서 1절에 보면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짓더라도...' 이렇게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보면
'성도일지라도, 죄를 지을 것이다.' 이렇게 죄 짓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설명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게 아니라, 성도가 연약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어떻게 죄를 짓지 않도록, 즉 신앙이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대언자(변호사)를 세워주시는 거죠'.
하나님은 '죄를 짓지 말라' 라는 율법의 명령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너희들이 아느냐?' 본문 1~2절이 그 내용입니다.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성도들일지라도, 여전히 죄인인 성도들이 죄를 짓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바로 '자백을 통한 용서' 라는 것이, 앞서 1:9에 나왔습니다.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정말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어둠을 인정하고 자백합니다.
그 자백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그 희생을 근거로 그를 용서하십니다.
이 값없이 주는 용서가, 궁극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인도하신다는 거죠. 계속 회개하는 것이, 죄를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값없이 주시는 용서가,
과연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무서운 채찍으로 형벌을 가해야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형량을 높이라'고 사람들은 아우성이죠.
<레미제라블>에 보면, 장발장이 어떻게 변화가 되었나요? 그것은 '값 없이 베풀어 주는 용서'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21세의 백인 청년이, 흑인 교회에 들어가서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그 교회를 다니던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성경 공부 모임 중에 총기를 난사해서 흑인 9명이 죽는 사고가 났었습니다. *2015.06.17. 범인은 딜런 루프, 21세 백인인 그는 '인종 전쟁을 일으키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법정에서 그의 보석 심리를 하는데 그 가해자를 화면으로 보여주고, 피해자 흑인 가족들이, 가해자 범인에게 한마디씩 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 가해자 범인 청년이 화면이 나타났을 때, 피해자 가족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가족들이 한 말은 이런 말들이었죠. '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프지만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가족들은 모두가, 용서를 그에게 전했습니다. 그가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돌이킬 마음도 아직은 없었습니다.
눈이 좀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시간까지는 여전히 그는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그 가해자를 바라보면서 용서를 전하는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영혼이 언젠가는, 그 용서 때문에 변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 상의 한 강도가 변화되었죠. 복음서의 흐름을 보면 그는 분명 처음에는 예수님을 함께 모욕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상에서, 어느 순간에 그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죠.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변화가 되었습니다.
다른 강도와 함께 모욕했던 그가, 어느 한순간에 변화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달리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그 입에서 나온 기도는 즉 가상칠언 의 첫 번째는 용서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근데 그 기도가 딱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계속해서 진행된 기도입니다. 현재(진행) 시제입니다.
앞서 십자가를 끌고 가실 때도,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도 예수님은 저들의 용서를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그 강도가 바로 옆에서 들었던 것이죠. '도대체 이 분은 어떤 분이기에, 자신을 못 박는 이를 용서하고 있는가?'
그 용서의 기도를 들을 때, 그가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도가, 주님과 함께 낙원에 거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거죠.
진정한 마음의 용서가, 진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거죠. 2:1 (완벽주의는 아님, 성숙임)
▲2. 근데 하나님이 용서는, 그냥 눈감아 주시는 용서가 아닙니다. 그냥 죄를 덮어버리는 용서가 아닙니다.
그 용서는, 그 대가를 확실하게 지불한 공의로운 용서였습니다.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분,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십자가 상에서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신 용서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일 누가 죄를 범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분이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라고 2:1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가 되십니다. '제가 이들의 죄값을 다 치렀기에, 이들을 용서해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서 변호 하십니다.
이 말씀을 주신 맥락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들이,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변호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방향으로 변화(성숙, 온전케)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너희들은 때로 죄를 지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를 찾아라. 이 변호사는 확실한 변호사다. 100% 너희 죄를 해결해 주는 변호사이다.
(오늘날 변호사와 다른 점은, 오늘날 변호사는 죄값을 대신 치러주진 않지만 이 변호사 advocate 는 죄값도 치러주시고, 또한 대언도 해 주십니다.)
'내가 너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렀기에 내가 너를 변호할 때, 하나님은 너를 용서하실 것이다!'
죄를 지으면 안 되지만, 죄를 짓게 되면 이 분을 찾으라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문맥을 보십시오. 2:1절에, 하나님은 우리가 죄 안 지을 정도로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연약해서 죄를 짓게 되더라도, 변호사를 준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진정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죄와 형벌은, 우리를 진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거죠.
'죄를 짓지 말라' 라고 율법을 말씀하지만, '죄를 짓지 않도록, 용서를 통해, 우리를 변화(성숙)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용서와 자백과 하나님의 격려인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죠.
자녀를 양육할 때도 보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명령만 하는 부모는 절대 자녀를 못 변화시키죠. 율법적인 것이죠.
그렇지만 자녀가 공부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진짜 부모가 할 일이죠. 은혜로 자녀를 변화시켜 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육청에서 한 번은 연구를 했었는데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시키는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를 한 거죠.
보충수업은 학업이 뒤떨어지는 애들을 모아서, 보충수업을 하는데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왜냐면 보충수업 대상자로 분류되는 순간,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나는 실패자다. 나는 탈락자다' 그런 자의식 속에서 학생들에게 학습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죠.
근데 예외가 한 명 있었습니다. 한 여학생은 보충수업의 효과로 성적이 향상되었는데, 그래서 그 학생에게 연구의 초점이 맞춰진 거죠.
'도대체 모든 학생들에게는 보충수업이 전혀 효과가 없는데 왜 이 학생에게만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연구했습니다.
그 여학생은 육상선수 였다는 거예요. 그 여학생의 보충수업을 지도한 교사는, 이렇게 증언했죠.
'제가 여학생에게 말한 것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게 아니라, 그 학생이 운동할 때, 육상경기 할 때, 힘껏 열심히 응원해 주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찾았다는 거죠. 그 운동 잘 하는 학생의 운동을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 주니까
그를 응원해 준 그 힘이 그 여학생에게 변화를 일으켜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를 응원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부어질 때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우리 가운데 부어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정말 그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죠. 그 교사와 여학생처럼)
하나님을, 자기가 잘못하면 책망하고 진노만 하는 그런 분으로만 알면 우리는 점점 자기를 보호하게 되고, 겉으로만 율법을 행하는 척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지, 격려, 응원을 경험한 성도는 즉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자기 내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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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모음
▲요한사도는 본문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요일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죄짓지 않도록 하려고” 이 서신을 쓰고 있다고 했죠.
우리가 죄를 안 짓고 살려면 이것이 열쇠입니다. (완벽주의가 아님 성숙을 뜻함)
정말 우리가 육신이 약하여 다시 죄를 짓게 되더라도 주님은 완전한 대책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요일2:1 ...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 사람은 분명히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모든 죄를 지고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저 사람의 죄는 제가 이미 다 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습니다. 이제 저 사람은 죄지은 자가 아닙니다.“
일례로, 서커스 곡예 중, ‘공중 그네타기’가 있습니다. 그 묘기가 펼쳐질 때 밑에 그물을 쳐 놓습니다. 곡예 도중에 떨어져도, 언제나 안전하게 받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몇 번이고 받쳐 줍니다. 만약에 그물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그네 타기 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갈 때, 완전한 용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혹시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여 주십니다.
서커스 그물이 떨어지라고 쳐 놓은 것입니까? 아니죠. 안심하고 묘기를 부리게 하려고 쳐 놓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완전한 용서를 주신 것은 안심하고 죄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짓지 않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짓지 않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지지해 주어 변화시킨 예,
저는 어릴 적에 제 아버지와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주님은 제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제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졸업사진에 보면, 아버지가 안 나옵니다.
제가 자라는 결정적 기간에,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이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아들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안 좋았던 관계가, 이제 똑같이 저와 제 자녀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들 하는 짓이,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많이 혼을 내도 안 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두려웠습니다. ‘얘가 자라면 두렵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위기가 왔습니다. 제 아들이,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학교에 다닐 적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가 숙제를 1년 동안 안 해왔다’고 부모인 저를 호출했습니다.
저는 배신감과 함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속에서 두려움도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와 사이가 안 좋아지겠구나..’ 분노 안에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이거 큰 일 났구나, 가만히 넘어갈 수도 없고..’
그 때 본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라기의 본문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 선지자가 와서 먼저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고..’
선생님은, 숙제를 하는 어린이로 돌이키게 하려고, 부모인 나를 학교로 불렀지만,
제가 말라기 본문 말씀을 딱 붙잡는 순'간, 말씀이 제게 빛이 되는 순간 깨달은 것은,
제가 서울 보광초등학교 2~3학년 시절에,
숙제를 제가 2년 동안이나 안 해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가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Its good, he is better than me.’ 괜찮습니다. 우리 아들은 제보다 더 낫습니다.
4기 사역이 시작됨과 동시에 *2001여름 선생과 학생들 간에 술 담배 전쟁도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나를 도와 여러 개 사역장을 관리하던 성근 선생은 *사역장 전체 관리자 이제 막 선생으로 세워진 기철선생이, 험하디 험한 탈북자들을 어떻게 다스려낼지 늘 염려스러워했다.
기철선생은 아직 사역에 대한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북한에서 박사원까지 졸업하고, 북한 과학연구소에서 연구만 하다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기가 무섭게, 기철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근선생, 큰일 났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왜 그럼니까, 기철선생,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나 하마터면 학생들한테 맞아 죽을 뻔 했소. 그 죽일 놈들이 내가 술 담배를 못하게 한다고, 글쎄 여럿이 달라붙어 사역비고 뭐고 다 빼앗고, 나를 내쫓지 않았습니까.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기철선생은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지, 간간이 말을 더듬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 새끼들이 나보고 뭐라는지 압니까? 그 영남이라는 새끼는, 나보고 너 이 새끼, 조국과 김정일 장군을 배반하고 (북한에서 좋은 교육 받았으니까) 남조선 괴뢰도당 하고 맞붙어서 지금 뭐 하는 거야?
거 남조선 괴뢰도당을 이리로 빨리 데려오라, 갈기갈기 찢어놓겠다! 이러면서 나를 막 때리려고 하는 걸, 겨우겨우 도망쳐 나왔습니다. 거 힘센 학생들을 좀 데려다가, 이 종간나 새끼들을 손 좀 봐야 겠소!'
엄격한 사역장 생활을 견디다 못한 5명의 형제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연변으로 돌아가려고 작당하고 나선 것이다.
성근선생도 '김정일 장군' 운운한 영남이라는 놈을 만나 박살내고 싶었다. 영남형제가 했다는 말은, 김정일에 대한 원한이 하늘에 사무친 그를 비롯한 모든 탈북자들을 가장 격분케 하는 말이었다. 중국에까지 와서 '김정일 장군'을 외쳐대는 자식을 가만 두고 싶지 않았다.
성근선생은 한국에 있는 내게 전화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때 나는 새롭게 확장되는 4기 사역에 필요한 재정 마련을 위해 한국에 나가 있었다.
'선교사님, 그 말을 한 자식만은 꼭 붙잡아서 도륙을 내고 싶슴다.' 화가 나서 거칠게 말하는 그의 마음이,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이 말이, 다른 사역장에 알려진다면 기철선생 사역장은 정말 큰 일이 날 것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사람들에게 영남형제의 말은 마른 장작에 던지는 불씨나 다름 없었다.
'성근선생, 절대로 다른 선생들이나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마세요. 절대로요!'
'그러면 나 혼자 어떻게 합니까?' 성근선생이 발끈해서 물었다.
그렇다고 깡패들처럼 떼거리로 몰려가 몰매를 때려서는 더욱 안 될 일이었다.
군복무 10년씩의 경력을 가진 그들을, 성근 선생이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나는 '기도 많이 할 테니, 성근 선생이 기도하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성근선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했지만 일단은 부랴부랴 그 사역장으로 달려갔다.
기철선생은 사역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조선족 형제와 함께 길가에 앉아 있었다.
몹시 피곤해보이는 기철선생은, 성근선생을 보자마자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성근선생, 어째서 혼자 왔소? 힘센 학생들을 좀 많이 데려오지 않고 뭐 함까? 혼자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지금 쟤들이 얼마나 미쳐 날뛰는지 압니까? 쟤들 중에 영남이와 명철이라는 새끼는 특수부대에 10년이나 복무하고 와서 그런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도 막 떨리네...'
아직도 잔뜩 겁먹고 있는 기철선생을 보니, 저들의 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성근선생은 짐작이 갔다.
이어서 조선족 형제가 말을 했다. '그리고 쟤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암까? 기철선생 한테서 빼앗은 돈이 모자라니까, 성근선생과 최광 선교사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근선생이 평소에 돈 많이 가지고 다니니까 붙잡아서 돈빼앗고 족쳐놓고 도망치자고 합디다.'
이 말을 들은 성근선생은 섬뜩했다.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느라, 자기가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기철선생이 와락 성난 어조로 말했다. '아, 뭐 함까? 가서 다른 선생들 데려오지 않고... 저 새끼들이 지금 우리 사역장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저럼다. 가서 몽땅 박살내 버립시다. 나보고 김정일이를 배신한 배신자라고 떠드는 놈 새끼들을 싸그리 박살내 놓읍시다!, 에이 망할..'
성근선생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험악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사역장 생활이 힘들어 잠시 투정삼아 부린 난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기철선생과 조선족 형제에게 말했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근데 다른 형제들을 데려다가 저들을 작살내는 방식으로는 안 됨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순수하게 성경만 배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선한 무리들이 아니라 조직적인 깡패집단으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또 다른사람들의 힘을 빌려 해결한다면, 훗날 저들은 우리를 믿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상 깡패들과 똑같이 일을 처리한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봅시다!'
성근선생은 기철선생과 조선족형제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걸 어떡하면 좋습니까? 우린 연약하고 저들은 사납습니다. 하나님,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은 저들도 다 주님을 믿게 해서 구원받게 하시려고 이곳으로 보냈는데, 우리는 어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세 사람은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기도 했다. 작은 기도모임이 끝났지만, 세 사람 중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선다면,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학생들이 실망할 것이고 그만큼 사역에 미치는 큰 해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성근선생은 용기를 내었다.
'뭐 다니엘은 하나님 믿고 사자굴에도 들어갔다고 하는데 우린 그래도 사람무리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다니엘보다는 한참 낫지 않습니까? 뭐 들어가 봅시다!'
'난 싫습니다. 싫습니다. 들어가려면 두 선생이나 들어가쇼. 난 안 들어갑니다!' 조선족 형제는 두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결국 성근선생과 기철선생만 사역장안으로 들어갔다. 사역장에 들어서니, 사역장은 완전히 돼지우리같았다.
담배 연기가 방마다 자욱했고, 금방 술파티가 끝났는지 모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철 선생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술 사마시고 담배 사 피우고 카드 판을 벌인 것이다.
성근선생과 기철선생은 아무 말 없이 통독실로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성근선생이 와서 통독실에 들어가 있기만 하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한 명 두 명 통독실로 모여들었다.
한참 후에 성근선생이 눈을 떴을 때, 모든 학생들이 통독실로 들어와 말없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모두 조용히 앉아있기만 할 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침묵 침묵... 무거운 정적만 방안 가득 흐르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말문을 여느냐에 따라, 사태가 전도될 판이었다.
사태를 수습하려면, 자기가 먼저 입을 떼야 한다는 것을 느낀 성근선생은 웃으며 내키는 대로 말을 시작했다. '우리 앉은 김에 예배나 드립시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이렇게 나와버렸다. 하지만 형제들은 아무 반응도 없이 심드렁한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무서운 이 사람들이 갑자기 확 일어나, 성근선생과 기철 선생을 메다꽂고 돈을 빼앗아 도망갈 것만 같았다.
그는 애써 태어난 웃음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 힘들다는 거 암다. 나도 이 사역장에 와서 선생을 때려눕히고 도망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근데 그거 때려 부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갈 곳이 없습네다. 다시 연변으로 돌아간다고 해봐야 반기는 사람도, 친구도, 집도 없지...
그렇다고 말도 모르는 이 중국 대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기도 막막하고... 그래서 악쓰고 참고 참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가 됨다.'
여전히 학생들은 말이 없었다.
'지금은 이사역장에서 우리가 왜 이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 리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해줄 테니 한번 잘 들어보시오. 그냥 심심풀이 삼아 들어보세요. 지루하진 않을 겁니다.'
이렇게 앞뒤 찬송도 없고 기도도 없는 예배가 시작되었다. 성근선생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전에 교회사 강의를 위해 오셨던 구창환 목사님이 해주신 얘기였다.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한 용감한 갈매기가 자연의 저항을 이겨내고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르다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함께 살던 갈매기들을 하나 둘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신앙의 새로운 세계에 대해 우화적으로 묘사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사역장에 살벌한 기운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한참 후 얘기가 다 끝났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무거운 침묵은 아니었다.
두 선생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사역장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담배꽁초며, 카드며, 술병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몰라라 하고 앉아 있던 학생들도 하나 둘 통독실에서 나와서, 이들을 따라 사역장을 정리했다.
두 선생은 저녁때까지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학생들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성근선생과 기철선생이 저녁이 되어도 사역장에서 나오지 않자 조선족 형제도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성근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들을 깨우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아침 먹고, 12시까지 통독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통독하고, 기도하고, 말씀 암송하고, 큐티를 했다. 학생들도 아무런 반항 없이 일과 진행을 잘 따라 왔다.
다음날 성근선생은, 기철선생에게 다시 사역비를 지급하고 자기 사역장으로 돌아갔다. 학생들이 빼앗아 간 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님의 역사는 그 이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주동했던 명철형제가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모두가 명철형제에게 말했다. '와 진짜 신기하다.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헷가닥 변할 수가 있을까?'
명철형제는 자기들이 돈을 빼앗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들을 내쫓거나, 다른 선생들을 데리고 와서 혼을 내지 않는 성근선생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아는 세상 원리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었다. 그가 보기에 성근선생은,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달랐다.
그는 훗날 사역장에 찾아온 성근선생에게 물었다. '아, 거 성근선생, 나도 특수부대에서 복무하면서 사람 깨나 다뤄봤는데 성근선생은 어느 군대에서 복무했소?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디서 그렇게 말 한마디 안 하고 사람 다루는 법을 배웠소? 나도 좀 가르쳐 주시오!'
성근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난 군대 라고는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중국 오기 전까지 학생이었는데, 사람 다루는 법을 배울 데가 어디 있슴까?
근데 거 성경에 보면 예수라는 분이 나옵니다. 그냥 거 예수라는 분이 하던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커졌다. '성경 어디에 예수라는 분이 나옴까? 나한테도 알려 주면 안 돼요?' (사역장 초기 시절이라 아직 아무 것도 모름)
성근선생은 사복음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 날부터, 통독시간 외에도 틈만 나면 성경을 읽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성경에 대해 질문이 많아졌다.
'기철선생, 그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왜 매달렸어요? 거 제사장들은 왜 요렇게도 모질게 예수님을 안 좋아했어요?'
명철형제는 기철선생이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수첩에 꼬박꼬박 적어두었다가, 간간히 사역장을 돌아보러 오는 성근선생이나 나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멍한 눈빛으로 뭔가 생각하기도 하고 고민에 잠기기도 했다. 통독 시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대목을 읽을 때면 괜히 눈물을 감추려고 코를 킁킁거리다가, 화장실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얼마 후부터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서서 기철선생을 도와주며 사역장의 형제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암만 생각해 봐도 이렇게 해야, 거 예수님한테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전번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어요? 내 정말 이제부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오!'
한달 후 기철선생 사역장은 모범사역장이 되었다. 성근선생과 기철선생이 자기도 모르게 이들에게 보여준 것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편도 들이대라' 는 말씀의 실천이었다. 마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