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국으로 오는 실제 루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었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적극적으로 한국에 오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기는 맨 나중에 가겠다고 하며,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길을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다가, 안타깝게도 체포되고 말았다.
♣북한 비전과 세계 비전
지난 2006년 6월 15일로 중국에서 추방된 지 만 5년이 되었다. 그동안은 중국에서의 사역에 대해, 모두 지난 일로 생각하며 덮어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2000년 3기생들을 통해 130여 명의 학생들이 모집된 것을 보며 갖게 된 "5천 명 북한 선교사 양육"이라는 비전도 땅에 묻혀버렸다.
이제 나 개인의 영적, 육적 회복과 충전, 가족들의 회복과, 책 출간등 여러 상황들을 보며 이제는 다시 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계 선교"라는 시대적, 역사적, 민족적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북한선교 사역 경험을 토대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예수 제자'를 양육해 내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마28:19~20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이슬람의 견고한 진을 뚫고 나아가려면 특수훈련을 받은 특수요원들이 필요하고 순교의 자세로 자기 생명을 내걸고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나와 함께 "5천 명 북한 선교사"를 양육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북한선교를 위해 뜨겁게 중보하는 큰 무리의 성령의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전방부대와 특공부대, 후방부대의 긴밀한 연합과 상호협조 아래서만 날마다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귀한 장소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또한 기도하고 있다.
북한을 복음화 할 뿐 아니라, 영적 금광인 북한에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이들을 통해 5대양 6대주 각 민족마다 성령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세우는 일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김일성 김정일 독재체제 아래, 처참한 포로생활을 하는 북한 땅 가운데 놀라운 새 날이 오고 있음을 본다.
북한의 회복을 통하여 열방을 회복하심으로 그 영광과 능력을 친히 나타내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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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온 김권능 선생의 편지
나선생님께 드립니다. (최광 목사에게 보낸 서신이나, 이름을 바꾸어 신분을 감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권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온 가정의 평안을 기도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전번에 권사님이 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 많이 했었습니다. 조그마한 방조도 없이 기도만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허전했었습니다.
지금 권사님(최광 목사의 장모)께서 회복되셨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꼭 건강하셔서, 제가 나가면 권사님과 사모님께서 저희들에게 손수 담가주셨던 김치를 맛있게 먹던 일들과 권사님의 생신 일을 맞으며 도강언에 가서 예배드리며 감사했었던 날 들이랑 옛말하고 싶습니다.
그때 있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순교하고, 또 이 세상에 없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집에 부모님께 전화했었습니다.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오셔서 30만원이나 (권능 선생의) 부모님들께 주고 가셨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선생님 부탁입니다. 앞으로 제발 돈으로 저를 돕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선생님의 가정형편을 모르면, 이렇게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다.
권사님이 입원했을 때도, 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답니다. 나 자신이 너무 미웠고, 너무 비참해 보이더군요.
선생님 앞에서 이런 소리 했다가, 물론 욕 먹을 줄은 알고 있지만 정말 내 심정그대로는 그랬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권사님 건강과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서 많이 신경써주시고요. 네 자녀들의 공부에 사용해 주신다면 감사할 겁니다.
선생님 꼭 부탁 합니다. 오늘 제 아버지와 통화했는데 술에 취하셨더군요. 제발 술 작게 드셨으면 좋겠는데.. 제일 근심입니다.
그리고 익두선생이나 기풍선생한테서는 어떻게 연락이 오는지요? 권사님 입원했을 때, 그들이 면회랑 갔었는지요?
제가 감옥에 들어온 후에 느낀 것인데요. 나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느낀답니다. 이곳 생활은, 나로 하여금 인생의 치욕과 영광에 대해서 알게 하고요. 사명을 더욱 굳게 하는 좋은 시간 들입니다.
이곳에 많은 탈북자들도, 이곳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말한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고요.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장춘 감옥에서)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중에도 항상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언제나 함께 하시며 힘주실 줄 믿습니다.
'많은 이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선생님과 가정과 교회에, 언제나 사랑과 능력과 평안주시길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권능 올림
▲최광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너무 반갑게 받아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닌데, 많이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아름다웠던, 그리고 은혜스러웠던 시간들을 끝없이 그려 보았습니다. 때도 맞추어 가을이네요. 여기 수인들은 가을을 좋아한답니다.
아마 지나온 과거를 기억하며, 지금의 괴로움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 (장춘) 날씨 역시 가을이 제일 좋습니다. 봄은 황사바람이 너무 세고, 그러다 여름이면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고요.
지난 사역기간을 돌이켜 보는 동안, 제가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제가 특별히 선생님의 사랑과 신임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열등감과 야심으로 뭉쳐있던 저에게 긍지감과 그리고 책임감, 사명감을 알게 하여 주셨지요. 그것이 얼마나 내게 도움이 컸었는지요...
9월입니다. 선생님 기억하시지요? 1999년 9월 7일인가? 그날이 권사님과 우리 사역장 장선생의 생신일이었는데 도강언에 가서 제가 설교했지요. *두장옌 관광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에베소서 2:11~22절 말씀으로요. 지금에 와서 그 말씀들을 다시 읽으면서 더욱 뜨겁게 느낀 것은 우리가 하나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희생의 십자가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 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어떤 때는 기운이 빠지고 주눅이 들다가도 선생님 말씀 기억하며 허리를 쭉 폅니다. 선생님이 항상 이야기 하셨잖아요. '허리 쭉 펴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라고 북한말, 한국말 섞어쓰시면서요.
그때가 많이 그립습니다. 비록 저는 감옥에 있습니다. 여기는 인생에 제일 밑바닥이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어떻게 불평을 할 수가 없네요.
내 주위에는 나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고요. 북의 보위부 구류장에 비하면 호텔과 같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북에 두고 온 가족 근심을 하거나, 석방날을 기다리며 근심하고 있는 이들.. (석방되면 바로 북송되니까 근심)
초보적인 일용품도 사서 쓰지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저는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는 한편,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상처받을까봐요. 이 문제들을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용섭 선생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석방날짜는 내년 7 월이지만, 그 전에 빠르면 몇 달 내에 호송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 보내지면 순교하므로)
이것은 제 느낌이 아닌, 조금 근거 있는 이야기입니다. 감옥에서는 자기들은 집행기관이라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이용섭 선생을 호송하지 말라는 정부의 지시가 없으면, 그대로 호송한답니다. 시간이 급할 것 같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쓰겠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열방빛교회 및 선생님과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며... 제자 권능 올림
▲나 선생님께 드립니다. (최광 선교사를 나목사로 바꿔씀. 모르게 하려고)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권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네 자녀를 비롯한 선생님의 가정과 열방빛교회의 성도님들께 주 안에서 문안 올립니다.
선생님과 가정과 교회에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씁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뵌지도 어언 삼 년이 넘었네요. 긴 3년이었고, 짧은 3년 이기도 하네요.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을 다시 뵈올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날은 꼭 허락하실줄 믿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과 부모님들 고마운 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감사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이곳 생활은 군대생활 같기도 하고, 수도원생활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말 감옥 같기도 하답니다.
이런 생활은 아마 선생님과 함께 학습하던 때, 일차적으로 훈련 받아서 익숙하기가 좀 쉬워졌어요.
이따금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정주에서 학습하던 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정말 좋은 때였고요. 그런 이유에서 제가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낼 때 정주를 중심지로 정한지도 몰라요. (*권능선생은, 최광 목사의 성경통독반을 떠나서, 다른 선교사 아래서 탈북민을 한국에 보내는 사역을, 정주에서 했음)
그런 때가 다시는 없겠지요.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아요. 그때의 주님 은혜와 선생님과 친구들은 영원히 내 마음에 기둥이 될 테니까요.
감옥이 인간 생활에 가장 밑바닥이고, 인간 지옥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느낀 것이라면, 사랑이 있는 곳에는 지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하신 말씀의 뜻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답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의 손에 물 한 방울을 요구한 것이 뜨거움으로 인한 갈증이 아니라, 사랑의 갈증이었을 거라고요. 지옥의 뜨거움의 고통보다, 사랑을 줄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게는 인생의 밑바닥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요. 복음으로 나를 낳아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처음 이 일(탈북자 한국 보냄)을 하다가 체포되었을 때는 힘들었습니다. 더욱 많은 일을 못하고, 내 인생에서 잃은 것은 너무 많은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잃는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욱 많아요. 앞으로 얻은 것이 너무 많아서 건사하기 바쁘게 되면 하나님이 저를 내보내주실 것 같아요.
제가 체포되어 검찰원 조사를 받을 때, 검사가 제게 하는 말이 '너는 영웅이다. 지금은 중국의 법을 어겼으니 판결을 받아야 하지만 역사는 너를 인정해 줄 게다. 너를 누가 가르쳤느냐?'고 물었습니다.
뭐 듣기 싫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선생님이 지어주신 '권능'이라는 이름 때문에 변방대나 공안에서 저를 잡기 전에, 뭐 대단한 놈인 줄 알았다나요?
잡고 나니 좀 실망이 되는지, 이름값 톡톡히 한 셈이에요.
선생님, 그리고 이용섭 선생과 통화할 때 저희들에게 풍족하게 해주시지 못하신다고,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는데 절대로 그런 부담 가지지 말았으면 해요.
저는 누구보다 선생님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를 위하여 마음 쓰고 계시고, 기도 많이 하고 계시는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생활비용은, 부모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께서 보내주셔서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다 해도 '풍부와 결핍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하던 사도 바울처럼 저희들도 범사에 감사함으로 살겁니다.
아무쪼록 선생님의 교회가 부흥하고, 앞으로 열방의 빛이 되고 특히 통일된 조국의 빛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앞으로 제가 나가면요. 선생님 모시고 소록도에도 가고, 태백산도 가고 싶습니다. 권희, 순교, 성근, 빌립, 주명, 다윗, 기풍선생들이 보고 싶군요.
이번에 익두선생은 유학하면서 제 일을 해주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너무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참 저번에 보내주신 편지는 받지를 못했습니다. 뭐 번역하고 어쩌고 하더니 잊어버린 건지... 앞으로 편지는 중국 어디 어디로 해주시면 됩니다.
선생님과 가정의 평안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며.. 제자 권능 글을 마칩니다. 2004.11.06.
▲존경하는 최광선생님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권사님의 건강이 회복되셨다니 너무 감사하고요. 사모님과 네 자녀들 모두 평안하신지요?
저는 이용섭 선생이 북송된 후 너무 뜻밖이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의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힘든 곳에서 서로 힘주며, 용섭 선생과 저는 서로 많은 의지가 되었는데 용섭선생은 떠나기 전까지도, 자기가 나가면 나 혼자 남겨질 텐데 이 사람들 속에서 혼자 어떻게 살겠는가고 항상 근심해 주었습니다.
그가 형기가 다 차 가면서 근심할 때 저는 만일 하나님께서 이선생이 북으로 호송되게 하셔서 순교하게 하신다면 나도 그렇게 되도록 해주시길 원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저 스스로,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않았나?' 좀 근심도 했었고요.
그러나 믿음에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편지를 합니다.
제가 UN이나 한국정부에 제출했던 난민신청을 취소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의지하지 않았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조금만이라도 가치있게 하나님께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기회를 주셨고요.
그러나 이제는 만족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큰 일을 하고 가려면 천 년이 걸려도 다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더군다나 얼마 전 꿈속에서 '이만하면 됐다' 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어차피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가르치실 때 '북한을 위하여 순교하자'는 것을, 저희들의 가장 큰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의 이름도 권능이라고, 최권능 목사님의 이름을 따라 지어주셨고요. 1기 사역으로부터 7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이제야 좀 깨닫는 것 같습니다.
1기 사역을 마친 후 어느 날인가 제가 선생님께 '사역 전에 저와, 사역 후에 저를 비교해 보니까 마치 성인이 돼서 유치원 때의 저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을 겁니다.
또 지금이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저의 모든 생각과 각오를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것, 성경에서 말씀하신 얽매이기 쉬운 모든 것을 끊어버리니 마음이 평안해서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탈북자들을 돕지 않으면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라도 일하겠다고 앞으로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겠다'고 몸부림도 쳐 봤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니 마음이 평안하고
그러다가도 탈북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또 괴롭고 이것이 제 마음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할 수 없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6개월간 이용섭 선생의 소식을 기다려 본 후에 그때까지 소식이 없으면, 이용섭 선생이 순교하신 줄 알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감형 회의가 끝나면, 이곳에서 탈북자 몇 명이 또 북으로 호송됩니다. 그들에게 이용섭 선생에 대하여 잘 알아보고, 빨리 들어와 연락해달라고 부탁 해놓았습니다. 모든 일이 주님의 뜻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열방빛교회에 함께 하심으로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지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기도할게요. 안녕! 선생님과 열방빛교회를 사랑하는 권능 올립니다. 2005.11.24. 감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