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계시록 21장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계시록 21~22장은 '다음 세상'에 이루어질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이후에 하나님의 새창조, 새롭게 창조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거죠. 즉 새하늘과 새땅 으로 대표되는 새롭게 창조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데 본문 계21장은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여간 지금 이 땅에서의 모든 것들이 일단락 되고 그 다음 스테이지(내세 천국)로 넘어가는 뭔가가 있다는 거죠.
▲마지막 결말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영화도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중간 과정부터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막 일어나죠.
주인공이 오해를 받기도 하고, 심지어 주인공이 죽은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고통스럽고.. 막 실패하고, 패배하고 이러는 것 같죠.
그래서 영화의 중간만 보고 있으면 주인공이 왜 저렇게 고통을 받는지.. 또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 결론이 중요하죠.
△제가 아주 어렸을 때 <황금박쥐>라고 하는 만화영화 시리즈가 있었어요. 매주 마다 TV에서 방영하는 거였어요.
근데 하루는 그 주인공 황금박쥐가 죽은 거에요. 그래서 제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예요. 어린 나이에.
'주인공이 죽으면 이 만화영화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로부터 해서 또 너무 억울하게 죽어가지고서, 막 제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주인공이 저렇게 죽는 게 어딨냐고.. 세상에 저런 게 어디 있냐고?' 막 울었죠.
그랬더니 저희 아버님이 예언을 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보자. 다음 주에는 뭔가 달라질 거야, 분명히 주인공이 살아날 거야, 부활할 거야!'
근데 제가 그때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저런 게 어딨냐고?' 막 울고 불고 땡깡을 부렸는데
그 다음 주에 보니까, 이 만화영화가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이 부활해서 다시 나타났고...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 마지막 회를 보고 나니까, 중간 게 이해가 되는 거에요.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된 거였구나!'
결말을 모르니까, 끝을 모르니까.. 중간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도대체 왜 저렇게 얘기가 흘러가는지... 주인공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체를 보니까, 끝을 보니까, 전체 스토리가 다 이해가 되는 거죠.
▲우리의 믿음도 여러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지막 결말(계21, 22장)을 볼 때, 전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체가 이해되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억울한 일을 당하는지.. 왜 이렇게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하나님은 그 시간 동안 어디 계시는지.. 우리한테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는지...'
중간에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여러분이 이해되지 않는 수준은, 제가 황금박지보고 울었던 슬픔보다 더 클 것입니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면 왜 정직한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왜 이렇게 믿음 좋은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왜 불의가 판을 치고, 왜 이런 모순들이 일어나는지...
왜 하나님의 백성이 정말 신실한 백성이 고난을 겪고, 또 어려움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통과하게 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 결말을 보게 되면,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아 그래서 그랬던거구나.. 아 이걸 하려고 그랬던 거구나' 그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장이 성경에 가장 마지막에 있는 계시록 21, 22장이 아닌가 합니다.
계21,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결국 어떤 일을 하시려는가' 하는 마지막 결론이 결론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마지막 결론은 뭐에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거에요.
그 이야기는 뭐냐면, 이 마지막 결론을 가지고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뭔지를 한번 되돌아 보세요.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도록 지원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에요. 사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도록 지원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에요.
새창조를 하나님이 하실 거고,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실 건데 *21:1 그러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뭐냐?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그 수많은 스토리들은 뭐냐?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짐승과 음녀의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고, 죽고.. 그 수많은 환난과 고통을 왜 통과해야 되느냐?
마지막에 가 보면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두 번째 세계가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이죠.
그 두 번째 세계가 있는데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뭐냐 하면 이 두 번째 세계로 들어갈 사람들을 찾아 모으시는 거에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러죠.
그러니까 두 번째 세계는, 하나님과 훨씬 더 친밀하게 함께하는 세상이 될 건데 거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는 곳이에요.
그래서 첫번째 세계,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목적은 뭐냐면 이 두 번째 세계로 들어갈 사람들을 찾아서 모으시는 거라는 거에요.
그 관점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해석해야 된다는 거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영화도 마지막 결론을 봐야, <황금박쥐>도 마지막 결론을 봤을 때 '아 이 중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이 이런거였구나' 그 마지막 결론에 의해서 해석을 하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도, 또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게 되는 환난과 핍박과 유혹과 그 수많은 스토리들은 다 '마지막'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되는데
그 마지막 스토리가 뭐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계21, 22장)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거에요.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뭐에요? 두 번째 창조로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아서 모으시는 거에요.
자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성경의 해석입니다. 이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을 해석해야 돼요.
'아 그렇지..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다음 세계로 들어갈 것을 준비시키는 과정 가운데 있는 거지.. 뭐 준비도 준비겠지만, 선별하시는 거예요. 선별! 누구를 데리고 들어가야 되나?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누구를 데리고 들어가야 되나?' 선별하시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는 거죠. 이 관점을 가지고 오늘의 삶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한 구절씩 살펴 보겠습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읽으시나 모르겠는데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인 얘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은 없어진다는 거에요. 하늘도 말려 없어지고, 그다음에 이 땅도 다 불에 타서 없어질 거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했잖아요. 동일한 말씀을 1절이 하고 있는 겁니다.
벧후3:12 그 날에 하늘이 불에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처음 있었던 땅과 하늘은 다 없어지고, 바다도 없어진다는 거에요.
이전에는 보지도 못하던 그런 새로운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다는 거에요. 처음 하늘과 땅은 없어졌습니다. 바다도 없어집니다. :1
계21장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처음 창조된 세상이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과 땅은.. 천년왕국까지입니다.
(무천년설이든지, 전천년설이든지 관계없이 지금 이 하늘과 땅은, 천년왕국까지 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때 본문 계21~22장이 천년왕국이랑 막 이렇게 뒤섞여있어요.
(*그러니까 무천년설로 보는 게 맞죠/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계21~22장은 천년왕국 이후의 새하늘과 새땅이죠.
특별히 개혁주의 신앙, 지금 이 설교는 개혁주의 신학인데 이 관점에서 천국은 어떻게 되어있냐면 '하늘이 땅에 임하는' 거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천국이 (새땅으로) 임하는 거예요.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은, 물론 지금하고는 다른 질서일 거예요.
우리는 부활체를 입을 것이고 또 땅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돼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 하고는 다르겠지만
하여간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겠지만, 적어도 다른 행성은 아니라는 거죠. 완전히 새롭게 된 이 지구 위에, 즉 새 땅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서 이렇게 내려가고 올라가고 해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하여간 지구가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그게 개혁주의 에서 얘기하는 천국인데
▲제(고성준 목사)가 계21, 22장을 깊게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거는 불연속성이 맞다'
천년왕국까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무천년설에서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초림~재림까지가 천년왕국)
천년왕국 이후는 완전히 새로운 '새하늘과 새땅'이에요. 천년왕국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보면 안 됩니다.
1절에 '옛하늘과 옛땅' 그러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는 거에요.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랬죠.
그러니까 계21~22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이 세상과는 불연속적이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천년왕국과 그 다음에 이어질 '새하늘과 새땅'을 막 섞어서 생각하다 보니까, 천국에 대한 개념들도 막 뒤섞여 있는 거예요. 여기 계21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다'는 거에요.
▲자 그러니까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죽고 나서 영이 둥둥 떠다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천국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두 번째 창조를 하신다는 거에요. 두 번째!
그래서 그것을 제가 '창조 2.0' 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설교제목 말하자면 지금 이 세상이 '창조 1.0' 인 거죠.
그러니까 창1장에 나와 있는 그 창조는, 창조1.0이에요. 그런데 그게 무한히 계속 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졌어요. 없어졌다고 했거든요. 불에 타서 소멸될 거라고 했어요. 벧후3:12
그래서 창조1.0 시대는, 이 세상으로 끝으로 끝난다는 거에요. 그리고 창조2.0 이 시작된다는 거에요.
완전히 본질적으로 다른 창조 2.0 시대가 시작된다는 거에요. 계21:1절이 그 얘기잖아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렇죠.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살펴본 이 계시록의 마지막 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된 세계로 누구를 데리고들어갈 것인가, 이 사람들을 선별하는 얘기라는 거에요. 선별하고 준비시키는 이야기!
다 그 다음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첫 세계를 살면서 누가 창조2.0 의 세계로 함께 넘어갈 것인가? 그 사람들을 선별하는 과정이라는 거에요.
오늘 우리가 사는 일생은, 그것을 선발하는 선별과정이라는 거에요. 그것이 계시록 전체의 주제입니다.
계시록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환난과, 시험과, 고통과, 유혹을 쭉 통과하죠. 이게 뭐에요? 테스트 과정이라는 거에요.
테스트 과정을 거쳐서 누구를 선발 할 것인가? 누구를 데리고 들어갈 것인가?
이거 분류하는 과정이라는 거에요.
자 그렇다면 누가 들어가게 됩니까? 2절에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아까 '새하늘과 새땅'과 구분 요 이는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라는 거에요.
자 그러니까 여기서 새 예루살렘은, 건물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얘기한 거예요.
아니 그럼 그렇지, 그러면 신랑이 건물하고 결혼합니까? 말이 안 되죠. 신랑이 건물 하고 결혼하지 않죠. 새 예루살렘이 단장한 신부 같다.. 그랬어요.
(*계21:16에 새예루살렘 성의 크기가 나옵니다 그 도성은 네 모가 반듯했고 그 길이와 넓이가 같았습니다. 그가 측량자로 그 도성을 재어보았더니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습니다. 요즘 크기로 가로, 세로, 높이 약 2,400 km 인 정육면체의 성 입니다. 일단 두 관점 다 가지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부'이며 동시에 '건물')
그래서 여기 21~22장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은 공간적인 의미도 약간은 있어요. 하여간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그 세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도 하늘과 땅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공간이 있어야죠.
우리 부활체도 몸이니까, 몸을 갖고 들어가니까, 그런 공간적인 의미가 약간 포함돼 있을 수 있어요. 새예루살렘 성의 해석을, 문자적+상징적으로 둘 다 보는 거죠.
그래서 이제 새예루살렘에 대한 21장 후반부를 보면 세상 왕들이 거기로 들어가고, 사람들이 들어가고... 21:24 이런 구절 때문에, 그것이 실제적인 공간일 거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죠.
저는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상징성'이 훨씬 큰 것 같아요.
그래서 공간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요. 어쨌거나 거기 가면 스페이스가 있겠죠.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뭐에요? 새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하여간 새예루살렘은 건물이나 공간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구원받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상징적 해석
▲자 그런데 이 '신부가 단장을 끝내고 준비됐다'는 거에요. :2 그래서 '단장'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단장이란, 요즘말로 '신부 화장'이죠. 결혼식 하기 전에, 미용실에 가서 온갖 단장을 다 하잖아요. 과거엔 결혼 전 '단장 기간'을 아주 오래 가졌죠. 왕의 신부들은 몇 년을 가졌죠.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그리고 다시 오실 때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열린다고 그랬죠.
이 혼인잔치 를 위해서 (2천년) 긴 시간 동안 신부를 단장시켜온 거에요. 혼인잔치를 위하여!
어떻게? 신랑에 걸맞는 존재로 단장시켰다고 하는 거죠. 이것은 외모를 준비시켰다는 것이 아니라 신랑에 걸맞는 존재로 준비시켜 왔다는 거에요.
신랑은 어떤 존재입니까? 신부를 위하여 그 생명을 내어준 존재에요.
신부가 어떻게 단장되어야, 신랑에 걸맞는 존재가 될까요? 신랑과 똑같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거에요.
물론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이 완전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똑같을 수 있어요.
신랑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그게 신부의 단장인 거에요. 그러니까 신부의 단장은 뭐냐 하면 우리는 죄인이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성품이나 인격이 완전해지지는 않죠.
그러나 사랑은 완전해질 수 있어요. 어떤 수준으로? 신랑이 신부를 위해서 생명을 드렸듯이 신랑을 위하여 생명을 드리는... 그게 단장이에요.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첫째 부활에 누가 참여한다는 거에요. 순교자들! 신랑을 위하여 생명을 드린 자들! 또는 잠재적인 순교자들! 기회가 없어 순교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있었으면 분명히 순교했을 사람들!
신랑을 생명 바쳐 사랑하는 사람, 그게 신부의 단장이에요. 계시록 전체는 이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왜 하나님께서 이런 환란과 핍박과 고난을 허락하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이 이것을 고의적으로 주신 분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믿지는 않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는 분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허락은 하셨어요. 왜 허락하셨을까요? 선별과정이라는 거에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거죠)
사실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신랑을 향한 사랑, 신랑을 향한 충성, 신랑을 향한 진심.. 이게 하나님이 선발하시는 기준이에요.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심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겠다'는 거에요.
정말로 신랑께 충성하는, 생명바쳐 충성하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래서 복음의 본질이 뭐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잖아요.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라! 생명 바쳐 신랑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짜인, 충성된 사람들을 선발하시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언제 드러나게 되냐 하면 모든 것이 다 편하고 행복하고 완벽할 때는.. 안 드러나요.
그렇지만 고난의 환경이 됐을 때, 그것이 증명되고,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이런 환경이 됐을 때, 비로소 그 환경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내 마음의 진심이 뭔지가 드러나게 돼요. 자기도 비로소 알게 되고, 사람들도 알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계시록에 등장하는 마지막 환난 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들, 환난은 선별하시는 과정이에요.
우리의 진심이 뭔지를, 신부가 단장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21:2절에서는 환난을 통과하여 신랑 예수 그리스도에 걸맞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된 교회가 이제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거에요. 신부 입장!
그러면서 새예루살렘이 위에서 부터 (결혼행진곡과 함께) 새 땅으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와~ 이 말씀을 상상해보면, 우리의 심장이 막 뜁입니다. 드디어 2천년도 넘는 긴 시간의 '단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준비된 사람들, 그 생명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충성된, 정말 생명을 다해 충성한.. 이 단장된 신부들이
마지막 결혼식 때 "신부 입장!" 하는 외침과 함께 위에서부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예요. 와~ 할렐루야!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어디로 가는 거에요? 두 번째 세상인 새하늘과 새땅으로 내려오는 거에요. 그 장면을 지금 2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현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게 분명하죠. 죄로 말미암아 이 첫 창조 세계가 망가졌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제 치우시고, 죄가 없고, 완전한, 순전한 그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고 그곳으로 들어갈 사람들을 모으셨어요.
마지막 때 결혼행진곡과 함께 단장된 신부가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거예요.
와~ 여러분, 이 마지막 스토리가 진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지막 운명이 그거라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어요. 그 이야기는 '인간은 영원한 존재'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소멸될 수 있는 분이 아니잖아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인간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소멸해요. 물질은 소멸한다 그랬어요. 벧후3:12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물질은 소멸한다 그랬어요. 불에 타서 물질이 다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세상은 다 소멸돼도 사람은 '소멸'되지 않아요. *불에 타 없어짐
사람은 영원해요. 하늘과 땅은 소멸되어도 인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첫 창조가 지나고 두 번째 창조에도, 우리는 부활해서 계속 있을 것이고 (만약에 세번째 창조가 있다면 그때도 계속 있을 것이고 네 번째 창조가 만약 있다면 그때도 계속 존재할 거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창조2.0, 3.0, 4.0 계속 하실지 그건 모르겠어요. 성경에 안 나와 있어요. 그런데 창조 2.0 까지는 기록되어 있어요. 계21:1
그 새하늘과 새땅에 우리가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선별되어, 그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창조하셨냐면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할 파트너로.. 그렇게 만드신 거에요. 와~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두 번째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여전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영원히 소멸하지 않아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런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 거예요.
▲어떤 분들은 '창조 2.0' 이라고 말하면 '뭐 하나님이 창조를 두 번째 하신단 말이에요?' 그렇게 질문할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한번 창조하신 분이 두 번 못 하실까요? 한번 창조하신 분(창1:1)이 두 번 못하시겠냐고요.(계21:1)
분명히 성경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강하게 박혀 있는 선입관은 뭐냐면, '하나님이 한번만 창조하신다'는 그 선입관이 딱 박혀 있는 거죠.
제가 그랬거든요. 뭐 새하늘과 새땅 이라는 걸 수도 없이 들었죠.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인데, 선입관이라는 게 진짜 무서워요. 아무리 '새하늘과 새땅'을 이렇게 말씀하셔도 그냥 '하나님은 한 번만 창조하신다'라는 선입관에 꽉 잡혀있으니까 이 말씀(계21:1, 두번째 창조)이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어 이거 뭐야? 다시 창조하신다는 뜻이잖아?'
선입견을 내려놓게 되었죠. 근데 아마 성령님의 조명 하신 거죠. 그때 제가 55세 경이었 모태신앙 때부터 갖고 있던 개념을 바꾼 거죠.
하나님이 다시 창조하신다는 말씀이, 그제야 비로소 귀에 들어온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베드로후서에서 말슴했던 것들, 또 이사야서 에서 얘기했던 것들이 꿰어지더라고요.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그런 네 분명히 두 번 창조하신다고 말씀하셨네요. 세번 네번은 성경에 안 나오니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두 번째 창조 하신다는 얘기는 분명히 나와 있네요.
구약의 선지자들도 이 (두번째 창조) 이야기를 알았어요. 그래서 가끔씩 잠깐 선지서들에 나와요. 선지자들이 힐끔 힐끔 본 거죠.
그런데 아마 예상하기로는, 선지자들도 무슨 말인지 다 이해는 못하고 그냥 예언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예언서를 읽는 구약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다 모르고 그냥 이해했을 거예요.
그런데 구약도 그렇고, 계시록도 그렇고, 또 베드로후서도 그렇고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다시 창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창조2.0 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성경의 메시지 입니다. 아멘? 저도 이 생각이 들고 나서 보니까 천국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천국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져요.
천국은 우리가 이 땅에서 몸을 가지고 살다가, 영이 둥둥 떠다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부활체를 입겠지만 여전히 우리의 모든 인간으로서의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시 창조한 세상을 쭉 살아가는 거에요. 지금과는 다른 그런 세상을!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다 모르겠어요. 아마 근데 지금과는 굉장히 다를 거에요. 공기의 그 성분도 좀 다를 수 있겠고요.
하나 분명한 게 뭐냐면 '해와 달은 없대요.'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그러니까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거죠. 해와 달이 없으면 여러분 어떻게 에너지를 얻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인 거예요. 그런데 분명히 세상은 세상인 거예요.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번째 창조된 세상! 그것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천국"이라는 거죠. P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