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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5:11~17, 사33:6 신년에 품어야 되는 마음

LNCK 2022. 12. 27. 21:37


◈신년에 품어야 되는 마음        잠15:11~17, 사33:6       여러 설교 정리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작년 한해(2003)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갈팡 질팡의 해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작년 한 해가 참으로 힘들고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한 해
였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작년 한 해!  힘든 한 해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렇게 온 나라가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우리 교우들!
별 어려움 없이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어떤 신문에서 국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올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60% 이상이 “로또 복권의 당첨”이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원하시는 것도 로또 복권의 당첨입니까?

로또 복권!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요.
당첨 확률은 하늘에 별 따기 입니다.

저는 ‘천사운동 본부’ 일로 가끔 로또 관계자를 만납니다.
한번은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도 로또 복권을 사시나요?’

여러분에게 물어 보았는데
꼭 1분만 한 주일에 1만원 어치씩 산다고 하였고,

다른 분들은 ‘그걸 왜 사냐?’고 하였습니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 없습니다.

그리고 당첨이 되어도 문제입니다.
1등에 당첨되면 그래도 낫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3등에 당첨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6개 숫자 중에 5개만 맞춘 사람들이요
상금으로 몇 백만 원을 타지만, 한턱내는 것으로 다 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 
어떤 일을 해도 집중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맞췄으면 되는데...”

그 못 맞춘 하나의 숫자가 얼마나 눈앞에서 아롱아롱 거리는지
생활이 안 된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우리 국민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았으나
요즘 코로나 시국 이후에, 더욱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거의 전 국민들이 마치 ‘건강 전도사’가 된 듯이, 
나름 건강 관리에 대한 노하우나 비법들을 몇 가지씩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들기름이나 식용유 등으로
5~15분동안 가글을 해서 몸속의 노폐물, 독소들을 뽑아내는 비법이 좋다며.. 
매일 시행합니다.

어떤 분들은 각종 비타민, 건강식품들을 끊임없이 복용합니다.
케일 녹즙, 비트 쥬스, 집에서 직접 착즙기로 즙을 짜서 신선하게 드십니다.

TV에서는 전신 안마를 하면, 기대 수명이 몇 년 더 늘어난다면서
5백만원을 호가하는 안마기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다 좋은 방법들입니다. 사람이 게을러서 못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정말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성경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각자의 건강 비법이 아무리 탁월하고 효과가 있어서
사람의 기대수명을 연장시켜 준다 하더라도 (사실 수명은 하나님이 정하시죠)

본문의 이게 안 되면.. 다 꽝입니다. 아무 소용없는 도루묵이 되는데요, 
그것들은
-마음이 기뻐하며 즐겁게 사는 것  잠15:15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16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  :17

이게 되어야.. 각종 건강 비법들이 효과가 있지,
이게 안 되면.. 아무리 자기 건강을 소중히 관리한다 하더라도
기대수명이 그리 늘어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더 줄어들 것입니다...


◑이제 갑신년 2004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으로 이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까?

선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니 하나님도 모르시겠지!’

여러분! 본문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스올과 아바돈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어두운 곳! 깊은 곳! 
은밀한 곳입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모르는 곳입니다.

그런데 음부와 유명이 아무리 어둡고, 깊고, 은밀해도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지옥도 야훼 앞에는 환히 열려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랴!’ (공동번역)

그러니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좋은 마음을 가져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잠16:2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있는 지를 주의 깊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마음이나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선한 마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가져야 할 좋은 마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
어떤 마음일까요?

오늘 이 시간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한 해 동안 우리가 갖고 살아야 할 마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1.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근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근심과 걱정은 우리 심령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뼈를 썩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상한다!
뼈가 썩는다!
머지 않아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얼굴에 빛이 난다’고 말합니다.

15절을 보면 항상 잔치한다고 말합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어떤 분은 그럴 겁니다.
아니 목사님! 뭐 즐거워할게 있어야 즐거워하지요!
여러분! 정말 우리가 즐거워 할 것이 없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즐거워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주시고 아들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만도 고마운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맡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웬 횡재입니까?
우리는 횡재 맞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우리 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즐거워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즐거워합시다. 즐거워하며 삽니다.
올 한해 마음의 즐거움으로 한 해의 문을 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만나면, 사람들이 ‘즐거워야’ 합니다. 
한국에는 구정과 추석 때 '명절 증후군'이 있어서, 
몸살을 앓고, 명절 직후 이혼이 급증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미국에도 비슷한 성탄절 증후군이 있다고 합니다.

즐거워야 하고, 마음이 따뜻해야 할 성탄 시즌에
그때 더 우울해지고, 더 상담 전화 라인이 바삐 돌아가고, 
신경 안정제 계통의 약들이, 더 많이 팔려 나간다고 합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성탄절에 한 자리에 모여보지만,
만남의 즐거움은 잠시요,
서로의 말이 비수가 되어 서로를 찌르고, 찔리고
서로에 대한 큰 기대가.. 부담을 안겨 주어서.. 서로 실망감만 더 커지고,

그래서 사실 성탄절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겁내는 대학생들, 
직장인 자녀들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지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동네는, 비슷한가 봅니다.

성탄절이 되면, 예술가들은 예수님을.. 그림을 그려 표현합니다.
사업가들은, 예수님 케릭터를 만들어서..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교회에도, 성탄 트리에도, 예수님의 형상이 그림이나, 장식되어 있죠.
물론 그런 그림이나 장식에는, 성탄의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성탄의 예수님은, 바로 당신 속에 계십니다.
당신이 바로 '성탄절의 예수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내미는 따뜻한 손잡음,
당신이 건네는 온화한 미소와 신뢰의 눈빛,
당신이 격려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당신이 준비한, 사랑이 담긴 작은 선물!

그것이야말로, '성탄증후군'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당신이, 성탄절의 예수님(주인공)이 되어 주십시오!

인형이나 그림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당신을 통해 만나게 하십시오!
그것이 성탄절을 맞이하시는 주님의 소원일 것입니다.

▲나는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요?
요즘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늘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주님 한 분 만으로 과연 만족하는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뿐만 아니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했고,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했는데, 시16:11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주시는 기쁨, 능력

이런 것 말고도
뭔가 재력, 지위, 사람(인맥, 인연)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지금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집착’하는 것을 주님은 들춰내십니다. 
부자 청년은 (막10:17~22)
*부를 지키는 능력이 있었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잘 지키는 것도 상당한 능력입니다.

*겸손했습니다. 보통 부자라면 예수가 도리어 자기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용기가 있었죠. 니고데모는 밤에 몰래 숨어서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백주에, 예수를 찾아와 그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이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막10:20
참 성실하고 남이 부러울 만큼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었죠.

그런 흠잡을 데 없는 이 청년에게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집착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하늘 보화만 바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막10:21

- 거지 되라, 거지가 좋다.. 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물질을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물질에는 강하고 물질적인 집착이 없으니까...
대신 그가 집착하는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방해되는 한 가지(나의 집착, 우상)는 무엇인가요?
물질, 교만, 사람.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인가요?

나는 과연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요?
성경은 통 털어 그것을 강조하는데 말입니다.

인간에게 적당한 명예, 재산, 가정... 이런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들추어내시고
결국에는 그것을 빼앗아가실 것입니다.

오늘 밤, 내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한다면... 아무 집착이 없다는 증거요,
내 마음이 뭔가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집착하는 우상이 있다는 증거죠. 

믿음과 신앙은 한 번 믿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믿은 이후로 계속 성숙해가야 하는데..
그 성숙은.. ‘내 구세주, 주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단계로
끊임없이 자라가는 성숙입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성숙의 단계로 들어가면 너무 늦고요..
지금 건강할 때..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성도로 성숙해가야 합니다.
그러면 몸도 덩달아 건강해 집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2. 둘째로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크게 부자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가산이 적다 할지라도 우리가 택해야 하는 것!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자가 미덕인 현대 기독교
과거에 2천년을 내려 온 기독교 전통은 ‘경건이 미덕’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더욱 경건한 성도’가 되고자 하는 게 신앙의 목표였죠.

그런데 언제부터인데 현대 기독교는 ‘부자가 미덕’이 되어 버렸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가 하면 ‘부자 성도’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부자’라서 돈을 잘 쓰는 성도입니다.

그가 아무리 경건한 신앙인이라 해도, 
그의 직업이 미화원이거나 가사도우미 이면.. 존경받기 어렵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직자나 교회지도자가, 청빈할수록 존경을 받는다고 합니다.
발령나서 이사갈 때, 자기 짐이 모두 합쳐 여행가방 2개에 싹 다 들어가면,
정상적인 성직자로 존경받습니다.

그리고 간혹 성도들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뭘 사드릴까요?’ 할 때
어떤 신부들은 ‘나는 김치찌개 좋아합니다. 된장찌개 맛있습니다’ 
이렇게 메뉴를 딱 정해놓았다고 합니다. 가장 싼 것을 대접받겠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 일부 기독교는 ‘목사도 이왕이면 부자 목사가 자랑’입니다.
☞부자가 미덕인 사상의 역사적 고찰 https://rfcdrfcd.tistory.com/15975803

부자 성도는.. 물질의 사명을 받은 성도입니다.
가난한 성도는.. 심판대 앞에서, 물질로 크게 책임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부자 성도는.. 많은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자가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사명 감당’과 ‘경건’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경건’을, 본문의 표현으로 하면 ‘경외’입니다.

▲경외심은 은혜로 받습니다.
오늘 세상에, 교회를 다니며 자기 스스로를 크리스천으로 말하지만,
진짜 알곡이 있고, 가라지가 있습니다.
그 차이 중에 한 가지가 ‘경외심’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고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경외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깁니다.

두려움/경외심이 은혜인 이유는,
자기가 원한다고 경외심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하나님이 위에서 주셔야 가집니다.

은혜를 받아야 경외심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12:28

그렇습니다. 경외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마음속에 나에 대한 두려움을 두리니,
그들이 내게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렘32:40

▲경외심은 보석입니다.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사33:6

보물이 희귀하게 발견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무에게나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천이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명품이나 값비싼 보석을 보배로 여기고, 날마다 그 보석을 꺼내 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배, 보화로 여기고, 
늘 날마다 자기 마음을 쳐다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이 보물, 즉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소장하고 계시는 탁월한 보물(경외심)들은 
손을 대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보물들은 그분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만을 위해서
예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물질적 부자’는 정말 소수 1%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면 나머지 99%는, 물질 때문에 오히려 신앙생활을 그르칠까봐
주님은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십니다. 약2:5

그렇지만 ‘경건의 보배, 보물’은 누구나 갖게 하십니다.
성도들이 오히려 ‘갖지 않으려해서’ 탈입니다. 그야말로 블루오션입니다.
새해에는 ‘경건의 보배’를 주님께 구하십시다! 주님은 금방 주실 것입니다.
왜냐면 워낙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까.. 경쟁력이 너무 없어, 전원 합격입니다.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사33:6

▲욥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이유 - 경외심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자랑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잘 살펴보았느냐? 그와 같이 완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땅에 없느니라’ 욥1:8

우스꽝스럽게 오늘날 우리 주변에
직위, 집, 자동차, 자식 등이 남 보기에 번듯하면... 믿음이 좋게 여겨지고,
그런 것이 번듯하지 않으면... 믿음도 변변찮은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칭찬받는 믿음, 존경받는 믿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 입니다.
욥은 그 점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이나 성공의 척도로 인정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그래도 신앙을 지킬 것인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퍼부었을 때에도, 그가 입술로 범죄치 않았던 것은,
그의 신앙의 바탕에 깔려있는 경외심 때문이었습니다. 욥2:9~10

어떤 교회는, 장로님이나 중직자들이 목사님을 잘 도와주는 동역자들입니다.
반대로 어떤 교회는, 장로님이나 중직자들이 목사님의 철천지 원수들입니다.

그 교회에서 장로나 중직자를 세울 때
‘경건과 경외심’을 척도로 해서.. 장로를 세웠나
아니면 ‘사회적 지위, 부유함’을 기준으로.. 중직자를 세웠나
그 차이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자업자득인 셈이죠. 

▲다윗이 강조한 경외심
다윗도 하나님께 칭찬 받은 ‘그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두려움으로 서고(살고) 죄를 짓지 말지어다.’  시4:4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시119:161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은 서서 그분을 두려워할지어다.’ 시33:8

☞더 보시려면 https://rfcdrfcd.tistory.com/12438681


◑3.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잠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비록 살진 소를 먹지 못하고 채소를 먹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그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심방’이란 개념도 점점 사라져 가지만, 
과거에 ‘심방’할 때,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은.. 집은 좁은데 식구가 많답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심방가면, 성도가 버선 발로 달려나와 맞이해 준답니다.
그리고 평소에 그 집에 웃음과 화목이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잣집은.. 집은 넓은데 식구가 거의 없답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심방가면, 벌써 현관에서부터 냉기가 싸늘하게 돕니다.
거기 사는 몇몇 안 되는 식구들은, 표정이 늘 굳어있고, 말 수도 적습니다.

물질이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참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는 얘기지요.
위 17절이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40년 전 얘기입니다만, 그때는 ‘돈 벌어서 자녀들 뒤치다꺼리 잘 해 주는’
부모가 최고로 인정 받던 시절이 한 때 있었습니다.

아침에 아빠는 직장에 출근, 엄마도 직장에 출근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들끼리만 놉니다.

그렇지만 아빠 엄마는 뿌듯했습니다. 왜냐면 부부가 열심히 벌어서
아이들 학원비도 대주고, 나이키 신발도 사 주고, 피자 값 용돈도 주었으며 
더 여유가 있으면, 조기해외유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돈 버는 일에 무능한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죠.
할 수없이 빠듯하게 살다보니, 생활비가 늘 넉넉하지 못했죠.
비싼 피자는 못 사주었지만 (당시 비쌌음) 집에서 엄마가 간식을 만들어 줬죠.
나이키 신발은 못 사주었지만, 자녀들을 사랑으로 발을 씻어주고 키웠습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어느 집 자녀가 더 잘 되었을까요?
양쪽 부모가 다 사랑으로 자녀를 키웠지만
-한 쪽 부모는.. 돈을 많이 대주는 것을 ‘부모의 사랑’으로 여겼고,
-한 쪽 부모는.. 돈에 관계없이 ‘시간으로, 노력으로, 함께 함으로’ 사랑했죠.

-한 쪽 자녀는.. 부모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죠. 커서도 부자지간이 서먹하죠.
-한 쪽 자녀는.. 부모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커서도 부자지간이 막역하죠.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회개할 것이 아니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사랑을 구해 보십시오.
왜냐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15:17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사랑)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대답하기가 힘드십니까? 그래서 사랑의 불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어서 회개할 것이 있다면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소중함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돈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은사를 구했지 사랑은 구하지 않았죠.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모르고, 그런 것들을 자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가장 큰 이유요 회개할 제목입니다. 
돈, 건강, 성공, 은사 보다 사랑이 더 큰 은혜요 축복인 줄 알면 
반드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사랑’이 부족한 분들은, 요한1서를 자세히 읽고  연구해보십시오.
아마 성경에서 ‘사랑’에 대해서, 가장 함축적으로 자세히 다루고 있는 곳이
요한1서일 것입니다. 요한1서는 성경 맨 뒷부분에 있어서 그런지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 모릅니다.

물론 안다고, 다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는 사랑이 무엇인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의 청년시절의 일화입니다. 
그는 어느 지역에 가서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마차를 타고 가다가 도랑에 돼지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보았죠. 

사람들은 모여 모두 재미있어 구경하고 있었다. 
링컨은 역마차를 서게 하고 도랑으로 뛰어들어 돼지를 구출했습다. 
물론 링컨 자신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신사의 옷이 물에 다 젖었죠.

그래서 역마차를 먼저 보내고, 링컨은 걸어서.. 그 연설하기로 한 지역에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링컨은 끝까지 남아서 기다린 몇몇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지역 사람들은
그날 링컨이 무슨 연설을 했는지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지역주민의 돼지새끼를
물에서 구출해준 사실은.. 주민들의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졌습니다.
아무도 그걸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매년 수많은 현역의 지도자들이 은퇴를 합니다.
그리고 현직에서 은퇴하면.. 아무래도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링컨의 행동처럼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소외되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은 사랑을 나타내 보였다면... 그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고전13:8

교회를 크게 지은 것도.. 누가 지었는지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많은 지명도를 광범위하게 떨친 것도.. 왕년에 그랬지, 지속하기는 어렵죠.
많이 부흥회를 인도하며 세계를 여행한 것도.. 그분이 소천하면
어쩌면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고전13:8

▲절반만 갖고도 행복하게 사는 비법 (펀 글)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항아리를 하나씩 주셨다.
신비한 항아린데 <꼭 절반 밖에 차지 않는 항아리>다.

어떤 사람은, 이 반밖에 차지 않는 항아리에다
자꾸만 가득 채우려고 노력한다.

사랑도, 관심도, 돈도 채우고, 별의 별 것을 다 채워보지만
항아리가 가득 안 차니까.. 평생을 괴로워하며 산다. <절반만 차는 항아리>다.

또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지만, 그것을 열심히 퍼 주고, 나눠준다.

사랑도, 관심도, 구제도, 자꾸 자꾸 나누는데
항아리가 줄어들지 않고, <항상 그 절반 수준을 유지하는 신기한 항아리>다.

그 항아리가 나에게도 주어졌다.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나누고 퍼 주는 일에 사용할 때
평생 '나누는 행복' 가운데 살게 될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도 나눌 때 일어났다.
먼저 받은 사람이.. 나누지 않았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항상 절반만 차는 항아리>처럼,
자꾸 자꾸 떡을 떼는데도.. 신기하게 줄지 않았던 것이다.

나눌 때 늘어난다.
떼지 않고, 쪼개지 않고, 나누지 않았다면.. 그대로다.

사렙다 과부의 기름도 절대로 마르지 않았다.
이것도 <절반만 차는 항아리>와 같다.

자꾸 부어내도 절반,
안 부어내도 절반, (안 부어내면 기름이 저축되어야 되는데..)

나눠도
안 나눠도
내 항아리는 항상 절반이다.
그래서 <신비한 항아리>이다.


정리하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여호와로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마땅히 가져야 할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함으로
올 한해를 놀라운 승리의 해로 채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