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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미덕인 사상 - 역사적 고찰 / 피터 싱어

LNCK 2015. 5. 19. 09:15

◈부자가 미덕인 사상 - 역사적 고찰           눅6:35, 신23:19~20            도서 요약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피터 싱어 저, 세종서적, pp.95-140. 요약.

 

이 책은 개신교적 관점을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신교-자본주의 사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추적하고 있어 흥미롭다.

'물질관'에 대한 그 역사적 변천과 흐름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1. 고대 그리스의 물질관

오늘날 서구 세속 문명의 기원인 그리스 철학은 물질을 어떻게 규정했을까?

한 마디로, 당시에는 돈이나 물질을 무조건 축적하는 것을 매우 무시했다.

 

①플라톤은 「국가」에서 사회 계층을 3부류로 나누었는데, 그 중 가장

하위 계층인 농부와 장인 계층만이 이익을 위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위 계층인 지배자 계급은 공동생활을 했고,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

공동생활의 결과, 물질은 자연히 공동 소유였다.

사욕과 돈의 부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지나친 이상주의로 평가된다)

 

②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공동소유’를 비판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인적 사유재산권이 가져다주는 쾌락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렇다고 오늘처럼 탐욕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기 생활에 필요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화폐불임이론’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동식물이 번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돈이 돈을 버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모두 당시 시대의 사상이었고, 현실이 이에 따라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2. 초대교회, 중세교회 시대의 물질관

 

①고리 대금(이자 수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기독교가 공인된 로마 제국에서는 성경적 사상이 시대를 지배했는데,

구약 성경에는 같은 동족끼리 고리대금(이자수입)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에 대한 고리대금은 허용되었다.(신 23:19-20).

 

신약에서 예수님은 “빌려주되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눅 6:35)고 하셨는데,

이것은 이자를 받지 말라는 뜻이다. (원금도 받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②환전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것은 물론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에 영향 받았다.

당시 환전은 하수구 청소와 같은 더러운 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고리대금 같은 금융업 종사자들은 심지어는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

그들은 기독교식 장례를 치를 수 없었으며, 교회에 헌금을 낼 수도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고리대금(이자 수입)을 매춘이나 강도와 동일시했고,

어떤 고리대금업자의 비참한 죽음은 자주 인용된 설교 예화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교인들은 금융업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결국, 고리 대금, 환전 등은

당시 사회에서 예수를 못 박은 민족으로 무시를 당하던 유대인의 손에 맡겨졌다.

그래서 유대인은 더욱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했다. 고리대금업자는 늘 미움 받으니까.

 

③상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5세기에 교황 레오는, “사고 팔면서 죄를 범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 후 이 말은 여러 교회에서 반복 인용되었고, 나중에는 교회법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에 흔한 속담은 “장사꾼은 결코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없다”였다.

상업은 속성상 이득을 많이 얻고자 하는데, 교회는 그것을 이기적인 욕망으로 보았다.

반면에 땅을 경작하는 농업은 매우 정직한 산업으로 보았다.

이것은 과거 동양의 “사농공상”으로 商을 가장 무시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당시 이런 사상은 헌대 사상과 매우 다른데, 당시 사상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배울 점은, 금전에 대한 탐욕을 교회가 매우 큰 죄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당시에 조각가와 화가들도 이런 시대 흐름을 작품에 반영하였는데, 예를 들면,

목에 두른 돈 자루의 무게 때문에 등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살찐 괴물의 모습이다.

 

④토마스 아퀴나스는 약간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한 사람이 과다하게 보유한 재산은 가난한 자를 위한 몫으로 보았다;

“네가 쌓아둔 양식은 굶주리는 사람들의 빵이며,

네가 창고에 쌓아둔 옷은 헐벗은 사람들의 외투이며,

네가 땅에 묻은 돈은 가난한 사람의 몸값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을 용인한 것이 아니라, 구제를 강조한 것이었다.

부의 축적에 대한 교회의 부정적 사고에서 한 발 후퇴해서,

구제를 위한 축적을 허용했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 문화로부터 ~ 초대교회와 중세 시대 등

인류 문명의 3/4 시기는 일반적으로 과다한 돈벌이를 치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금융사업은 특히 엄하게 비난받았다.

그런데 이런 서구의 물질관이 종교 개혁으로 인해 뒤바꿔지게 되는데....      

 

▶3. 종교개혁 시대의 변동(1517~)

 

①루터의 소명론

1492년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다.

종교개혁이 1517년이니, 당시는 격변기였다.

지리상의 발견 등으로 중세 유럽에서 상업 계급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상업을 매우 열등하게 취급하던 과거 시대 상황에서

루터가 상업 역시 하나님의 소명이요, 성직으로 인정한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인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구원받기 어렵다는 통념은 이제 점점 바뀌어갔다.

 

당시 중세의 중산층이 가지고 있던 부와 경제력은 교회에 의해 전혀 무시되었는데,

신교의 마르틴 루터가 그들을 인정해 줌으로써,

유럽에서 상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중세의 신흥 상인 계급은 구교를 버리고 신교를 지지하게 되었다.

 

②칼빈은 물질(돈)을 하나님의 피조물(가치중립)로 보았다 

이것은 물질 자체를 거의 악한 것으로 여겨왔던 과거의 개념에서, 상당한 변화였다.

더 나아가, 그는 돈(자본)을 이용한 여러 창조적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거에는 고리대금을 무조건 가장 큰 죄악으로 교회에서 가르쳤는데,

이제는 돈이 자본을 형성해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상이

교회에서 용인되었다.

그러나 단서가 붙었는데, 선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자기 욕심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에서 무하마드 유누스 는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로 통한다.

그는 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자본을 빌려주어서

그들을 가난으로부터 구출했다.

칼빈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창조적 선한 목적의 금융사업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는, 봉건적 경제 체제의 쇠퇴, 도시의 형성, 수공업 노동자의 번창,

상인의 보다 폭넓은 상업 활동 등이 촉진되던 시대에서,

이에 대해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구교에 비해,

신교는 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모든 것에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있기 마련인데, 구교와 신교는 그것을 강조하는 측면이 달랐었다.)

 

물론 칼빈도, 도덕적으로 용인된 자본의 횡포(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각자의 양심’에 맡긴다고 했다.

교회가 그런 것을 방지하는 사업상 세부 지침까지 마련해 줄 수는 없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기독교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이런 종교개혁가들의 사상 역시 함께 따라갔다.

그래서 16세기~17세기초기의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나라는

크게 융성해 갔다.

 

이렇게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 받은 신교도들 사이에서는

점점 부를 명예로 간주하는 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제 재산 형성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요, 그의 참신앙의 증표가 되어갔다.

        

▶4. 근대 미국

 

오늘날 자본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동시에 그것을 다른 나라들에 가장 많이 미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에 이런 자본주의 사상이 휩쓸게 된 것은 크게 두 부류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것은 ①세상(교회 바깥이라는 뜻)과 ②교회였다.

그들은 동시에 한 목소리를 냈는데.... 

 

①세상적 사상의 영향

 

벤자민 프랭클린 - 미국적 자본주의의 선구자이다. 그는 매일의 달력 숫자 밑에

근면, 성실, 절약 등을 담은 경구를 넣어서 만들었는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아울러 「부자가 되는 길」The Way to Wealth을 저술했는데,

18~19세기 동안 가장 많이 찍히고, 팔리고, 읽힌 책이었다.

절약, 근검 및 부의 취득과 유지를 다룬 책이었다.

 

이런 프랭클린의 주장은 고대나 중세에서는 ‘천박한 것’으로 간주되었었지만,

종교개혁 이후 시대와 사조가 변해서,

이제는 그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점부터, 신앙을 떠나서, 단지 부유해지기 위한 목적이 점점

형성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정신에서 조금씩 이탈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랭클린은 “부의 축적을 인생의 주요 목적”으로 각인시킨 최초의 사람이었다.   

 

아담 스미스 - 영국인이지만, 프랭클린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부론」을 저술,

부유한 것이 최고의 목적으로 각인시켰고, 영·미 신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대하는 세상 윤리학자들은, 부를 추구하되,

그것이 최고 목적은 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부자가 있어야 그것이 도리어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후에 뒤이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나왔다.(1904)

자본주의의 특징은 소유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인데 그것이  윤리적으로 이제

완전히 용인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부의 축적은

더 이상 윤리적인 논란거리가 되지 못했다. 

 

19세기에 미국 학생의 절반이 읽었다는 「McGuffey's Reader」도 돈벌이 및

경제활동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허가된 도덕적 의무”라는 사상을 널리 주입시켰다.

(절반이나 읽었다니... 그 때나 지금이나 청부靑富사상은 인기가 많다.)

 

진화론적 적자생존설의 영향

당시 진화론, 적자생존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경제에 있어서도 경쟁논리가 도입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경쟁은 사회 발전을 이끄는 요인으로 용인·추앙받았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에 있어서도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이 찬양받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과거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목적이요, 돈벌이는 그 수단이었는데,

이제는 돈벌이가 사람이 사는 목적이 되어버렸다.

경제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승화되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왜 나쁜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급적 가리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례로, 지구가 이산화탄소를 정화하는 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그런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개발’에만 힘쓴다.

 

그 결과, 오늘날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데도

아직도 오직 ‘개발’ 밖에 모르는 경제논리 때문이다.

(개발이 기상이변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은 미국, 중국, 한국 등 나라를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돈벌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런데 사회 분위기는 돈벌이를 최고로

숭상하고 그것을 위해 다른 고귀한 가치들까지 무차별 기꺼이 희생시키는데 동의한다,

심지어는 교회까지 거기에 동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지적한다)   

 

앤드류 카네기, 존 D. 록펠러 등의 기업가

이들은 위의 적자생존적 경쟁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카네기는 「번영의 복음Gospel of Wealth」을 저술했는데, 이것은 적자생존을 통한

자유경쟁 경제를 옹호하며, 인류 전체를 위해 부자 기업가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돈벌이가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를 개략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특한 미국적 자본주의를 형성한다.

그 결과, (유럽에서 용인되는) 사회주의가 미국에서는 전혀 발붙이지 못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정신이 너무 투철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적인 분배논리는 게으름을 용인하는,

그러므로 도태되어야 될 잘못된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록펠러 등 기업가들은

자기들이 벌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생전에, 또한 사후에 그렇게 사회에 환원하며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달라졌다.

이제는 탐욕적인 이기적 자본주의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중세 교회가 그렇게 우려하고, 그래서 상인들을 무시한 이유였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도 무시하지 않고

도리어 교회마저 부의 축적을 숭상하니까

이런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작용인데,

이것은 날이 갈수록 더할 것이다.

 

②교회의 신앙적 영향 

 

토마스 헌트 목사는 1836년「부에 관한 책; 부자가 되는 것은 사람의 의무이며

성경적임」이란 책을 저술했다.

제목에서 보듯, 부의 축적을 숭상하는 신앙서적이었다. 

 

다른 어떤 성직자는 기업가를 ‘사업적 성자’Saint of Trade로 치켜세웠다.

미국 교회는 당시 그런 미국 사회의 영향과 더불어 한 목소리를 냈다.

 

이런 미국 교회의 영향을 고스란히 수입한 것이 한국 교회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긍정적 영향과 더불어 부정적 영향도 동시에 수입했다.

긍정적 영향이란 - 근면, 저축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부정적 영향이란 - 부의 축적(부자되세요!)이 인생의 가장 높은 가치가 된 것이다.

 

▶5. 현대 미국(1980년대 이후)

 

루터와 칼빈은 종교 개혁의 양대 산맥으로서 기독교 역사에 큰 업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개혁 사상이 지나치게 남용되면, 그것도 큰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약도 좋게 쓰면 병자를 고치지만. 그것을 남용하면 약물 중독이 된다.

 

1980년대 이후는 자본주의의 부작용 현상이 현저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그 부작용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빈익빈 부익부의 확대 일로 현상이다.

 

또한 부의 축적이 본래 칼빈의 (창조적) 의도를 상실하고, 탐욕적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회 환원을 통한 재분배를 등한시하고,

개발 일변도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미국의 일부 목회자들은 방송을 통해서 번영의 복음

(성공주의)을 널리 전파하는데 앞장섰고, 교회도 부자가 되는 것이 미덕이었다.

 

(저자는 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 인생의 최고목적(탐욕)이 된 것을 반대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 조류에 신교회가 편승해서 기여를 한 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자들이 끼친 선한 사상이

오늘날에 도리어 악영향을 끼치는 최초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 깔린 복선이다.

선한 약이 도를 넘어서 약물중독 되듯)

 

★이 글은 신앙인이 쓴 글이 아니고, 세상적 관점에서 쓴 글을 발췌 요약한 것임.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판단을 필요로 함.

신앙 미숙자는 독서에 주의를 요함!

오늘날의 자본주의·부자 존중 사상의 역사적 발전 과정이 흥미로워서 발췌했음.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