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는 요한복음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새로운 시작, 뉴스타트 new-start 라고 하는 관점을 가지고 요한복음을 보려고 하는데요.
복음서는, 구약시대가 끝나고, 400년 동안 멈추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막 시작되는 그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야기죠.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새로운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새로운 시작을 촉발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뉴스타트' 라는 것은, 코비드가 있었고, 이제 코비드가 끝나가니까 새로운 뭐가 오겠다... 하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시대적으로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고, 시대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타이밍도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됐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새로운 일의 시작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 하심으로 시작됩니다.
'목사님, 2천년 전에 예수님이 강림하셨는데 오늘 날 어떻게 또 강림하신다는 건가요?'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하잖아요. 요1:14 '예수께서 강림하신다'는 것은, 저는 '말씀이 이 땅 가운데 다시 역사하기 시작하는 거'라고 믿습니다.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다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 교회가 기도에 대한 것을 많이 강조하지요. 또 예배도 강조하지만 제가 30여년 신앙 생활을 하고, 또 20년 넘게 목회하면서 결국 깨닫게 되는 건 뭐냐면 '말씀의 기초가 없이는 절대로 영적으로 깊어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절대로 영적으로 어느 한계 이상은 넘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리고 그래도 말씀이 없이는, 결국 어느 한계 이상을 넘어가지 못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서 이제 오늘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1년 내내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공부할 텐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임했을 때 새 일(신약시대)이 시작됐듯이, 우리 각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새로운 어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신다면 그것은 '말씀이 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돼요.
(뉴스타트는)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면서 시작 되는 거예요.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면서 시작 되는 거예요.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창조 이래 가장 놀라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즉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하셨을 때 가장 놀라운 큰 새로운 일이 시작 되었듯이
우리 각 사람의 인생도, 각 가정도,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일을 촉발하는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아멘!
그래서 요한복음은 살펴보면서, 우리 가운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고 우리 가운데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임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기대하고 그 일을 통해서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책입니다.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은, 요한복음 자체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좀 독특한 방식으로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관복음 이라고 하고 요한복음은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the 4th Gospel
'공관'이란.. 같은 공통된 관점을 가셨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같은 관점을 가지고 기록한 복음서'라면 요한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 관점의 차이가 뭐냐면, 공관복음은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를 연대기적으로 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때 무슨 일을 하셨고, 그 다음에 뭐 하셨고,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하셨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셨고... 이런 식으로 발생 시간 순서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그것을 어느 정도 무시합니다. 다 무시하는 건 아닌데, 어느 정도 무시했어요.
시간이던, 사건이던.. 이런 것을 다 다 "재구성"합니다.
재구성하는데, 어떻게 재구성을 하냐면 "예수는 누구신가?" 라는데 딱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는 누구신가?" 그래서 물론 공관복음도 '예수가 누구신가'를 전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연대기적인 기록을 통해서 예수가 누구신지를 전하려고 한다면,
요한복음은 그 예수께서 행하셨던 일들, 뭐 사건들, 그런 것들이 있지만 그것을 그냥 팩트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뭔가?' 하는데 더 치중합니다.
그러니까 공관복음은, 사실을 전하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조금 더 의미를 전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뭐겠어요? '예수는 누구신가?'죠.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 어떤 기적을 행하셨어요. 그러면 예수께서 그 기적을 행하신 의미는 뭔가?
그 의미를 통해서 예수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 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공관복음과는 조금 배열 순서도 다르고 사건이 기록된 것도 보면,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 중에 뒷부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요한복음에는 그 발생 순서를 무시하고, 앞에 기록돼 있기도 합니다. *성전청결
요한은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려는 관점으로 기록한 게 아니에요. '예수는 누구신가?'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건을 재구성해 전달합니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예수는 누구신가?" 하는 것이 요한복음의 주제라는 거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고, 이런 일들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 이렇게 의미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요한복음 보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책입니다. 앞으로 요한복음을 쭉 읽어 가시면 알겠지만 요한복음은 1장 2장 3장 4장 넘어가면서 계속 예수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쭈욱 기록 되고 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나고 진리를 찾던 니고데모가 예수를 만나고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만나고 38년된 병자가 예수를 만나고
하여간 계속해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가운데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들이 어떻게 새로워 졌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빌립과 나다나엘은 그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가나 혼인잔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가장 맛있는 포도주를 맛 보게 되었고, 예수를 만났을 때, 니고데모는 그가 찾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오랫동안 목말랐던 그 갈증이 해갈되고
예수를 만났을 때, 38년된 병자는 38년만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만났을 때, 죽었던 나사로는 부활을 경험하게 됐고 예수를 만났을 때, 군중들은 오병이어 라는 작은 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던 여인은 용서를 받게 되었고 예수를 만났을 때, 소경은 눈을 뜨게 됐습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마리아는 평생 모았던 값비싼 향유를 예수를 위하여 그 발에 붓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날 때, 우리는 최고의 포도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날 때,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갈증이 해갈 될 줄 믿습니다.
예수를 만날 때, 우리도 나다나엘처럼 진리를 발견할 줄 믿습니다. 예수를 만날 때, 우리도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게 될 것이고 예수를 만날 때, 우리도 작은 소년의 도시락인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게 될 거고 예수를 만날 때, 우리도 나사로처럼 부활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새롭게 만나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미 예수를 만나고 거듭나셨지만 이 영의 일은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를 새롭게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022년에 만났던 예수가 아니라 2023년에 만나는 예수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왜요? 살아 계십니까! 예수는 부활하셔서 살아 계십니다.
저도 저희 집사람을 날마다 새로 만납니다. 2020년에 만나고 끝! 이게 아니에요. 왜냐면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만날 것이고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는 날마다 새롭게 만나야 돼요. 날마다 새롭게 만나야 돼요!
여러분이 뜨겁게 만났던 예수가 2년 전, 3년 전 만났던 예수라면 지금 여러분의 영은 시들어 있는 겁니다.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거에요.
우리 신앙이 정체되어 있는 거예요. 3년 전에서 정체되어 있고, 5년 전에서 정체되어 있는 거예요.
예수는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만나야 되는 분입니다. 어떻게? 말씀을 통하여!
이것이 2023년도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키워드 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그러니까 이 요한복음은 '말씀'에 대한 책이라는 거예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이신데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이신 분이, 어떻게 그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켰고 어떻게 인류 역사 가운데 새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게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신 하나님, 말씀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그 '말씀'을 만나는 사람들은 새롭게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요.
저는 참 이 말씀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좋고 은혜인지 몰라요. 만약에 육신으로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만날 찬스가 없지요. 이미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셨다가 승천하시고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이 예수님의 본질은 뭐냐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날 수도 있는... 그 길을 열어 놓으셨어요.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는 뭐냐면 하나님이 누구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 주시는 거에요. 그게 성령께서 행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런데 그 사역은 어떻게 일어나느냐면 말씀을 사랑하게 함으로 행하세요.
그래서 제가 감히 고백하면, 성령님이 행하시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기적을 일으킬 수도, 병도 고치실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이 우리에게 살아나 질 때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될 때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거에요. 할렐루야! 예수를 새롭게 만나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한 해가 되십시오. 어떻게요? 말씀을 통하여!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통하여!
▲본문인 요1:1~18절까지는 전체 <서론> 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1:19절 부터는 이제 본격적인 본론이 시작되는데,
1:19절 이후에는, 이 땅에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하는 것들을 기록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그 일을 통해서 "예수는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기록하고 있죠.
그럼1~18절 까지는, 이 땅에서 역사하신 예수님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이걸 기록한 게 아니라,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어떤 분이신가? ..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 한 마디 한 마디 안에, 예수가 누구신지에 대한 깊은 진리들이 계시되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요한복음을 가지고 말씀 묵상 하실 때 시간에 쫓겨서 하지 마세요.
올해는 제가 정말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말씀묵상 하는 시간을 길게 잡으시라는 겁니다. 말씀 묵상하는 시간을, 하루에 5분, 10분 잡아 가지고서 거기서 어떻게 '말씀이 살아나는 역사'를 경험 하겠어요?
말씀묵상 하는 시간을 더 길게 잡으시길, 먼저 도전합니다. 아멘? 작년보다 훨씬 길게 잡으세요.
올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뭔가 역사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역사하실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야 될 거 아니에요?
시간도, 환경도 만들어 놓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 하시겠지..'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받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말씀 묵상할 시간을 더 길게 잡으시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정말 우리의 영이 들을 수 있는.. 그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이 계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하나를 정말 깊게 씹어 먹고, 깊이 묵상하고 또 성령께서 더 조명 하시고, 더 살아나게 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한 서너 번 걸릴 것 같은데 서두에서 사도요한이 얘기 하고 있는 본질적인 예수님의 속성,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십니다. 이 땅에 속한 분이 아니세요.
원래부터 하나님이셨고, 원래부터 하늘에 속한 분이셨어요. 그럼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뭔가를 행하셨죠.
그러나 그분의 본질은 하나님이셨어요. 그래서 요한이 얘기하고 있는 이 본질적인 예수님의 속성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 '말씀이신 분' 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게 어떤 뜻이고,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것들을 나누면서, 은혜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첫번 째로 요한이 얘기하고 예수님 본질은 "말씀"이신데, 무슨 뜻(의미)이냐면 인격체가 소통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인격체가 소통하는 방식!
특별히 사람과 하나님,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생명이 있는 짐승이라고 하지만, 개나 고양이들이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요.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영적인 존재들만 언어를 사용합니다. *돌고래, 코끼리는 '신호', 언어 아님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천사와 마귀들도 언어를 사용하죠. 그래서 영적인 존재들만 소통하는 방식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인격체가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하나님은 인격체 이시고 우리와 소통 하시는 존재라는 거예요.
자,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아멘!
살아 계신 인격체 이시고, 우리와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분이 말씀하시는 존재, 그럼 우리는요? "듣는 존재" 라는 거죠.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애초에 어떻게 창조 됐냐면 "듣는 존재"로, "들어야만 하는 존재"로 창조 됐어요.
무엇을 듣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정말 자주 반복되는 말씀은 '들어라 이스라엘아!' '너희는 이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이런 표현들이 구약에 수도 없이 반복됩니다.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보신 분은 알 거예요. 구약의 이런 표현들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되는 존재" 들입니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시81: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사44: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대표적으로 몇 구절만 뽑았는데, 성경에 무수히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들으라'는 거죠.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왜요? 우리는 들어야만 살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아예 애초부터 그렇게 지음 받았어요.
우리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그 얘기는 우리는 '우리는 들어야 되는 존재' 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어떻게 되냐면 ▲1.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겔2:2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실 때,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그 영이 내게 임했다는 거예요. 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옛날부터 이제 '불 받았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요. 집회 갔다가 불 받았다...
'불'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뜨겁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사실은 이렇게 일어나야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할 때, 그 영이 나에게 임하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내가 들을 때 '그 영이 내게 임하는...' 저는 이것이 가장 건강한 성령충만 함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도를 하다가 말씀을 듣기도 하고.. 또..)
많은 분들이 성령을 경험하고, 성령충만 받으면서도, 조금 이상할 때가 있죠.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말씀과 분리되는 불을 받아요.
말씀 따로, 불 따로! 이렇게 받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말씀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불 불 불 불 하다가 불을 받았어요. 그건 감정적 고조일 수 있다는 거죠.
원래 성령의 역사로 어떻게 해야 되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영이 내게 임하는 겁니다. 겔2:2 (에스겔처럼 기도하다가, 말씀이 임하는 겁니다. 성경 볼 때도 임할 수 있겠죠)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뭐라고요? 말씀을 사람에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과 분리된 성령님의 역사! 아주 제한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는 미래에 어떻게 흘러갈지도 몰라요. (점점 곁길로 빠지죠)
말씀 가운데 성령이 임하셔요!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이 내게 임하셔요.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기억나게) 되면서..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어떻게 됐나요?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고 해요. 겔2:2
말씀이 내게 임했을 때, 성령이 내게 임하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는 거예요.
침체됐던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 삶을 다시 이렇게 세워주신다는 거예요.
즉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영이 살아나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임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우세요. 이것이 여러분,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다' 라고 요한복음이 그랬고 또 뒤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라' 그랬어요. 요4:24 그러면 위 두 문장을 조합하면.. '말씀=영' 이 되죠.
그래서 말씀이(=성령이), 우리의 영을 깨우고 살리는 거예요.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역사한다는 거죠.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영이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 생기는 거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영이 깨어나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을 들으시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성경 말씀을 많이 알게 된다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물론 우리가 말씀에 대한 지식은 많이 아는 거 중요합니다. 무시하면 안 되죠. 그렇지만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순종까지 연결되는 것을 뜻하죠.
그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면,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우리 영이 살아나고, '와 정말 그렇지!' '와 정말 하나님은 이런 분이지! 그렇지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지!' 이렇게 우리 영혼이 고백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을 먹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간증을 좀 할게요. 저는 종종 그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어쩌다 과거에 단 한 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던 일이죠.
한 번은 기도사역 갔을 때인데, 말씀묵상 하려고 저녁 때 자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딱 말씀을 펼쳐서 읽었는데 정말 말그대로, 말씀이 임하기 시작하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말씀이 이해 되는 게 아니고, 제가 그냥 푹 빠져요. 말씀이 이해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쏟아졌어요.
그러니까 보통 때는 어떠냐면 제가 말씀을 읽다가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주석도 찾아보고, 고민하고... '이게 무슨 뜻이지?' 이러는데,
그 때는 고민하면서 이해하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말씀이 하늘에서부터 이렇게 다운로드 되는 거예요.
'그렇지, 그렇지! 어머나 세상에!, 맞지 맞어!' 그래 가지고 그냥 정신없이 이렇게 적는 거예요.
한참 적다 보니까 분명히 새 볼펜이었는데 볼펜이 안 나오는 거에요. 내가 하룻밤에 노트 한 권을 다 썼고요. 볼펜이 다 닳은 거죠.
그리고 딱 밖을 보니까 해가 뜨고 있었어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가 어디 있었는지..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시간도 멈춘 것 같고, 공간도 멈춘 것 같고 (그렇게 느꼈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렇다는 거죠. 그렇다고 무슨 초자연적 계시가 임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인데 당연하죠. 근데 과거에는 왜 그런 뜻인줄 몰랐던 것일까요?
당연히 그런 말씀인데,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그렇지 그렇지, 당연히 그 말씀이지!'
그렇지만 그냥 다운로드 되듯이 하나님 말씀이 새로운 통찰력으로, 새로운 깨달음으로 제게 임하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기록해 두었죠. 그냥 노트 한 권이 끝났고, 볼펜은 안 나오고, 날이 샜더라고요.
매번 그 정도로 강력하게 말씀이 임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뭐 저도 믿음이 깊지 않아 가지고, 매번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일생에 한 번은 아니었어요. 꽤 여러 번! 그래서 제가 말씀이 임하는 게 뭔지 알아요. (물론 개인 체험은 각자 다르겠죠)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뭐 아주 초자연적이 신비한 계시, 그래서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을, 천국에 가서 보니까 천국에는 황금길이 있고.. 물론 그런 계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자연적이라고 얘기하기도 좀 그렇고, 자연적으로는 여러분,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서 밤새워 볼펜 하나가 다 닳을 때까지, 노트 한 권을 다 쓰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니 자연적인 일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뭐 이렇게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말씀을 읽는데, 깨달음과 통찰력이 줄줄줄 쏟아지는 거예요.
'그렇지. 그렇지 이런 뜻이지.. 세상에!' 그러면서 쭉쭉 시간이 가는 거에요.
마치 전혀 다른 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말씀이 임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