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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9장 1-2 너희는 거룩하라

LNCK 2023. 1. 31. 19:32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894289

 

◈너희는 거룩하라               레19장 1-2, 18절

 

서론                                      ☞▣성결, 성화 관련글 모음 click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지루해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성경이

레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 레위기 19장은

우리가 그렇게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장입니다.

 

왜냐면 오늘 읽은 본문인 레위기 19장 2절, 18절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레19:2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마5: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라’는 말씀을 ‘온전하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말씀하셨죠.

 

사도 베드로도 벧전1:16절에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하고

레19:2절을 인용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2절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본문 18절도 신약에 많이 인용이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을 마22:39절에서 예수님은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를 요약하면

레19:18절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도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중요한 계명이 다 들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갈5:14절에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

이루었나니” 그러므로 레위기 19장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이 많이 인용을 해서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의 말씀이라고 인용한 것이 레위기 19장입니다.

 

▲레위기 19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2절의 내용이 18절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레위기 19장의 핵심내용입니다.

 

거룩함을 한자어로는 성결(聖潔)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 19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성결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그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하나는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결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화(sanctification)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평생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성결에 대한 다섯 가지 그릇된 개념

 

거룩함이 무엇이며 성결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2천년 교회 역사에, 사람들은 그릇된 개념을 수없이 많이 형성해 왔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에, 성결에 관한 그릇된 개념은 대체로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의식적 성결(Ceremonial Holiness)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식이나 절기나 날짜를 지키는 것이 곧 거룩한 것이다.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곧 거룩한 것이고

거룩은 거기에서 끝난다’고 하는 개념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의식과 종교행사에 열심이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레19:2절은 추구했어도 18절은 추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마23:27~28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게 살지만 가정이나 직장, 밖에 나가서는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불신자와 똑같이 살고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의식적인 성결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종교적이고 의식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성결한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위치적인 성결(Positional Holiness)이 있습니다.

목사라든가, 장로라든가, 권사라든가, 집사라든가, 총회장이라든가,

총장이라든가, 부장이라든가 무슨 ‘장’자리가 붙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성결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오류라는 것을 알고 싶으면 총회 장소에 한번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단의 공격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결하게 살다가도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서는 넘어지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치가 저절로 사람을 성결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성결할 것이다. 이것도 오류입니다.

기적을 행하고 성령 은사가 많은 사람은 성결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심각한 오류입니다.

예언하고 귀신을 쫒아내고 신유를 행하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육적인 동기와 세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마7:22절에 보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예수님이 이런 항변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하고 신유도 행했는데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르겠으니 떠나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을 행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성결한 것은 아닙니다.

은사가 많다고 반드시 성결한 것은 아닙니다.

그 두 가지가 연결되면 바람직하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네 번째로는 성결에 관한 오류는 고립적 성결(Isolational Holiness)입니다.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면 성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다가 죄가 많으면 ‘나는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금욕주의를 낳았고 수도원주의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오히려 물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했습니다.

세속사람과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을 하셨지

산 속에 가서 숲 속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서 살면서도

성결을 유지할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 오류는 유대교적인 성결입니다.

유대인들의 성결의 개념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이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죠.

그리고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 거룩은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았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웃을 자기 마음대로 정의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이 아니고, 이방인도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이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만이 이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마리아인도 사랑하지 않았고,

이방인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10:25-37절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핵심은 “네 이웃은 누구냐?” 하는 질문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고 살려준 사마리아인이 내 이웃입니다.”

하는 대답을, 예수님은 얻어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웃의 개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도 이웃이요 이방인도 이웃이요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이웃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웃의 개념을 다시 고쳐 주시면서 이방인도 사랑하고

사마리아인도 사랑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보면

이런 다섯 가지 잘못된 성결의 개념이 형성되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레위기 19장의 내용 - 세 가지 형태

 

오늘 레위기 19장이 바른 성결의 개념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전체를 보면 계명이 많이 나옵니다.

이 계명 하나하나를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계명입니다.

그런 계명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Reject’ 해야 합니다.

그런 계명들은 오늘날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5-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 되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 삼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제 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 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성물을 드리지도 않거니와

먹을 성물이 없기 때문에 적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고기를 냉동고에 넣고 먹으면 한달도 먹고 두 달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제 삼일에는 먹지 말라는 말씀은 오늘날 사회에는 해당이 되지 않죠.

 

20-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수양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의 사함을 받으리라”

 

레위기 2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간음을 하면 그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해방되지 않은 종과 간음을 했을 때에는 죽이지까지는 말고,

수양으로 속건제를 드리면 용서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은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23-25절,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것이요

제 사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제 오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찌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것은 옛날 과수농사를 지을 때에 3년 동안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4년째 추수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고 5년째 추수한 것부터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적용합니까?

이것을 적용하다가는 과수농사가 다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9장을 볼 때 ‘이런 말씀은 적용할 수 없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도덕법만 유효하고, 의식법, 시민법은

그 정신만 새겨서, 신약시대엔 상징적으로 적용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계명들도 있습니다.

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은 제 5계명입니다.

 

레19장은 십계명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것은 제 2계명입니다.

 

11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십계명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나도 네가 필요 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십계명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천국에서 그를 무시하실 것입니다.

십계명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15절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우리가 판사는 아닙니다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약하고 가난하다고 무조건 편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부자이고 권력이 있다고 무조건 편들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간에 편을 갈라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편드는 것은 거룩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16절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돌아다니며 사람을 공연히 논단하고 남을 헐뜯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본문에 보니까 사람을 공격을 해도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을 공격해도 죽게 만들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17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사람이 죄를 지으려고 하면 공모하지 말고

도리어 꾸짖어서 바른길로 인도하고 죄에 가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9절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찌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찌며”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알을 섞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순수한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26-28절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고기를 피 채 먹지 막고, 복술, 술수를 하지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깍지 말라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우상 숭배하던 사람들은 머리를 둥글게 깎았습니다.

그리고 수염 끝을 손상하고,

짐승을 잡아서 피가 뜨거울 때에 그것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26-27절은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8절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라고 말씀하신 것은

슬프지만 살을 베는 정도까지 슬퍼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도한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또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문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문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몸에

용을 그려 넣습니까? 그런 문신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1절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박수무당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박수무당이 귀신 들려서 과거를 좀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박수무당의 귀신은 미래를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어제 믿었어도 믿음만 있으면

귀신을 쫒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에 파워가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미신, 박수무당들 따라다니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32절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33-34절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외국인들을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외국인 학대로 세계일등입니다.

외국인들을 싼 임금으로 쓰고, 재해를 당하게 되면 내 쫒고,

퇴직금 달라고 하면 몇 십 만원을 줘서 자국으로 가지도 못하게 만드는

고약한 짓을 합니다. 그것은 성결하고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외국인들을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으로 볼 때에는 옳지 않습니다.

 

35-36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장사할 때에도 정직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직한 추를 쓰고 정직한 저울을 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거룩과 성결을 아주 어렵게 생각합니다만

여기 하나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일상생활 속에서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레위기 19장에는 거부(Reject) 해야 될 것도 있고

수용(Accept) 해야 될 계명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현대에 수정해서 원리를 적용해야 될 계명들도 있습니다.

9-10절 “너희 땅에 곡식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희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희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추수할 때에 싹 거두지 말고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추수하다가 떨어진 것은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 와서 그것을 주워서 먹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13-14절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세력 좀 있다고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세 좀 있다고 이웃을 압제하고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누가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한다고 그 앞에 장애물을 놓고 깔깔거리며

웃지 말고, 귀먹은 자에게 저주하고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놀부처럼 ‘똥 누는 아이 주저앉히기’, ‘아이 밴 여자 배차기’,

‘남의 집 호박에 말뚝박기’와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동정하며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3. 참된 성결의 본질

 

그렇다면 참된 성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레위기 19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참된 성결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고

아무 기준도 안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거룩의 기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이요 말씀입니다.

성결은 이 법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된 성결은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는 술을 안 먹는다’, ‘담배를 안 핀다’, ‘바람을 안 핀다’고 여기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이 참된 성결입니다.

 

▲네 번째로 참된 성결은 멀리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거룩입니다.

 

성결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성결하라는 말씀의 핵심은

결국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귀결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외국인도 이웃이요, 나그네도 이웃이요,

가난한 자도 이웃이요, 원수도 이웃입니다.

 

결론

 

성결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성결하라고 여기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애굽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구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었으니 너희는 성결하게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룩이요,

성결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이거나 위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결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깨달으시고 매일의 삶 가운데 성결을 실천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아니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아직 성결의 문턱도 못 넘은 사람입니다.

성결의 출발도 안 된 사람입니다.

 

거룩하게 살기 원하시면

예수 믿으시고 구원 받으시고

그 후에 심령이 변화되어, 감동을 받아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성결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2707501

 

◈신접한 자를 믿지 말라 레19장 31 2016.01.10.

 

서론

 

레위기 19장의 전체 내용은 2절에 고스란히 요약되어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성도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인데,

‘거룩함’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이고,

-다음은 동료 인간들을 향한 의무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 하셨고,

이웃을 향해서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고 속이거나 압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8절에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머리를 둥글게 깎거나 몸에 무늬를 넣는 것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우상숭배와 연관된 악습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우상숭배 할 때 했던 일들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입니다.

 

또 29절에는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31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접한 자’는 여자고, 흠정역 성경에 ‘Familiar Spirit’을 가진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친밀한 영을 가진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박수’는 남자고, ‘Wizard’(마법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친밀한 영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친밀한 영’이 무엇인가?            *개역개정에 ‘신접한 자’ 레19:31

 

‘친밀한 영’(Familiar Spirit)이라는 단어의 분위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악한 영의 한 형태입니다.

 

하나님이 친밀한 영을 가진 남자나 여자의 말을 믿지 말고 듣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는 매우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친밀한 영’의 특징은 그 영을 가진 사람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거죠.

이런 사람을 소위 ‘영매’(Medium)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에는 ‘신접한 자’를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내는 여자’

라고 오해 살 번역을 했는데, 현대인의성경에는 ‘영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친밀한 영’은 영매가 부르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매에게 지식을 주기도 하고,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친밀한 영과 영매는 계속 의사소통을 하면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영’은 히브리어로 ‘오브’라고 합니다.

친밀한 영은 영매에게 공연한 헛소리를 전달합니다.

한 마디로 친밀한 영은 ‘귀신’(Demon)입니다.

이들은 타락한 천사와 악령들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도 영적인 존재이지만, 천사들도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며 성도들을 돕는 선한 천사들이 있는가 하면,

마귀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 악한 천사들이 귀신, 악령들입니다.

 

마25: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은 후일에 심판받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12:9절에도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다가 쫓겨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이 악한 천사들이 땅으로 내려와 계속해서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귀신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들의 활동반경은 매우 넓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그 가운데 친밀한 영은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교통하고, 그들을 미혹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더럽히려는 악한 영입니다.

 

친밀한 영은 구약과 신약에 9번씩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더러운 영’(Unclean Spirit)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밀한 영과 더러운 영은 동의어입니다.

 

 

◑2. 친밀한 영과 접하는 일에 대한 성경의 경고

 

성경은 이런 친밀한 영과 사람이 접하는 일에 대해 수차례 경고하고 있습니다.

레19:31절에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20:6절에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신18:11~12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

   

하나님은 귀신과 친하게 지내고, 미래 일을 말한다며 속이는 짓을

매우 가증히 여기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 번이나 불순종하여 버림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죽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불순종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엔돌이라는 지역에서 활동하던 신접한 자를 찾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말했습니다.

 

대상10:13~14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가나안 일곱 족속이 그 땅에서 쫓겨난 이유도

성적으로 가증하고 부패한 일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신접한 자들과 박수들의 가증한 일을 용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18:12절에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밀한 영은 성령의 짝퉁이자 가품(假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친밀한 영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과 의사소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친밀한 영과 교제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영적인 음성을 듣기 원하고, 지식을 얻기 원하며,

스스로 신령한 척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 가증한 일입니다.

 

그러나 친밀한 영은 진리를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하면서

그의 말은 뭐든지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 미끼입니다.

 

점쟁이들이 미래를 맞출 확률은 50%입니다.

소위 ‘초혼자’, ‘강신술사’들은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온다고 말하지만

모두 거짓입니다. 무당이 굿을 하면 대를 잡고 흔들면서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와서 대답을 합니다. 죽은 사람의 영이 돌아와서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영은 저 세상으로 갔다 왔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귀신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친밀한 영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절대 이생과 내세를 들락날락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친밀한 영을 구하는 이유는

인간의 불건전한 호기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 하고,

초자연적인 세계의 일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일이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일인지,

귀신의 영역에 속한 일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건전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찾고 구할 때

친밀한 영이 그 사람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큐티’(Q.T.-Quiet Time)를 합니다.

그런데 큐티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생기는 것이죠.

“나도 어떤 사람처럼 매일 내게 말씀해 주시는 영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큐티를 하다가도

친밀한 영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미주알고주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은 이 옷, 내일은 저 옷을 입어라! 오늘은 짜장면, 내일은 짬뽕을 먹어라”

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스타일로 사람을 인도하시지 않으시죠.

 

저는 역사상 훌륭한 목사님들이 그런 음성을 들으며 목회했다는 글을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허황된 말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내가 이 교회에서 설교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말을 하기에,

목사님이 “그러면 하나님은 이 교회 담임목사인 내게 왜 말씀하시지는

않았을까요?”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한 상담가를 찾아 갔는데,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을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상상을 해 보라는 거죠.

그랬더니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위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예수’입니다. 그것은 ‘친밀한 영’입니다.

고후11:4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사람에게 친밀한 영이 들어오는 경로

 

친밀한 영을 불러들이는 경로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많은 전문 사역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스스로 미혹된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다가 본인이 귀신들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알라바마주의 ‘Love of God Ministry’라는 공동체를 이끄는

케네스 스캇 목사 부부가 있는데,

이 부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무려 11권의 책을 썼고,

미국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을 읽어보니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친밀한 영’이 들어오는 경로는 열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첫째는 ‘점치는 행위’(Divination)입니다.

귀신을 의지해서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도구를 이용해서 뭔가를 알아내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위자보드’라고, 귀신을 불러오는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런 것을 가지고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게임에 빠진 학생들의 특징은 귀신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귀신 불러내는 게임을 하니 실제로 귀신이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자녀들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연예인은 이런 게임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고 하죠.

 

2) 둘째는 ‘초월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할 때, 능동적인 자세로 공부해야지,

수동적인 자세로 임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는 우주의 기(氣)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황홀경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능동적인 자세로 연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관상기도, 명상기도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황홀경에 들어가 수동적인 상태로 귀신과 접하고,

그로부터 비밀한 정보를 얻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령이 아니고 귀신을 불러오는 짓입니다.

 

3) 셋째는 ‘상상의 친구’(Imaginary Playmate)를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에게 자식이 하나인 경우가 많아서

아이가 혼자서 노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서

대화하며 논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상의 친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놀자고 하면 귀신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4) 넷째는 ‘시각화’(Visualization) 또는 ‘심상화’입니다.

내적치유, 영성증진을 위해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병이 든 원인은 어렸을 때 당한 성폭행 때문인데,

마음속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 성폭행범의 멱살을 잡고 한 대 때리면

원통함이 풀어지고 쓴 뿌리가 없어져서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상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하나님과 접촉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상상하는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도 마음속으로 불러와서 내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을

상상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 예수, 귀신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5) 다섯째는 ‘약물중독’(Drugs)입니다. 약물을 먹으면 환각상태에 빠져

영계를 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삶 속에 온갖 귀신역사가 뒤따르게 됩니다.

 

6) 여섯째는 ‘락 음악’(Rock Music)입니다. 락을 통해 귀신에게 헌신되고,

귀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귀신을 초청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7) 일곱째는 ‘컴퓨터 게임과 영적인 놀이기구’(Game and Toys)입니다.

요즘은 온갖 귀신 놀음이 많이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중독된 학생들을 보면 불건전하고 음란하며

잔인한 영상에 물들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귀신의 문화를 접하게 되고 귀신과 친밀해 져서

학생들의 삶 가운데 친밀한 영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반항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불순종하고, 대들게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때리는 사태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아이는 E.T.와 같은 외계인 형상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귀신의 영과 접촉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극단적 사례지만 있을 수 있죠.

 

8) 여덟째는 ‘귀신과의 대화’(Conversing with demon during deliverance)

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의 명단과 계급을 알아놨다가 리스트로 만들어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

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의 가르침’(The Doctrine of Demon)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모든 정보는 귀신들로부터 나온 ‘귀신의 교리’입니다.

 

9) 아홉째는 ‘죽은 자의 영과 교제하여 점치는 행위’(Necromancy)입니다.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는 사람을 ‘Necromancer’(주술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당과 같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에 드라빔이라는 우상이 등장하는데,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버지 집에서 도망 나오면서 가지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라반이 그것을 도로 찾기 위해서 야곱을 쫓아오지 않았습니까?

 

라헬이 숨겨두었던 것이 바로 드라빔입니다.

드라빔은 죽은 조상의 우상이었습니다.

죽은 조상의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습니다.

우상에게 물으면 죽은 조상이 나타나 대답을 해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귀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흉내를 내고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입니다.

 

유교를 따르는 집을 가보면 사당에 영정사진을 가져다 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집안 식구들에게 귀신의 영을

모시게 하는 아주 어리석은 짓입니다.

 

돌아가신 어른들을 추모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숭배가 되면

그 집안에 친밀한 영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 열 번째는 ‘과도한 성욕’입니다. 과도한 성욕을 다스리지 못해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원하는 여자에게는 ‘Succubus’(몽마)라는 귀신이,

남자에게는 ‘Incubus’(마녀)라는 귀신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성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위에 눌리거나 에너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모든 방법들은 친밀한 영이 들어오는 문이요 입구가 됩니다.

귀신들이 사람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되면 무슨 짓을 할까요?

요10: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친밀한 영이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더럽히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영’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여기서 '친밀한 영 Familiar spirit'은,  개역개정에는 ‘신접한 자’

 

‘친밀한 영’들은 각자 전공이 있습니다.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도 있고,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영도 있으며,

반항하게 하고, 살인하는 영도 있습니다.

이런 무서운 범죄들은 모두 친밀한 영들이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거짓말을 하도록 만들거나 무기력하게 만드는 영도 있습니다.

또 교만이나 색욕과 같은 전공을 갖고 있는 친밀한 영도 있습니다.

이런 영들이 우리 자녀들을 괴롭히고, 성도끼리 이간질하게 하고 속이는 거죠.

 

결론

 

우리는 절대로 이런 친밀한 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속닥거리고 지절거리는 거짓말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영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런 영들과 더 이상 교제하지 말고 단호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가족들을 괴롭히고, 교회도 괴롭게 합니다.

 

오늘 레19장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은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것들을 대적하고 늘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