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에 있는 신령은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늘 헛된 것들을 믿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각자 자기 집에서 가정을 돌보면서 말씀을 암송하는 자매들도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 금란 자매는 6개월 동안 600절이나 되는 성경을 암송했고, 다음 달에는 200절을 더 암송했다. 1년 만에 1천2백 절을 암송했다. 나는 구제비로 금란 자매에게 2천 위안을 주었다.
금란 자매가 말했다. '선생님, 저 이제부터는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체면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억지로 권했다. '돈 안 받으면 생활은 어떻게 하나요? 하나님이 주신다고 생각하고 받으세요.'
'선생님, 주님께서 저에게 돈을 받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 이젠 더이상 돈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솔직히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무서운 가난 속에 살아가는 여인이, 일자리도 없는 여인이 몇 달 동안 온 가족이 생활을 하고도 남을 돈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금란 자매는 진심이었다. 그는 돈을 받지 않고도 계속해서 암송을 했고, 성경공부에 열정을 보였다. 정말 주님을 만난 사람이었다.
'그래, 됐다. 주님을 만났다면 온 세상을 얻은 거야! 이제부터는 돈이 아니라, 주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경험하기 시작했구나!' 나는 기분이 좋았다.
순이 자매는 11년 전 중국으로 탈북하여 야부리 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한족 남자에게 팔려갔다.
그 집에 와서부터 순이 자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갈 수 있는 모든 의원과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남편과 그 가족들은, 순이 자매에게 자기들이 섬기는 귀신을 받아들일 것을
강권했다. 그래야 병이 낫는다고 했다.
순이 자매는 남편 집안에 대대로 3대째 내려오는 귀신을 받았다. 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순이 자매는 귀신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귀신을 받아들이자 순이 자매의 병은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나왔다.
그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순이 자매에게 병을 고치려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순이 자매는 자기에게 임한 귀신의 힘을 빌려, 병을 고쳐 주었다.
그 후 심령이 상한 자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순이 자매는 신을 내려주기 시작했다.
귀신이 시키는 일을 하니, 돈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이 자매는 아예 집안에 신당을 차리고, 신녀(무녀)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신을 내려주기 시작했다.
이런 순이 자매를, 금란 자매가 사역장으로 인도해 왔다. '사역장에 오면, 시내 구경도 시켜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준다'는 말에 순이 자매는 우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찾아왔다.
순이 자매가 사역장에 들어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무언가 섬뜩했다. 순이 자매가 찾아온 시간은 마침 통독 시간이어서 순이 자매도 어쩔수 없이 함께 내 옆자리에서 성경통독을 했다.
1시간 정도 지나 쉬는 시간에, 순이 자매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눈깔 빠지겠다!'
처음 사역장에 온 여인이, 너무나 처절하고 이상한 비명을 지르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순이 자매는 살면서 성경을 처음 보았다. 처음에 앉아서 성경을 볼 때는,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글자들이 손가락을 굵기만큼 굵어지더니 뱀처럼 꼬이기 시작했고,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시작되었다.
1시간 동안 그 고통을 참고 앉아 있다가 휴식한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순이 자매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 쓰러졌다.
▲신녀(신이 내린 여자)가 성경통독 사역장에 들어왔다. 나는 순이 자매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이미 예수 믿는 99명 보다, 성경책을 본 적도 없고 예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순이 자매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딸로 태어난 것이 더 기쁘다.' (주님의 내적 음성)
힘든 영적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순이 자매도 너무 힘들어 했다.
성경을 읽는 것을 마치 독약 마시는 것처럼 괴로워했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르기 시작했다.
순이 자매의 말을 통해서, 악한 기운이 사역장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온하던 사역장에, 신경질과 분노, 미움, 질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댔다.
자매들은 쉽게 화를 내고 자기들끼리 싸웠다. 영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직 북한 자매들은, 사람이 아닌 악한 영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영으로부터 자기들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간의 기운이 사역장을 뒤덮었다.
자매들은 뒤에서 나에 대해서 험담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한국 사람이 아니야. 북한 사람이 한국 가서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일을 받아서 하는 거야.. 우리가 저 사람 유혹하면, 저 사람이 넘어올까?' 음란한 말과 험담과 비방이 일어났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영을 공격하는 화살들이었기에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섣고, 화가 일어났지만.. 참아야 했다.
아내도 이 모든 것이 영적싸움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
성령의 방법으로 나는 순이 자매를 타고 들어온 악한 영과 싸웠다. 이겨야만 했다. 귀신으로부터 사역장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귀신에 사로잡힌 순이 자매를 구해내야만 했다.
순이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이 자매가 말했다. '선생님 나는 이미 몸 안에, 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내 병을 고쳐 준 신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라는 또 다른 신을 받아들이면 내 안에 있는 신이 저를 죽일 것입니다.'
순이 자매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 붙잡혀 있었다. 나는 순이 자매에게 물었다. '지금 순이 자매를 붙잡고 있는 귀신의 정체를 알고 있나요?' '몰라요'
'그러면 그 귀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나요?' '병을 낫게 하고 미래를 알게 해 줍니다'
'그 귀신을 섬기게 되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나요?' 손이 자매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데요.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보통 귀신에게 잡힌 사람들은, 타인의 미래를 설명해 주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귀신은 자기가 사로잡은 사람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 하게 한다. 나는 순이 자매에게 귀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귀신의 정체와 하는 일에 대하여, 또 귀신을 섬기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성경말씀으로 설명해 주었다.
'귀신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순이 자매를 속이고, 순이 자매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중이에요.'
순이 자매는 진지하게 들었다. 처음으로 자기 안에 있는 귀신에 대해 눈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어둠의 세계에 빛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순이 자매도, 귀신이 자기를 무기로 삼아 이곳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기의 의지를 발휘해, 그 귀신과 싸우기 시작했다.
귀신은 순이 자매를 가만 두지 않았다. 자기의 권세로부터 빠져 나가려고 하는 순이 자매의 온 몸을 묶기 시작했다.
귀신은 동시에 나도 공격했다. 순이 자매에게, 귀신에 관한 말씀을 가르치기만 하면 내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마비가 와서,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 했다. 머리를 돌리지도 됐다. 식사 때도 아내가 부축해 주어야만 일어났다.
순이 자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순이 자매는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두 개의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너무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순이 자매,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에요. 귀신의 왕이 바알세불 인데, 그 뜻은 똥집 주인입니다. 그저 더러운 존재일 뿐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야 때마다 '이 더러운 귀신아, 이 사람에게서 나가!' 하면 귀신들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갑니다.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 자가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진정으로 풍성한 축복의 삶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에요. 힘을 내세요. 싸워서 이기세요!'
나는 예수님의 권세가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귀신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자가 다 무릎을 꿇으며,
어떤 귀신들도 주님을 모신 사람을 두려워 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는 딸이 되면, 귀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그 귀신은 도망갈 것이라는 영적 비밀을 설명해 주었다.
귀신에게 눌리고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순이 자매에게 무기가 생겼다. 순이 자매는 싸우기 시작했다.
예수님께 기도드리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귀신과 대적하기 시작했다. 순이 자매의 얼굴이 밝아져 갔다.
두려움이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고통도 사라져갔다. 여태껏 누려보지 못하던 놀라운 평화을 누리기 시작했다.
나는 순이 자매에게 영상을 보여 주었다. 바울 사도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는 성서영화 들을 보여주었다.
다음 날, 순이 자매가 기쁨이 넘쳐 고백했다. '선생님 저 어젯밤에 꿈 속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나요?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나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통에, 말들이 마구 뒤섞여 버렸다. 그래서 다시 모두 입을 다물었다.
순이 자매는 개의치 않고 흥분한 얼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에서 말하는 수염이 허연 도사가 나타나서 정말 아름다운 정원에 날 데려갔습니다. 내 평생에 이런 꿈은 처음 꿉니다. 상상도 못했던 황홀하고 기쁜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그 도사가 나에게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게 감격스럽고 행복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심장이 지금도 이렇게 막 벌렁거리고 뛰고 있습니다.'
순이 자매의 얼굴은 환했다. 하늘의 기쁨과 평화의 아름다운 빛으로 그의 얼굴을 천사처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귀신은 그렇게 쉽게 떠나지 않았다. 곧바로 나에게 전이 되었다. 나는 온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순이 자매가 완전히 회복되는 날, 나는 온 몸이 굳어져버렸다. 아내가 머리를 받쳐 주어야, 나는 일어나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아내와 내가 삼일 밤낮 대적기도를 하고나서야, 그 귀신은 떠나갔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힘든 과정이었다.
순이 자매는 성경통독이 성이 차지 않는지, 정독을 하기 시작했다.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또박또박 천천히 소리내어 읽는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 하기만 했다.
나는 늪에 빠졌다가 간신히 기어나온 사람처럼 파김치가 되었지만 그런 순이 자매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불쑥 물었다. '집에 있는 신전을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나요?' '1500 위안이 들었습니다.'
큰돈이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걸 다 깨뜨려 버리면, 제가 그 돈을 드릴게요. 해 볼 수 있나요?'
잠시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던 순이 자매가 말했다. '남편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기회를 봐서 다 부숴 버릴 겁니다.'
♣탈북자들이 가야 하는 길
자기 집에서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들 중에, 순실, 영숙, 진실 자매가 있다. 나는 그 자매들을 찾아갔다.
순실 자매는 남편 박형제 와 딸 설란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한 달 110 위안짜리 월세 집이었지만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었다. 방은 세 식구가 엉덩이를 붙이면 가득 찰 것 같았다.
영숙 자매와 진실 자매도 비슷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팔려와 한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들은 다 건강이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일을 하지 못했다. 자매들이 돈을 벌어서 식구들과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탈북여성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이들의 삶을 눈으로 보고 나서 나는 위로의 말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김영희 자매는, 10년 전 북한에서 부모와 남편과 세 아이가 굶어죽고 본인도 먹지 못해 정신이상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북한에서부터 인신매매를 하는 한 여인에게 속아서 중국으로 팔려왔다. 북한에는 더 이상 연고가 없었다.
중국 연길 시에 팔려온 영희 자매는, 4년 동안 죽기 살기로 일을 해서 팔려온 빚을 갚았지만, 다시 쌍압산 탄광촌에 살고 있는 한족에게 팔렸다.
그 한족은 건설현장 일꾼이었지만, 몸에 병이 많아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난폭하기 그지 없었다.
기분만 나쁘면 영희 자매를 짐승 패듯이 때렸다. 그 한족 남자는, 영희 자매가 도망갈까 염려해서 돈은 1위안도 주지 않았다.
영희 자매는 사는 곳이 탄광지역이라, 길에 떨어진 석탄을 주워 팔아서 번 3~5위안 정도로 지금까지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중국말을 몰라서, 혹시 조선말을 하다가 북한 사람 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잡혀갈까 봐 지금까지 5년 동안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살았다.
주변 사람들은 다 영희 자매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했다. 그 정도로 영희 자매는 고통 속에 살았다.
영희 자매는 가끔씩 교회를 찾아갔다. 찬송을 부르실 때면 늘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펑펑 울다가 돌아갔다.
영희 자매는, 내 앞에서 자기가 늘 슬픔 속에서 부르던 복음송을 불렀다. 도저히 눈물이 나서 들을 수가 없었다.
영희 자매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애원했다. '선생님, 저를 한국으로 좀 데려가 주세요!'
나는 사역장으로 돌아와서, (외부에) 세 자매와 김영희 자매 이야기를 (내부에) 사역장에 기숙하는 자매들에게 들려줬다.
'네 자매들을 사역장으로 데리고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역장 자매들이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자실 선생은 목단강 어디인가 팔려가서 살고 있는 딸 금주 생각이 나서 울었다. 자기 딸도 그렇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든 모양이다.
기쁨 자매가 폭발했다. 백선생(한국 선교사)을 향해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왜 우리 북조선 여자들은 이곳으로 넘어와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팔려 다녀야 하고,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합니까? 왜?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기쁨 자매 목소리는 과격했고 난폭 했다. 오랫동안 쌓였던 슬픔과 한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김정일에 대해서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을 향해서도 저주를 퍼붓다가, 백선생을 공격했다.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피를 토하는 원한과 설움을 받아내야 만했다.
이 과정이 없이, 상처 입은 그들의 마음엔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처음에는 묵묵히 참고 있던 최목사와 백선생도 함께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동역자들
북한 자매들의 설움과 한 섞인 공격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인지 그들의 고함지르는 사연이 불쌍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최목사님과 백선생도 그들과 함께 울고 또 울었다.
자매들은, 4 자매를 사역장에 데리고 오는 문제를 위해 5일간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하얼빈시 동영촌에 살고 있는 윤자매를 만났다. 놀랍게도 윤자매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성경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윤자매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자매는 북한에서 고아로 자랐다. 남편도 고아인 남자를 만나 아이 셋을 낳았지만 남편은 36세에 굶어 죽었고, 뒤이어 9살 난 아들이 굶어 죽었다. 12살 난 딸도 굶어죽었다.
윤자매는 마지막 남은 딸을 살리려고 식량을 구하러 탈북했다. 중국으로 나온 윤자매는, 성경공부를 하는 사역장에 들어가서 성경통독을 하였다고 했다.
당시 성경통독을 하던 선교사님들이 흔치 않았기에 내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었다. '어느 선교사님에게 배우셨나요?'
윤자매가 말했다. '주광호 선교사님이 인도하는 통독장에서 공부했습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신비감에 휩싸였다. 주광호 선생이 10년 전에 목숨걸고 했던 사역의 열매를 지금 만난 것이다.
윤자매는 광호 선생과 그의 아내 소매 자매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그때 윤자매는 북한 복음화를 위한 확실한 사명을 붙잡았다.
그 후부터 소매 자매와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내다가 폐결핵으로 죽기 직전인 조선족 남자를 만나 그 남자를 간호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 사랑으로 조선족 남자를 섬기기로 했다.
그 윤자매는 소매자매와 갑자기 연락이 끊어지면서 그가 한국으로 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도 소매자매가 보고 싶어, 애가 탈 때가 많다고 했다.
나는 윤자매에게, 주광호 선생과 소매 자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매 자매는 청도 해군병원에서 딸 에스더를 순산했다.
그때 내가 광호 선생과 함께, 해군 병원으로 축하하러 갔었다. 순산한지 한 달 후부터 소매 자매는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청도 해변에 나가, 하루에 1시간만 자면서 철야기도를 했다. 소매 자매는 주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었다.
'너는 북한 복음화에 초석을 놓는 자다. 그 땅에 세례요한 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다.'
소매 자매는 이 음성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것이 앞으로 자기 삶에 어떤 일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 후 소매 자매는, 광호 선생보다 조금 앞서 공안에 체포되었고 북송되었다. 소매 자매가 북한 보위부 감옥안에서 전도한 나용숙 자매와 송혜연 자매가 한국으로 입국한 후, 나를 찾아와 소매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송혜연 자매는 현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 보위부에 갇혀서도, 소매 자매는 하루 1시간도 자지 않고 계속 꿇어앉아 기도했다.
보위부 지도원들이 심문을 하면서 말했다. '너는 출신성분도 좋고, 집안도 좋지 않느냐? 그러니 네 집안 사람들을 봐서 앞으로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 마디만 해라. 그러면 풀어주겠다.'
그녀는 오히려 보위부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했다. '내가 예수님을 알고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날 한 번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예수님을 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선생님도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얼마나 좋은지, 믿어 보면 알 수 있어요.'
소매 자매는 사형을 앞두고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송혜연 자매와 나용숙 자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울면서 그때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윤자매는, 광호 선생과 소매 자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울었다.
윤자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조선족 남편과 함께 살았지만, 곧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다.
복송되어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동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주님을 찾았고, 기도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많이 경험하게 하셨다.
그 경험이 너무 놀라워 윤자매는, 그 모든 사실을 일기에 기록했다.
윤자매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보니, 15살 난 딸이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윤자매는 서둘러 딸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딸은 거절했다.
딸 친구인 옆집 아이가 놀러 왔다가 윤자매의 일기를 보고, 보위부에 신고했다. 윤자매는 40일 동안 고문을 받으면서 심문을 당했다. 조사관은 계속해서 '누구에게 예수를 전했느냐'고 물으면서 고문했다.
딸에게 전했고, 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해서 말하라고 고문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윤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무턱대고 계속 대라고 하니까, 제가 아무 사람 이름이나 마구 대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닐 때는, 보위부 지도원님이 책임지십시오!'
그제야 보위부 지도원은 고문을 멈추었다. 40일 후 윤자매는 극적으로 보위부를 탈출했다.
딸은 죽어가고 있었다. 윤자매는 울면서 마지막 피붙이인 딸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윤자매는 죽은 딸 시체를 두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남편을 찾아왔다. 윤자매는, 사람이 품을 수 있는 한은 다 품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품과 삶에는, 세상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없었다. 인간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기운이 충만한 북한 사회도 딸을 잃은 상처도.. 윤자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우지 못했다.
윤자매는 더욱더 남편을 정성스럽게 섬기고 돌봐주고 교회도 열심히 출석했다. 동네사람들이나 교회 사람들 모두가, 윤자매 때문에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인정하고 있었고, 윤 자매로 인해 감동받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런 윤 자매에게 물질적인 축복으로 응답하셨다. 그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한 달에 800 위안을 받고 있었다.
그가 일을 잘 하니, 주인은 내년부터 1천 위안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별로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다. 하지만 윤 자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역장으로 오고 싶어 했다.
'선교사님, 하나님이 저를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태껏 육신적으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풍요로웠지만 마음은 정말 허전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저에게 다시 사명을 일깨우셨습니다.'
윤자매를 얽매고 있는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먼저 그가 10년째 섬기던 교회 전도사님이 반대했다.
윤자매가 남편을 버리고 가면,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할 것이고 특히 윤자매는 지금까지 교회집사로 활동했기에, 교회에도 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또 그랬다.
폐병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두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윤자매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노부부도,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윤자매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계속해서 육신적인 삶만 산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윤자매는 교회 전도사님을 찾아 갔다. 그리고 여태껏 자기가 걸어왔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연과, 자기에게 하나님을 전해준 주광호 선생과, 소매 자매가 어떻게 순교했는지,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이 어떤지를 설명하면서 윤 자매가 말했다.
"전도사님, 소매 자매는 딸 에스더를 낳고, 한 달 만에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1년 내내 하루 1시간 정도만 자고 철야기도하면서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북한에 내 길을 예비할 자이다. 순교자다!'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한 번만 모른다 해라 그러면 풀어주겠다'는 말을 듣고서도 몇 달이고 꿇어앉아 기도하면서 '내가 어떻게 예수를 부인 할 수가 있느냐?' 하던 자매 왔습니다.
소매 자매가 감옥안에서 목숨을 내려놓고 예수를 전했기 때문에 그 감방 안에 있던 자매들 전부가, 풀려난 다음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소매 자매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다!"
윤자매도 울었고 전도사님도 울었다. '그래요. 윤자매님, 이제는 북한선교를 위해서 사명을 붙잡고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10년 동안 윤 자매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어서 기뻐요. 나도 그렇고 우리 교회 성도들도 윤자매를 축복하며 기도할게요.'
마지막까지 윤자매 마음과 발목을 잡은 것은 폐병을 알고있는 남편이었다. '전도사님 내가 계속해서 남편하고 같이 산다고 해서 남편이 영적으로 변화되고 세워질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남편은 하나님께 맡기고, 남편에게도 단호하게 말하겠습니다.'
윤자매는 1년 동안 성경 공부를 한 후, 한국으로 보내 주겠다는 나의 제의를 거절했다.
'선교사님, 저는 1년간 공부하고 훈련받아도, 한국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중국에 남아서, 북한이 열릴 때까지 북한선교를 하겠습니다.'
▲탈북자들은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다. 중국으로 탈북 할 때는, 중국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믿음 하나로 왔다.
그러나 중국은 탈북자들이 편히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공포와 불안속에서 도망 다녀야 했다.
탈북자들은 다시 안전한 나라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난민 자격으로 신청) 그렇게 한국과 미국, 유럽의 각 나라로 갔다. 부유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탈북자들은 살 수가 없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터 위에 세워진 부유한 나라들은 탈북자들에게는 언제나 차갑고 냉랭하고 마음 둘 곳 없는 땅이었다.
결국 먼 길을 걷고 걸으면서, 탈북자들은 천천히 희망을 잃고 허물어진다. '도대체 탈북자들은 어디에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면 이들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과연 이 세상에는 탈북자들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탈북자들은 혹시 애당초 없는 나라를 찾아다닌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없는 나라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탈북자들이 찾아야 하는 것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을 찾게 되면 탈북자들의 방황은 끝난다.
그곳이 중국이든, 북한이든, 남한이든 그 어떤 곳에서도 탈북자들은 살 수가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이 무서운 저주 속에 갇혔는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탈북자들이 찾아 발견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신앙의 삶이다. 탈북자들이 이 삶에 대한 비밀을 발견하고 그 방법을 익힌다면 그들은 북한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탈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탈북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탈북자들에게 성경을 통해 나눠주고자 하는 보화와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이 비밀을 터득한 북한 형제들이 현재 여럿 있다.
-감옥에 있는 김권능 선생이 깨달았고 *당시 장춘 감옥에서 복역 중 -북한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민선주 선생, *한국 시민권 얻고 북한가서 전도, 순교
-한국에서 목회자, 선교사로 활동하는 김성근 선생 -김수현 선생이 이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비밀을 깨달았다.
이 비밀을 가지고 어두운 복된 삶으로 바꾸었고 풍요롭고 아름답고 존귀하게 살아가고 있다.
탈북자들의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들 가까이 곁에 있었다.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은, 바로 탈북자 본인들이 해야만 했다.
탈북자들이, 이 비밀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략 1년 정도 성경을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해야만 신앙의 길을 이해하고, 그 길로 들어선다.
이것을 발견한 탈북자들은, 곧 이것이 위대한 하늘의 진리임을 경험하게 되고 거듭난 새 사람이 된다. 자기 삶에 대한 비밀을 발견한 탈북자들은, 생명을 얻고 삶을 얻는다. 나는 이 일에 증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갔다.
하나님은 북한 탈북자들에게 광야와 같은, 중국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이 때문에 나는 탈북자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사역을 고집했고 또 매력을 느꼈다. 그 어떤 사람들이든지, 진정한 신앙을 만나는 곳은 바로 벼랑 끝이다.
윤자매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10년이라는 모진 아픔의 세월 속에서 자기 삶의 대안이 비밀을 깨우친 자매였다. 한국은 윤자매 꿈도 아니었고, 천국도 아니었다. 윤자매의 천국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주광호 선생이 목숨을 바쳐서 한 사역의 열매를 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울면서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 (주광호 선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윤자매를)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저(윤자매)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잃어버린 양
"부자는 금을 덩이로 쌓아놓아도 못 살지만 이제 우리는 일용할 양식만 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참 크시죠!"
한국에서 이진행 목사님이 와서 신구약성서지리에 대한 강의를 한 주간 동안 해 주었다. 이번 특강에는 사역장 자매들과 가정에서 성경을 암송하는 자매들도 다 함께 참석했다.
특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금란 자매와 순이 자매는 많은 기대를 하고 왔다.
금란 자매는 찰떡과 꿀까지 들고 왔다. 또 순이 자매는 토종닭과 집닭이 낳은 계란 30개를 가져왔다.
마음이 담긴 음식들이라서 맛이 좋았다. 사역장에서 기숙하던 자매들도 이들을 맞이하면서 언니 동생 같이 대해주었다.
금란 자매는 사역장에 오는 것이, 마치 친정 집에 오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통독반 자매들과 암송팀 자매들은 그동안 자기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흥분하며 간증하기 시작했다.
금란 자매는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1천절 이상 암송했다. 성경 말씀 1천절 쯤 암송하고 난 어느 날 갑자기 금란 자매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총명함이 머릿속에 임했다. 눈이 확 열리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다음날 동네사람들과, 그동안 성경 암송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마작을 하러 갔는데, 다른 사람들의 패까지 눈에 훤히 보이는 것처럼 계산이 되기 시작했다. 단숨에 도박판의 돈을 모조리 따 버렸다.
이러다가 곧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다시 마작을 했다. 처음부터 돈을 잃기 시작했다.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왼쪽 팔과 손가락이 꼬이고 비틀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금란자매는 돌아가는 손가락을 잡고 끌어당기면서 하나님을 불렀다. '아이고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도박 하지 않겠습니다. 본전만 찾게 해 주세요. 마작을 하지 않겠습니다!'
금방 본전을 찾았고, 손가락과 팔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금란 자매는 그 자리를 벌떡 일어나 떠났고 그 후부터 다시는 마작을 하지 않았다.
순이 자매도 지지 않고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아이처럼 명랑했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사역장에서 겪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 했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는 구약성경을 한번 다 읽었고, 신약 성경을 읽을 때는 특별히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란 말씀에는, 귀에 팡파르 소리가 들리는데 천국 나팔 소리처럼 들린다고 했다.
그 소리가 너무 신나고 즐거웠다고.. 그 소리 때문에 단숨에 성경을 다 읽었다고 했다.
나는 순이 자매에게 말했다. '하나님은 순이 자매를 참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순이 자매는 모르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과 신당 입니다. 집에 차려 놓은 우상의 제단을 없애야 합니다.
순이 자매는 얼굴이 다시 활짝 밝아지면서 자신있게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여기 오기 며칠 전에 벌써 다 처리했습니다. 걱정 맙소. 신당에 있던 젓가락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걷어서 산 속 깊이 끌고 가서 몽땅 깨뜨리고 박살내버렸지 않고 뭡니까? 나 이제는 하나님만 섬기니까 너무 걱정 맙소!'
특강을 통해서 북한 자매들이 은혜를 받았다. 특히 자실 선생이 많은 은혜를 받았다.
자실 선생은 한국으로 간 아들 상철이가 정착금을 받았다고 200만 원을 사역장에 헌금했다. 성철이는 정착기본금으로 300만 원을 받았다. (그 후에 또 직업장려금 등 요즘 최대 3천만원까지 나옴. 인터넷에서)
이 돈은 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임대주택을 마련하라고 주는 돈이다. 상철이는 그 돈 300만 원 중에서 200만 원을 어머니 자실 선생에게 보냈고, 자실 선생은 그 돈을 선뜻 우리 사역장에 헌금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승합차가 필요해서 기도 많이 했는데 자동차 사는 데 보태 주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돈이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 정말 슬픕니다.'
자실 선생은 울면서 헌금했다. (최자실 이름에서 따 온 가명) 죽는 순간까지 돈을 포기 못 하는 가난에 한이 맺힌 북한 탈북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새 자실 선생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당하고 늠름한 북한 선교사였다.
자실 선생은, 늘 돈이 생기면 딸 금주를 찾고 싶어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딸 금주는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나는 자실 선생의 딸을 찾아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딸이 있을 만한 곳이면, 그 어떤 곳이라도 달려가서 알아보았고 사방에 수소문했다.
한번은 치타이허 에 사는 집사님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하얼빈 동쪽 350Km '아무리 봐도 금주 라고 생각되는 북한 년이 살고 있는 곳을 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살고 있다는 동네로 찾아갔다. 그 여인도 자실 선생의 딸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나이로 중국 한족에게 팔려온 여인이었다.
한족 남편은 그 여인이 도망갈 것 같아 늘 감시했고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집을 나올 때 얼굴을 보기로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밤 3시간을 그 집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다 보니 손과 발이 동상에 걸릴 것 같았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지만 그 여인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접촉을 하면 남편이 인정 사정 보지 않고 두들겨 패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그 여인은 끝내 나오지 않아 그냥 돌아와야 했다. 딸 금주는, 자실 선생의 마음 속에 늘 대못 같이 박힌 아픔이었다.
돈이 생기면, 만사를 팽개치고 딸을 찾으러 가겠다고 늘 말하면서 살던 자실 선생이었다.
자실 선생은, 사역장의 어려움을 자기 아픔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자실 선생의 마음 속에 임재하신 성령님은 어느새 자실 선생의 온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신비체험이나 특별한 흥분상태만이 성령충만 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엔 그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지만 시간이 몇 년 지나면)
그러나 진정한 성령충만은, 인간의 마음에 인자하신 성령님께 자기 인격이 압도당하고, 기쁨으로 지배당하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합숙생활을 하는 자매사역장 1팀과 4개 지역에서 성경암송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암송팀들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내가 그 지역을 순회하면서 돌보고 있다.
최영희 목사님과 백혜련 선생은, 지금 사역장에서 훈련 받고 있는 자매들이 잘 다듬어지고 있고 안정을 찾았기에 학생들을 더 이상 영입하지 말고, 이들을 귀하게 끝까지 양육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방황하고 쫓겨다니고 불안에 떨고있는 많은 탈북 자매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계속 영입하고 싶었다.
다시 자실 선생과 함께 학생 영입 문제를 의논했다. 자실 선생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으니 받자고 했다. 그가 고마웠다.
▲기쁨 자매가 없어졌다. 오전 통독을 마치고 다같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그가 없었다.
그래도 짧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격려도, 사랑도 많이 해 주셨지만 도대체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멍해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즐겁게 지내던 자매 하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기차역으로 달려나갔다. 수많은 인파가 큰 강물처럼 흘러다니는 역에서 1시간을 기쁨 자매를 소리쳐 부르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기쁨 자매는 갈 곳이 없다. 이곳에 온 지 5년이 되었고, 한족 남자에게 팔려가서 딸 하나를 두었지만 남편의 도박과 술주정, 폭행에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도망쳐 우리 사역장으로 왔다.
딸이 보고 싶어서 매일 울면서 지냈던 기쁨 자매였기에 혹시 그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간 건가?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찾아 뛰어다녔다.
기쁨 자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실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자실 선생님, 나 지금 기차역에서 기쁨이를 찾고 있습니다.'
자실 선생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기쁨이 거기 없습니다. 기쁨이는 김양희가 데리고 갔습니다. 김양희가 저번 집회 때, 기쁨이에게 얘기하는 말을, 제가 들어서 압니다.
한족 남자하고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시내 어딘가에 있지, 여기에는 없을 것입니다. 더 헤매지 말고 사역장으로 오세요.'
김양희가 기쁨이에게 28세 정도의 한족 총각 한 사람을 소개했다. 그 한족 남자는 돈이 많고, 기쁨이 딸도 데려다가 함께 살겠다고 약속했다.
돈 많은 한족 총각이 무엇 때문에 탈북자 신분에, 애까지 있는 기쁨 자매를 데려 간단 말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답답했는지 자실 선생이 화를 냈다. '아이고.. 사람이 이렇게 말귀를 알아 듣지 못 합니까? 김양희가 기쁨이 한테 거짓말을 해서 팔아먹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탈북여성이 탈북 여성을... 그것도 사역장에서 성경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더니...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화를 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요?'
자실 선생은 타이르듯 설명해 주었다. 김양희는 살아가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돈이 되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또 탈북여성들 속에서는, 돈을 받고 남자를 소개 하는 일 정도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서로 살려고 넘어온 사람들이기에 피차간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물처럼 흘러 내려가 빠져 버렸다.
성경 공부를 할 탈북자 한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는 탈북자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며칠씩 기차를 타고 가서 만난다.
그렇게 먼 길을 가서 만난다고 해도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지,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북한 보위부 특무(사복)인지, 북한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만난다.
'하나님, 제가 만나러 가는 저 사람이, 만약 나를 테러하거나 납치할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막아 주세요.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께서 제게 보내시는 사람이라면 만나게 해 주시고, 그들이 영입이 되어서 성경공부 잘 하고 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다듬어지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얻은 한 사람이 떠날 때면, 자식 하나를 잃는 것 같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하나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사역 못 하겠습니다.'
나는 그저 바보처럼 눈물만 뚝뚝뚝 흘리면서 멍하니 누워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잔잔하고 또렷한 느낌이 올라왔다.
'아들아, 나의 종아! 사랑한다. 고맙다. 아무도 서려고 하지 않는 이 곳에 서 있는 네가 정말 고맙다. 너는 이미 순교자다. 너의 그 순교의 피를 이미 내가 받았고 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때론 얼마나 아프고, 때론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나의 서럽고 고통스럽던 것들이, 마치 물에 씻겨 버리듯이 내 마음에서 지워져 나갔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마구 뒤집히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나왔다.
'나의 종아!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네가 일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도 내가 너를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네가 알아주면 고맙겠다. 내가 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을 다 이를 때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며 지킬 것이다. 사랑한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