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5장 해석 및 주석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하나님의 궤'(the Ark of God)는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신들의 역사 이래 최대의 전리품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들의 처음 염려(4:6-8)와는 달리 그 궤가 어떤 능력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 궤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아스돗에 이르니라'
'아스돗'은 원래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긴 하였으나(수 15:47) 그 지파에 의해 정복되지는 못했다. 이 도시는 강대국 애굽과의 교역을 위한 근거지였고, 또한 애굽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블레셋의 도시 중 중요하게 여겨졌다. 수 11:22, 13:3 한편 블레셋 사람들이 이때 여호와의 궤를 이곳으로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이곳 신전에 모셔진 자신들의 다곤(Dagon) 신에게 그 궤를 일종의 예물로서 바치기 위함이었다.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족속은 처음 그것을 아스돗(Ashdod)으로 가져갔다가, 곧 가드(Gath), 에그론(Ekron)으로 옮기었다(5:1-10). 그 이유는 법궤가 가는 성읍마다 독종 재앙이 발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블레셋 방백들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숙의(熟議) 결과 암소 두 마리가 모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Bethshemesh)로 돌려보내게 되었다(5:11-6:15). 이후 법궤는 곧 기럇여아림(Kiriath-jearin)땅의 엘리아살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법궤는 이곳에서 근 20년 동안 안치되었다(7:1, 2).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다곤 (Dagon)'
고대로부터 이 우상은 메소보다미아, 앗수르, 베니게 지역 등지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인데,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베니게 족속들에게서 수입하여 자신들의 민족 수호신으로 삼은듯하다. 그것은 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사'(삿 16:23) 등 블레셋의 주요 성읍 여러 곳에 세워진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분명해진다.
그런데 다곤 신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바, 콜사밧(Khorsabad)에서 출토된 양각(陽刻) 조각품의 그림에 따르면, 몸의 상반신은 수염이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왕관을 머리에 쓴 형상이고, 몸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형상으로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전자의 견해대로 다곤 신이 '물' 또는 '물고기와 밀접히 관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마리(Mari), 우가릿(Ugarit) 등지에서 발견된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블레셋 족속은 분명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하여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
블레셋 족속은 이 다곤 신에 해양 민족의 특성을 가미시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받아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해' 숭배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특히 우가릿(북부 가나안) 문헌(Ugaritic Texts)에 나타난 바, 다곤 신이 가나안의 농경신인 바알 신의 아버지로 기록된 사실은 이러한 점을 보다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 삿 16:23 주석 참조.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다곤이...엎드러져...땅에 닿았는지라'
여기서 '엎드러지다'(나팔)는 주인 앞에서 종이, 군왕 앞에서 봉신이, 신 앞에서 사람들이 경배할 때의 자세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20:41, 25, 24, 수 7:6, 삿 13:20, 에 7:8) 더구나 이 단어는 '항복하다'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왕하 7:4). 따라서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곧 다곤 신이 여호와 앞에 항복했음을 상징한다. 이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신 것이다(갈 6:7, 출 20:7).
4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그 이튿날...다곤이...끊어져'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우월성이 현시된 첫번째 사건의 의미(3절)를 깨닫지 못한 데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다곤의 숭배자들이 이처럼 다곤 신당의 문지방을 밟지 않고 피해 넘어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숭배하는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이 일시 놓여져 있었던 곳이므로 그곳을 신성시했기 때문이요,
(2) 다곤 신도 보호를 요청하는 만큼, 그 문지방 밑의 귀신들을 성나지 않도록 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같은 풍습은 그 후에도 이방인들에게서 계속되었다(습1:9).
'오늘까지'
이 말은 사무엘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키며, 따라서 본절의 사건이 있은 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후 본서가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는 본 사건과 관습의 역사적 사실성을 확증하는 표현이다.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여호와의 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신인 동성적(神人同性的) 표현이다(수 4:24, 스 7: 9, 시 89:13).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능력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에게 나타났었으나(3, 4절), 이제 그 능력이 블레셋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졌다. 한편 여기서 '더하사'(솨멤)는 '황폐케 하다'란 뜻이다.
'독종'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오팔림'은 일반적으로 보기 흉한 외부 질환을 통틀어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1) 페스트의 일종으로서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피부염의 일종으로서 환부가 보기 흉하게 헐어서 환자 스스로 수치감을 갖게 되는 질환 등 두 가지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4에서 블레셋 족속들이 속건제를 위한 제물로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취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독종'(毒種)은 쥐에 의해서 전염되는 페스트(pest)로 봄이 더 타당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본절에 쥐 재앙을 덧붙이고 있다.
'쳐서 망하게 하니'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야크'는 '쳐부수다', '깔아뭉개다' 등의 뜻으로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삿 15:16, 삼하 11:21 , 왕상 16:11, 왕하 3:19).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전의 사건들(3, 4절)을 모두 우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블레셋 족속이 이제 그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일어났을 최초로 시인하는 장면이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 다곤(Dagon)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셨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굽 위에 내린 각종 재앙으로 인해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한 것과 같다(출 8:19).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
블레셋의 다섯 지방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각각 분할 통치하던 수령들을 가리킨다(수 13:3). 여기서 우리는 당시 블레셋이 부족 연합 성격의 국가였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알 수 있다. 한편 '방백'(세라님)은 성경 안에서 여기처럼 항상 복수로 나타나는(수 13:3) 비셈어 계통의 단어로서, B.C. 11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로 넘어가 '군주'(君主)라는 의미 (튀란노스)가 되었다.
'가드로 옮겨 가리'
이 곳은 구(舊) 가나안의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 11:21, 22). 그때 그 도시의 주민들은 아낙 자손이라고 불리던 자들로서, 신체가 장대했던 자들이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가드 사람'불리워 졌다(삼하 6:10, 11, 15:18, 19, 22). 한편 이 도시는 아스돗(Ashdod) 동쪽 약20km지점에 위치하였고, 성벽이 잘 갖춰져 있던 특별히 중요시되던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 11:22, 13:3 주석 참조.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심히 큰 환난'
'심히 큰 환난'(a very great destruction)이란 표현은 3중 강조된 말로서, 곧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얼마나 엄중했으며, 또한 그로 인한 성읍 사람들의 소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작은 자와 큰 자'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다쳐서'
이 단어(솨타르)는 '입술이나 눈꺼풀이 깨어지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극심한 피부 질환으로 피부가 완전히 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스돗 보다도 가드에 더 큰재앙을 내리셨음을 뜻한다. 결국 이것은 방백들의 모사(8절)가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아스돗(Ashdod)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의 하나이다(8절). 이 성읍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그의 생전에는 점령되지 못했었다(수13:3, 15:11,45,46). 그 후 이 성읍이 유다 지파에 의혜 정복되긴 하였지만(삿 1:18), 얼마 안가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 떨어진 이후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된 듯하다(렘25:20). 특히 이 도시에서는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신이 모셔지고 있었다(왕하1:2, 3, 6, 16). 수 13:3 주석 참조. 이처럼 이 도시에서 '다곤'(Dagon) 신이 모셔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 도시로 보내려고 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로 가져다가...죽이려 한다'
에그론(Ekron) 거민들이 이처럼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성읍 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한 이유는, 이미 그들도 그 궤 때문에 아스돗과 가드에 임한 큰 환난 소식을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궤를 보내어...죽음을 면케 하자'
'궤를 보내는 일'은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취한 방책이었다. 만일 블레셋 족속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도시로 보낸다 해도, 옮겨진 그 도시 역시 앞의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었던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블레셋 족속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이것은 여타 도시들 보다도 더욱 에그론(Ekron)에 하나님의 큰 진노가 내려졌음을 보여 준다. 즉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인간적인 지혜로 대처하고자 할 적마다 더욱 가중하여 진노가 임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진노는 에그론(Ekron) 성읍에 언약궤가 들어온 직후부터 에그론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후, 언약궤가 그 성읍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계속 내려진 듯하다.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사무쳤더라'
'사무치다'(알라)란 말은 '자라다', '꼭대기까지 오르다'의 뜻으로서, 블레셋 족속들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크고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부르짖는 행위를 회개 기도의 형태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블레셋 족속은 극심한 독종 재앙과 사방의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도움을 호소했을 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없었던 것이다. 곧 진정한 회개는 여호와께 대하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와 같은 고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