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삼상10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23. 15:46

◈삼상10장 해석 및 주석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사울의 머리에 붓고' 
여기서 기름 붓는 일이 비밀리에 행해진 까닭은,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 사울이 먼저 하나님의 소명을 철저히 깨달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기의 기름 부음은 사울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 피택되어,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입맞추어' 
이 입맞춤은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경의 표시(시2:12), 또는 은혜 받는 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표시이다. 그런데 당시 이와 같은 입맞춤은 대개 상대의 입이 아닌 손, 무릎, 이마, 혹은 옷 등에 하였다.

'그 기업의 지도자' 
여기서 '기업'(나할라)은 '몫', '유산', '소유'등의 뜻으로서,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으로 친히 택하여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출 19:5,  신 4:20)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두 사람을 만나리니' 
구약 시대의 율법상 '두 사람'은 특별한 일을 증언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이다(신 19:15). 그런 점에서 여기 '두 사람'은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구심을 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구심을 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증인'(證人)임이 분명하다.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떡 세 덩이' 
'떡'은 소제의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졌었다(레 2:4-6).

'포도주 한 가죽 부대' 
'포도주' 또한 희생 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졌었다(1:24, 민 15:6, 7).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문안하고' 
직역하면 '평강을 간구하였다'란 뜻이다. 
아무튼 벧엘 순례자의 이같은 행동은 결국 그들이 사울을 이미 지도자와 같은 신분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삼하 8:10, 와하 10:13).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벧엘 순례자의 이 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사울을 존경하는 의미와 함께 사울의 허기를 베워 주기 위함이며(9:7), 
(2) 이스라엘의 모든 값진 것이 사울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며(9:20), 
(3) 특히 그 떡이 하나님께 바쳐질 예물이었다는 점에서, 
벧엘 순례자의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울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행위였다(1절, 9:16).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여기서 '하나님의 산'(기브아트하엘로힘)은 곧 '하나님의 기브아'(Gibeah of God, NIV)라는 뜻으로서, 이는 사울의 고향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를 가리킨다. 
그런데 '기브아'를 수식하는 '하나님의'란 말은 그곳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산당(山堂)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사울이 왕이된 이후 이곳은 '사울의 기브아'라고 불리워졌다(11:4, 15:34, 삼하 21:6),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며,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튼 사울은 자기 고향 집의 성읍 기브아로 들어가는 길에 마침 그곳 산당에서 제사드리고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와 만난 것이었다.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여기서 '영문'(네치브)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즉 이 영문(營門)은 
(1) 블레셋 족속이 그 권위의 표시로 세운 '기둥'(post)을 뜻한다는 견해, 
(2) 블레셋 족속이 공물을 받기 위해 설치한 행정 관서 또는 사무소를 뜻한다는 견해
(3)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감시.통치하기 위하여 요소(要所)에 배치한 '수비대'(garrison)를 뜻한다는 견해(KJV, RSV)등이다. 

그런데 이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신의 군대로 이곳을 공격했다는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13:3, 4), 이곳은 세번째의 견해대로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이스라엘땅에 구축한 진지(陣地) 또는 군사 기지(MILITARY POST)임에 틀림없다. (삼하 8:6, 14). 그리고 이러한 블레셋의 수비대는 사사시대 말기 경부터 시작된 40년 간의 블레셋 통치기간(삿 13:1) 중에 설치된 것 같다(4:10).

'선지자의 무리' 
성경에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이들은 사무엘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던 자들이었던 것 같다. 즉 이들은, 블레셋에 의해 오랫 동안 압제를 받던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적 혹은 신앙적 열심을 갖게된 자들이 당시 대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 각처에서 모여들어 무리를 형성한 일단의 선지 훈련 생도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리 중 모두가 신적(神的)인 소명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산당에서부터' 
여기 기브아의 '산당'은 라마(7:17), 벧엘(3절) 등과는 별도로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던 성지(聖地)였던 것 같다. 따라서 여기 '선지자의 무리'는 이때 그곳에 순례차 온 것임이 분명하다.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비파'(네벧)는 현(絃)이열 개인 하프 모양의 현악기이다(시 33:2, 144:9). 
'소고'(토프)는 손으로 두드려 치는 오늘날의 탬버린과 유사한 악기인데, 이것은 홍해를 건넌 후 미리암이 사용한 악기이다(출 15:20). 

'저'(할릴)는 갈대 또는 뿔 등으로 만들어진 플루우트(flute)와 같은 피리이다. 
'수금'(킨노르)은 '네벧'(nebel, 비파)과 같은 현악기로서, 걸어가면서 연주 가능한 오늘날의 기타(guitar)와 비슷한 악기이다(시71:22, 108:2, 150:3). 

한편 이와 같은 여러 악기들은 히브리인들의 정서 생활과 매우 밀접한 것으로서, 그 당시 히브리인들의 문화를 잘 반영해 준다(출 15:20, 삿 11:34).그리고 이때 선지자의 무리가 이같은 악기들을 사용했던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신령한 시와 찬미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중 자신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며(왕하3:15), (2) 또한 악기의 음조에 맞춰 예언적인 노래를 하기 위함이었다(대상 25:1,3). 

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신' 곧 성령(창 1:2)이 임하는 일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지도자에게 때와 필요를 따라 나타났던 현상이었다(16:13, 민 11:25, 삿 6:34, 11:29, 14:6, 19, 15:14).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택하고 인정하셨다는 확증일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일을 통하여 그 지도자에게 맡긴 일을 잘 수행토록 특별한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때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임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때로 떠나가기도 했기 때문에(16:14), 그 본질상 오순절 이후 임하는 성령, 곧 구원의 문제와 관계된 신약 시대 중생(重生)과는 다른 것이다(요 3:3, 5).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여기서 사울이 한 '예언'도 선지자의 무리가 한 것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사울 역시 선지자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감동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한편 이때 사울에게 있어 이 예언은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했음을 확증해 주는 외적 증표의 하나요, 아울러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기름 부음 받았음을 확증해 주는 내적 증표가 되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것은 신약적 의미의 중생이나 성화(聖火)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즉
(1)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할 자로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되었다는 사실을 사울이 분명하게 깨닫게 되리란 뜻이요(1절, 9:20, 21), 
(2) 그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한 열망이 사울에게 맹렬히 타오르게 되어, 이제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11:6).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 징조가...임하거든' 
'이 징조'는 2-6절에 언급된 세 가지 징조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임하거든'은 막연한 가정을 의미치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임할 때'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

'기회를 따라 행하라' 
문자적으로는 '손이 발견하는 것을 너를 위하여 행하라'의 뜻이다(삿 9:33). 즉 이것은 향후 자신의 소명과 관계된 일이 발생할 경우, 소신껏 거기에 대응하라는 권면이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리라' 이는 사울이 기회를 따라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이다(11:11).

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사무엘이 사울을 먼저 내려가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무엘 자신은 백성들을 소집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2) 사울은 자신을 성별할 기회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무엘은 그때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온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소개하려는 기회를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11:14).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번제'는 전적 헌신을, '화목제'는 감사와 친목을 위한 제사이다. 한편 여기의 제사들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한 위임식(委任式)과 관련된 제자들이다.

'내가...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 까지' 
이것과 관련하여 사무엘은 12장에서 사울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앞서 5절, 또한 10절의 ‘선지자의 무리’들을 봐서도 그렇고, 사무엘은 모세 이후, 하나님의 율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전에는 사사들이 지도자였는데, 그들은 주로 전쟁과 통치를 주력했지,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다. 아래 25절에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가르쳤다는 것도, 율법을 가르친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사무엘은, 모세 이후 최초로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가르친 선지자요 제사장이었다. /주)

'칠 일을 기다리라' 
여기의 '칠 일'은 사무엘이 이 말을 한 후 '칠 일'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사울이 나중에 길갈에 간 후 '칠 일'을 말한다.

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다 응하니라' 
본절은 2-6절에 언급된 사무엘의 예언이 한치의 착오없이 다 응한 사실을 전체적으로 언급한 구절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 임무(9:16)를 감당하도록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즉 이제 사울은 이전의 사울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막중하고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 처지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은혜를 주신 것이다.

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본절에서는 사무엘이 예언할 세 가지 징조(2-6절) 가운데서 세번째 징조(5, 6절)가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다.

'선지자의 무리'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거나, 혹은 꿈이나 환상을 통해 미래의 일을 보고 예언하는 그러한 예언자의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그러한 예언자들-예를 들면, 사무엘이나 엘리야- 수하에서 율법을 배우고, 경건의 훈련을 쌓으며, 일반 백성들을 가르치고, 나아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나 묵상에 전념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움을 받아 행하는 일단의 훈련 생도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신이...크게 임하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신이 그를 강력하게 눌러댔다'로 번역할 수 있다(NIV). 결국 이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을 가리킨다.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이는 사울이 (1)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2) 선지자들의 무리가 한 것과 동일한 예언(6절)을 하였음을 가리킨다.

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신을 받은 사울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할 정도로 매우 낯선 것이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여기서 '당한 일'은 사울이 전혀 새 사람이 되어 선지자들의 무리 중에서 예언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것은 결국 이전의 사울의 모습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놀랄만큼, 변한 사울의 행동이 전혀 낯설게 느껴졌음을 암시해 준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그 당시, 사람들은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선지자 학교에서 훈련받지 않았던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그같은 훈련을 받기에 적당한 자질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인하여 그들은 지금 사울의 낯선 행동에 대하여 이같이 놀란 반응을 보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19:24).

12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여기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아비'는 그 선지자들의 무리를 지도하는 스승을 가리킨다. 또한 이같은 견해는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와 그 제자 사이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많이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넉넉히 지지될 수 있을 것이다(왕하 2:12, 6:21, 13:14). 따라서 본 구절의 질문은, 선지자들의 무리가 영적 아비 사무엘에 의해 교육 받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킴으로써,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울이 선지자들의 무리와 어울려 예언을 하는 등 선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매우 놀라운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 덧붙여 혹자들(Oehler, Keil, Lange)은 이 말의 의미를 '누군들 아비로부터 선천적으로 예언의 영을 타고 나겠는가? 따라서 사울도 그러한 영을 받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있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란 말은 곧 사울의 모습이 눈에 드러날 정도로 급작스럽게 변화된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속담이 되었는데, 곧 어떤 사람이 이전까지의 생활 모습과는 갑자기 판이하게 달라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과 같은 상황을 묘사할 때 적용되었다(19:24).

13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산당으로 가니라' 
사울은 이때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경배드리기 위하여 여호와의 제단이 있는 그곳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14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본절은 사울과 사환이 산당에서 내려와 자신들의 집에 도착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있다.

'사울의 숙부' 
이 사람을 후에 사울 왕국의 군대 장관이 된 '아브넬'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아브넬의 아버지 '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4:50,51, 대상 8:33).

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사울의 숙부가 암나귀 문제 이외에 사울이 혹시 사무엘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잘보여 준다. 즉 사울의 숙부는 암나귀 사건(9:3,4) 이후 확실히 변화된 모습과 행동을 보인(10절) 사울에게서 어떤 예감을 갖고, 그에게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나라 일'은 말할 나위도 없이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문제와 관련된 내용들이다(1절, 9:16). 그런데 사울이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숙부에게 침묵한 까닭은, 결코 숙부의 불신앙이나 시기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사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명받고 기름 부음 받은 것이 아직은 결코 공개될 사항이 아님을 사무엘로부터 강력히 암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9:25-27). 
만일 사울이 사무엘의 이같은 암시를 무시했을 경우, 그의 숙부는 조카가 이스라엘의 왕에 오르는 문제에 직접 개입하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낭패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삿 14:4,6). 아무튼 이는 초기 사울의 겸손과 신중함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17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미스바'(Mizpah)는 (1)이스라엘 온 백성이 모이기 좋은 지리적 이점이 있으며(7:5) (2)이스라엘을 오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했었던 기념비적 장소(7:6)라는 점들 때문에, 사무엘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집합할 곳으로다시 선택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백성'은 실제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각 지파의 대표자들일 것이다.

'여호와 앞에 모으고'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앞에'란 표현은 종종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나 성막 또는 대제사장의 우림이나 둠밈 앞에 모이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선출을 위해 제비 뽑으려고 모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아마도 '우림과 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을 대제사장이 가지고 모인 듯하다. 아울러 이것은, 사무엘의 백성 소집이 신적인 권위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본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셨던 위대한 구원의 은총을 언급하고 있다. 사무엘은 이같은 언급을 통해 (1)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왕들로부터 구원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2)또한 그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행동이 지극히 어리석고 경솔한 것이었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19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하나님을...버리고...왕을 세우라 하도다' 
여기서 사무엘은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 행위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고 있다(8:7). 아울러 사무엘은 여기서 왕을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므로, 장차 그 왕으로 인해서 당할 고통도 그들 스스로가 친히 담당해야 될 것을 암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8:9-18).

20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본문에는 어느 지파, 그리고 그 지파의 어떤 가족, 또한 그 가족의 어떤 인물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와 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인물을 선택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제비뽑기가 성경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수 18:6,8, 욘 1:7, 행 1:20-26). 성경에 언급된 이같은 제비 뽑기 행위는 그 결과가 전적으로 신적인 섭리에 따라 나타난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잠 16:33). 수 14:2, 18:10, 민 26:55 

21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사울은 사무엘의 기름 부음(1절)과 여러가지 징조들(2-6)을 통해 이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께 선택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1)자신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혹 일어날지도 모를 여러 가지 사건들을 두려워 했거나, (2)아니면 그의 소심하고 부끄러워하는 성격 때문이었거나, (3)아니면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짐보다리들’은 아마도 미스바에 모인 백성들의 '여행용 짐꾸러미'(baggage)를 가리키는 듯하다.

23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어깨 위나 더 크더라' 9:2 주석 참조.

'여호와의 택하신 자' 사무엘은 이미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선택 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9:15-17), 제비의 방식에 의해서 그가 뽑히자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외적 풍채만을 놓고 볼 때 사울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하였음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이같은 사울의 늠름한 외적 풍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충분히 매혹할만 하였다(9:2).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왕의 만세'(예히 함멜렉)는 왕이 오래 살기를 비는 말로, 곧 '만세수를 누리소서!'(Long live the king!, NIV)란 뜻이다. 따라서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라는 말은 (1)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자신들의 왕으로 매우 만족하게 여겼으며 (2)열방과 같이 왕들이 자신들을 계속 다스려주기를 간절히 바랬음을 잘 보여 준다(8:5,20).

25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나라의 제도' 
여기 '나라의 제도'(the duties of the kingdom)는 8:9에 언급된 '왕의 제도'와는 그 성격상 다른 것으로, 곧 신정 국가의 왕이 지켜야 될 기본적 의무 조항들을 가리킨다(신 17:14-20). 즉 이방 국가들의 왕의 제도(8:11-17)가 백성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왕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위한 것이라면, 여기의 '나라의 제도'는 오히려 왕이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겸허하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잘 다스리는 신정(神政) 국가하에서의 '왕권의 의무'(the regulations of the kingship, NIV)를 가리키는 말이다.

'책에 기록하여...두고' 
이와 같은 것은 고대 중근동의 종주권(宗主權,suzerainty) 계약시에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즉 그 당시 중근동에서는 왕이 봉신(封臣)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 봉신이 왕 자신에 대하여 이행해야 할 의무를 책에 기록하여 봉신이 섬기는 신의 신당(神堂)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봉신은 책에 기록된대로 왕에게 충성을 다바쳐야만 했다. 

따라서 여기서의 사무엘의 이같은 행위는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바로 이행케 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어졌음이 분명하다. 이같은 점에서 사울은, 그가 비록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따라(8:5,20) 세워졌지만, 그러나 그는 이방의 왕들과는 그 성격에 있어 전혀 달라야 했다. 즉 사울은 절대 권력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와 백성을 통치해야만 했다.

'여호와 앞에 두고' 
이 말은 실로의 성소 안에나 혹은 법궤 앞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당시 실로의 성소는 이미 파괴되었고(4:10), 언약궤는 여전히 기럇여아림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7:1,2). 따라서 이 말은 단순히 여호와의 권위 아래 엄숙히 보관된 사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사울도...자기 집으로 갈 때에'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사울의 통치권 행사가 잠정적으로 보류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울은 그때 자신의 고향 기브아를 수도로 삼아 백성들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이다(11:4). 물론 당시는 이스라엘 각 지파들이 나름대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또한 왕을 위한 궁전이나 신하 또는 행정기구 등이 아직 미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사울이 자신의 고향으로 간 후 얼마간 지도자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 
이들은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택되었음을 분명히 깨달은 자들이다. 한편 '유력한'(하일)은 '힘이 강한','용감한'등의 의미로서(창 47:6, 삼하 17:10), 곧 당시 사울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들어 모시고 호위한 용감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와 함께 갔어도'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어떤 용감한 사람들이, 사울을 도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민병대(民兵隊)로 사울의 주위에 몰려들었음을 뜻한다(14:52).

27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어떤 불량배' 
불량배(베네 벧리야알)는 '소모시키다', '황폐케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서, '무익한' 혹은 '아무 쓸 데 없는'이란 의미인데(1:16, 2:12), 곧 '무가치한 자들'(Worthless follows, RSV)이란 뜻이다. 한편 이 단어는 구약 성경의 몇 군데에서 '왕국에 큰 손상을 입히는 자'란 의미로 언급되기도 한다(삼하 16:7, 20:1, 23:6). 따라서 본 단어 역시 위와 같은 의미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새로이 선택된 왕을 거역하며, 또한 나라의 평화를 깨뜨린 자들(troublemakers, NIV)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들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 특히 강성했던 유다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자들일지도 모른다(민 1:27,33). 즉 이들은 분명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에서 자신들의 왕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긴 듯하다.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불량배들은 사울이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어서 강력한 지파의 후원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같은 반문을 한 듯하다. 물론 그들은 이같은 외적 사유 외에 사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되었음을 믿지 않았던 중요한 내적 사유에 따라 사울을 반대하였음이 분명하다.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고대 사회에서 '예물'(민하)은 존경심 및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바치는 '공물' 및 '선물'을 가리킨다(창 32:13,19, 삿 3:15, 6:18, 삼하 8:2,6, 왕하 8:8). 따라서 비류들이 자신들의 왕으로 선택된 사울에게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사울을 왕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표현이며,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은 곧 사울에 대한 멸시 행위이자 심각한 도전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문자적으로는 '귀먹은 사람처럼 되다'란 뜻이다. 한편 비류들의 노골적인 불복종과 반역 행위에 대해 사울이 이같이 처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당시 사울은 왕으로서 완전한 기반을 아직 닦지 못했고, (2)만일 대적자들의 행동에 어떤 제재를 가할 경우 그들이 속한 지파의 엄청난 반발을 두려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는 초기 사울의 신중함과 자제력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