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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4:1~23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다

LNCK 2023. 2. 28. 23:07

Jonathan: Acting Boldly in Faith | Ray Fowler .org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다     삼상14:1~23     영어설교 정리

본문 삼상14장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 초점을 맞춥니다. 

최근 우리는 <사무엘상>을 연구하면서
-사무엘은.. 자기 인생을 잘 마친 사람의 모범으로 증거합니다. 12장
-사울은..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한 사람의 본보기로 나옵니다. 13장
-요나단은.. 본문의 주인공이죠.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한 사울과 달리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예로 본문에 나옵니다. 14장

본문의 요나단의 신앙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는 담대한 신앙으로 행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세상이 싸우는 것처럼 싸우지 마십시오. (13:16-22)

▲1. 세상은 더럽게 싸우고, 세상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싸우고, 
세상은 자신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방식으로 싸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이 싸우는 것처럼 싸워서는 안 됩니다.

13:16~18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사울과 그의 부하들은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16

사울과 그의 부하들이 원래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13:2
13:16에 블레셋이 믹마스에 진을 쳤다는 것은
(성경엔 안 나오지만) 이미 적에게 믹마스 땅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제 블레셋은 더 많은 땅을 침략하기 위해 
북쪽, 서쪽, 동쪽 등 세 방향으로 ‘노략꾼’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략꾼(:17)이란, 일종의 선봉대로서, 전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최정예부대이죠.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침공하겠다는 겁니다. :17~18

오늘날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릅니다. 
본문에서 사울과 요나단은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의 영적 전투와 흥미로운 유사점’을 발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갈등에 연루되면서
우리는 항상 영적 전쟁을 치른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엡6:12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 
악한 영적 세력"이라고 말씀했죠. 
그렇습니다. 당신은 다른 인간과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건강 문제, 재정 문제, 관계적 갈등이
우리의 영적 싸움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로서 당신의 주된 투쟁은 항상 영적인 것이 우선이고, 기본입니다.

영적, 신앙적 투쟁, 즉 영적 전쟁이 
내 삶의 더 근본적인 문제임을.. 우리가 간과하다가는..
즉 돈문제, 건강문제, 관계 문제만 전선의 우선순위로 두고 산다면,
결국 나는 이 마귀와의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늘 강조하는 것처럼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3방향으로 노략꾼 군대를 보냈던 것처럼, 오늘날 
마귀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으며’ 당신 주위를 배회합니다. 벧전5:8

17절의 ‘노략꾼’을 영어성경에는 raiders 로 번역했습니다. NASB 
(과거에 ‘레이더스’ 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나쁜 뜻입니다)
기습으로 습격해서, 적진을 무너뜨리고 약탈하는 무리들을 뜻합니다.
오늘날 마귀가 ‘기습 습격’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마귀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으면’ 마귀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뜻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26:41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놀이터 playground 가 아니라 전쟁터 battleground 입니다

당신이 정녕 구원받았다면, 
이미 당신은 영적 전쟁에 개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 승패의 결과는, 당신의 영원한 운명을 가를 것입니다. 

원수는 당신의 삶에서 새로운 기반이나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근신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영적 무기로 싸웁니다 (13:19-22)

13: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의 우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지중해에서  
선진 제철기술을 가지고 팔레스틴을 지배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무기 제조 능력을 제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미 철기문명이었고, 이스라엘은 청동기 말기)

이스라엘에는 대장장이가 없었기 때문에   13:19~20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대장장이를 몽땅 포로로 데려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기구 수리를 위해 블레셋에 가야했습니다. 

사울의 군사들은 칼이나 창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사울과 아들 요나단만이 칼, 창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완전히 불공평한 싸움입니다. 
사울은 이 전투에서 수적으로나 화력도 열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더 많은 병사와 우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최첨단, 최신 기술, 가장 진보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 편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기 직전에 골리앗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는 것은 칼이나 창으로 되지 아니하시는도다. 
이는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기 때문이다." 삼상17:47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는 한 
칼이나 창 또는 다른 지상 무기가 없어도, 큰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이 싸우는 것처럼 싸우지 않습니다. 

즉 세상은 최신 무기, 기가 막힌 전략, 군대의 숫자, 군사비 규모
이런 것들을 통해, 전쟁을 승리하려고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영적 무기로 싸웁니다. 실제로 열악한 이스라엘이, 
요나단의 주도로 철제 무기를 뽐내는 블레셋을 물리치죠. 13:5    

고후10:3~4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실제로 오늘날에도 세상은 온갖 무기들을 다 사용해서 성도를 공격합니다.
즉 폭력, 증오, 거짓, 험담, 중상, 소문, 노골적인 거짓말. 
그리고 본문에서 보듯이, 때로는 숫적인 열세에 처하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러나 성도는, 세상 방식으로 그들과 똑같이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성도는 늘 승리합니다!

세상은 당신이 휘두르는 사랑, 기도, 믿음, 성령 복음의.. 
이런 영적 무기에 맞설 능력이 도무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영적 전쟁터의 한 복판에서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하는 첫 번째 원리입니다. 

성도는 세상이 싸우는 것처럼 싸우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영적인 무기로 싸웁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전진하라  (14:1~14)

두 번째 원칙은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본문에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자 하나만 데리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1. 교회는 공격적이어야 합니다 (14:1~3)

교회는 공격적이어야 합니다. 
사탄의 군대는 움직이고 있으며, 사탄은 삼킬 사람을 찾아 울부짖는 
사자처럼 배회하지만, 교회는 결코 방어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항상 공격적이어야 한다. 

14: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위 본문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대조를 봅니다. 
요나단은 적극 공세에 나섰지만, 사울은 소극적으로 나무아래 앉아 있죠. :2

사울은 방어하는 데 만족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공격을 감행합니다.

3절에, 사울과 함께 제사장 아히야가 있었습니다. 
그는 3절 족보에 의하면 엘리→비느하스→아히둡(이가봇의 형)→아히야

엘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제사장 가문입니다.  *이가봇 
사울도 ‘하나님이 그를 버린’ 왕입니다.  15:26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하나님께 버림 받은 두 지도자 가문이, 함께하고 있죠.
그러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기가 저하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요나단은 이 영적인 전투에서 선제적 행동을 취합니다. 
요나단은 사울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적진으로 침투합니다.

왜 먼저 사울에게 알리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는 사울이 거절할 것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요나단은 오늘날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입니다. 
교회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해야합니다. 기도와 성결로써 공격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공격적으로 지옥의 문을 습격하고 
지옥의 문은 그것에 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2. 그 무엇도 마귀는, 주님의 구원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14:4-7)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요나단이 이 전투에서 성공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우선, 지형이 어려웠습니다. 이 협곡은 두 절벽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하나는 반짝이거나 미끄러운 것을 의미하는 보세스 라는 곳, *이스라엘 쪽
다른 절벽은 가시덤불을 의미하는 세네 라고 불렸습니다. *블레셋 쪽  :4

그러니 양쪽 군대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편 절벽 위에 서로 진을 치고 있죠.
이 장소는, 공격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방어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장애도 요나단을 단념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편 절벽을 내려가서, 상대 편 절벅을 기어올라가서 공격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진술입니다. 
우선,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을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담대하게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6

요나단은 자신이 수적으로 절대적 열세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 두 명 
하나님이 확실히 자신과 함께 하신다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통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소수틀 통해서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단 한 명을 통해서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증언하는 것처럼, 한 사람으로도 구원하십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6

잠21:30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롬8:31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 참된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14:8-14)

요나단의 믿음은 단순히 말로만 믿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의 신앙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어려운 지형 앞에 처해 있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적으로 열세이며, 
지원군도 없지만 여전히 믿음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기브아의 나무 아래 앉아 군대를 세고 있는 동안, 
요나단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무기 든 자(이하 ‘부관’)에게 
"그들이 우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8

여기 훌륭한 전략이 펼쳐집니다!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예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적이 자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갑니다. 

여기서 요나단은 (성령의 지혜로인지) 특별한 전략을 세웁니다.

9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일단 요나단은 자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반응을 기다렸죠. :8
9절에, 그들이 바위 언덕 위에서 ‘우리가 너를 치러 내려가리라’고 말하면
블레셋을 공결할 의사가 없고, 

10절에, 그들이 바위 언덕 위에서 ‘너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라’고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손에 넘기신 싸인으로 보았습니다.   

왜냐면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을 자신들에게 올라오라고 말한다는 것은 
곧 블레셋이 싸우려는 적극적인 의욕을 지금 결여하고 있다고 보았죠. :10

반대로, ‘꼼짝 말고 거기 서 있거라, 우리가 네게로 지금 당장 내려가겠다’ 
라는 반응을 보이면, 요나단은 그들을 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9

이에 블레셋이 보인 반응은 ‘너희가 이 바위언덕 위로 올라오라’ 였죠. :12

그래서 ‘싸인, 또는 표징’을 확인한 요나단은
바위 언덕 (세네 :4) 위로 두 손과 발을 다 써서 기어 올라갑니다. :13
 
그리고 다음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전투 장면 중 하나입니다. 
13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3절은, 아마 요나단이 앞서 치고 나가면서 부상을 입히면
부관이 뒤따라가면서 확실히 블레셋 군인들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아마 우리 교회 주차장의 크기 정도의 제한된 지역에서 
여러 명의 적군과 격렬한 백병전을 벌였다는 설명입니다. 
본문의 설명은 놀랍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에서 보는 장면 같습니다... 

요나단의 예에서 보듯이,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2:18에서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은 행동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 둘은 항상 함께 갑니다.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실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손과 무릎으로 절벽을 기어 올라가서라도 공격을 해야 합니다. 

△(펀 글) “나는 의식하지 않아도,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한 영국인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늘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영국인 귀족이 그 나라의 소년 한 명을 하우스보이로 채용했습니다.
소년은 조용한 가운데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인 귀족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뜻밖에도 영국인 귀족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 집에서 일한 지 꼭 석 달째 되는 날입니다.
제 마음 속에 뜻한 바가 있어서 이제는 이 집을 떠나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를 잘 돌보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국인 귀족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막 정이 들려고 하는데
그만 두고 떠난다고 하니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년을 이렇게 달래었습니다.

"얘야, 월급이 적다면 내가 좀 더 올려 줄 테니, 
떠나지 말고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느냐?"
 
그러자 소년은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돈 때문에 이 집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이 집에 오기 전에 한 가지 결정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회교를 믿어야 할 지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작정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집에 가서 한 3개월 일해 보고,
그 다음 회교를 믿는 집에 가서 또 3개월 일해 보고 난 뒤에
제가 믿을 종교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3개월 동안 기독교를 믿는 집에서 일했으니까,
이제는 회교를 믿는 집에 가서 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소년의 말에 영국인 주인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는 호소하듯이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왜 진작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지나간 다음에 그렇게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일화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천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삶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승리는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14:15-23)

우리의 믿음은 승리로 이어지지만, 
승리는 궁극적으로 주님이 주십니다.

▲1. 전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15-19)

요나단과 부관이 약 20명 정도를 쳤을 무렵, 땅이 흔들렸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거죠. 기습공격을 받아서 당황하는 블레셋 진영은
지진으로 인해 마구 좌충우돌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공포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대인들은 신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지진 등 자연 현상이 나타나면, ‘신이 노하여 우리를 치신다’고 믿었죠.
그래서 이리 저리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16

15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요나단과 그의 부관은 믿음으로 공격했지만, 
궁극적으로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즉, 요나단의 힘으로 승리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당연한 말이지만!

사울의 파수꾼들은 적군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사울에게 보고합니다. 
사울은 인원을 점검해 보라고 명했고, 
요나단과 그의 부관이 없어진 것을 발견합니다. :17

지금 발생한 사태에 대해,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법궤를 자기 곁으로 모셔오라고 제사장에게 요청합니다. :18
그때 법궤가 그 전장에 동원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다른 해석은  삼상14장 해석 및 주석 을 참조하세요)

이때 사울은 또 한 번, 믿음 없는 가벼운 행동을 보여줍니다.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이 제사장에게, 법궤를 향해 손을 펴서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라고 주문을 했나 봅니다.

그런데 블레셋 진영에서 소동이 점점 더해지니까
사울은 제사장에게 ‘네 손을 거두라’고 합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던 제사장에게, 기도를 멈추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울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누가 말한 바와 같이, "사울은 행동해야 할 때 기도하고 
기도해야 할 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역대하10:15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당신이 큰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전투가 궁극적으로 당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것은 얼마나 큰 격려입니까? 당신은 믿음에 신실해야 합니다.

▲2. 당신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20-23)

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요나단의 믿음 때문에 일어난 작은 전투에서의 승리가
엄청난 아군 쪽의 ‘나비 효과’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울과 그의 부하들은 전투에 가담했습니다.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블레셋에 등을 돌리고, 이스라엘 편에 가담했습니다.  :21
 이들은 강제징용 되었던 히브리 사람들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사람들도 나와서 합세했습니다. :22
 
당신이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할 때, 당신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의 싸움에, 동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신약에서 바울에게도 일어난 사실이었습니다. 
살전3: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6
바울의 열정적 선교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같이 불붙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리다고 해서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말고, 
말과 생활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라" 딤전3:7

왜냐면 디모데가 믿음의 삶의 본을 보이기만 하면, 
결국 에베소 교인들은 (당시 디모데의 목회지) 디모데를 호응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가 어리다고 얏보는 게 아니라요.

요나단은 젊었지만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다른 동족 히브리인들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2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건지셨도다." 
하나님은 요나단의 믿음과 사울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셨습니다.
성경은 승리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신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 펀 글) “3년 만에 쇠고기 국을 처음 먹어 보았어요!”
저희가 <사랑마루 사역>을 통해서, 인근에 무료급식을 봉사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에 준비 팀이 도착하고, 그리고 배식 팀이 6시쯤 도착합니다.
6시 반부터 배식이 시작되고, 8시까지 (1시간 반 동안) 식사 나눔이 있고,
이후에 또 정리하고 준비하는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사랑마루’에 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그 할머니가 그날 아침에 무를 썰어 넣은 쇠고기 국을 받아들고 하시는 말씀이
‘3년 만에 쇠고기 국을 처음 먹어 본다’고 하며 울먹이셨다고 합니다.

그 인근에 사시는 독거노인 할머니였다는데요,

여러분 사실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주하게 살다보니까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마루’는 참 잘 시작한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평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분들이 아주 헌신적으로 이 일에 앞장을 서시고
또,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동참을 해서 이 사역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시키신 사역이면,
반드시 동참하는 동역자들을 하나님은 보내 주시니다.

▲마치는 말
지난 13장에서, 사울이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14장에서 요나단이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신앙 생활에 얼마나 큰 격려가 됩니까? 

우리는 세상이 싸우는 것처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승리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승리는 상수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어디에서 믿음을 행사하라고 나를 부르고 계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격려하겠습니다. 
담대하게,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