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삼상21장 절벌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15. 20:29

◈삼상21장 절벌 해석 및 주석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놉에 가서' 
'놉'(Nob)은 '작은 산', '언덕', '산당'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km, 그리고 그 당시의 수도 기브아의 동남쪽 약 4km 지점으로 추정된다(느 11:32,  사 10:32). 
일찍이 블레셋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실로의 성막이 파괴된 이후(4:10, 11) 여호와의 성막은 제사장의 성읍인(22:19) 이곳 '놉'으로 옮겨졌던 것 같다. (*참고로, 기럇여아림 즉 헤브론 땅에도 법궤가 있었음)

한편 다윗이 그때 '놉'으로 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으로 자신의 피신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22:10), (2) 당장 도피 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며(3-6절), (3) 자신의 몸을 보호키 위한 무기를 구하기 위한(8, 9절) 목적 때문이었던 것이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아히야'와 동일시 되는 사울 시대의 대제사장으로서(14:3), 아히둡의 아들이며 비느하스의 손자요, 엘리 대제사장의 증손이다(22:9). 그러므로 '아히멜렉'(아히야)은 이전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에서 사울 왕을 도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에 참가하기도 했다(14:3, 36-42).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아히멜렉의 이같은 반응은, 사울의 포악한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바 혹시 다윗이 사울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어떤 위해(危害)를 가하러 오지는 않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두려움은 사무엘을 급작스레 맞이했던 베들레헴의 장로들에게도 있었다(16:4).

'어찌하여...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없느냐'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이 질문은 왕의 사위이자 국가의 중요 지위(18:30,  20:5)에 있는 자가 호위병도 대동치 아니하고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에 대하여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때 다윗은 자신을 따라 나선 소년 몇 명을 대동하고 있었으나(2절,  막 2:26), 당시 사울에게 쫓기고 있던 자신의 처지를 은폐하기 위해 그들을 부근 어디엔가 남겨두고 단신으로 아히멜렉을 방문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때 다윗은 자신과 아히멜렉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방문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 같다.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왕이...일을 명하고...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다윗이 이처럼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한 까닭은, 만일 자신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왔다는 사실을 아히멜렉이 알 경우 사울로부터의 보복이 두려워 아히멜렉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사울로부터 쫓긴다는 사실을 감춘 채, 마치 자신이 사울의 특명을 받아온 것인 양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사실 이 거짓말은 은연 중 아히멜렉을 위협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같은 속임수로 아히멜렉의 도움을 유도해 냈으나(6, 9절), 후일 그 일로 인해 놉의 제사장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야기시킴으로써(22:9, 10, 18, 19), 그들에 대하여 다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말았다(22:22).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여기서 '약정하다'(야다)란 말은 '알다', '지정하다', '약속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이 소년들과 어떤 장소에서 만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NIV, RSV). 즉 "제 부하들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읍니다"(공동 번역)란 말이다. 
다윗의 이 말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후일 이 사건에 대한 그리스도의 언급을 살펴볼 때(마 12:3, 4,  막 2:25, 26,  눅 6:3,4), 다윗에게는 당시 일행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의 성격상 다윗은 그들을 인근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후 헤어지고 아히멜렉을 혼자서 찾아갔던 것 같다. 즉 다윗은, 자신이 아히멜렉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비밀에 붙이려 했던 것 같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여기의 '떡 다섯 덩이'(five loaves of bread)는 다윗 일행이 당분간의 배고품을 면할 수 있는 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지'는 떡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료 즉 포도주를 가리킴이 분명하다(수9:12, 13).

'있는 대로...주소서' 사울의 추격을 피해 정처없이 도피 생활을 해야만 하는 다윗의 절박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실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든 광야의 도피 생활에서 무엇보다 굶주림을 면하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거룩한 떡' 이 떡은 이전(以前) 안식일에서부터 돌아오는 안식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호와 앞 즉 성소의 떡상에 베풀어 놓았던 '진설병'(陳設餠)을 가리킨다. 이 떡은 일 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새 것으로 교체되어야 했고, 물려낸 떡은 오직 제사장만이 성소의 거룩한 장소에서 먹을 수 있도록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다(출 25:30,  35:13, 39:36,  40:23,  레 24:8, 9).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떡에 대하여 이같은 율법 규정을 두신 근본 정신은 이 떡을 아론의 후손들 곧 제사장들에게만 특혜적으로 먹게 하려는데 있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 앞에 놓여졌던 거룩한 떡이 부정(不淨)하게 소용되는것을 막으려는 데 그 근본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왕의 임무를 띠고 먹을 것을 급히 요구하는 굶주린 다윗 일행에게 성결(聖潔) 여부를 확인한 뒤 진설병을 내어준 일은 후일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율법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라고 인정되었다(마 12:3, 4,  막 2:25, 26,  눅 6:3, 4). 
한편 여기서 성소의 떡상 위에 진열되던 '거룩한 떡' 즉 '진설병'에 대한 언급은 블레셋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실로'(Shiloh)의 성소가 여기의 '놉'(Nob)에 재건되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시사해 준다. 4:11 주석 참조.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적(性的) 정결'은 (1) 성전(聖戰)에 참여중인 자(신 23:9-14,  수 3:5,  삼하 11:11, 12), (2) 특별한 종교 의식에 참여할 자 혹은 참여중인 자(출 19:15,  레 15:18) 등에게 반드시 요구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히멜렉이 진설병을 주는 문제와 관련하여 다윗 일행에게 이같은 성적 정결을 요구한 까닭은, 진설병과 관계된 율법 규정의 근본 정신에 따라 최소한 그 '거룩한 떡'(진설병)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본절을 통해, 시대 상황의 변천에 따라 다윗 시대에는 이미 제사장만이 진설병을 먹는 철칙이 무너졌고, 아울러 그와 관련된 여러 의식(儀式) 율법들은 그 근본정신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삼 일 동안이나' 레위기의 정결법상 성관계를 가진 자는 그 당일에만 부정(不淨)하다는 점에서 볼 때(레 15:18), 여기의 '삼 일'은 아히멜렉에 의해 제시된 조건(4절)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여기의 '삼 일'은 다윗이 숲 속에 숨어있었던 월삭 잔치의 첫 날(20:24)을 기점으로 요나단과 헤어진 후(20:42) 놉에 도착한 그 당일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기간 동안 다윗 일행이 절제 생활을 했을 것은 당연하다. 한편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어제처럼 제 삼일에도'란 뜻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이것은 2절의 내용에 따라 다윗 자신이 왕의 명령을 받아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러 길을 떠났음을 강변키 위한 언급이다.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여기서 '그릇'(켈리)은 (1) 소년들이 지참했던 무기, 옷, 기타 필수품 등을 가리킨다는 견해, (2) 소년들의 떡그릇을 가리킨다는 견해, (3) 소년들의 몸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견해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이 단어의 용례만을 따진다면 (1) (2)의 견해가 타당하나, 본 문맥이 떡을 먹을 주체(主體)의 성결 여부를 논(論)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3)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오늘날' 즉 사울의 특명을 받고 거룩한 임무를 수행키 위하여 떠난 날을 말한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거룩한 떡...진설병' '진설병'(陳設餠, Showbread)은 특별히 여호와께 바치기 위해 고운 밀가루로 만든 떡을 가리킨다. 이 떡은 모두 12개로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데, 6개씩 두 줄로 배열되어 성소의 떡상 위에 진설되었다. 그리고 이 떡은 매안식일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으며, 이미 진설되었다가 물려진 떡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레 24:5-9).

'물려낸 떡' 다윗이 온 후 물려낸 것이 아니라, 이미 물려낸 것으로서 제사장이 아직 먹지 않고 보관했던 떡을 말한다. 이러한 떡은 대개 건조되어서 딱딱한 상태였을 것이다.

'더운 떡' 물려 낸 떡 대신에 새로이 성소의 떡상에 진설한 떡을 가리킨다.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사울의 신하 한 사람' 곧 사울의 목자장 '도엑'을 가리키는데, 이 자가 특별히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22:9, 10에 기록된 바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 사이에 되어진 일(1-9절)을 고해 바친 경로를 말하기 위함이다. 즉 당시 도엑은 다윗과 아히멜렉 간에 되어진 일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사울 왕에게 고발함으로써 무고한 제사장 85인과 놉 땅의 거민과 가축을 몰살케 만들었다(22:9-22). 이처럼 도엑은 간악하고 아부 근성이 농후한 인물로서, 후일 다윗은 그의 시편 52편을 통해 도엑의 잔인성을 질타하였다.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여기서 '머물러 있었는데'의 기본형 '아차르'(*)는 원래 '닫다', '제지하다'의 의미이지만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물러나 있다', '갇혀 있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라는 말은 (1) '성소'라는 말 대신에 특별히 '여호와'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점(2:18),(2) 그리고 여기의 '머물러 있었는데'가 수동형으로서 의무에 따른 필요 행위를 나타낸다는 점 등에서 볼 때, 어떤 종교적 의식 절차의 이행을 위하여 성막에 일정 기간동안 체류한 사실을 뜻한다. 
즉 '도엑'은 (1) 에돔 사람인 까닭에 개종을 위한 할례를 받거나(창 17:23, 27), (2) 이미 개종을 했었다면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거나(1:11), (3) 혹은 어떤 병에 걸려서 제사장의 지시를 받기 위함이거나(레13:4), (4) 아니면 범죄를 속함받고자 정한 제사를 바칠 목적 등으로 당시 대제사장과 여호와의 성막이 있던 놉으로 갔을 것이다.

'도엑...에돔 사람' '도엑'은 '불안'이란 뜻이다. 그리고 '에돔 사람'은 야곱의 쌍동이 형 에서의 후손들로서 팔레스틴 지방과 인접한 남부에 살고 있었다(창 36장). 바로 이같은 혈연적, 지역적 사정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에돔 사람들 중에는 개종(改宗)하여 이스라엘 사람이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사울 왕의 목자장(牧者長)이란 요직을 맡을 정도가 된 '도엑'은 이미 개종하여 완전한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여기서 '에돔'이라는 도엑의 과거 국적을 굳이 밝힌 까닭은, 그로 인하여 머지 않아서 결코 상서롭지 못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의도한 때문인 듯하다(창 25:25, 30,  민20:14-21,  삼하 8:13, 14,  왕상 11:14-22).

'사울의 목자장' 당시 가축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는 점에서, '도엑'이 사울 왕의 목자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사울 왕으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과는 달리 70인역(LXX)은 이 말을 '사울의 노새를 관리하는 자'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근거는 희박하다. 

또한 최근 들어서 몇몇 저명한 학자들은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여기 '목자'(로임)를 '로임'이 아닌 '라침', 즉 '달리는 자'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기의 '달리는 자'는 왕의 병거보다 앞서 나가는 왕의 시위대를 가리키는데(8:11), 다라서 도엑을 '달리는 자의 우두머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견해는 도엑이라는 인물이 (1) 왕의 시위대 가운데 끼어 있었으며(22:17, 18), (2) 많은 사람들과 가축을 쳐죽일 만한 무예 및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뒷받침 된다고 한다. 참고할 만한 견해이다.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사(武士) 다윗은 무엇보다도 무기가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정처없는 도피생활을 하는 중 어떤 위험에 직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소한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방어할 무기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 왕의 급한 용무를 핑계로 아히멜렉으로부터 무기를 제공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이 후일 도엑의 입을 통해 사울의 귀에 들어가자, 놉의 제사장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모반한 줄로 알고 사울은 그들을 모두 몰살시켰던 것이다.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 17:50-54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다윗은 이 칼로 골리앗의 머리를 벤 후, 이 칼을 자기 장막(베들레헴)으로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칼이 이때 놉의 성막에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이 그 칼을 승리의 기념물로 하나님의 성소에 봉헌했기 때문일 것이다(17:54 주석 참조). 한편, 그런데 이 칼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징표였으므로, 제사장은 그 칼로부터 진흙과 습기와 녹을 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보자기에 조심스럽게 싸서 제사장의 '에봇'(Ephod, 출 28:6-14)을 두는 거룩한 곳에 보관하였던 것같다.

'내게 주소서' 골리앗으로부터 탈취한 후 하나님께 봉헌한 칼을 다윗이 다시 되돌려 받은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그 칼은 도우심과 은혜의 표시였다. 따라서 다윗은 그 칼을 뽑을 때마다 그로 하여금 거인 골리앗을 능히 이기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기억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2) 그 같은 봉헌과 헌신의 표시였다. 즉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승리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기 위해 그 칼을 성소에 봉헌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꼭 필요한 때 다윗에게 다시 되돌아왔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헌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시간, 재물 등) 필요 적절한 시기에 여러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려지는 것이다.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두려워하여...도망하여' 여기의 '두려워하여'란 말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다. 다만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일 뿐이다. 한편 '도망하여'(바라흐)라는 동사는 본서의 19:18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이 자신의 집을 떠나는 장면을 기술하면서도 계속 반복적으로 이 동사만을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사울의 위협이라는 동일한 원인에 의해 계속적으로 도망을 다녀야만 하는 그 비참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19:18,  20:1). 
그런데 여기 놉(Nob)으로부터의 '도망'은 사울의 신하 도엑으로 말미암은 황급한 도주였을 것이 분명하다(22:22).

'가드 왕 아기스' '가드'(Gath)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5:8)이다. 그 위치는 놉의 남서쪽 약 37km지점이다. 수 11:22 주석 참조, 한편 '왕'(멜렉)이라는 호칭은, 블레셋 족속들에게는 중앙 집권적 왕이 없으며 다만 각 도시 국가를 다스리는 방백만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5:8,  17:8)에서 볼 때, 여기의 '왕'은 가드 지역만을 통할하는 '방백'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라는 이름은B.C. 1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애굽의 문헌에도 나오는데, 이는 그당시 애굽에 침입했던 '크레타 인'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아기스'라는 이름이 칠십인역에서는 '앙쿠스'로 번역되었는데, 이와 거의 비슷한 '앙키세스'라는 이름이 호머(Homer)의 서사시에도 나온다는 사실들은, '아기스'라는 이름이 비셈어계 즉 헬라 계통의 이름임을 잘 증명해 준다(4:1). 

한편, 후일 본 사건을 읊은 다윗의 시편 34편의 제목에는 여기 블레셋 왕이'아비멜렉'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것은 애굽 왕의 공식 명칭이 '바로'로 통용되듯, '아비멜렉'은 가드 왕의 공식 명칭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 '아기스'는 실제 다윗 당시의 가드 왕 곧 아비멜렉의 이름이다. 
그리고 또 한편 다윗이 굳이 '가드'로 도망간 이유는 (1) '가드'는 엘라 골짜기 입구에 위치한 블레셋 국경의 첫번째 도시로서, 이방 국가로서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고, (2) 다윗은 자신이 가드 출신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후(17:49-51) 벌써 수 년(약 3-4년)이 경과하였으므로, 그들이 당시와는 많이 변모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으며, (3) 오히려 블레셋 족속의 가장 큰 적인 이스라엘의 사울로부터 쫓겨다니는 도망자로 처신할 때, 어쩌면 가드의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당시 다윗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식한 까닭은 다윗이 사울과 대등한 위치로서 백성들에 의하여 칭송되었기 때문이다(18:7).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볼 때, 블레셋의 신하들은 다윗을 마치 자신들의 방백처럼 여러 명의 왕중의 한 사람, 즉 지역적 군주(local prince)로 봤음이 분명하다(수 12:1, 7). 결국 이것은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와 그 전승가(18:7)로 말미암아 사울은 다윗의 그늘에 묻히고, 다윗은 이방의 적들에 의해 그 땅의 영웅으로 부상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울...천천이요 다윗...만만이로다' 이 노래는 다윗의 전공(戰功)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에 대해 대승을 거두었던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전승가(戰勝歌)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널리 유행했던 이 노래는 이방 국가에까지 퍼져, 그들도 잘알고 있을 정도였다. 18:7 주석 참조.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이 말'은 아기스의 신하가, 다윗이 자신들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영웅적 인물임을 알고, 이 사실을 자신의 왕에게 상기시켰던 것을 가리킨다(11절). 바로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가 자신을 몰라 볼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피신해온 다윗에게는 심히 두려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미친 체하고'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 뒤에 '그들의 손 안에서'(베야담)라는 말이 있다. 즉 이것은 다윗의 거짓 미친 짓을 아기스의 신하들이 강력하게 제지시키려 애썼음을 뜻한다. 한편 여기의 '미친 체하고'는 문자적으로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다'란 의미이다.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여기서 '그적거리다'(타와)는 '휘갈겨쓰다'(scribble)란 의미로서, 곧 뜻도 없는 글자를 되는대로 마구 낙서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78:41,  겔 9:4). 

한편 여기의 '대문'(텔레트)은 성경에서 '성문'(삿 16:3,  느 6:1). '방문'(왕하 4:4, 5,  대하 29:7)등 모든 문(門)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에서, 과연 어떤 문을 말하는지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급된 상황을 통해서 볼 때 왕과 신하가 함께 정사(政事)를 의논하던 방의 문으로 추정함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한편 70인역(the Septuagint)은 이 말을 '대문짝을 쿵쿵 때리다'로 번역했는데, 벌게이트 역(the Vulgate)도 이를 따랐다. 아무튼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을 최대한 미친 자로 가장하여, 손가락으로 낙서를 휘갈기며 주먹으로 대문짝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을 말한다. 또한 다윗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미친 자 행세는 아마도 악신(惡神)들린 사울의 행동에서 보고 배웠을 것이다. 이로 볼 때 성도에게 임하는 선악간의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합력하여 마침내 선(善)이 됨을 알 수있다(롬 8:28).

'침을 수염에 흘리매' 

'침'은 끈적끈적하여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일으키는 분비물인데, 이러한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는 행위는 미친 자의 행위로는 가장 적합한 행동이었다. 한편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요동치 않는 피난처가 되어 주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기스왕을 두려워하여(12절) 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를 모면케 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훗날 다윗은 시34, 52, 56편 등에서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본절은 아기스 왕에게 자신을 전혀 두려워할 가치가 없는 미친 인물로 인식시키려했던 다윗의 의도가 일차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고대 중근동에서는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감으로써 미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친 사람과의 상종(相從)을 적극적으로 기피하였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다윗은 그 위태한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아마도 아기스는 가드의 백성들 중 미친 자들을 이전에도 종종 보았던 것 같다. 한편 유대 전승은 이 말에 근거하여 당시 아기스의 집안 중에 미친 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여기의 이 단어(솨가)는 때때로 황홀경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선지자의 괴기한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왕하 9:11,  렘 29:26, 호 9:7). 따라서 바로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 왕이 자신의 민족 중에서 황홀경에 빠져들어가 이교적(異敎的) 예언을 하곤 하는 예언자들을 많이 보아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더욱이 이같은 추측은 본절 초반부의 '내게 마치광이가 부족하여서'라는 아기스 왕의 언급에 의해서도 뒷받침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그래 감히 이런 자를 나의 궁에 들일 작정이냐?"(공동번역)란 뜻으로, 곧 당장 이 궁에서 그를 쫓아내라는 의미이다. 이는 결국 다윗의 미친 자 행세가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다윗은 이때 아기스의 궁을 도망쳐 나와 그 길로 아둘람 굴로 피신했다. 아둘람 동굴에서부터 다윗의 인생에 새 장이 열리는데, 그러므로 아기스 앞에서의 고초를 겪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을 것이다. 거기서 일이 잘 풀렸으면, 아둘람 동굴에서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