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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4:14~17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LNCK 2023. 3. 28. 21:30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고전4:14~17       23.03.12.일부 녹취
                                                                               *'교사' 관련글  
저는 요즘 자녀세대를 보면서 
예전에는 17살 18살까지가 집중적으로 신앙교육을 하는 때라고 여겨졌는데 
요즘은 10~12살이면 더 이상 신앙교육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미디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고 
인본주의, 세속주의가 강력하게 역사 하기 때문에 
더 어릴 때 집중적으로 신앙교육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만난 무신론자가 초등학교 5학년 짜리였어요.
'나는 무신론자라고... 나는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기 싫다고요!'

만약 우리 자녀가 몇 달을, 몇 년을 고민하다가 
그 얘기를 입밖에 꺼내면 
그때부터 교회 데려가기가 거의 불가능 해져요. 

여러분의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가 
굉장히 어려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돼요. 

▲그런데 그렇게 자녀들을 양육할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되겠는가요? 

그건 바로 부모(아비)의 마음이고, 사랑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사랑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존재인 것이죠. 

이 순서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이고, 가르치는 것은 그 다음 순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 없이 가르치게 되면 
굉장히 많은 상처가 생깁니다. 

여러분 주변에 지인들, 뭐 친구관계, 또 교우들도 있죠.
그런데 "사랑 없이" 충고해주는 친구 관계, 교우 관계는 멀어지게 돼 있어요. 

또 사랑 없이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멀어지게 돼 있어요. 

사랑 없이 충고하는 그런 교인들, 
사랑 없이 조언하는 목회자...
'쓴 소리가 바른 소리다' 라는 말도 하죠.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입 바른 소리'가 되는 거죠. 

'입 바른 소리'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배우자가 '입 바른 소리'는 하는데 
전혀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오히려 상대를 분노하게 만들어요. 

물론 평신도 지도자들이, 소그룹에서
성경공부도 준비도 열심히 하시고, 그래서 잘 가르치셔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을 양육해서 살리는 핵심 모티브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살려 주셨는데 
내 인생이 정말 어두울 때, 내 인생이 완전히 밑바닥 일때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 사람도 경험 하기만 하면 
그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이 사람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텐데...' 

그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가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인간관계, 양육의 관계는 
모든 것이 '사랑'이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중등부 전도사를 할 때입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하게됐어요.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이죠. 처음으로 중등부 전도사를 할 때 
중등부 예배를 가봤는데,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중등부 예배 시간에, 특히 설교 시간에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거예요. 
학생들이 거의 설교를 안 듣고 그냥 옆사람하고 얘기만 하는 거예요.

소위 중학생들을 '외계인'이라고 하거든요. 
초등학생은 그래도 좀 말을 듣는 편이고, 
고등학생은 그래도 앞에서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면 합리적으로 들어 주거든요. 

그런데 중학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나이입니다. 
그래서 중학생들이 광고시간보다 설교시간에 더 떠드는 거에요. (원래 광고시간에 제일 많이 떠드는데)

'와~ 내가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매주 설교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하나님 이 아이들이 저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주님을 전할 때 
이 아이들도 그 좋으신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등부 전도사를 5년간 계속 했습니다. 
200여명 되던 중학생들이, 400~450명 까지 부흥을 했었어요. 

선생님들이 20명으로 시작을 했는데 
나중에 선생님들이 120명이 되고 
저희 중등부가 참 행복한 공동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많은 선생님들과 동역을 했는데, 유독 한 분이 기억이 납니다. 
경상도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일을 하는 30대의 
아주 사투리 억양이 센 그런 선생님이셨어요. 

그러니까 서빙고 온누리교회 같은 경우에는 
용산, 여의도, 서울에서도 가장 도심에 사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거기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교감이 될까?' 
이게 제 개인적으로 많이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이 선생님 주변에, 아이들이 너무너무 선생님이 좋아서 
졸졸 따라 다니는 거예요. 
'야 도대체 비결이 뭘까?' 

그래서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제가 지나가면서 슬쩍 봤는데 
성경공부를 뭐 그렇게 재밌게 가르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도대체 비결이 뭐지?' 
그리고 1주, 2주, 한 달, 두 달 이렇게 지켜보니까 
이 선생님이 금요철야를 하고, 새벽기도를 하고... 기도하는 분이었어요. 

근데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날마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는데,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주일 날 중등부 예배 때가 되면 
성경공부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를 해 주시는데 

애들이 한주 한주 놀라는 거에요. 
'아니 내가 부모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내 마음을, 어떻게 선생님이 알고 계시지?'
'어떻게 내가 고민하는 거,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선생님이 알고 계시지?' 
(기도할 때 성령님의 '지식의 말씀'같은 은사가 임해서, 뭔가를 파악하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들의 영혼이 녹는 거죠. 

그래서 그 선생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따르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사역을 한다는 것이 
내가 지식적으로 성경을 잘 알아서, 그래서 사람을 양육하는 거 아닙니다. 

정말 여러분의 마음이 영적인 아버지가 되고 
영적인 어머니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흘러가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죠. 

▲두 번째로, 아비의 마음을 갖는 것은 
내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바울이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녀를 낳아 본 적이 없는데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의 자녀들아!' 이렇게 부르면서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세워지기까지 
내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라고 편지했죠.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 또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가장 속을 썩였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 두 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합니다. 
너무 너무 사랑했고, 그들을 긍휼히 여겼고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회복되기를 원했던 거죠. 

제가 온누리교회에서 20여년 사역을 하면서 
순장 교육을 할 때 항상 이야기하는 게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여러분의 소그룹 모임을 하면서 배정 받는 멤버들이 있다는 것이죠. 
근데 다 좋은 분들인데, 가끔 보면 계속해서 삐딱한 질문을 하고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그러는 분들이 모임에 있을 수 있어요. 

근데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왜 그 자리에 계속 나올까?' 
그 분은 하나님 앞에 뭔가 해답을 찾고 있는 거거든요. 
더 이상 안 나올 수도 있는데, 해답을 찾고 있는 거에요. 

근데 가끔은 우리 소그룹 리더들이, 버거운 거예요.
'아~ 저 사람이 너무너무 나를 괴롭히는데, 좀 한 주간 안 나와주면 안 될까?' 

그런데 그가 정말 소그룹에 안 나오면,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이렇게 안부를 물어야 되는데 
전화를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한 주간 전화를 안 하고.. 
'혹시 다음 주간에도 안 나와 주지 않을까?' 기대하죠.

또 한 주간 안 나왔어요. 근데 또 한 주 전화를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음 가운데 '좀 다른 모임으로 가 주면 안 될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근데 만약에 그 사람이 여러분의 소그룹 멤버가 아니라 
여러분 자녀라면, 그런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보면요. 
자녀가 나하고 성격이 상극인 애들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애가 하는 말마다
부모인 내 마음이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 그 자녀가 학교에 갔다가
'오늘은 집에 안 들어와 주면 어떨까?' 
'오늘은 우리 집이 아니라, 좀 다른 집에 가서 살아 주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안 하죠. 

여러분, '가르치는 자'의 마음 과 '부모'의 마음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맡겨진 영혼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품는 리더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고전4:15절은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 무척 이 말씀을 사랑합니다.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4~5년 사역을 하면서 
처음에 성인이 한 240명 이었을 때였는데 
한 2년~ 2년 반 사역을 하면서 1천명 넘게 부흥을 했어요. 

이민교회가 부흥을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근데 성인사역도, 차세대 사역도, 교회연합 사역도 다 부흥을 했는데 
청년부만 부흥을 안 하는 거예요.

그 타운이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타운이었어요. 
환경이 좋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은 야망 있고 꿈이 있으면,
동부로 가든지, 미국으로 가든지.. 그 타운을 떠났고

밴쿠버에 계속 남아있는 청년들은 
그냥 캄 calm 하고 평화로운 자연 환경이 좋아서 남아 있는 애들이거든요. 
예배 때도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했어요. 
청년예배 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요. 

근데 저희가 그 당시 빌려서 사용하던 크리스천 학교 강당이
극장식 좌석이었어요. 

그러니까 청년들이 설교시간에 한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누워서 설교를 듣는 거예요.
제가 어느 날 너무 답답해갖고 좀 뭐라고 혼을 냈어요. 

'내가 정말 많은 청년 집회를 다녀봤지만 
너희들처럼 예배 드리는 애들은 없다!'

그래서 한참 애들한테 쓴소리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하나님이 저를 책망하시더라고요. 

'네가 이 청년들을 사랑하니? 
이 청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청년들한테 쓴소리는 하지 마라!' 

그러면서 제게 '네가 가르치는 자의 마음이냐, 아버지의 마음이냐?' 
이렇게 책망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성인교구를, 부교역자들한테 다 맡기고 
제가 청년부 담당 목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청년 임원들, 순장들 불러다가 
저희 집에서 밥 해 먹이고, 같이 삶을 나누고, 
눈물로 기도하고... 그러니까 참 희한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교회에서 순장모임을 할 때는 저녁 9시 반만 되면
'목사님, 끝내주세요. 집에 가야 됩니다!' 그러던 청년들이 

제가 저희 집에 불러다 놓고 제 자녀들처럼 사랑하고 축복해 주니까 
밤 12시, 1시가 되도 집에 안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 되다 보면 
관계가 상당히 형식화 됩니다. 

그리고 만났을 때는 굉장히 환하게 웃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거 같은데 
손도 잡아 주는데... 돌아서면 서로 기억하지 못하고... 

기도 제목도 서로 나누고 그러는데 
기도 제목을 나눌 때 뿐이고,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에 
그 사람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 하는가요? 

'우리의 관계가 진정성 있는 관계인가?' 라는 것이죠. 

'1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씀했어요. 
1만명의 스승도 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만 
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넥타이가 하나 있습니다. 
근데 그 넥타이를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저의 굉장히 소중한 한 친구가, 제게 선물을 해 준 넥타이 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중등부 전도사 때, 알게 된 중학생인데
분위기가 굉장히 우울해요. 

제가 중학생 때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아주 우울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러다가 제가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이 변화되고,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딱 그 나이 때 애들을 보면 견적이 나와요(환하게 파악이 돼요). 

얘가 얼굴에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고 있어도 
'이 아이가 굉장히 우울하구나, 고민이 많구나!' 이런 게 보입니다. 

근데 그 당시에도 늘 죽음에 대해서 묵상을 하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20년째 여전히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는 (커서) 성인입니다. 

근데 머리는 천재적인 사람이에요. 
그때 중학생때부터 멘사클럽 회원이었거든요. 

그런데 말하자면 아이가 너무 똑똑해서 
'세상은 암울한 곳'이라는 것을 참 빨리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마음의 상태인 것을 
가족도 이해가 잘 안 되고, 친구들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근데 저는 그런 마음을 (제가 중학생 때) 가져 봤기 때문에 
그 학생에 대해서 공감을 해 줄 수가 있었어요. 

근데 20년째 '죽고 싶다'는 얘기만 
이메일로 2장, 3장, 4장 이렇게 
한 두 달에 한 번씩 서서 제게 보내옵니다. 

근데 제가 거기에 공감을 해 줘요. 
'세상은 진짜 참 어두운 곳이다. 
인생은 긴 suffering 과 짧은 해피니스 로 구성된 것이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거 이해가 된다. 

세상을.. 나도 사명자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 주신 사명을 빨리 마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너의 곁에 계신다.'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와 그렇게 20년 동안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또 한국에 나오면 이제 인사하러 오고 하는데,

최근 2~3년 보니까, 이메일의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목사님, 그래도 제가 요즘은 죽음에 대해서 좀 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세상을 사는 것도, 그냥 살만하다는 생각이 좀 듭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저를 이해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메일의 한 3분의 1정도를 
계속 고맙다는 이야기를 써서 이메일을 보내오고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매일 새벽,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 주십시오!' 

'참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죽음을 묵상하는 아이로 자랐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기 원하세요. 
여러분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냥 내가 같은 교회에 있을 때 
같은 소그룹에 있을 때 
그냥 사람 인력관리 하듯이가 아니라

한 번 내게 맡겨 주신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소그룹에 5개월을 있었던, 10개월을 있었던,
몇 년을 있었던 간에,

평생에 서로가 중보해 주고 
그 사람의 회복을 위해서, 승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그런 평생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