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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0장 네가 정녕도로 찾으리라

LNCK 2023. 3. 30. 17:12

https://blog.naver.com/karamos/80139236166

◈네가 정녕도로 찾으리라        삼상30장        2008년 설교 스크랩, 정리

※다윗이 시글락에서 아말렉에게 붙잡혀갔던 자기와 6백명 군사들의
가족들을 모두 다 구출해 내는 본문을 통해서, 
오늘날 마귀(아말렉)의 세력에 붙잡혀 간 우리 가족들을 구출해 내야 한다는 메시지!

◑서론

다윗은 용기의 사람, 승리의 사람, 정복의 사람으로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했죠.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만 사울 왕이 시기심이 나서 
자기의 사위가 된 다윗을 죽이려고 십년 이상을 좇아다닌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 가운데 여러 가지 전쟁이 있었습니다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전쟁이 오늘 본문에 있는 전쟁입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전쟁도 왕위 쟁탈을 위한 전쟁도 아닌 
가족구원을 위한 전쟁(Family Rescue War)이었습니다. 

시글락에서 다윗과 6백명의 군사가 망명해서, 아기스의 용병으로 살고 있는데 
사무엘상 28장에 보니 다윗에게 아주 곤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과 군사 600명도 블레셋 군대에 소속되어
자기 동족 이스라엘과 싸울 수밖에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된 것이었죠.

그런데 블레셋 다른 방백들이 들고 일어나 아기스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하죠. 
삼상29:4절에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다윗이 벌써 그런 얘기를 눈치 챕니다. 그리고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29:8절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아기스)의 
원수(사울)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사실 다윗은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도, 여기서는 슬쩍 연기를 하고 있죠.
다윗은 차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같은 거짓된 말을 한 까닭은, 
1)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2) 또한 아기스가 한 말(:7)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죠. 

만일 그때 다윗이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고소한 다른 방백들의 말(4, 5절)을 
참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자 아기스는 “그러지 마라. 나도 너를 지금 전쟁에 가담시키고 싶지만 
내 방백들이 너를 못하게 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다음날 새벽에 시글락으로 돌아갑니다. 30:10

‘새벽에 돌아가라’고 한 것은, 내일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조용히 진에서 물러나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등산도 보통 새벽에 출발하죠.
중간에 해가 지면 애로가 많기 때문에, 긴 여정은 보통 새벽에 출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다윗의 6백 용사 대가 아벡에서 
시글락으로 회군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동족을 죽이는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면제되었고,
-그 사이 시글락을 약탈하고 떠난 아말렉을, 또 추격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6백 용사들의 회군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과 섭리였습니다.

◑1. 시글락의 완전한 황폐

전쟁터에서 시글락까지 3일길이 걸려 돌아왔습니다. 약 80킬로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다윗이 인생에서 행한 가장 크고 어려운 전쟁인 
“가족 구원을 위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돌아오니, 시글락은 큰 비극의 현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 와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과 아이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29:2~3

이렇게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간 것은, 창세기에 요셉을 그렇게 했듯이
애굽 등지에 노예로 팔아먹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죠.

▲오늘날 수없이 많은 성도의 가정이 이같이 아말렉에게 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비겁하고 사악한 족속이 아말렉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 한마디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한 족속, 
하나님께서 아예 지면에서 쓸어버리라고 
이스라엘의 사울 왕에게 명한 족속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삼상15:2~3

아말렉은 사단과 마귀의 상징입니다.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할 때에 
뒤떨어진 노약자와 아이들을 골라서 공격했습니다. 

이들은 매우 비겁했습니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끌려가서 
정권이 넘어가 페르시아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에 
아말렉의 후손 ‘아각 사람 하만’이라고 하는 자를 통해서 
유다인을 전멸시키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삼상15장에도 ‘아각’이 나오죠. 아각은 '바로'처럼 아말렉 족속의 왕위를 뜻하죠.
하만이 아각 사람이란 뜻은, 그가 ‘아말렉 왕족’이란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비가 되게 해서 도리어 아말렉 족속 
7만5천을 다 죽게 한 사건이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약한 곳만 골라서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말렉의 전략이요 사단의 전략인 것입니다.

▲마귀도 우리의 아내들이 외로워 할 때에 공격합니다. 
남편이 새벽에 직장 나가 밤늦게 술 취해서 들어오고 
그 다음날도 새벽에 나가 술 취해서 늦게 들어오게 되는 생활이 계속되면 
외로운 마음이 들어 결국 바람을 피게 됩니다. 

또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놀 때 
사단은 공격하여 우리의 자녀들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아말렉이 시글락을 공격한 것은 우연이 아니였습니다. 
남자 6백 용사들이 집을 비우니까,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삼상27:8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말렉을 약탈했다 그랬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아말렉은 다윗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으므로 
다윗에게 복수 하리라는 계획을 해서 의도적으로 침노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이처럼 성도 가정의 약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침노합니다.

오늘날 TV, 인터넷, 각종 음악, 잡지를 통해서 
사단은 우리 가족들과 자녀들을 하나님께 반항하는 존재로 만들려 합니다. 
심지어는 학교 교육도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반항하는 존재로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지게 하려 합니다. 
아말렉이 시글락을 파괴했듯이 
21기에 사단은 이런 일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설교하는데 한 부인이 앞에서 펑펑 울고 있었죠. 
그래서 제가 은혜 받아서 우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이 방송국 PD인데 자기를 버리고 방송국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놀아 다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이 이처럼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 즉, 사단 때문입니다. 
사단이 이렇게 성도의 가정에 취약한 부분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시글락의 황폐가 주는 슬픔

가정이 이렇게 파괴되면 사람이 갖는 감정은 슬픔뿐입니다. 
다윗의 군사 600명은 전쟁에 능한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전쟁에서 적들을 많이 죽여 봤고 마을들도 많이 불태워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 자신의 자녀와 아내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자신들의 주거지가 불타게 되자 마음이 크게 상했습니다. 

30:4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보니, 강도가 들어와서 불을 지르고 
아내와 아이들을 다 잡아가 어디 갔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을 당한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슬피 울 것입니다. 

다윗과 군사들도 모두 기력이 없도록 웁니다. 
집이 불탄 것이야 다시 세우면 되고, 재산 빼앗긴 것이야 다시 찾으면 되고 
못 찾아도 그만이지만, 아내와 자녀들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잃고 자녀를 빼앗기는 것은 가슴이 부스러지는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슬퍼서 울되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를 잃고 울은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야곱입니다. 창37:35절에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이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낳았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그만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고 그 형들은 염소의 피를 옷에 발라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랫동안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렇다고 해서 음부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도 죽어 내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야곱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잃어 본 사람들은 이 울음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사무엘하 18장에 다윗은 자신에게 반역하고 자기를 왕위에서 쫓아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후궁들을 백주에 모독한 못된 아들 압살롬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자기를 반역하고 자기를 죽이려 했던 자식
임에도 불구하고 애통해서 울었습니다. 
아마도 성경 가운데 가장 애절한 구절이 삼하18:33절일 것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무리 못된 자식일리라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이런 것입니다.

▲저의 인생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터울이 11년이나 납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딸이 하나 있는데, 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 처가 전도사로 매우 바쁘게 사역을 하다가 
그만 임신 9개월 되었을 때 전치태반이 되어 수술을 했으나 
아이는 하루 만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딸을 산에 묻고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일찍 죽거나, 마귀에게 사로잡혀가는 것(타락)을 보는 일은 
아무리 위대한 용사라도 가슴이 미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다 해도 재산이 다 날아간다 해도 가족이 이처럼 
포로되어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TV를 보며 가장 많이 울은 것은, 남북이산가족이 처음 상봉할 때입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애통 없이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만나 좋아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6.25 전쟁이 나서 “잠깐 갔다 올께” 했더니 
그만 그것이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젊은 시절에 만났던 그 여인이 늙어서 백발이 되어 40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애절하고 기가 막힌 일이겠습니까?

▲저는 목사로서 수많은 가정들을 볼 때에 동일한 심정입니다. 
부모는 교회에 잘 나와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자녀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고 세상에서 마귀의 종이 되어 
방황하고 타락하며 살아갑니다. 

마귀는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래를 진멸하려고 바쁘게 우리의 약한 자녀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비겁하고 야비하며 잔인했던 아말렉 족속처럼 
마귀는 우리의 자녀들과 가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다윗을 돌로 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그런데 다윗도 아히노암과 아비가일 두 아내를 뺏겨 너무나 슬픈데 
이런 다윗을 죽인들 가족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다윗을 돌로 치겠다고 하자 다윗이 “다급하였다(greatly distressed)”라고 했습니다. 
아주 크게 괴로워했다는 것입니다. 

가족과 자녀를 빼앗긴 고통은 이처럼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인 것입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방향조차 잡을 수도 없는 그런 슬픔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두 가지 옵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인생을 거기서 포기해버릴 옵션이고 
또 하나는 자기 스스로 안되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옵션입니다. 

▲다윗은 포기하고 주저 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내 인생은 절망적이다. 
사울은 나를 죽이려하고 아내와 가족들은 다 아말렉에 빼앗겼고 
내 군사마저도 나를 돌로 치려한다. 내 인생은 사면초가로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로다.” 이렇게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있고 
하늘의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시고 
그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시편 55편은 다윗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다시 의지한다. 
내가 사자의 공격에도 살아남고 곰의 공격에도 살아남았는데 
그것은 내 힘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였도다.”
라며 하나님께로 간 것입니다.

30:7절에 보니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고 말합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제사장은 속에다 하얀 옷을 입고 겉에다 남색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겉옷 위에, 밑에까지 내려오는 ‘앞치마 조끼’ 같은 것을 걸치는데 
이 앞치마가 바로 에봇입니다. 

그런데 이 에봇을 왜 가져오느냐? 
이 에봇에는 정사각형으로 된 흉패(가슴판)가 달려있는데 
흉패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이 달려있습니다. 

이 흉패 안에 주머니가 있는데, 우림과 둠밈이라는 두 개의 돌이 들어있죠. 
이 우림과 둠밈이 바로 왕들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사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번 전쟁을 해야 합니까? 하길 원하시면 
우림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해가지고 우림이 나오면 전쟁을 하고 
둠밈이 나오면 안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봇을 가져오라는 말은 중대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그 뜻을 물어보아야 됩니다.

8절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군사 600명을 데리고 아말렉을 추격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200명은 힘들다고 낙오해 버리고 
400명만 데리고 아말렉을 추격하는데 
아말렉이 동서남북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병들어 죽어가는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그 소년이 아말렉 군대가 있는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아말렉은 이 애굽 소년 하나를 사람대접을 안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업신여기고 인격모독을 하고 그러면 
그 사람이 나중에 기업 전체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굽 소년 하나가 병들었다고 하니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지 않고 
쓸모없다고 버려버립니다. 이 아말렉이 이렇게 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다윗 군대를 인도하여 가보니 삼상30:16절에 
“그가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탈취하였음을 인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다윗의 군대는 400명밖에 안되는데 아말렉 군대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온 땅에 편만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숫자로 하면 상대도 안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춤추고 있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더 먹고 마시고 춤추며 취해서 해롱해롱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새벽에 400명이 일어나서 저녁 저물 때까지 모두다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다 죽이고 나서 보니 살아남은 것이 있습니다. 

17절에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8~20절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은 빼앗긴 아내와 자녀를 다 찾아왔습니다. 
거기다가 덤으로 양떼와 소떼까지 전리품으로 다 받아왔습니다. 
대승리를 거두고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니 낙오했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400명의 군사가 “저들은 낙오했던 자들이니 양떼 소떼는 주지 말고 
그냥 처자식만 줍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러지 마라. 너희가 승리한 것이 너희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골고루 나눠줘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다윗은 가까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넉넉한 승리를 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다윗은 명실상부한 왕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이 마귀의 종이 되어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으려 하십니까? 
자녀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웃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인 것입니다. 

다윗이 아내와 자녀들을 구한 것은 문자 그대로 
가족구조전쟁 Family Rescue War 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족들을 빼앗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마귀의 의도적인 전략을 향한 전쟁입니다. 

참으로 힘든 전쟁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용돈을 주고 
또 학교를 보냈다고 해서 부모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 한 영혼입니다.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대로 있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잃어버린 영혼(lost soul)입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본 때가 언제입니까? 
가족구원을 위해서 전쟁하듯이 전도를 해볼 계획이 있으십니까? 
그것을 슬슬 한 두 번 해보고 안된다고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

가족들이 불신앙하여 지옥가고 있는데, 이단 종교에 빠져 있는데, 
거짓된 종교에 빠져 있는데, 말도 안 되는 것을 무슨 종교라고 믿고 있는데 
가만히 계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족 구원을 위한 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번영을 부수적인 전리품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는 음성을 30:8
믿으시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속죄(代贖罪)    -감동글 스크랩-    ▣<아버지>관련글 모음 )

'기름때 묻은 원숭이의 미국 이민 이야기'라는 책을 쓴 송석춘 씨 이야기

공군 대위로 전역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차장으로 고속 승진했습니다. 

당시 대졸 초임이 2만 원일 때 
자신은 15만 원을 받았습니다. 

좋은 직장을 퇴사하고 아들 둘, 딸 셋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왔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인 큰 아들이 교도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겠다고 이민 왔는데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미국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아들은 반격을 가했고, 
이 때문에 교장에게 여러 차례 
불려가 체벌을 받았습니다. 

불만이 쌓인 아들은 
어느 휴무일 이틀 동안 
다른 미국인 친구와 함께 

학교에 들어가 
건물 이곳저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지역신문 1면에 났고 
온 가족은 좁은 응접실 
구석에 모여 앉아 통곡했습니다.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했다”는 비난은 기본이었고, 
등하교 때 “그 집을 피해 가라”는 한인들도 있었고, 

“같은 교육구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며 
전학을 시키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나이 젊은 어떤 한인은 면전에서 
“당신 자식 교도소에 갔다며?” 
하고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겨우겨우 섬기던 교회에서 조차도 
성도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 출석을 끊었습니다.

교장은 “세상에 이렇게 학교 건물을 때려 부순 사건은 처음입니다. 
카운티 (면이나 읍) 내의 어떤 학교에도 전학이 불가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들 죄가 바로 내 죄'라고 생각하고 속죄를 위해 
매주 주말에 온 가족을 동원하여 학교 청소를 하겠다고 했고, 
교장은 '별난 아버지'라는 표정으로 허락했습니다. 

이 별난 행동은 나중에 다시 한 번 
플로리다 주 주류 사회를, 
아니 전 미국을 흔들었습니다.

교도소에 간 중2 아들의 속죄를 위해 
부부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학교에 나와 청소하는 장면을, 

운동장을 청소하는 광경을 AP통신 기자가 
“가족의 명예와 아들을 위해 부모는 모른 채 하지 않았다”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에는 “내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다. 
내 아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변상은 물론 어떤 일이든 하겠다.” 
라는 그의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美 전역의 신문들이 AP통신 기사를 받아쓰면서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며칠 만에 수백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변호사비로 쓰라며 5 불, 10 불 짜리 수표와 
현찰을 동봉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신문들은 아버지의 
'아들 죄가 바로 내 죄' 
라는 고백을 들어 
“미국인 부모들도 본받아야 한다.” 라거나 
“미국 교육계도 유교적 가족관계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교육 철학을 배워야 한다.” 
라는 논지의 기사와 논평을 내보냈습니다.

며칠 후에 반가운 소식이 가족에게 전달됐습니다. 
법정에서 아들을 방면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교육청에서는 다니던 학교로는 되돌아 갈 수 없지만, 
멀리 떨어진 다른 학교에는 갈 수 있다는 서한도 보내왔습니다.

그 후 말썽꾼 아들은 변하여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UCF) 학사와 
플로리다 텍(FIT)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 우주항공국(NASA) 산하 방산업체에 근무하며 고위 
우주선 탑재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 수십 명이 달라붙어 점검하는데 
그 가운데 최고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오는 'VVIP
(Very Very Important Person)' 들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유일한 한국계라고 합니다.
  
큰아들 송시영 씨가 사고를 쳤을 때만 해도 
“아이고 저놈이 자라서 뭐가 될까?”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를 
시도 때도 없이 함께 가 준다고 합니다.

선트러스트 은행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큰딸도 
명절 때마다 제법 큰 용돈을 보내주고 있답니다.

한 아버지의 대속(代贖)으로 
사고뭉치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자녀들 모두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 
우뚝 일어선 아름다운 가정사 입니다.

세상은 누군가를 위해 
대속(代贖)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대속(代贖) 할 수 있습니다. 
내 몸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