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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4장, 부끄러운 사람 이스보셋 vs 정직한 사람 다윗

LNCK 2023. 4. 13. 20:38

◈삼하4장, 부끄러운 사람 이스보셋 vs 정직한 사람 다윗            여러 설교 정리

이스보셋이란 이름의 뜻은 ‘부끄러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man of shame
그는 자기 이름대로, 정말 ‘부끄러운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다윗은 ‘사랑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beloved
그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했고, 또한 양떼를 사랑했지요.

본문 삼하4장은, 이스보셋의 죽음을 다르고 있습니다.
그는 낮잠을 자다가, 자기 신하인 바아나와 레갑에게 암살을 당했는데요.

하나님의 사람 다윗과 대조되는 리더십이었습니다.

◑1. 사람을 의지한 이스보셋 vs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

삼하4: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이스보셋이 왜 낙담했는가요?
온 이스라엘(11지파)이 왜 놀랐나요?
자기들의 군장 아브넬이 죽었기 때문인데, 

이것은 곧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평소에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왔던 사람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스보셋과 반대로 다윗은, 사울에게 10여 년을 쫓겨 다니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9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 
다윗이 이와 같은 말한 것은, 
바아나와 레갑의 범죄 행위가 (이스보셋의 목을 잘라서 가져 온 것)
다윗의 생명 유지에 아무런 필요도 없었던 것임을 밝히기 위함이었죠. 
바아나와 레갑의 살인 없이도, 다윗은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있었다는 거죠!

 

즉, 다윗 자신이 지금까지 여러 환난 가운데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누구 인간의 도움 때문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바아나와 레갑이 말한 대로 
실제로 이스보셋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 할지라도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는 의미죠.

이렇게 다윗처럼,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두렵게 하는 요인들이 사방에 너무 많습니다.
매일 뉴스만 봐도 온 세상은 전쟁과, 범죄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또한 유튜브 등에 소위 ‘전문가들의 의학지식’이 수천, 수만 건 뜨는데,
위장암, 대장암, 식도암, 췌장암, 폐암, 간암, 신장병, 뇌종양, 치매...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요8:32
사람들은 전혀 ‘죽음에서 자유케 되지 못하고’ 벌벌 떨며 살아갑니다.

더욱이 부활 신앙을 믿는 신자들마저도
마치 부활이 불확실하기라도 한 듯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를 믿는 사람은 :9
죽음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죽음에서 자유하며 삽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청년 스티브 소오여 이야기  (펀 글)

(미국 대학생인 그는 수혈 사고로 에이즈에 걸린 후,
죽기 전까지 캠퍼스를 돌면서 '한 학교라도 더!' 전도하다가 주님 곁으로 갔다.)

「그러다가 나 (스티븐 소오여) 는 대학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정말 놀라운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났다.
그는 헌신된 크리스천이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크리스천’에 대한 이미지는
‘겉으로만 경건하지만 속으론 속물이며, 남에게 도움을 베풀지만 오만하며,
남을 정죄하기 잘하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런데 내 룸메이트(이하 친구)는 달랐다.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죄인을 거저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은, 친구와 내가 바닷가에 놀러가서
친구가 거기서 만난 어떤 낯선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는 그 곁에서 끼어서 복음을 들을 때 일어났다.

그리고 친구가 그 낯선 청년에게 영접기도를 인도하는데,
나도 끼어서 내 마음 속으로 그 영접기도를 따라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전혀 새로운 시각perspective을 갖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나는 잘 때, ‘다음 날 내가 살아서 깰까?’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어떤 컴컴함 속에서 영원히 지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충만한 곳에서 영원히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 당시, 우리 부모님도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아마 나 때문에 많이 괴로움을 겪으시고, 기도하시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약 6개월 정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멀리 떨어진 대학 기숙사에 보내시는 용기가 있었다.

여러분, 자기 자녀가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데,
부모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그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 부모심정... 얼마나 무너지겠는가?

그렇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무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오직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뿐이다.」

♣관련설교  /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tistory.com)

  
위 설교의 요지는 '죽음의 고비를 많이 넘어본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여러 환난과 위기를 피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가 간혹 있죠)

주님은, 우리를 여러 환난과 위기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십니다. (*환난 통과설)
그래서 그 환난과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훈련하게 하십니다.

쉽게 얘기하면, 아이를 몇 번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엄마는
더 이상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이 '수치의 사람'이었던 이유는,
그는 '사람(아브넬)을 의지하다가, 그가 죽자 두려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스보셋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11지파)이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1

오늘날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나의 의지할 곳을 다 끊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종들에게 '물질 훈련'을 시키실 때가 종종 있죠.
그것은 자기가 가진 물질, 자기가 의지하는 물질을 다 거두어가시는 것입니다.

남들은 돈을 쉽게 벌어도, 하나님의 종들은 돈을 아주 힘들게 갖게 하십니다.
물질 훈련이 끝날 때까지요!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까지, 물질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물질을 그에게서 다 거두어 가신다는 거죠!

그러나 물질 훈련을 통과한 성도는
궁핍의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물질에 관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노하우)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될까요?
미안한 얘기지만, 사람을 의지하다가 낭패를 몇 번 겪으면.. 됩니다.
사람은 전혀 의지할 데가 못 된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 거죠.

다윗은 그 비법을 비교적 일찍 터득했습니다.
그도 처음엔 사울에게 쫓길 때, 라마 나욧의 사무엘을 찾아가기도 했고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멀리는 블레셋 땅에 아기스 왕을 찾기도 했고, 모압 왕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다윗은 배웠습니다. 
지혜의 여인 아비가일이 해 주었던 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삼상25: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오늘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9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니'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노라. 
나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내 기한을 채우고 죽어서 하나님께로 가리라!


◑2. 친구에게 배신 당한 이스보셋 vs 참 친구를 두었던 다윗

이스보셋의 죽음이 뼈아픈 것은, 자기 부하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군대장관(군장)은 아니었으나, 지휘관 중의 하나였죠.

가장 충성을 다해야 할 군대 지휘관이, 또한 왕의 측근들이
자기 왕을 배신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다윗에게 갖다 바친 것입니다.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여기서 '볕이 쬘 때 즈음'이란 '정오', '대낮'을 의미하죠. 
팔레스틴 지역의 풍습으로 볼 때, 이때는 이 지역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는 
시간이었죠(2:29, 32, 3:26).
이러한 습관은 사막 지대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보셋이 이때에 낮잠을 잔 것은 
매튜 헨리가 해석한 대로 이스보셋의 극단적인 나태를 보여 주는 
행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한편, 이스보셋의 두 장교 레갑과 바아나가 이때를 맞춰 이스보셋의 집에 온 것은 
그가 잠들고 있는 동안 그를 암살하려고 했던 의도적인 행동이었죠.

6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두 장교가 어떻게 해서 이스보셋의 침실에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여기에서 밀은 병사들에게 줄 군량을 의미하죠. 
그들은 군량, 곧 밀을 가지러 왔다는 핑계를 대고 
이스보셋의 침실에까지 무사히 들어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군량 수송의 일을 자주 맡아 했기 때문에 
경호원들의 의심을 조금도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 친구를 점점 찾기 힘든 세상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모두가 100세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삶을 마감할 가능성은 오히려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은 병상에서, 혹은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심지어 홀몸으로 쓸쓸히 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노후에 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줄 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후의 행복이죠. 
결국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관계’ 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좋은 친구, 믿을만한 친구, 의리 있는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아첨꾼, 배신자, 위선자들을 걸러내고, 좋은 사람들만 내 곁에 둘 수 있을까요?'

다윗에게는 그의 주변에 용사들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대상 11: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대상12:18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요지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더니
그를 존경해서 따르는 충성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입니다.

이스보셋 주위에, 자기 권세 확장에만 눈이 먼 아브넬이나
자기 출세를 위해서 주군도 배신한 바아나와 레갑이 모여든 것은
이스보셋이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지 않아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의 열심을 보십시오. 이들의 열심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죠.

7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두 사람은 밤새 '아라바 길로 행하여' 헤브론에 이르렀습니다. 
마하나임에서 헤브론까지의 거리는 약 95km 라고 합니다. 

따라서 레갑과 바아나는 밤새도록 쉬지않고 약 20여 시간 동안 시속 5km 
이상의 속력으로 헤브론에 도착했을 곳이다. 거의 마라톤 선수 수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을 향한 악인의 열심에 놀라게 됩니다(롬 3:13-17).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이러한 열심은 
자신들의 죽음을 재촉하였을 뿐이었죠. 

▲다윗이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정직한 신앙 interigrity'은
사람들의 아첨이나 아부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바아나와 레갑의 아첨의 말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8

다윗은 그들의 '아첨의 말'에 전혀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왕 이스보셋을 처치한
두 사람을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과 발을 잘라서, 매달아 전시하게 했습니다. :12
그들의 손과 발이 범죄함으로써, 그런 벌을 받았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죠.

예전에 다윗은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아비새의 아첨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말씀의 원칙에 순종했습니다.

삼상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백성들이 이런 다윗의 모습을 주위에서 늘 지켜보는 거죠.
언제나 다윗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의롭게 행한 것입니다.
그런 다윗에게, 그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던 거죠!

▲사역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
아래의 최광 선교사의 간증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선교사가.. 선생이나 목회자가 아니라, 
먼저는 아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비의 마음이라면 무엇을 못주겠는가?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논밭을 팔고 재산을 다 써서라도 
남이 욕을 하든 말든, 의식할 이유도 없다. 
그런 아비의 마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돈을 준다. 죽을 각오로 돈을 준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은행에서 빌려서 주기도 한다.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 돈을 주는 것과 
사랑을 해서 돈을 주었더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목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 목사들도 탈북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 상태에서, 돈만 준다고 해서 탈북자들이 모이지 않는다. 
또 모인다고 해도, 성경통독이 되지 않는다. 
돈을 줘서 모이기 전에, 먼저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잠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친구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탄만 하지 말고, 
'내가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매일 정오에는 10분간, 선교사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이고, 무슨 시간 약속을 하면
딱 그 10분만 소요되는 게 아니고, 또 5분 일찍 준비해서 기다려야 하고
여러가지로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선교사의 진정한 친구' 즉 '기도해 주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정해서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선교사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
그를 위해 기도해 주다가 보니.. 자기 영성이 깊어지고
자기 기도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면서.. 자기가 먼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두 증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꼭 둘씩 짝지워 내보내셨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한 사람이 전도하면, 다른 사람은 옆에서 기도로 돕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친구가 없다',
'나는 삼손처럼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유형도 있지만, 일반적은 아님)
하지 말고, 

'나의 파트너, 내 짝은 누구인가?'를 기도하면서 찾아야 합니다.
왜냐면 주님은 '둘씩 짝지워 내보내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계11장에도 '두 증인'이 나오지 않습니까!
'한 증인'이 아니라 '두 증인' 입니다.  계11:3

<친구 관련글 보기>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왕 '이스보셋'은
자기 이름 그대로 '수치스럽게도'
자기 부하 장수에게 피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높은 자리에 앉아달라'는 제안을 받을 때도 간혹 있을 겁니다.
그때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물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던 이스보셋은
길보아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과 형 세 명이 한꺼번에 전사하는 바람에
졸지에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그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헤브론 재위 7년 반 중 마지막 2년의 기간.  *2:10
나머지 5년은 아브넬이 통치한 것으로 여겨짐) 

내 주위에, 나를 따르고, 나를 좋아해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모여들
친구들이 있나요, 없나요?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매사에 공정하게 행한다면.. 내 주위에
진정한 친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부에 약하고, 사심으로 일관된 리더십을 발휘하며
그 자리에 올라가서 내 사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간신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유유상종'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의 간증에 의하면, 
선교지에서 현지인들 사랑하기가 그렇게도 힘들더라는 것입니다.

다들 사기꾼 같고, 다들 뒤통수 칠 것 같고, 다들 배신 때리고...
(실제로 돌아가면서 현지인들한테 그런 일을 겪는 거죠)

그래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가장 기본적인 말씀조차
지켜지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종이, 자기 양떼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면..
거기서는 더 이상 사역이 이루어 질 수가 없겠지요.

그때 그는 이 말씀에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
즉 '순교하겠다'는 각오로, 현지인들을 섬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오전을 무사히 넘겼답니다. 
어떤 분들은, 주의 종을 때릴 듯이 덤벼드는 사람도 있고, 
칼을 겨누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찌르지는 않아도 겨누고 겁을 줌)
그는 '순교의 각오'로 그날 오전을 무사히 넘기고는

그날 오후는 또 다시 '순교의 각오'로
현지인 형제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요15:13

그날 오후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날이 밝았습니다.
그 날도 '또 순교의 각오로!'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결국 절대 변화될 것 같지 않던 형제들이, 하나 둘씩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왜냐면 그 선교사가 요15:13절을 지키며 나아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