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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5장 다윗,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LNCK 2023. 4. 15. 21:29


◈다윗,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삼하5:1~12      여러 설교 정리
 
삼하5: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매우 역사적인 날이고 행복한 날입니다. 
다윗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겠는가요. 
그러나 여러분, 이 장면을 잘 보셔야 돼요. 

이제는 북이스라엘의 왕도 없어졌고, 군사령관도 없어졌고, 
백성들밖에 남지 않은 거에요. 

다윗이 그들을 향하여 그냥 밀고 올라가도 상관이 없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다윗이 그들을 향해 밀고 올라가지 않았어요. 
그들이 다윗을 찾아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에요. 

다윗이 왕위를 쫓아다니지 않았어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않았어요.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어요. 

왕이 될 것이라고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음 받은 날로부터 
무려 20여 년 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 10년 정도는 광야에서 방황했고 
그리고 헤브론에 들어와서도 7년반을 기다렸어요.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왕이 될 사람이지만.. 스스로 왕위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죽일 두 번의 기회를 포기했어요. 
아브넬 정권과 전면전을 치르지 않았어요. 

여러분 다윗에게는 사실 전쟁에 관해서는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에요.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유다 지파를 거느리게되고 헤브론에 들어와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도 7년 6개월을 그냥 기다리기만 했어요. 
싸우지 않았습니다. 동족과 싸우지 않았어요. 

사울이 죽었지만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아니까, 7년 6개월이지... 결과를 모르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 세월이 하염없이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겁니다. 

광야에서 10년이란 세월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기다렸고,
헤브론에서 7년 6개월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기다리는 거에요. 
그리고 이스보셋이 죽은 상황에서도 북쪽으로 진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다윗을 본받으십시오. 다윗을 카피 하십시오. 
이게 다윗의 인생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그에게서 배우는 매우 놀라운 것들입니다. 

그는 왕이 되려는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받았지만 
스스로 그 자리에 무리하게 기어 올라가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그를 세울 때까지,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아울러 사람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역사가 온 힘을 다해서 자기를 그 자리에 밀어올려 줄 때까지 
스스로 왕좌에 스스로 오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물론 그 세월은 숱한 고난과 실패와 절망과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낸 다윗은 이미 훌륭한 인물이었어요. 

이런 다윗의 자세로 사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그는 이미 훌륭한 인생인 거예요. 
사람들이 그를 인정해 주든/ 인정해 주지 않든.. 이미 그는 성공한 인생인 거예요. 

:1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이스라엘 북부 11 지파들의 대표들이 
다윗에게 와서 항복하면서 하는 말이 재밌습니다. 

'우리는 왕의 한 골육입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닌가요? 
이러면서 나온 거예요. 참 뻔뻔하기도 하죠. 

아니 그럼 이걸 몰라 갖고 지난 7년반 동안의 대치한 거에요? 

참 뻔뻔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다윗이 이들을 받아주죠. 
그리고 이들의 입으로 스스로 자기들이 얼마나 다윗을 존경했는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2절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1)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했다'는 말은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수많은 전쟁을 이끌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순신이 없었으면 임진왜란 이기기가 불가능했듯이 
모두가 다윗의 공을 아는 거예요. 

'그때부터 사울이 아닌 당신이 우리의 장군이었습니다!' 
미리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뒤늦게 백성들이 진실을 고백한 거죠.
 
왕이 중요한 책무는 외적을 물리치고 백성을 지키는 장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셨을때부터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모든 어둠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2) 백성들의 두 번째 고백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일찍 우리의 목자가 되리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목자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자는 양을 지배하지 않고 돌보고 섬기죠. 

그러나 사울은 목자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섬긴 것이 아니라 
세상 왕처럼 지배하고 군림하려 했다가 망했죠.

이제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해 이스라엘을 목양하는 그런 목자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모든 영역의 지도자들이 
이런 목자의 마음으로 우리 국민들을 섬겨주기를 바랍니다. 

북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보면 일찌감치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지난 7 년 반 동안 다윗에게 대치했습니다. 

아는 것 하고 행하는 건 달라요. 
왜 그들이 알면서도 다윗에게 저항했을까요?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익과 충돌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불안했어요.
'사울에게 충성하던 우리를 다윗이 과연 포용해 줄 것인가? 
다위이 왕이 되면, 우리의 기득권을 다 내놓아야 되는 거 아닌가?'   

다윗은 그들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다윗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7년 반을 끌면서, 다윗에게 항복하지 못한 거예요. 

사람들이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데 
그걸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안 믿는 거죠.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알면서도,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신앙의 결단을 하지 못합니다. 
세상 눈치를 살피고,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붙습니다. 

여러분, 지금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북 사업을 하는 분들의 얘기에 의하면, 
자기들이 만나본 북한 관료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 체제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자기들도 안다' 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이익, 자기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뻔히 그 체제에 순응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북 이스라엘의 통일이, 사울 사후에 본문 삼하5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 반이나 오래 걸린 것은, 거기 사울 집안 사람들, 사울의 측근들이
자기 기득권, 자기 자리를 얼른 내놓기 싫었던 거예요.
역사에 부끄러운 사람들로 기록되겠지요.

결국 이 사람들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는 했습니다만, 너무 늦게 했다는 거죠.

본문 삼하5장에서 드디어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됩니다.
이것은 창49:8절 야곱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운행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돈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우리가 너무 늦게 늦게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명백한 데도, 
내가 너무 늦게 순종해서.. 그 뜻이 더디게 성취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다윗

이제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사람의 시간' (크로노스) 과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을 생각하게 됩니다.

카이로스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때'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눈에 드러난 인간의 크로노스 뒤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있어요. *하나님의 때, 시간

3절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의 인생에서 이게 세번째 기름부음을 받는 거예요. 
지금 다윗은 37세 입니다. 

첫번째는 약 20년 전에, 다윗이 십대 소년이었을 때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을 때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죠.

그리고 나서 바로 즉위식 했나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나서 다윗은 20 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왕궁에 들어가서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수업받은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도망자, 정치범으로 쫓기다가, 폭풍같은 세월을 거쳐 왕이 됩니다만,

하나님의 카이로스 에서는 그때부터 다윗이 실질적인 왕이었어요. 
천사들이 알고 마귀가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그러니까 초라한 지금을 전부로 보면 안 된다니까요. 

베드로를 주님이 처음 만나셨을 때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바로 즉시 그렇게 되지는 않았잖아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 지도자가 되는데 
이미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그때부터 카이로스가 시작된 거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거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이 첫번째 기름부음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나에게서 싹이 트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가난하고 병들고 초라해서 사람들 보기에는 한심해 보이지만 
기대하십시오. 세번째 기름부심의 시간이 온다니까요. 

2) 두 번째 기름부심은, 헤브론에서 다윗이 유대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 
그때도 기름부심을 받았는데 
그것은 아직 완전한 통일왕국의 왕이 아닌 
그 왕이 되기 위해서 중간 스테이션에서 준비되던 기간입니다. 

기름부으심이 점점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울 진영이 완전히 붕괴되고 
북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엎드림으로써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된 이 순간이 
파이널 세번째 기름부으심이요. 

그러니까 보세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이 카이로스의 과정은 놀랍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준 은사와 열정과 상황에 따라 달라요. 

벼는 심은 지 5개월이 지나면 곡식이 나오고 
사과나무는 적어도 심은지 3~5년이 지나야 열매가 나오는데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열매도 가을에 맺히는 것이 있고, 여름에 맺히는 것이 있어요. 
1년 만에 나오는 게 있고, 3~6년이 지나야 나오는 게 있는데 
아무리 서둘러도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되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질 않아요. 

다윗의 비전이 이루어지는 카이로스 와 
모세에게 이루어지는 카이로스가 다 다르죠. 

영적인 열매가 그래요. 씨를 심었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우리의 크로노스 에 딱 맞춰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각 사람마다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정확하게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카이로스 와 우리의 크로노스가 정확하게 다시 만나는 과정이 
'연단의 시간, 인내의 시간' 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반 동안 유다지파의 왕으로 있으면서 
자기의 카이로스가 완전히 무르익기를 기다립니다.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처음부터 다윗을 지지했던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11지파는 모두 
다윗의 적대세력이었어요. 아직 사울에 대한 충성심을 꺾지 않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굴복하기까지 7년 반이 걸립니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때에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게, 그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배가 고프죠. 그렇지만 배고프다고 아직 밥에 뜸이 들지도 않았는데 
밥솥을 열면, 우리는 설익은 밥을 먹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삶이라는 것은, 약속을 받은 뒤에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갖추어놓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말고, 하나님을 거칠게 압박해서도 안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게, 성급하게 편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스스로 앞당기려고 하는 거예요. 

다윗에게도 그런 유혹이 있었어요. 
광야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그것이었죠. 
아마 마귀가 이렇게 속삭였겠죠. 
'시간을 앞당길 수 있어, 초고속 승진 이런 거 알아?'

근데 다윗은 그 유혹을 꺾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사울이 죽은 뒤에도, 사울의 잔여 세력을 
다윗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붕괴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싸우고 대립하다가 붕괴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이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하는 큰 그림으로 맞춰진 거예요. 

그렇게 하니까 민심이 서서히 다윗에게 옮겨왔고 
그토록 복잡하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어요. 

여러분, 지금 약속은 받고 오래 지내 왔는데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답답하고 낙심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인내해야만 합니다. 
믿음과 인내는 같이 가는 거죠. 

나의 자리를 지키면서 기다리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될 게, 이걸 참지 못해서 
중간에서 무리수를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세상 적인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겠다는 레갑과 바아나 같은 사람과는 
손을 잡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칭찬하고 상 주어서는 안되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유혹을 끊어야 돼요. 

여러분이 세상적인 사람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루면
그 꿈은 이룬 게 아니에요.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돼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야 돼요.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모든 게 정리가 됐어요. 

북 이스라엘의 민심이 하나로 모아진 상태에서 
그들이 와서 다윗에게 스스로 왕관을 바치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에서 오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내게 주시기로 한 것이라면 
서두르지 않아도 반드시 주십니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은, 결코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없어요. 
만약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면, 그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겠죠. 

이런 믿음이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사울만 칼로 공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까지도 칼로 공격하지 않았어요. 
다윗에게는 왕이라는 자리 보다, 하나님의 때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타임라인이 있어도 그것마저도 땡겨서 
내가 왕이 빨리 돼야 되는 게 중요한 거죠. 

'하나님, 지금 졸고 계신 거 아니에요? 빨리 깨어나세요. 
빨리 내 인생의 성공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주십시오. 
하나님의 타이밍보다 제가 왕이 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라고 기도 하잖아요. 
그러나 다윗에게는 자기가 왕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더 중요한 거예요. 
왕이라는 지위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예요. 

왕이라는 타이틀을 갖는 것 보다, 실제로 내가 왕다운 인생을 사는 것이 
그래서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양떼를 잘 돌보는 그것이.. 더 중요한 거예요. 

오늘 날 우리는 지위와 위치와 명예와 권력과 돈을 추구하지만 
전혀 그 자리와 그 역할을 감당할 만한 인격과 내면과 영성과 실력을 
갖추지 못 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도 복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당신의 공동체에도 복이 아닌 것이죠. 

다윗은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왕위를 받아들였어요. 
여러분, 이 자리까지 기다리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크리스천 뿐만 아니라 넌크리스찬에게도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왜 나를 승진시켜 주지 않느냐? 왜 내게 기회를 안 주느냐?' 

하나님 앞에서 그런 기도를 많이 하지만 
여러분 조직 안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인생 공식이 있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의 때, 그 크로노스의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꼭 높은 자리에 오르고, 왕이 되어서 성공이 아니라
그런 마음 자세로 사는 사람은.. 그 과정에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비로소 성공한 게 아니라,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섬길 때에도, 그 기다림의 세월 속에서도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을 좇아가지 마십시오.
세상이 여러분 앞에 나아올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리십시오!  :1

▲지금 이렇게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헤브론의 다윗 앞으로 찾아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우리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당신을 가장 세웠던 사람이, 지지했던 사람이 
당신을 나중에는 버릴 수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여기 다윗을 찾아나온 이들 중에 
나중에 상당히 많은 숫자가 
압살롬의 반란 때,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다윗을 등지고, 배신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사람의 지지는 왔다갔다 하는 거죠. 

사람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이 다윗을 왕위에 세우시는 것이죠. 

인간적인 관계, 사람들 인정하는 리더십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만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내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는 동안에 내가 이 자리를 버티겠다' 이러면 안돼요. 
아니요. '하나님이 내려 가라' 그러면 내려가야 돼요. 
하나님이 '이제 그만!' 하시면 그만 두셔야 돼요. 

사울은 그걸 못 했던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이제 그만!' 하셨는데도.. 그는 계속 내려오기를 거부했던 것이죠.

다윗도 한때 시글락에서, 자기가 목숨걸고 지켜줬던 사람들이 
자기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했던 경험을 했지요. 
그때 그는 뼈속 깊이 배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리더가 될지라도, 사람들을 의지하지는 말아라!' 

사람들을 사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대상입니다. 
리더는 사람들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리더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함

4~5절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5년 임기 마치고 나면 다들 힘들어하는데,
날마다 스트레스와 압박이 가중되는 최고 통치자 자리에
다윗은 40년을 앉아 있었어요. 

하나님이 그를 그 자리에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못 하는 거죠. 
다윗을 보면서 '야~ 부럽다. 그는 출세했다.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그가 왕좌에 40년이나 있어준 것은, 어떻게 보면 백성들을 위한 봉사였어요.
지도자가, 자기 임기를 다 채우고 내려와 주는 것은 큰 배려죠.

만약에 다윗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내려오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국정에 혼란을 주는 지도자가 되었을 겁니다,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이유
초대 사울왕이 정한 왕도는, 자기 고향 베냐민 땅 기브아 이었어요. 

그럼 다윗도, 유다 지파의 대표 도시였던 헤브론을 수도로 정할 수도 있었고,
아브넬과 이스보셋 왕권을 유치했던 마하나임으로 정할 수도 있었죠.

마하나임은 요단 동편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수도로 정하기에는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었죠.
헤브론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고요.

또 헤브론으로 정한다면, 다른 지파들이 '유다지파 독식' 문제를
들고 나올 수도 있었겠죠.
기브아로 정한다면 '사울시대의 연속성' 이란 느낌이 너무 강해지는 것이죠. 

그러나 예루살렘은 위치가, 유다지파와 에브라임지파의 딱 경계선이에요. 
그래서 <남북>을 아우르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던 것이죠. 

그리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예루살렘에서 지중해로 <동서>를 연결하는 길목에... 
예루살렘은 아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교차로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 적합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예루살렘은 해발 754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에 깊은 골짜기 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 천혜의 요새입니다.
동쪽엔 기드론 골짜기, 서쪽엔 힌놈의 골짜기, 남쪽에도 골짜기가 있어서
적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주변에 수자원도 풍부했기 때문에 
아주 지정학적 위치나 조건들이, 수도로 정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죠. 

그래서 여호수아의 정복 때에도, 예루살렘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가
사사시대 내내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가,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결국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된 거죠.

여호수아 시대에도 못한 일을, 
다윗이 이루어내었고,  
그래서 백성들이 통일왕국시대를 받아들이기에 편하게 만들어준 거예요.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첫 번째 군사작전으로 예루살렘의 진격을 하는 장면이 이제 6절에 나오죠. 이것은  다윗의 중요한 치적 중의 하나입니다.

◑더욱 강성해져 가는 다윗

3:1에서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했는데,
그 증거로 두로 왕 히람이, 다윗 왕궁을 "무료료, 자원해서"
지어주겠다고 제의해 왔습니다.  :11

이에 다윗은 교만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거죠.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
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깨달았던 것입니다.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히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였을리 만무하죠.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을 보기좋게 제압하자(17-25절) 
다윗의 큰 세력을 인식한 히람 왕이 화친의 제스처로 
사자들과 백향목 등을 보내온 것으로 사료(思料)되기 때문이죠.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하고는 상호호혜관계를 맺자' 이런 액션인 거죠. 
'다른데 하고는 다 전쟁을 해도, 우리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 이런 의미죠.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주의 백성과  주의 나라를 높여 주셨구나!' 
'아 정말 이 민족을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이구나!'  :12 
그 때문에 자기를 왕으로 삼아 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광야 학교를 통해 터득한 겸손의 리더십입니다. 
'(공동번역) 다윗은 야훼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튼튼히 세우시고 
자기의 왕권을 떨치게 하신 것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잘되게 하시려는 데 그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걸이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그 말이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봐 주고, 칭찬해주는 것은 옷걸이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걸린 옷 때문이라는 거죠.

'왕을 태우고 가는 나귀가,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은 넌센스' 라는 거죠
사람들이 그 앞에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를 흔드는 것은
그가 모시고 가는 왕 때문이지, 나귀 자신 때문이 아니다 라는 것을
다윗은, 일찍이 깨달아 알았다는 거죠. (나중에 압살롬에게 붙는 것을 보십시오)

◑적용 / "다윗은 왕이고, 나는 취준생인데.. 내가 다윗을 본 받기에는
   너무 무리 아닐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죠.
'한 나라에서 왕이 되는 사람은, 결국에 한 명 아닙니까. 
이 한 명 다윗에.. '우리도 다윗처럼 되자!'고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요?'

다윗은 삼십대에 왕에 올랐는데,
내 인생도 삼십대나 그 이상인데, 다윗이 될 가능성은 로또 확률인데요?

'내 나이 삼십에 나는 아직 무직자 인데 
내 나이 삼십에 나는 결혼은 아직 계획도 없는데 
내 나이 삼십에 내 인생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버거운데 
지금 내 인생을, 다윗의 인생에 적용하라면.. 이거 혹시 '희망고문' 아닌가요?

자칫 잘못하면 이것은 성공주의, 번영신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건 소수 잖아요. 그 레벨에 올라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잖아요?
그 다윗을 모든 청년들에게 일반화 시켜서 적용할 수 있나요?' 
제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 보고, 제 스스로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묵상했어요. 

근데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게 이것입니다. 
그 인생의 트랙이 달라지는 결정적 차이가 뭐냐? 
그 결과의 차이가 아니라, 과정에서의 차이 이고 
고백의 차이, 믿음의 차이 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 인생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사실 다들 신앙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나 내 인생에 가장 힘들고, 가장 어둡고, 가장 괴로울 때에도 
여전히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유효하다'고 믿고 버티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그냥 포기해 버리고 말더라는 거죠. 다윗처럼 버티지 않더라는 거죠.

왜냐면 내 인생의 극심한 고난과 실패와 상처 가운데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여전히 계획이 있으시고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쓰기를 원하시고 
세상에 축복의 통로로 쓰기를 원하신다'... 이걸 믿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다윗처럼 버텨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거죠.
그러고서는 '나는 왕인 다윗과는 비교가 원천 불가능해!' 한다는 거죠.
다윗처럼 이렇게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님의 약속(기름부음 포함)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윗은 20여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 받는데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도대체 몇 년을 나는 더 기다려야 되는가요? 부르심이 유효하면, 기다리고 버텨낼 힘도 주십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나는 이 들판에서 산적 때가 될 수 없고 
나는 이 들판에서 사울 왕을 향해서 칼을 겨눌 수가 없고 
쿠데타를 일으켜 수 없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죠. 

그냥 하나님의 소명을 포기하는 편이 훨씬 낫고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중간에 그냥 포기 선언 해 버리는 게 차라리 편한 거죠. 
결국 그런 결정이 당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예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본받자는 것은
그가 왕이란 고지에 올랐으니까, 우리도 똑같이 고지에 오르자는 게 아니라

그가 기름부음을 받고, 소명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버텨내고, 인내하고, 신앙인격을 성숙시키며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영적 성숙, 그 깊이있는 신앙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따라오는 승진이나 성공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어떤 꼭지점에 도달해서 성공이 아니라, 
그곳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이미 성공하는 것입니다.

▲제 인생을 한 번 돌이켜 봤어요.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15 살 이후로 
잘 살아 왔어요. 매 순간 잘 지내왔어요. 
물론 실수도 하고 실패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고 역경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왔어요. 

여러분은 제가 편안한 꽃길만 걸어온 것 같아 보이겠지만,
제 인생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할 수 있겠지만 
그냥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제가 밴쿠버에서 사역했던 4년이 너무 힘들었어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 라는 환경이지만 
제가 있었던 목회적 환경은 매우 힘들었어요. 

주일에는 아주 좋은 장소를 빌려서 썼지만 
주중에는 카센터 2층이 저희 목양실(사무실)이었는데,
냉난방이 안돼서 너무 힘들었어요.

겨울에는 아침에 새벽에 나와서 새벽 설교 준비 하려고 자판을 치면 
손가락이 어는 거예요. 난방이 안 돼서!
 
여름에는 냉방이 안 돼서 
한여름에는 사무실 온도가 38도 39도 올라가서 
그냥 앉아 있으면 땀이 줄줄 흘렀어요. 

거기 앉아서 회의하고, 거기 앉아서 일주일 내내 지냈어요. 
한국에서 잘 구슬려서 찬양인도자 목사님을 초빙해 왔어요. 
근데 목사님이 너무 힘들어 하는 거에요.

바로 밑에 카센터에서 배기가스 매연이 올라오고 
겨울에는 춥고...
 
늘 제한테 하는 말이 '목사님, 산재 수준입니다' *산업 재해 

당시에 새벽부터 부흥회 했습니다. 
왜냐면 물론 새벽예배가 귀하기도 하지만 
이민사회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새벽에 나온 사람들이 정말 미치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가운데서 일주일에 막 15번씩 설교하고 
또 심방 돌아다니고 그러면 
하루에 2시간 3시간밖에 못 자는 날도 있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또 당시에 제게 협박하는 성도들이 힘들게 했어요. 
물론 좋은 성도들도 많이 계셨어요. 
그러나 '너를 테러하겠다' 이런 수준의 협박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로부터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물론 본인들의 상황이 힘드니까 그거를 목사에게 쏟아붓는 거지만 
한국적인 목회 환경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너무너무 힘든.. 
정말 목사가 아니라 인간 이하로 무시하고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저는 그 4년이 아마 저 평생에 잊지 못할 만큼 행복했어요. 감동이 있었어요. 
하나님 앞에 결국에는 제가 그 자리에서 버텼던 한 가지는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부르셨다!'는 거였어요. 

서울에 있는 본교회에서 실수로 날을 보낸 게 아니라 
여기로 나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들을 만났나?' 가 아니라 
이들을 나의 양떼로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이들의 목자로 부르신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거였죠.  
그래서 그들과 함께한 4년이 너무 행복했어요. 괴로움 중에 행복이었죠!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섭리는 
그 어느 한순간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봐, 하나님이 실수 하셨나봐!' 
그런 생각을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 나를 부르셨다는 것,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유가 있다는 것, 
지금 이 열악한 밑바닥에서도 하나님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원수에게 빼앗길 수 없는 믿음의 고백! 
지난 20년을 다윗이 살아온 인생이 한 가지 고백!  
빈들에 있을 때도 광야에 있을 때도 
사람들이 나를 향해 돌을 들 때도 

너무 자기 자신이 비참해 보일 때도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실수하고 실패할 때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고백! 
여러분 이게 너무너무 중요한 겁니다. 

근데 이 고백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크리스찬 청년들, 믿음의 사람들 조차도 믿음을 놓아버리고 
이 믿음에 물타기를 하고, 이 믿음을 내려놓거나 잠시 좀 접어두고 
이러고 살더라고요. 

여러분,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내 배우자라는)  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결혼했는데 대화가 안 되면 너무 힘들어요. 

이기적인 모습 보면 너무나 힘들어요. 비인격적인 모습을 보니 
너무 너무 힘들어요. 이때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 사람을 내 남편으로/ 아내로 부르셨다' 라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숱하게 이혼하는 겁니다. 

▲여러분, 다윗 왕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의 
참 비슷한 유사점이 있지 않습니까? 

다윗이 왕이 되니까 어떻게 돼요? 5절에 보니까 
이스라엘과 유다가 연합이 됐어요. 

이스라엘과 유다는,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내전으로 대치했던 나라에요. 원한이 깊어요.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니까, 서로 하나가 되었어요.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이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통치 밑으로 들어가니까 
이 불안했던 세월이 종식이 된 거예요.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죠.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기까지 평안이 없었듯이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기까지 평화는 없을 거에요. 

가족들 사이에도, 예수님 없이 평화할 수는 없어요. 
나라와 나라가 예수님 없이 평화할 수는 없어요. 

이스라엘은 다윗의 능력과 하나님의 기름부심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때문에 오랜 세월 그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도 
이 땅에서 기득권을 놓지 못해서 
여러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단의 시간은 빠를수록 좋죠. 예수님의 통치밑으로 들어와야 
그때부터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지킬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축복이 여러분을 채울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를, 예수를 왕으로 모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현재와 내세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복 주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아무리 큰 위험이 닥쳐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험한 골짝 빈 들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분들이 많으시죠. 

'약속을 받았는데, 언제 이루어지는가?' 하면서 
'이 복잡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는 할 것인가?' 
'나도 세상에 손을 잡아야 되지 않는가?' 라는 갈등을 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다윗을 보면서 마음을 정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마지막까지 그분을 믿는 자는, 최후의 승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