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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8장,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더라

LNCK 2023. 4. 21. 17:40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더라            삼하8장                   2021년 5월 설교, 녹취

<사무엘하>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요. 
1~10장 다윗의 승리 
11~24장 다윗의 실패

다윗은 삼하5장에서 12지파 통합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6장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언약궤를 다윗 성에 모셔옵니다.
7장에서, 그랬더니 하나님은 네 후손이 영원하리라는 '다윗 언약'을 주십니다.
8장에서, 다윗은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이기게 됩니다. 
9장에서, 므비보셋을 찾아 회복시키는 사건이 삽입처럼 들어가고요
10장에서, 암몬을 쳐서 이기게 됩니다. 

다윗의 모든 승리가, 언약궤를 모셔들이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저자의 의도죠.
(사무엘하가 꼭 연대적 순서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기록 순서로 볼 때)
또한 반대로 다윗의 모든 실패는, 밧세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1장

왜 성경은, 다윗의 실패의 기록을 상세히 다루고 있을까요?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그 본체는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실족하지 않고 완전했다면, 아마 이스라엘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에 그저 '다윗, 다윗!' 하면서, 다윗을 신격화 하기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실패도 마찬가지고요!
.............................................

전략     주1)

본문 삼하8장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예요. 
7장에서는 드디어 다윗이 왕궁에 입성을 했고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통합 왕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군사적으로 실질적인 왕이 됐어요. 
그리고 예루살렘 궁에 입성을 했고, 드디어 왕으로서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근데 오늘 본문 8장은 1절~끝절까지 계속 전쟁이 이어집니다. 
전쟁 마다 놀라운 승리를 하나님이 다윗에게 안겨줍니다. 

밑도 끝도 없이 하여간 이기게 하십니다. 
꼭 딱히 표현을 하자면 '이겨놓고 싸우는'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이, 이겨놓고 싸우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의 약속을 붙드는 자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이겨 놓고 싸우는 거예요. 다윗이 지금 그래요. 

그런데 '잘 되는 사람 다윗' 하니까 
우리는 자칫 포커스를 흐리면 
'우리도 다윗처럼 됐으면 좋겠다' 이런 쪽으로 시각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본받자'든지 
'다윗을 닮아가자'든지 
자칫 다윗이 본의 아니게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해석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는 전혀 그 얘기가 아닙니다... 

◑8: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그 후에' 
'그 후에'는 드디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실질적 왕으로서 
왕궁에 좌정하고 온 이스라엘을 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한 그 이후를 뜻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여기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일 것만 같았던 블레셋이 또 등장을 하죠. 

그런데 사실상 블레셋은 본 8장을 끝으로 더 이상 역사 속에 꼬리를 감춥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왕국이 본격적, 실질적으로 가동되면서 
제일 먼저 다윗이 집어삼켰던 데가 블레셋 입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은 사실상 그 지형 자체가 이스라엘 땅이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때에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중해 쪽인 가드를 비롯해서 5개 도성을 마저 점령하지 못한 관계로 
거기에서 커다란 족속이 하나 자생하여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오고 오는 역사에 큰 고난과 어려움을 안기다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제 다윗의 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제일 먼저 공격을 했던 데가 이 블레셋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전쟁은 여기서부터 이상한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는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받는 데서 구원받고 
적들을 물리치는 수세적, 방어적 전쟁을 해왔어요.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전쟁이, 이스라엘이 먼저 선제적으로 공격했던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삼하8장의 모든 전쟁이 선제적이고 공격적입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어요. 

고전15: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사도 바울이 쓴 기록입니다. 
이 구절은 사망 권세를 깨치고 일어서신 예수님이 
이제 본격적인 왕 중 왕으로서, 그 남은 죄악의 세력들을 
어떻게 진멸해 나가시는가를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영적인 그림으로 설명한 겁니다.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다윗의 왕국이 드디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늘 인생 자체가 전쟁이잖아요. 그죠) 

다윗 왕국의 전쟁이, 이제는 수세적인 전쟁이 아니라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그림으로 바뀌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윤리나 도덕 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이해해서는 
해석이 어려워집니다. 

이것을 이렇게 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영적인 그림에서 이해를 해야 돼요. 
그러니까 다윗이 주변 나라를 공격하고 이기는 것은 
죽이고 살리는 살인의 문제가 아니라 
죄악의 세력과 대항하는 정복의 문제로 성경이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삼하8장의 전쟁의 결말을 항상 
'죽였다. 멸절시켰다' 이런 관점의 설명보다는 
'항복시켰다. 정복했다' 이런 관점으로 모든 전쟁이 설명이 됩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한 가지밖에 없어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왕으로 내주하시면서부터 
우리 속에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구원받자마자 
제일 먼저 맞닥뜨렸던 대적이 누구죠? 에서의 후손 아말렉 입니다. 

에서는 항상 야곱과 영적으로 반대 세력으로 온 성경 기록 속에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의 왕국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 왕국의 예표적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일관되게 성경 전체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리스도의 나라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돼요. 

그것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왕국이, 다윗의 왕국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1
여기도 '죽였다' 라고 되어 있지 않고, '항복을 받고' 
이렇게 정복의 개념으로 이 전쟁을 설명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1
메덱암마를 직역하면 '어머니의 고삐'란 의미를 갖는데
(메덱 : '고삐, 굴레, 멍에', 암마 : 어머니'), 
아마도 '지배권'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근동 지방에서는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불렀죠. 
또한 성경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그 수도의 '딸들'이라고 기록했어요. (수15:45, 47) 

이렇게 볼 때 '어머니'란 용어가 의미하는바는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성읍 중 주도권을 장악했던 '가드'를 가리키죠.

'굴레'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종속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가드에 종속된 블레셋의 네 성읍들(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말은  :1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연맹 도시들, 즉 수도인 가드와 나머지 네 성읍 모두를 
빼앗았다는 의미입니다(대상18:1).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와 정복 전쟁 때도 
가나안 정복시 이 블레셋을 사실상 정복하지 못합니다. 
(가나안 7족속이 아니라서 그랬던 것일까요? 아니면 강력해서?)

그러다가 다윗이 왕으로 통치를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공격한 데가 블레셋의
5성읍 (메덱 암마, 5성읍의 체인)입니다. 

△자 여기에 아주 놀라운 영적인 암시가 감춰져 있는 거죠. 
당시 이스라엘의 통합 왕으로서 왕노릇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공격했던 데가 어딥니까?  블레셋의 5성읍이죠!

신약적으로, 죄의 근본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대적의 핵심부를 강타한 겁니다.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날 때나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가 상대방 진영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장악하는 데가 어디에요? 
통신을 주관하는 방송국이죠. 
방송국에서 모든 여론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메덱 암마는 5개의 성읍으로 연결된 '견고한 진'이었죠.
우리 육체를 가진 인생 들로 말하면, 우리가 누구나 연약하기 때문에 
항상 넘지 못하는, 해결하지 못하는 어떤 죄의 치부가 있어요. 

공동체에도 그것이 있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 그런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끊어내지 못하는 죄악의 그 어떤 것, 
또 버리지 못하는 악습.. 이런 함정들이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 죄의 심장부가 
그리스도인들 각자 심령 속에 웅크리고, 둥지를 틀고, 뿌리 뽑아내지 못한 채 
늘 그것에 질질 끌려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들이 있단 말이죠. 

그것이 오늘날 개인적으로 우리들에게 뭐냐면 메덱암마 같은 존재들입니다. 
다윗이 거기를 제일 먼저 정복합니다. 
거기가 이스라엘 땅을 놓고 볼 때 서쪽이에요. 

◑8: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에게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들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다윗이 모압을 쳐서, 신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종주국이 된 거죠.
모압은 동쪽이죠. 요단 동편입니다.

그런데 이 모압은 그 발생 자체가 
롯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해서 그 딸들이 아버지한테 술을 먹이고
아버지에게 두 딸이 들어가서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나라가 모압과 암몬 이에요. 

이 나라도 결국은 상징적으로 '불순종의 죄악의 뿌리'이에요. 

우리는 보통 이런 전쟁사를 보면 
'왜 이렇게 다윗이 호전적이냐, 이렇게 잔인하냐?' 
(다윗이 길이를 재서, 두 줄 길이의 사람은 다 죽였다고 했거든요) :2

이렇게 성경을 자꾸 윤리적 잣대로 접근하는 나쁜 시각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거는 윤리적 잣대로 접근해야 될 시각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모압은 이스라엘과 비교적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신2:9, 룻 1:1)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게 큰 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죠(삼상 22:3, 4).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민24:17)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그런데 2절을, 새번역이나 영어성경들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다윗은 또 모압을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매 석 줄 중에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그러니 포로들 중에 2/3는 죽이고, 1/3만 살려주었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고대 병법을 이해하면 이 구절은 그렇게 어려운 해석이 아닙니다. 
'석줄을 세워서 두 줄을 죽이고 한 줄을 살려뒀다'는 말은 
두 줄은 장정이 서 있었던 줄입니다. 

즉 병력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있는 두 줄은 죽였다는 말이에요. 
한 줄은, 여자, 노약자, 어린 아이들, 노인들 
그러니까 전쟁에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서 살려두었다는 얘기에요. 
이렇게 해서 모압을 완전히 제압하게 되죠. 

◑8:3~4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그에게서 마병 1천7백 명과 보병 2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1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소바 왕은 아람의 소국 입니다. 
소바 왕 하닷에셀과 전쟁해서 엄청난 말들을 포획했어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말의 뒷발 힘줄을 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론 기동력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 전략상 그랬을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엔 조금 더 성경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왕이 병마를 많이 가지지 말 것을, 율법에 규정했기 때문에, 말의 힘줄을 끊은 것입니다.

신17:16 '그는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그래서 '말들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런 뜻입니다.

◑8:5~6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아람, 다메섹은 북쪽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모든 영역에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역할을 다윗에게 맡기신 겁니다. 

이것은 다윗의 군사적 승리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돼요. 
커다란 하나의 영적인 지도로 이해를 해야 됩니다.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역할과 모델을 맡은 자로서 
그가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그 주변에 악의 근원들을 하나씩 하나씩 철저하게 
공격적이고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이 모든 전쟁은 
6절에 보니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8:7~8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10~12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이걸 전부 하나님께 드려요.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이 은금이 다 쓰여집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그 모든 재료를 준비하는 왕으로서 쓰임받고 있고
이 물질들은 아들 솔로몬에게 그대로 물려집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아버지 때 이 전쟁에서 얻었던 은금을 가지고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데 조금도 어려움없이 넘치도록 성전을 짓게 됩니다. 

◑8: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여기서도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뭐죠? "잘 되는 사람" 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실은 다윗이 잘 되고, 연속적 승리의 그림 속에 
나타나지 않는 밑바닥의 뿌리가 되는 메시지가 있어요. 

이것은 다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스케줄입니다. (*칼빈주의 관점)
여기에 인생들이 속아선 안 돼요. 

일찍이 이 모든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하셨던 언약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런데 이제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장이긴 하지만 
당시 그렇게 가장 온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 나라가 자기 손에 들어오고 절정에 이를 때.. 실수를 하죠. 

그 유명한 밧세바와의 간음, 남편 우리아를 간접적으로 살인하는 죄를 짓죠.
자기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여지없이 인간은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요. 
이 놀라운 승리의 연속의 역사 가운데서도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 즈음에서   *2021년 5월 설교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는 데는 
저는 하나님의 영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책임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너무 영광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입니다. 

성도들의 무지와 목회자들의 교만으로.. 사람이 너무 영광을 많이 받았어요. 
오죽했으면 '성부 성자 성령 담임목사'라는 조롱의 말이 나왔을까요. 
웃지 못할 이야기죠. 

근데 하나님이 그걸 너무 싫어하셨어요. 
교회에서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는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될 죄인으로 서야 됩니다. 

다윗의 이 승승장구는, 다윗이 잘한 구석이 있어서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던 것만은 아니에요. 
다윗의 이 승리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성취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언약의 성취를, 다윗은 놀랍게도 자기 영광으로 대체하는 실수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이후에 모든 그림들이! 
그래서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돼요. 

△제가 부목사로 있던 어느 교회에서 
그 교회도 대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던 교회에요. 
담임 목사님이 거의 1년 이상 부재 중에 있었습니다. 

수십 명의 부목사님들이 계시는 교회였는데 
이제 원로목사님이 그 중에 네 사람을 뽑아서 주일 강단을 맡겼어요. 
그때 제가 아주 젊었던 34세 때였죠. 

저는 4부예배를 맡아서 설교를 하는데, 
보통 일반 교회는 이제 설교를 마치면, 퇴장하는 교인들과 이렇게 
담소를 나누고 악수를 하죠. 

근데 어느 권사님이 제 손에 메모지를 하나를 쥐어줬어요. 
그때가 1991년도 였어요. 

'이게 뭔가?' 하고 일단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가 
이제 사무실에 가서 꺼내서 읽어봤는데 바로 이 종이입니다. 
색깔이 누렇죠? 이걸 지금 30년이 지났는데도 
제 성경책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제 성경책 갈피에서 한 번도 빠뜨렸던 적이 없어요. 

제가 힘들 때마다 이 메모지를 가끔 읽어 보곤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저에게 손에 쥐어준 메모입니다. 

「교회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신앙의 벗들을 향해, 
'그 현상을 보지 말고, 
그 너머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나아가라'고 권면했던 저 자신이지만 
이번 우리 교회의 일은, 제가 제시했던 답처럼 
쉽게 마음에 갈피가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시간에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주신 목사님께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 자신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되어지는 일에 구경꾼으로 놀라거나 넘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의 대면을 가지는 
뜨거운 기도와 회개의 신앙 확인의 기회로 가지게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도록 (오늘 4부 설교가) 도와주셨습니다. 

혼동케 하시는 이도, 
그중에 다시 질서와 밝은 빛을 비추시는 분도 
여호와이심을 믿고 건강한 걸음을 걷겠습니다. 
4부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성도가 같은 은혜를 받았을 줄 믿습니다. 

목사님, 감사의 마음이 넘쳐서 감히 펜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깨끗하시고 
너무 크지 않는 종으로서 (이 부분이 제 마음을 압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크지 않기로 그때부터 작정했습니다)

큰 상급받도록 기도드리겠습니다. 
1991년 10월...」

우리 한국교회가 그동안 외형과 크기의 우상에 붙들려서 
질주를 해왔던 그런 허세를, 허수를 
우리가 쭉 경험하면서 

결국 제가 청년들한테 '가장 큰 준비는 성실성이다!' 라고 말한 이유가 있어요. 주1)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성실하세요. 

우리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그 말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은 
내 믿음과 내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신실성에 
여러분의 성실을 걸라! .. 그 말이에요. 

여러분 '성실'이라는 것은 관계적 개념입니다. 
나의 어떤 윤리적 씨름이 아니에요. 
나의 어떤 도덕적 함양이 아니에요. 

적어도 성도가 성실할 수 있으려면 
그분의 성품을, 그분의 능력을, 그 분의 언약을 믿고 
상황이 나를 흔들어도 
비바람 속에도 초점을 흐리지 않고 
그 분만 주목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태도를 '성실'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성실하려면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을 믿어야 돼요

본문 삼하8장에서, 다윗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이 승승장구 이면에 한 가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못 보면, 오늘 본문을 헛 읽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언약)을 드디어 이제 성취해 가시는 그림'이 
다윗의 성공이라는 그림으로 나타나는 거에요. 

다윗의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거기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걸 감히 모르고 인간이 '내가 이제 이 정도 됐다' 그러면서 뻗대기 시작하면 
망조가 되는 거죠. 그건 하나님께서 여지없이 불어버리거나 흔들어 버리지 
가만 두지 않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사람을 절대 높이지 마세요.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높이지 마세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이 괜히 하신 말이 아니에요. 
그분은 지독하게 질투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얘기에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유명한 선언이 하박국 선지자의 입에서 토해질 때  합2:4
그 시대적 상황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불의가 성행하고, 오류 투성이고, 불합리하고, 원수는 득세를 하고 
백성들은 고난을 겪고, 이런 혼란과 혼돈 속이었습니다. 

그때 하박국 선지자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을 
한 이유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성실과, 그분의 약속에 
여러분들의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관계적으로 성실하십시오) 그 말입니다. 
우리는 그걸로 사는 거예요. 

계속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세월호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겁니다. 그때마다 혼란을 겪지 마세요.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성실한 분이고, 그분이 신실하신 분이고 
그분은 약속을 반드시 홀로 이루어가시는 분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 다윗의 승리 속에 
8:6과 14절에서 정확하게 하나님이 어떻게 얘기하시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칼빈주의 관점의 설교입니다)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어떤 폭풍우와 비바람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우리의 정신이 나가게 만들어도 
우리는 이 언약의 말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붙들고 
그분의 전능과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성실함을 믿고 
오늘도 또 뚜벅뚜벅한 걸어가는 겁니다. 믿습니까? 

이것이 성도의 성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또 한 주간을 살아가는데 
여러분들에게 강력한 응원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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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지난 금요일은 오랜만에 우리 전체 간사들과 리트릿을 가졌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또 좀 더 가까이 친밀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토크쇼를 준비했더라고요. 

그런데 저를 게스트로 앞에 불러놓고 별거를 다 물어요. 
제가 아주 진땀을 흘렸습니다. 그냥 궁금한가 봐요. 
'목사님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계시나?' 이런 것들이 궁금하겠죠. 

그리고 솔직하게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저 아들 딸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 하듯이 
정말 솔직하게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맨 끝에 '목사님, 청년들에게 꼭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만 부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청년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렸어요. 
'성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앞으로 이 시대 자체가 더욱 성실의 덕목이 요구되는 세상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청년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성실'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인격적인 성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설교 끝부분에서 우리는 그 주제로 다시 돌아갈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