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삼하1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4. 25. 20:17

◈삼하1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후에' 
여기서 '그 후에' 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이 켄' 은 
8:1의 용례와 같이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에 근거하여 본장의 사건이 앞장의 사건 뒤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본장 1-14절의 사건은 8:3-8에 나타난 사건보다 앞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바왕 하닷에셀의 다윗에 대한 도전(15-19절, 8:3-8)은 
본장에 언급된 암몬과의 전투(1-14절)에 뒤이어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장1-14절은 8:12에 간략히 언급된 암몬과의 전쟁에 대한 
보다 상세한 부연 설명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암몬 자손의 왕' 
삼상 11장에 언급된 나하스(Nahash)를 가리킨다.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려다가 오히려 사울 왕에게 패배한 적이 있다(삼상 11:1-12).

2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그 아비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나하스가 다윗에게 언제 어떠한 은총을 베풀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르게 추측하고 있다. 
(1)아마도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2:4, 5:1-3)에 특사를 보내어 축하해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2)또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다닐 때 나하스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즉 사울에게 패배한 나하스(삼상 11장)가 같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을 동정하여 그를 도와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3)나하스가 다윗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하는 '은총'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 인데, 이는 '언약적인 호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쌍방간에 불가침 조약과 같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한 것을 가리킬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성경의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서 이러한 사실 여부보다도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고자 한 다윗의 의리있는 인격에 보다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3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이는 다윗의 호의에 대한 암몬 방백들의 오해이다. 이와 같은 저들의 오해는 분명 다윗의 세력 확장에 대한 저들의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즉 저들은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 블레셋과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의 군대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사실(8:1, 2)을 알고 저들의 미래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에게 패배한 이후에 끔찍한 형벌을 받은 사실(8:2)은 그들에게 더욱 큰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다윗의 호의를 그들을 정복하려는 저의(底意)로 오해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성' 이는 암몬(Ammon)의 수도인 랍바(Rabbah) 성을 의미한다. 
이 랍바 성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의해서는 좀처럼 함락되지 않는 견고한 요새였다(11:1, 12:26, 신3:11). 따라서 암몬 사람들은 외국 사절들에게 이 성의 내부를 보여 주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 틀림없다.

4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그 수염 절반을 깎고' 고대 근동지방에서 남자의 수염은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였다. 또한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의 특사들이 수염을 깎이운 것은 노예처럼 취급된 최고의 수치였다(사 7:20, 50:6, 15:2, 렘 41:5).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습은 아랍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 그들은 수염을 깎이우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수치로 여기고들 있다. 

한편 여기서 '수염의 절반을 깎았다'는 말은 수염의 밑부분을 잘랐다는 말이 아니라 얼굴의 한쪽면에 있는 수염을 깎고 다른 한쪽면은 그대로 두었다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여기서 '의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두' 는 '펼치다', '확장시키다'는 뜻의 동사 '마다드' 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이는 발목까지 길게 내리운 옷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람인들은 다윗 신하들의 긴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겉옷 속에 내의를 입지 않았으니,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선 지독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6:20).

5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한지라 

'암몬 자손이...고용한지라' 다윗의 사신들을 모독하므로 일종의 선전 포고나 다름없는 짓을 자행한 암몬 왕 하눈(4절)은 이처럼 인근 4개국의 군대 3만 3천명을 고용하여 다윗 군대와의 일전(一戰)에 대비하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하고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무력을 갖춘 것이다. 이는 곧 회개할 만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기에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해 하는 악인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닐 수 없다(창 3:11-13, 삼상 13:8-14). 

위에 열거된 4개국 중 3개국은 아람 도시 국가였다. 당시 아람인들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각기 소도시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성경에 나타난 아람의 소국들은 소바 아람(6절 , 8:3), 벧르홉 아람(6절),  마아가 아람(6절), 다메섹 아람(8:5) 등이 있다.

'벧르홉 아람' 이는 벧르홉(Beth-rehob2)에 도시를 건설한 아람 소국(小國)을 의미한다. 벧르홉은 단 지파의 성읍인 라이스(Laish)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삿18:28, 민 13:21).

'소바 아람' 소바(Zoba)는 라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으로서 아람의 여러 소국들 중 하맛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8:3 주석 참조.

'마아가' 이는 바산 동북쪽(신 3:14), 헬몬 산 서남쪽에 위치한 아람 왕국이다. 이곳은 그술과 인접한 이웃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절에서 오직 마아가만 암몬의 모병(募兵)에 응하고 그술이 응하지 않은 것은 그술 왕 달매가 다윗의 장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3:3).

'돕'은 독립 국가는 아니었고 이스라엘 지경인 길르앗 지방 내에 있는 한 성이었다(삿 11:2, 5). 이곳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대신 암몬 땅에서 가까왔기 때문에 암몬의 모병에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용한지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9:6에 보면, 암몬 왕 하눈이 군대를 모집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은 칠천 달란트였다. 이를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로 환산할 경우, 6백만 드라크마가 된다
한편, 암몬왕 하눈이 고용한 2만명의 보병은 역대기의 기록에는 '병거와 마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대상 19:6). 이러한 차이점은 두 저자 중 누군가의 오기(誤記)라고 하기 보다는 아마도 각 저자의 상이한 관점에 따른 기록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당시 하눈이 고용한 아람 용병은 보병과 전차병, 기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7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매 

'용사의 온 무리' 혹자는 용사와 온무리 사이에 '와우' 를 첨가하여 '용사와 온 무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은 원문상 '와우' 를 첨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여기서 '용사'와 '온무리'는 동격(同格)으로서 본절에서 처럼 '용사의 온무리'로 해석해야 한다(KJV, NIV, RSV). 한편, '용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깃보림' 은 '용감한', '힘센'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 '깃보르' 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국민병(militiame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경험이 많고 싸움에 능한 요압의 정예부대를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암몬은 군대의 수(數)에, 다윗은 질(質)에 치중한 것을 알 수 있다.

8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암몬 자손은...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여기서 '성문 어귀'는 암몬의 수도인 랍바성문 앞을 가리킨다. 

'소바와...따로 들에 있더라' 
대상 19:7에 의하면, 아람 용병들이 진친 들은 메드바 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메드바 들은 요단 강의 동편 고원 지대로서 랍바 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병거와 마병을 원활히 운용하기 위하여 들판에 포진(布陣)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암몬군과 아람 동맹군이 남북으로 따로 진을 쳤던 것은 요압의 군대를 가운데 몰아넣고 양 쪽에서 협공(挾攻)하기 위함이었음에 틀림 없다.

9 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10 그 백성의 남은 자를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진 치게 하고 

'요압이...이스라엘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이는 요압이 이스라엘 정예군을 두 대로 나눈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요압의 지휘는 양쪽에 포진하고 있던 적의 협공에 대비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였다.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치고' 요압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정예병 중에서 또다시 선발한 무리를 가지고 아람 용병과 대치(對峙)한 것을 의미한다. 즉 암몬군보다는 필시 아람 용병들이 더 전투에 능하리라고 판단한 요압은 스스로가 저들과 맞서려고 전투 태세를 갖춘 것이다.

'그 남은 무리는...아비새의 수하에...진치게 하고' 이는 곧 아비새로 하여금 암몬군을 공략케 할 뿐 아니라 저들이 아람군을 도와 요압 자신의 용사들을 협공하는 것을 차단케 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다.

11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가로되...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적은 병사로 많은 적군을 물리치기 위한 요압의 작전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즉, 그는 적의 협공이 있기 전에 아비새로 하여금 암몬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도록 해놓고 자신은 일군(一軍)을 이끌고 메드바 들에 있는 아람 동맹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적의 양군의 결집력(結集力) 또는 협력 관계를 깨뜨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혹시라도 자신의 선제 공격이 실패할 경우에는 아비새가 암몬군을 포기하고 자기에게로 달려오고, 다행히도 그 선제 공격이 성공하면 자신이 아비새에게 달려가기로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압의 작전은 많은 수의 동맹군을 무찌르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작전이었음은 분명하나 그만큼 자신과 그 군대에게 미치는 위험이 컸던 것 또한 사실이다.

12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너는 담대하라' 암몬. 아람군과의 싸움에 임하기에 앞서 요압이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아비새의 용기를 돋우는 장면이다. 이러한 요압의 각오는 단지 돈을 받고 전쟁에 임한 아람 군대의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성읍' 요압은 이스라엘의 성읍을 이처럼 '하나님의 성읍'(the cities of our God)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요압의 발언은 이스라엘의 모든 기업(基業)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그들에게 주신 것(창 12:6, 7, 13:14-17, 수 1:15)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발언 속에는 이스라엘의 한 치의 땅도 적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요압은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을 위한 명분 있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혹자는 요압의 이와 같은 말을 해석하기를 '만약 하나님께서 적에게 승리를 준다해도 우리는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로 앞에서 요압이 한 치의 땅도 빼앗길 수 없다는 의도로 '하나님의 성읍'이라고 발언한 사실과 배치된다. 
오히려 이 말은 하나님의 성읍이 이방신을 섬기는 적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므로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말이다. 즉 요압의 이말은 이스라엘의 세(勢)의 불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읍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리라는 확신을 나타낸 말인 것이다(삼상 17:47).

13 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아람 동맹군이 요압 앞에서 도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점에 의거할 때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저들은 전쟁을 해야하는 분명한 명분도 없이 단지 돈에 팔려왔기 때문이다. 
(2) 또한 저들은 여러 나라가 동맹한 군대로서(6절) 서로 앞장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그뿐 아니라 저들은 요압의 사기 충천한 군대를 보고선 이미 전의(戰意)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전쟁은 비록 소수의 정예 부대와 다수의 싸움이긴 하였지만 소수의 정예 부대가 보기좋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도망하여' 당시 아람 군대는 병거와 마병을 갖춘 군대로서(18절 , 대상 19:6, 7) 수리아 지역의 주도권을 다툴 정도였으니 암몬군대보다 훨씬 강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아람군이 다윗 앞에서 패퇴(敗退)한 것을 본 암몬군 역시 다윗을 두려워하여 성 안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돈과 사람을 의지한 군대가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군 앞에서 아무 힘도 사용하지 못하고 물러난 사건이었다 하겠다.

'요압이...돌아오니라' 요압이 다윗의 특사를 모욕한 암몬(4절)의 랍바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이처럼 회군(回軍)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랍바 성은 견고한 요새였으므로 소수 정예 부대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3절). 
(2)또한 이때는 전쟁하기 어려운 겨울이나 혹은 우기(雨期)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11:1의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라는 말에 의해 더욱 신빙성이 높다. 

15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 모이매 
16 하닷에셀이 사람을 보내 강 건너쪽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 내매 그들이 헬람에 이르니 하닷에셀의 군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하닷에셀이...아람 사람을 불러내매' 
하닷에셀(Hadadezer)은 그 당시 요단 동편과 유브라데 강 유역 등 수리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던 소바 아람국의 왕이다. 8:3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아람 동맹군의 패배(13, 14절)를 다른 어떠한 아람 왕들보다 더 수치스럽게 여기고선 그의 지배하에 있는 아람국의 군사들을 대규모로 소집하였을 것이다.

'헬람' 아람 동맹군의 재집결지인 헬람(Helam)은 지난번 그들이 요압군에게 패주했던 메드바(Medeba) 들(8절 주석 참조)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로부터 동쪽으로 약 48km 지점인 오늘날의 알마(Alma)로 알려지고 있다.

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매 그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매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우더니 

'저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이는 지난번 전쟁에서 다윗 왕이 요압의 정예 부대만을 보낸 것과는 달리(7절) 이번에는 이스라엘 온 지파에서 병사들을 소집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윗 왕이 이번에는 총력전으로 나선 것은 재차 이스라엘에 도전해 온 아람군이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새로이 정신적, 군사적인 무장(武裝)을 강화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적의 동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다윗 왕의 신중성과 지혜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곧 전쟁의 승패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물론(12절), 인간으로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신앙 자세가 아닐 수 없다(마 10:16).

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사령관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사만을 죽이고' 아람 동맹군의 전사자(戰死者) 수를 보여 주는 이 통계는 
제 일차로 아람 동맹군의 사망 숫자 이만(8:4, 대상 18:4)과 
후에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다메섹 아람의 지원군 이만 이천을 합산한 수이다(8:5, 대상 18:5). 
그런데 여기서 이천 명의 오차가 생기는 것은 아마도 계수(計數)의 착오이거나 붙잡힌 아람 군사 얼마가 도주하므로 생긴 오차일 것이다.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고대 전쟁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16절)의 전사는 곧 그 전쟁의 패배를 의미한다(삼상 17:51-53). 따라서 본절은 아람군 전사자의 통계와 더불어 아람 동맹군의 완전한 참패를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9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 이들은 하닷에셀을 지원하여 다윗을 대적했던 아람 소국의 왕들을 의미한다(16절).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이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승자와 패자 간에 맺는 종주권 계약(宗主權契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때에 패자는 승자에게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8:6 
아무튼 이처럼 이스라엘이 암몬군과 아람군에게 연전 연승(連戰連勝)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7:11)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