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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7장,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게 하시는 하나님

LNCK 2023. 5. 2. 20:36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게 하시는 하나님   삼하17장     여러설교정리   

본문 삼하17장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아주 위험한 위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나게 된 것과 
다윗과 모든 다윗의 사람들이 
이 모든 위기 에서부터 벗어나게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문은 매우 급박한 장면입니다. 
다윗이 곧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극박한 장면이고 
위기가 계속해서,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에게 찾아왔어요. 

그런데 다윗이 이 모든 위기로부터 다 벗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위기를 만났지만 
그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 다윗에게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보여주시려고 하시는지 

우리는,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 다윗의 역사적인 사건, 
실제로 일어났던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두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해설 : 징계를 받지만, 다윗을 살려주시며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려주심으로써,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신다' *삼하7장
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1. 그가 만난 첫번째 위기는 
아히도벨의 최고의 계략이 압살롬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의 계략대로 되었다면, 다윗은 죽고 압살롬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17:1~3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4절을 보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일단 옳게 여겼어요.
지금 아히도벨은 사태를 아주 정확하게 봤어요. 이스라엘 최고의 모사답지요!

만약에 그의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요단강 나루턱에서 다윗은 죽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는 데는
밤새 새벽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22

지금 다윗에게는, 잇대가 데려온 6백명의 군사 이외에
특별히 뚜렷한 군대가 없고, 대신들과 경호원, 따르는 백성들 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피난에 짐이 되는, 처자식 등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서
이동에 신속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5절을 보면, 압살롬이 '아렉 사람 후세도 불러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들어보자' 

그러자 후세는 7~13절에 이렇게 모략을 베풉니다.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에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
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후새가 아히도벨의 계략을 들었을 때, 아마 속으로 깜짝 놀랬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윗 왕이 영락없이 죽겠구나'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는 '내 계략은 이렇습니다' 하면서,
아히도벨의 계략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이야기를 해요. 

다윗 일행이 요단강을 건너, 요단 동편으로 도피할 시간을 벌어주며,
또한 요단 동편에서 전열을 재정비해서, 마하나임에서 재정비 합니다. :24 주1)
압살롬에게 대항할 시간을 만들어 주었어요.

이런 후새의 모략의 말에는 '시적인 표현'들이 많았어요.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분노하고 
있을 것입니다. 
압살롬 왕이여, '땅에 이슬이 내림같이 덮치소서'

표현이 너무 시적일 뿐만 아니라, 마치 회화 그림을 그리는 듯 합니다.
귀에 솔깃하게 멋지게 말했다는 거죠. 

또한 하나님은 압살롬을 물리치시고, 다윗을 다시 회복하게 하실 작정을
하고 계시니까
압살롬과 그의 측근들은 모두 '후새의 모략이 좋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14 '그러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이,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더 좋다고 찬성하였다. 주님께서 이미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기 때문이다.' (새번역)

그래서 결국 다윗이 죽을 수밖에 없는, 아히도벨의 최고의 계략이 제시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후새에 계략이 채택됨으로써 
다윗이 지금 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또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고, 아히도벨의 모략이 기각된 이유는
-아히도벨의 모략은 '자기가 1만2천을 데리고 나가서 다윗을 격파하겠다'는
 것이고
-후새의 모략은 '압살롬이 나가서 다윗을 이기라'는 내용이었죠.

아마 압살롬이 머릿속으로 논공행상 셈법을 재빨리 가동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지금 예루살렘 상황을 안정시키고 정리해야 되는 상황에서
아히도벨이 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서 아히도벨이 또 큰 영웅으로
부상하는 것을.. 그는 견제해야 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아히도벨의 이름 뜻은 아히(형제)+도벨(어리석음)
'어리석음의 형제'라는 뜻이죠. 본명인지 별명인지 어쨌든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다윗이 그런 기도를 했던 적이 있었죠.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15:31 (*히브리어 단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죠)  

▲2. 또 하나의 위기가 다윗 일행에게 닥쳤는데 
다윗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예루살렘에 정보수집원으로 심어놨잖아요. 
15:27~28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그런데 그들 제사장들은 나이가 좀 있었을 거예요. *사독과 아비아달 
그래서 그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정보원으로,
그러니까 첩보원으로 그렇게 세워놨단 말이죠. 

17절에 보면, 사독과 아비아달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고, 
여종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면
여종이 성밖에 에느로겔 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히마아스 와 요나단에게 주고,
두 사람이 그 정보를 (요단강 나루턱의) 다윗에게 전달키로 약속되어 있었죠. 

후새가 지금 아히도벨의 계략을 들어보니까 '이거 큰 일났다!' 하는
조바심이 생긴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도 '시간을 벌어주는' 계략을 제시했지만
압살롬이 둘 중에 누구의 계략을 채택할런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후새가 급하게 알렸어요. 아마 약속된 대로
후새 → 두 제사장 → 여종을 통해 → 두 아들 → 다윗
이런 루트로 후새의 정보가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다윗 왕에게 가서, 빨리 강을 건너야 된다고 말해라. 
안 그러면 전무 몰살될수도 있다.. 라고 알려라' 

16절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
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근데 17절부터 보면, 마치 여호수아 때 두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의 집에서 숨었던 것과 비슷한.. 그런 위기 상황이 연출됩니다. 

17절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8절 '한 청년(사울측 사람)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여종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무슨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마침 한 청년이 목격하게 됩니다. 수상쩍다고 여긴 그는 압살롬에게 보고하죠.

두 사람은 지금 요단 나루턱에거 정보를 기다리는 다윗에게 빨리 가야 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바후림이란 곳에서 
근처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뜰에 우물이 있었고, 우기에 거기에 물을 저장하지만
건기에는 말라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 여주인이 다윗 편에 가담해 줍니다.

19절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우물이 있음을) 알지 못하더라'

특별히 '바후림'은 다윗이 반역을 당해서 울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바후림 지역에 이르렀을때, 사울 집안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던 그 동네입니다. 

시므이가 있는 동네란 말입니다. 
다윗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동네란 말이에요. 
옛날에는 친척들이 집성촌처럼 모여서 살았잖아요.

그런데 그 바후림의 민가로 들어갔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어요. 
지금 이 두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고 
더 위급한 것은, 이 중요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라는 말이죠. 
성경에 이름도 없는 한 여인이, 자기 생명을 걸고 
다윗의 정보원 두 사람(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지켜주고 있어요. 

그리고 난 이후에 21절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
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이렇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었던 것이죠.

지금 이 중요한 정보가 전달되지도 못할 뻔 했고 
중요한 정보원들이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위기에서도 
기적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22절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이렇게 다 성공적으로 도피를 했단 말이에요. 철수작전이 성공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죠.
하나님은 지금 다윗을 징계하시지만, 삼하7장의 언약에 근거해서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큰 그림'을 내다보시고.. 기적적으로 그를 살리시고 계십니다.

▲3. 다윗을 도우러 자원해서 나선 사람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지금 급하게 성에서 나왔어요. 
마음이 무너져 있는데다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나왔어요. 
몸도 기력이 완전히 다 빠졌어요. 

그런데 지금 좀 쉴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히도벨이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듣는 순간 
겁이 확 들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얼마나 급하게 요단을 건넜겠습니까.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다윗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넜어요. 
이때에 아마 번아웃 되었을 것입니다. 탈진이 왔을 거예요. 
몸도 완전히 체력이 바닥났을 것이고,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도망은 같지만, 
압살롬이 곧장 추격만 해 왔으면 
전혀 대비하지 못할 만큼, 거의 반 죽은 상태가 되었다.. 라는 말입니다. 

이것도 아주 큰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7절부터 보면 희한하게도, 전혀 뜻밖의 세 사람이 다윗을 도와주러 나섭니다.

27~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1) 암몬 족속 나하스의 아들 소비
성경을 눈을 씻고 다시 보게 됩니다. 
'암몬 족속!' .. 다윗이 얼마 전에 암몬 족속과 전쟁해서, 큰 화를 입힌 자들이죠.

암몬 족속 랍바 성의 소비는 암몬의 전왕(前王) 나하스의 아들이니까, :27
하눈의 동생입니다. 10:1

그가 이제 다윗에게 와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아, 
그는 자기의 형 하눈과는 달리 
자기 아버지 나하스와 다윗 왕 간의 친분 관계를 기억하고 
다윗과의 교제를 유지하려 한 듯합니다. 

그는 랍바 성이 정벌당한 후(12:26-31) 
다윗에 의해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 
마길은 일찍이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보호해 준 사람이죠. 9:4
아마도 그는 지난날 므비보셋에게 큰 사랑을 베풀었던 다윗의 호의를 기억하고 
지금 다윗을 도우러 왔을 것입니다. 
즉 그는 다윗의 인격에 감명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이제 위기에 빠진 다윗을 생각하고 그를 도왔던 것입니다.

3)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로글림은 길르앗의 한 성읍인 바, 바르실래는 이 성의 거부였죠. 19:32

다윗은, 가까스로 요단강을 건너서 일단 발등에 급한 불은 껐지만
그런데 요단강을 건넜어도 빈털터리요, 당장 끼니가 걱정이었는데,
정말로 우연같은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기적같은 도우심으로, 다윗이 결국 그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지는, 다윗이 어떻게 모든 '도피과정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압살롬의 반역사건을 지나는 동안 
다윗이 한번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하여 느끼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보면 정확하게 14절에서 어떻게 다윗이 거기서 벗어났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4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다윗이 그 모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압살롬 편의 모든 좋은 계략들이 무너졌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매순간 섬세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결판납니까?

23절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이것은 앞으로 있을 압살롬의 죽음의 전조인 셈이죠.

◑본문에 대한 신약적 해석

본문의 역사적인 사실을, 영적인 관점으로 좀 더 멀리 바라보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를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사건을 지나고 있는 다윗을 통해서 
우리는, 다윗이 비춰주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아들의 죄 때문에, 그리고 백성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죽임당하신 예수를 (다윗과 함께) 봅니다. 

다윗이 악한 자들의 계략 속에서 죽을 뻔한 큰 위기를 만난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동일한 큰 위기를 만나셨습니다. 

마26:3~4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사람들이 모여서 의논했던 것처럼 
이제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그런 악한 자들이 모여서 흉계를 꾸미고 
있었어요.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처럼, 예수를 죽이려고요. 

자 그리고 배반자 아히도벨이 최고의 계략을 내놓았던 것처럼 
여기에 배신자가 등장합니다.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그때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가룟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일도, 뜻밖의 일입니다. 

반역자 가룟유다도, 아히도벨도 최고의 계략을 냅니다. 
47~48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가룟유다를 포섭한 이유는, 그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을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지적해 낼 수 있어요. 생판 처음 보는
성전 호위병들은, 예수님을 봐도 누군지 모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군호를 짠 거죠. '내가 입 맞추는 그가 예수니라'

마치 아히도벨이 1만2천 명의 소수 군대만 데려가서 다윗을 치려했던 것처럼,
가룟유다도 소수정예 성전경비병(대제사장 휘하)들을 데리고 가게 돼요.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입니다. 그만 잡으면 나머지는 다 흩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을 개연성이 크죠.
아히도벨도, 다윗 왕 한 사람만 잡으면, 다 흩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죠. :2

▲자 그런데 이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는 이 모든 계략이 다 성공하게 됩니다. 
(다윗을 잡으려는 계략은 다 실패했지만요)
그리고 예수님은 잡히시고, 결국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살아나는데 
예수님은 그 모든 악한 계략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잡히시고 죽임을 당했는가요? 

성경이 명확하게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이 악한 자들의 계략이 성공하게 되고 
예수가 이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라고 말씀해요. 

더 명확하게 이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제자들의 증언을 보면,
행2:22~23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자 명확하게 성경은 말합니다. 
다윗이 그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고, 섬세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 때문이었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계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고 그 계략 속에서 결국 죽임 당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역사하셔서 그를 죽음으로 몰아내셨기 때문'이고, 

이 악한 계략을 성공시켰던 그 반역자 가룟유다가 
(아히도벨처럼) 자살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마무리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좀 더 멀리 보면서, 예수를 함께 보게 되면, 

다윗은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역사하셔서 
다윗이 모든 위기에서부터 벗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보호하셨으면서도 
왜 예수는 이 모든 악한 계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셨고, 그를 죽게 하셨는가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예수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그 악한 계략이 성공하도록 하셨다는 말이에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스스로, 
왕을 떠난 백성인 우리와 자신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셨고 (다윗은 살리신 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예수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그를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적용

▲1. 위기와 위기의 연속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꿋꿋이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소위 '다윗 언약'을 통해서, 
그 왕권과 보좌가 대대로 계속 이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삼하7장

그런데 마귀가, 압살롬을 통해서 역사했습니다. 
그도 다윗의 자손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 아니었죠.

위에서 3가지로 살펴보았지만
-하나님은 아히도벨의 탁월한 계략은 폐하시고
 후새의 어리석은 계략을 채택하도록 하셨습니다. :14 

-하나님은 다윗의 두 정보원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다윗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단을 건넌 후에 마하나임에 진을 친 다윗에게
 뜻밖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 3명을 감동하사, 다윗을 돕게 하셨죠. :27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윗과 같은 그런 은총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나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압살롬 라인에 서면 안 되고, 
다윗 라인에 줄을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라인입니다.
예수님의 라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라인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이, 본문의 다윗과 같이
기적적인 역사로, 삶의 숱한 위기와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처럼 순교자가 나올 수도 있고요)
소비, 마길, 바르실래처럼..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 일어나 나를 도울 겁니다. :27

▲2. 압살롬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이스라엘 최고의 지략가요, 모사입니다.
본문에서도 그의 지략은 유감없이 최고로 발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이름의 뜻은 뜻밖에도 '어리석은 형제' 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히도벨은, 압살롬 편에 줄을 섬으로써
그는 '어리석은 형제'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지략은 당대에 최고로 뛰어났으나, 잘못된 방향으로 쓰임받았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였습니다.
앞서 그는 왕궁 지붕에, 천막을 치고, 다윗의 후궁들을 범했습니다.
아무리 왕권이 탐이 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의 선을 넘으면 안 되었죠.
율법은 친모,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레20:11

그런데 압살롬이 그런 일을 자행하고,
아히도벨이 그런 계략을 낸 것은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신앙은, 그야말로 1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구원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구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범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한다.. 구원 관계가 이루어졌죠.
-내가 범죄하면서도 하나님이 마음 아프시다.. 이런 것은 아무 관계 없는 신자들이 있죠.

압살롬, 아히도벨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살았고,
하나님의 세우신 왕 아래에 있었지만
'내가 하는 모반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이런 신앙은 1도 없었어요.

'하나님의 세우신 왕은 다윗이다' 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 거죠.
그저 세상 나라처럼, 세상 정치처럼
기회가 되면 모반을 해서라도 왕을 몰아내고, 정권만 차지하면 장땡인 거죠.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충성해야 된다'는 개념은 1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하다가.. 결국은 둘 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나는 누구와 가까이 친하게 지내고 있나요?
아히도벨이나 압살롬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과
여러 가지 이유로 친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지금 반란을 피해 쫓기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마치 기손 강가에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소비, 마길, 바르실래처럼.. 전혀 뜻밖의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궁지에 몰린 나를 도우게 하십니다. :27

하나님이 내게 소비, 마길, 바르실래처럼.. 다윗을 도우라는 싸인을 주시면
우리는 순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삼하16장에서도 살펴보았지만,  *16장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반역자들 
    신앙인의 면면은, 위기의 상황에서 드러납니다. 
    자기 정체성이 드러나고, 자기 정체가 탄로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대우받는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자기 혼자 궁궐 속에서 몸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손해되고, 어려움 당하는 쪽으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훌륭한 신자들이
    ‘모세’와 ‘에스더’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만하면 충분히 훌륭합니다.

    다만,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
    손해보고/어려움 당하고/자기가 죽는.. 선택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살피면서, 대중이 가는 길에 자기가 편승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위기 상황 때.. 나는 어떤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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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마하나임' 한때 이스보셋 왕국의 수도였던 마하나임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군사 모집에 유리한 이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벽과 성문이 있는 요새화된 성읍이었기 때문에(18:24) 
다윗의 임시 정부의 거점(據點)으로서 안성 마춤이었다. 

한편, 이곳은 과거 야곱이 천사를 만나 복받았던 유서깊은 성읍인데(창 32장), 
이제 다윗도 이곳에서 야곱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세 사람의 도움(27-29)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