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당시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비를 전달하는 일을 마치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은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마가가 사도행전 역사의 전면에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앞서 그는 마가복음에서 잠시 등장했던 적이 있습니다. 막14:51)
▲바나바와 마가는 레위 족속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이와 같이 바나바는 레위족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생질 마가도 분명 레위족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레위족이 하는 일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마가도 어리지만,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의 조카 마가가 자신들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사울에게 그의 조카 마가를 추천했습니다. 그 결과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으로 되돌아갈 때,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뭔가 레위족속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던 거죠. *성전봉사자, 하나님의 일꾼들
▲행13:1~2절에,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1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행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 helper, minister 으로 두었더라
여기에 마가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습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수행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조수였습니다.
마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잘 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교 여행을 갈 때도, 그들의 수행원으로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1차선교여행 도중에 마가는, 예루살렘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슬프게도 마가는, 바나바와 사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갔습니까? 마가는 자기를 믿고 바나바와 사울의 수행원으로 보내준 안디옥 교회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바나바와 사울은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한 동안 안디옥에 머물면서,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울, 곧 바울이 바나바에게 제2차 선교여행을 제안했습니다.
행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행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행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행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여기서 우리는 제1차 선교 여행에서 마가가 떠난 것이 질병이나 부상과 같은 어떤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군인이 임의로 군부대를 탈영한 것처럼, 마가는 임의로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아무튼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마가는 오래 동안 성경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대략 십 년 이상이 지났을 때입니다.
▲그 이후의 마가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몬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두 번에 걸쳐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행전 끝 부분에서, 그는 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이른바 옥중서신 네 권을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옥에 갇힌 바울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를 대신해서 마가를 골로새로 보내면서, 그를 영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이 제1차 선교 여행을 했을 때, 바울을 몹시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던 마가가 이제는 바울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더 이상 마가를 자신의 조수(행13:5)로 생각하지 않고, 마가를 자기의 ‘동역자’(몬1:24)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바울은 자기가 전도했던 곳들을 순방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금 체포되어 제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 그는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순교했습니다.
딤후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바로 직전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줄 알고서, 디모데와 함께 마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마가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마가와 바울과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했습니다. 처음에 바울은 마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은 마가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끝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시작은 좋았더라도, 끝이 나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가처럼 한 순간 실수가 있었더라도, 갈수록 좋아져서 모든 일에 끝맺음을 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마가에게는 바울과의 관계보다도 그에게 더 큰 영향을 준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와의 관계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가는 어릴 때부터 베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바로 마가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선포하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가도 베드로가 선포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도 계속해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 후에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 여행을 갈 때, 그들의 수행원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마가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있지를 않았습니다.
마가는 로마로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제1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의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는 과거에 자기가 범했던 잘못에 대해서 바울에게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옥중에 있는 바울의 뒷바라지를 잘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마가는 다시금 바울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했습니다. 그 뒤에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잠시 풀려났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떠나서, 그가 전도했던 각 지방을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바로 그 기간 동안에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전서는 로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로마 교회를 가리켜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로마의 황제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여기서 일종의 암호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베드로는 마가를 그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영적으로 마가를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가는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12장 때로 추정)
아무튼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의 곁에는 마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사에 의하면, 이 때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자연히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 바울도 체포되어 제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다가 그도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바울에게는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기에, 그는 십자가형에 처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칼로 목 베임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그들이 순교한 후에, (혹은 순교 직전에 베드로가 구술, 마가가 대필) 하나님은 마가로 하여금 예수님의 삶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마가는 그가 베드로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해서, 성령 하나님의 감독 하에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담은 한 권의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가복음서입니다.
여러분! 마가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도 교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수행원이었을 뿐입니다. 사실 그는 그 일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변화를 받아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의 기록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세리였습니다. 누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게다가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고 불렸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성품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변화를 받으니까, 그들의 과거와는 상관없이 그들 모두가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날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도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큰 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에서 뛰어났고, 적어도 한 명의 하녀(로데)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혹은 라틴과 아마 연관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라틴식 이름인, 마르쿠스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이름이 있었는데, ‘요하난’입니다. 우리는 ‘요한’으로 알고 있지요.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나오지요. 행12:12 요하난의 의미는 ‘야웨께서 은혜를 베푸셨다’입니다.
그의 세 번째 이름은 <마가 요한 뭉툭손>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콜로보덱트로스(뭉툭손)’은, 여러분이 의미를 짐작할 수도 있는데, 뭉툭손입니다. 그 의미는,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이 가련한 아기는,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타고 났습니다. 하지만 그 짧고 뭉툭한 손가락에서, 역사상 첫 복음서가 쓰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3가지 이름을 살펴보았고요. -하나는 별명, 그리스 이름이며, *뭉툭손 (출처: David Pawson 강의) -하나는 라틴어 이름이며 *마가, 마르쿠스 -하나는 히브리 이름입니다. *요하난, 요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도, 십자가에 3가지 언어로,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도 3가지 언어의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은 거죠.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히브리 이름은 미리암입니다. 우리는 추정하기를, 마가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는데 그는 ‘물 항아리를 메고 간 남자’로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실 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시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를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가 잘 준비된 방을 보일 것이다.’ *막14:13, 눅22:10
그래서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다락방은, 바로 마가의 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이 복음서의 저자는 마가일 것이라고 힌트를 얻습니다. *막14:15의 다락방을, 행12:12절의 마가요한의 다락방과 동일시 함.
▲우리의 시선을 겟세마네 동산으로 옮깁시다. 이곳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저녁에,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가운데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예사롭지 않는 한 에피소드를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잠이 들었고, 예수님은 밤이 깊도록 기도하실 때 성전 경비병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마가복음은 말하기를, 이 군인들이 당시 젊은 소년을 붙잡았는데 그는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는 그 홑이불을 군인의 손에 버리고, 벌거벗은 채로 그 밤에 도망칩니다. 막14:52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아마 ‘뭉툭 손 마가요한’일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뒤따라 왔습니다. 하나의 이불을 걸치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좇아와서 감람나무 뒤에 숨어서, 모든 벌어지는 일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시 기도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마가는 그걸 들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있었어요. 바로 거기에 있었어요.’
마가는 벗은 몸으로 집으로 뛰어서 돌아갔습니다. (아마 자다가 이불 두르고 겟세마네 동산에 간 것임) 자기 홑이불을 성전 경비병의 손에 남겨 두었습니다. 이 젊은 사람이,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마가입니다.
분명히 마가는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마가는 신약성경에 결코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약에 자주 언급되지만, 그러나 항상 2인자로, 항상 누구의 개인조력자로, 개인 비서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수많은 헌신적인 조연들이 필요합니다. 주연으로 나서는 자들은 많거든요. 조연은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충성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마가요한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는, 3명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의 조력자였습니다.
이 4명의 기독교 지도자 중 첫째로는, 그의 사촌 형인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려와서, 훈련시키고, 할 일을 주었습니다.
바나바로부터, 마가는 무엇보다도 바울의 조력자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조력자로 한동안 바울을 도왔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죠)
(몇 년이 지난 후 마가는, 로마에서 누가를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가는, 베드로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순교한 후에,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했고, 베드로는 마가를, 자기 통역자로 썼습니다. 마가가 라틴어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베드로는 라틴어(로마어)를 몰랐습니다.
당시 갈릴리의 어부들은 대다수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때문에 베드로는 당시 로마에 왔을 때,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로마에 왔을 때, 마가를 자기 통역자로 사용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라틴어로 통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