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번째 가르침은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였죠. 이 설교를 2천년 전에 실제적으로 첫번째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가가, 마가복음서의 처음에 배치한 것은 사실이죠.
맨 처음에 둔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주시더라도, 그 말씀을 받는 '밭'의 상태가 나쁘면, 제대로 되어있지 못하면 그 말씀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른 가르침을 주시기 전에 가장 먼저 '네 가지 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그런데 예수님의 그 티칭(가르침)들을 마가복음을 쭉 읽어보시면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티층이 이렇게 문맥과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맞는 티칭들도 대부분인데
어떤 티칭들은 읽어보면 참 난해한 티칭들이 있어요. 참 난해한 말씀드리있어요. 그 컨텍스트(전후 문맥)을 봐도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고 그 문장만 봐서도 이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고 이런 말씀들이 있단 말이에요.
이런 티칭들은,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셨던 감동은 뭐냐면 '예언적인 티칭' 들이라는 거에요.
예언적인 티칭들은 보통 이런 속성들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예언적인 티칭"은 어떤 문맥이라든지, 의미라든지.. 그런 것들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성령의 감동하신 가운데 이 말씀을 특별히 들어야 될 사람이 있다든지, 아니면 특별한 어떤 시점가운데 그 말씀이 역사하게 될 것을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적 말씀이기 때문에, 뭔가 문맥과 충돌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티칭에도 보면,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보면, 분명히 컨텍스트가 있고, 흐름이 있고, 의미가 분명하고... 이런 티칭이 이어지다가, 중간중간 툭툭 튀어나오는 (결이 다른) 티칭들이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앞뒤문맥을 읽어봐도, 이게 뭔 얘기인지 잘 모르겠고 예를 들면 본문 4:25절 같은 게 그런 겁니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근데 이 구절을 여러분도 읽어보시면 앞의 문맥인 '네 밭의 비유'를 읽어봐도 그렇고, 뒤의 문맥을 읽어봐도 그렇고 이 25절이, 여기에 왜 끼어들어 있는지.. 무슨 얘기인지 잘 몰라요.
문맥의 흐름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도 않고 '있는 자'가 어떤 거고 '없는 자'가 어떤 거라든지, 이런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네 밭의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그냥 툭 튀어나온 말씀이에요. '예언적 말씀'으로 보는 거죠.
그래서 '네 밭의 비유'가 사복음서에 네 번 다 나오는데, 다른 대조 본문을 찾아봐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건 뭐냐하면 저는 '예언적인 티칭'이라고 믿습니다. 예언적이란 말의 뜻은, 꼭 어떤 의미와 컨텍스트를 따라 주어진 게 아니라 예언적으로 예수님께서 툭툭 던지시는 티칭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티칭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영을 다루고 있는 영적인 티칭들입니다.
이런 예언적인 티칭들은 '영적인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우리의 영역에까지 뿌리를 내려서 내 영이 움직여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중간중간에 보면, 우리의 영을 이렇게 툭툭 치시는 가르침을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물론 모든 티칭이 다 직접적으로 우리 영을 움직이는 건 아닐 수 있어요. 어떤 것들은 충분히 이해해야 되고, 어떤 것들을 우리가 충분히 깨달아서 적용해야 되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의 영을 본격적으로 아주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기도하면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25절같은 예수께서 의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영을 깨우고 예수께서 의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영을 움직이게 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본문 4:25절 말고도, 마가복음에는 그런 '예언과도 같은' '영적 원리'들을 다루는.. 다른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3:27절입니다.
◑막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물론 이 말씀은, 앞뒤 컨텍스트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귀신이 귀신을 내어 쫓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게 아니라고 하면 설명하면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영적인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영적인 티칭입니다.
여기 아주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해야 된다"는 거에요. 이게 영적인 원리라는 거예요.
강한 자는.. 하늘에 있는 사탄을 얘기하는 거죠. 강한 자, 즉 사탄을 먼저 결박해야 이 땅에서 우리가 영적인 승리, 영적인 결과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자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반드시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어떤 그림자라 그랬죠.
하늘에 본체가 있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그림자라는 거에요.
그래서 하늘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땅에서 뭔가 영적인 돌파가 일어나고, 열매가 있고... 이럴 수는 없다는 거에요.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결과로서, 땅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그 일은 적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일은 아니라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뭐냐면 반드시 하늘에서 먼저 뭐가 일어나고 그 일어난 일의 결과로, 땅에서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일들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하늘에서 어떤 본체가 없이도 그냥 이 땅에서 좋은 결과, 좋은 축복처럼 보이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열심히 일했더니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또 열심히 뭔가 했더니 성공을 했다더라... 뭐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일들은, 여러분, 하늘로부터 온 일은 아니라는 거에요. 하늘로부터 온 일들에 속성은 뭐냐면 반드시 '영적으로 먼저 강한 자가 결박되고, 그 결과 이 땅에서 풀어지는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일들의 특징이요, 원리라는 거죠.
하늘에서 영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 땅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어떤 일어난다... 이것은 적어도 하늘로부터 근거한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거에요.
인간은 열심히 일하고, 좋은 일을 하면 좋아 보이는 결과들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영적인 일은 아니에요. 우리는 이걸 분별할 줄 알아야 돼요. '좋은 일'과 '영적인 일'은 다른 거에요.
교회는 '좋은 일'을 기대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일'을 기대하는 곳이 돼야 됩니다.
제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하나님께서 제 안에 주시는 달달 볶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하면 -좋은 사람 되지 말고 영적인 사람 되는 거고 -좋은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기대해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를 덮고 있는 가장 강력한 영적인 도전이 <인본주의의 영>이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이 한국 사회를 덮고 있고,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하게 가장 강력하게 교회를 공격하고, 덮고 있는 영이 <인본주의의 영>이에요.
인본주의의 영이란, 대놓고 나쁜 짓 하자는 게 아니에요. 다 좋은 일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인류애, 세계 평화, 사람들의 인권, 평등...
다 좋은 일 하자는 거고, 다 평화를 위한 일이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한 일인데 그가운데 하나님은 없어요. 중략
여러분, 적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속이는" 거에요. 평화의 사자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자로, 정의를 실현하는 자로.. 속이면서 이 세상에 등장한다는 거에요.
정신 차려야 돼요. 지금 정의, 인권 이런 차원을 넘어서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사람'이 돼야 되는 거예요. *차별금지?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냐면 영적인 게 먼저 풀어지는거에요.
여러분, 이 땅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열심히 삶을 살아오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수고를 모르시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2020년에 주시는 감동은 뭐냐면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다는 거에요.
기도 열심히 하는 것.. 좋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열심히 하는 기도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다는 거에요.
그럼 무슨 기도가 있어야 돼요? 영적인 기도가 있어야 되는 거에요.
아무리 우리가 뭔가 열심히 해도 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건 부질없는 짓이에요.
언제 결과가 허무하게 사라질지 아니면 것이 저주로 바뀔지 우린 전혀 몰라요.
지금은 여러분,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 영적인 일을 해야 될 때입니다.
교회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고 여러분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 영적인 일을 해야 됩니다.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해야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에요. 보이는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세계,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해야 되는 싸움이에요.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해야 되는 싸움이에요.
2020 년은 여러분, 이 싸움이 더욱 치열할 겁니다. 강한 자 마귀가 더욱 거세게 몰아칠 거고요. 그 강한 자를 결박하지 못하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결과는 모래성이 되어버릴 수 있어요.
더 깊은 기도가 필요해요. 더 강한 기도가 필요해요. 영으로 하는 기도가 필요해요. 영분별과 깨어있음이 필요해요.
영으로 하는 기도, 더 깊은 기도, 정말 성령안에서 하는 기도가 필요해요. 혼의 힘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기도, 육으로 열심히 하는 기도.. 이거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에요. 이게 2020 년이 되면서, 금년에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제 안에 많이 느끼는 부담이에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부담감이 있어요. 그 부담감은 뭐냐 하면 '강한 자가 달라진다(더 강적을 만나게 된다)'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인 권위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믿음도 커지고, 마귀도 더 강적을 만나게 된다는 거죠!
2020년에는, 이전과는 또 다른 권위를 주실 거예요. 우리 공동체 위에 또 다른 권위들을 주실 텐데 이 권위들이 부어질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냐면 강한 자가 더 높은 놈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항상 그래요. 내가 강해질수록 (승리하고 이제 쉬는 게 아니라) 더 강한 자가 오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에서는 여러분 분명한 원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위를 더부으셔서, 더 높은 권위를 올라가게 하시면 거기에 맞는 마귀가 와요.
그 이전 마귀하고 싸워서 이겼거든요. 이제는 더 강한 마귀가 도전해 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기름부으심, 새로운 어떤 영적인 권위를 주시려고 할 때는 영적인 싸움의 차원이 달라져요.
▲그런데 우리가 그 차원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돼요. 조금 더 깊게 우리가 성령안에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해요.
여러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새로운 (더 큰) 권위를 부으신다는 뜻이에요.
이때는 여러분 '강한 자를 결박하는' 이 싸움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더 깊게 기도로 들어가야 돼요.
지금까지 해왔던 기도가, 그냥 열심히 하는 기도였다면, 지금은 더 깊이 들어가고, 더 강한 그런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야 될 때라고 믿습니다.
'더 깊은 기도'라는 것은 뭐냐하면 성령안에서 하는 기도를 얘기합니다. 깊은 기도는 성령안에서 하는 기도를 얘기합니다.
'깊은 예배'는 성령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얘기합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성령안에서 예배하는 것은 좀 달라요. 깊은 기도로 들어갈 때는, 결국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됩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우리가 깊은 기도로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깊은 기도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내 혼과 내 육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어떻게 기도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기도가 계속 이어지고
나도 뭐를 기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성령께서 내 기도를 인도하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가 굉장히 깊어지면서, 시간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해요. 그런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는 기도...
한 시간을 했는지, 세 시간을 하는지 그냥 감이 없어요. 이게 이제 성령안에서 깊게 들어가면 일어나는 현상들인데 이 기도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기도가 아니고 거기서 다른 레벨로 들어가야 되는 타이밍이라는 감동을 요즘 주세요. '다른 레벨, 더 높은 레벨로 들어가야 되는 때다!'
그래야 아 다음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고 하는 일들을 하실 수가 있어요.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해야, 그 다음에 이 땅에서 일들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특별히 사역자들은 잘 들으세요. 우리 사역자들은 참 충성돼요. 열심히 자기 몸을 안 사리고 해요.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왔을지 몰라도 지금부턴 충분하지 않아요. 지금은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야 돼요! 더 깊게 들어가야 돼요. 더 깊게 들어가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2020년에 주님께 행하시려고 하는 일들을 볼 수 없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깊은 기도를 사모하셔야 돼요. 지금까지 했던 기도하고는 달라져야 돼요. 기도가 업그레이드 되셔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