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에바다 영의 귀가 열리다

LNCK 2023. 6. 20. 06:40

에바다, 영의 귀가  - YouTube

◈에바다 영의 귀가 열리다            막7:31~37  

◑도입

본문에, 예수께서 한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오늘은 '귀머거리' 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 교회의 형제들 하고 <포레스트 검프>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달리기 시작하거든요. 한참 달리거든요.

영화를 잘 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고 나와서는, 형제들마다 하는 얘기가 제각각 다 다른 거예요. 

'검프가 왜 뛰었냐?' 물어보니까
상처 받아서 뛰었다. 
취미로 뛰었다.
약간 미쳐서 뛰었다...
자다가 일어난 사람은 '언제 뛰었어?' 이러는 사람도 있었어요.

분명히 똑같은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말하는 내용이 다 달라요. 

그 이후로는 미국에 있을 때, 제가 영화를 잘 보지 않았어요.
봐도 어차피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고, 이해도 안 되기 때문이었죠.  

'혹시 우리가 영적으로 그렇지는 않은가?' 하는 거죠.

본문 막7장에 등장하는 "귀먹고 말 못 하는 사람"은 
어쩌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보기는 분명히 보는데, 뭔지를 몰라요. 
보기는 분명히 보고 분명히 경험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영적인 뜻은 뭔지.. 전혀 알지 못해요. 

▲'듣는다' 는 것은 뭘까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냥 청력이 살아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고로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 의미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분명히 영화를 보기는 보는데..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죠.
(한글 자막이 없는 외국 영화인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 있지 않으면
본문의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는 거죠. 
아니 듣기는 어렴풋이 들어도.. 그런데 그것이 뭔지, 의미를 몰라요.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영적인 현주소입니다. 

▲인간에게는 육신의 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이 세상에 보이는 세상 속에만 살아가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영적인 세계 속에 속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이 두 세계와 다 소통할 수 있는 기능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이는 물질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감 이라하는 기능들을 주셨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맛보는 기능을 주셔서 
이 보이는 세상 속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듣고 보면서 살아갈 수 있듯이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다고 하는 건 무슨 뜻입니까?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며, 영적 의미를 깨달으며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다'고 하는 것을 
'그냥 우리 안에 영이 있대, 
죽고 나면 그 다음에 영이 둥둥 떠다니다가 천국 가는 거래!' 

이렇게 무지하게 이해하는데..
여러분 그것이 영적인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얘기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뜻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를 인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면,
그럼 '사람이 영적인 존재야!' 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말장난일 뿐이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고 
영적인 진리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습니다. 
이 귀와 눈들이 열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태초에 아담은 말이에요.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태초에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마!'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지요. 
이 죄는 우리의 영의 기능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그냥 육체가 되게 했어요. 
사람을,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냥 이 땅에만 속한, 보이는 세상에만 속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는 
사람 안에 있는 영적인 기능들이 조금씩 조금씩 소멸되다시피 하면서
영적인 기능들이 점점점 없어서 
그냥 육체만 있는 존재가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갑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창6:3

성경에 보면, 아담에서 가인으로, 또 가인의 후손들로 쭉 이어지면서 
영의 귀가 점점점 닫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때처럼, 그렇게 잘 듣지를 못 해요. 
점점점 말씀을 듣는 횟수가 적어져 갑니다.

가인의 이야기를 보시면, 그래도 에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뭔가 소통하는 게 있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에덴에서부터 쫓겨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건이,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리고 그 후손으로 내려오면, 먼 훗날에 (2천년 후에) 아브라함 때가 돼서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기록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의 귀를 막아버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귀는 열려있습니까?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에바다. 열릴지어다!'
귀가 열리는 그런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영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본문은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님이 고치는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본문의 주인공처럼 '영적으로 귀머거리' 라는 전제로 설교합니다.

'영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육신의 귀로 듣듯이
무슨 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영으로 듣는 것인데 
'영적으로 듣는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분별하는' 것과 비슷해요.

'영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분별력에 가깝습니다. 
'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영적으로 이런 뜻이구나' 
'아 지금 나에게 발생한 일이, 영적으로 이런 뜻이구나' 

이것을 우리가 듣지 못하면, 그냥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이 조금 어려워 보이면 '큰일났다!'고 걱정하고 호들갑을 떱니다. 

그런데 영적인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은, 
다른 각도로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해요. 

'어, 이 일이 왜 일어난 거지?' 
그런데 그 안에,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아니야,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거 같아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려 하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는 거야' 

이걸 듣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으로만 반응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반응하게 되지요. 이게 영으로 듣는 겁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내 주위에서 보이는 것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거에요.
분별하는 거예요.

'아~ 지금 하나님이 이런 거 때문에, 나한테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구나!'
'지금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대처하라고 하시는구나'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이런 것들을 돌이키게 하시려는구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뜻,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 "영의 귀가 열리는(에바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가운데에 영의 귀가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일들에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지금이 영적 전쟁을 해야 되는 때인지, 
아니면 자숙하고 회개해야 되는 때인지...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까? 

지금 내 주위에서,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코로나 사태를 분명히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이 변하고 있고 
지금 전 세계가 들썩이는 이 상황을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는 듣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고 있지 않습니까? 
'큰일 났다. 위생을 잘 해야지!' 이거는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왜 이 세상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허락하시는지 
것인지 이해하고 계십니까? 그 이유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요즘 한국에, 보수 유튜버, 진보 유튜버 사이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 질문을 받아요. '목사님은 알릴O오 보시나요?  신의 O수 보시나요?'
 
저는 그 유명한 시사 유튜브 방송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요. 
그런 정보를 무시 하는 건 아닌데 
그런 음성을 듣고 싶지는 않거든요. 

제가 끊임없이 듣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하나님이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지?'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뭐지?' 
거기에 훨씬 더 제 귀를 기울입니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이렇게 '영의 귀'가 열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길게 가르치시고 난 후에,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입니다.

4:1~22절까지 이미 예수님이 비유를 전부 다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사람이 다 들었어요. 근데 뭘 또 들으라는 거예요? 

다 듣고 난 사람들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영의 귀로 듣고 깨달아라, 분별해라' 이런 뜻이죠.

그냥 육신의 귀로 듣고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영적인 의미가 뭔지,
하늘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이것을 분별하라는 거예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래서 육체의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듣고, 깨달아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라는 거죠.

여러분은 영적인 분별력이 있으십니까? 
만약에 영적 분별력이 없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귀머거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에요. 

듣기는 보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그래서 마태복음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귀가 닫혀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해요. 
전혀 영적으로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귀머거리', 또는 '영적인 귀'라는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듣지 못하게 되면 생기는 현상이 있습니다. 
자기 얘기, 자기 주장만 계속 떠드는 것입니다.

창4장에 보면, 가인의 6대 손인 라멕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담 이후 6세대 쯤 지나가니까, 하늘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 라멕이 이렇게 얘기 합니다.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여러분, 하나님의 목소리가 그치고 나면, 들리지 않게 되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라멕처럼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얘기 하게 된다는 거죠. 

영의 귀가 막힌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이번에 제 생일날, 저희 교회 스태프, 사역자들이 
제게 선물을 하나 사 주셨는데, 뭐냐면 '에어팟프로' 였어요. *무선이어폰

그 안에 '밖의 소리를 다 지워 버리는 노이즈 캔슬링' 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이 비행기를 많이 타는 사람들한테 참 유용해요. 

비행기 타면, 사실은 굉장히 큰 소음이 나거든요. 웅~ 소리가 계속 나는데 
그 소음을 처리 안 하고 계속 방치를 하면, 이제 귀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난청이 오거나 이명이 생기거나 하죠.
저도 벌써 이명이 왔어요. 24시간 365일 제 귀에서 고주파 소리가 삐~ 납니다.  

그래서 제가 이어폰을 이제 귀에 꼈어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딱 눌렀어요.
세상에! 신세계가 있는 거에요. 세상에 대해 완전 귀머거리가 됩니다. 
정말 세상 조용합니다. 

밖에서 집사람이 '점심 드세요!' 하는 소리도 안 들려요. 그냥 고요합니다.
그런데 딱 한 소리만 들립니다. 내 목소리! 이게 내 목소리는 너무 잘 들려요. 
밖에 소음이 차단될수록, 내 소리는 더 잘 들리는 거예요.

여러분, 영의 귀가 닫히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기 소리만 들려요.
귀에 들리는 소리는, 그 소리 밖에 없으니까요. 지금 라멕이 그런 식이죠!

보기는 보는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이건 이런 일일 거야, 이 의미는 이럴 거야..'. 귀머거리의 특징이예요. 

귀머거리가 듣는 유일한 음성은, 자기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외치게 됩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어라!' 창4:23

계속 자기 생각으로 이해하고.. 합리화하고.. 
이해하고.. 합리화 하고..
왜요? 아무도 말해 줄 사람이 없어요. 

아무것도 안 들리니까, 계속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 확신이 생기거든요. 
이게 진리인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라멕처럼 외치는 거에요.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말을 들으라는 겁니까?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무슨 말을 들으라는 거예요?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내가 소년을 죽였도다'

'들으라!' 그래서 뭐 대단한 진리를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무슨 얘기냐면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내가 소년을 죽였도다'
사람 죽인 이야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람 죽인 이야기는, 여러분 자랑스럽게 할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감추고 싶고, 부끄럽고.. 그런 이야기죠.

왜 라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귀머거리 라서 그래요.
하늘로부터 듣지 못하니까, 
자기 행동의 의미가 뭔지...
하늘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질타하시는지
귀머거리 라서 듣지 못하는 거예요.

대신에 계속 반복되는, 내면의 자기 소리만 들립니다. 
'내가 받은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내 상처가 하는 소리 '아파, 힘들어!' 
내 상함이 하는 소리 '나는 억울해, 화가 나!' 

그 소리만 계속 들리는 거예요. 왜요?
영적 귀머거리라서 그런 거죠.
라멕은, 분명히 귀에 에어팟을 꽂고, 그것도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했을 거예요. 

'죽이는 게 당연해, 나에게 상처를 주었잖아!' 
자기 살인을 오히려 자랑하려고 있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듣는 대신 
자기 타락한 본성 안에 있는 소리로 
자기가 한 행동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자랑스러운 것인지, 부끄러운 것인지를 스스로 규정해 버렸어요. 

그리고는 라멕은 스스로 법을 만듭니다. 
창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7배 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77 배 이리로다'

딴 사람이 자기를 한 대 때리면,
77대를 때리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정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냥 자기 스스로 정하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정하셔야 될 것인데,
교만하게 자기가 정합니다.
하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근데 여러분, 라멕의 '들으라'가
우리 인생에도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남편아, 내 말을 좀 들어라!' 
'아내야, 내 말을 좀 들어라!' 
우리 삶 가운데도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 상대방을 향해, '들으라'고 명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거죠.

부부싸움할때 보면, 진리와 진리가 충돌합니다. 
부부싸움의 핵심은, 정확히 라멕의 목소리와 똑같아요. 
'아내야, 내 말을 들을지어다. 
남편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제가 상담해 보면요 참 어렵습니다. 
진리와 진리가 충돌해요. 서로 자기 주장이 진리라고 우깁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는 좌우 대립 정치상황도 동일하지 않습니까? 
진리와 진리가 충돌하고 있어요.
서로를 향해서 '내 말을 들으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적 귀머거리들은, 서로를 향해 '내 말을 들으라'고 선포합니다. 

7:32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귀머거리를 말이 어눌합니다. 말을 더듬습니다.
왜냐면 듣지 못하니까!

여러분 오늘 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대부분 여기서 기인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슨 의미인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영적 의미가 뭔지 몰라요. 

그래서 그냥 내 안에 내 상처가 말하는 대로, 
내 안에 상함이 말하는 대로, 서로를 향해서 들으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막상 말하면, 말을 더듬습니다.
귀머거리라서.. 듣지 못하니까, 말도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서, 라멕의 선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는 합당한 자연의 섭리다' 
'라멕을 위하여는 남자가 남자를 취하리라' 
자기가 스스로 법을 정하는 거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

그러면서 하늘의 음성, 창조주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귀머거리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공허하게 '내 말을 들으라'하며, 라멕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행26:1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엔, 라멕과 비슷하게 자기 확신에 찼던 사람이었죠. 
'이건 분명히 옳은 일이야,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야..' 자기 확신에 가득찼어요. 

분명히 그렇게 믿었는데,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이 하늘의 음성을 듣자, 자기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비로소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의 의미가 뭔지 깨닫기 시작해요.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인간의 고통이 여기서부터 나온다는 거예요.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거기로 가면 안 되는 길인데... 거기로 가면 고통의 길인데...
가시채를 계속 뒷발질하는 거죠.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여러분의 고통은 어디서부터 오는 거죠? 
결국 하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막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이 귀머거리의 모습에 예수께서 탄식 하셨습니다. 
귀가 닫혀버린 인간의 모습!

듣는 사람은 없고, 외치는 사람들만 있는 라멕의 세대!
이 귀머거리의 사회를 보면서 예수께서 오늘도 탄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이 남자를 향해서, 이 귀머거리들의 세상을 향해서 선포하십니다. 
'에바다. 열릴지어다!' 영의 귀를 여는 명령이 선포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지더라' 아멘! 

오늘, 이 하늘의 음성이, 우리 영혼에 들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꼭 들려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음성만이 귀머거리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유일한 구원이고 소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자 이 귀머거리에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소리가 들렸을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읍니다. 

그의 귀가 열렸을 때, 제일 먼저 유일하게 들렸던 것은 
예수님의 음성이었어요.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냐 하면
많은 무리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를 따로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다른 데서 이렇게 행동하시진 않으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만약 사람들이 많은데서 '에바다 열려라' 그랬으면 
귀는 열렸을 거예요. 그럼 아마 수많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의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을 거예요. 아주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예수님은, 그걸 원하지 않으셨어요.
그의 귀가 열렸을 때, 예수님의 소리만을 듣기 원하신 거죠.
섞이지 않은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길 원하셨죠. 
그래서 따로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게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시는 진짜 목적 아니겠습니까?
뭐 이것 저것 잡소리들을 들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해, 하나님만을 향해 우리의 귀가 열리기를 
섞이지 않은 소리만을 듣는 귀가 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듣는 것의 두 번째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듣기는 들어도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

둘째는, 우리가 듣기는 들어도, 세상 잡다한 소음들과 함께 듣는다는 거죠.
거듭난 크리스천이 되면 듣기는 들어요. 
기도도 하고 또 성경도 보고, 설교도 듣고...
그런데 TV도 보고, 유튜브도 듣고... 이렇게 섞어서 듣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1:9로, 압도적으로 세상 얘기를 더 많이 들으면서 살고 있죠.

사실 여기에 '듣는 귀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가요?
너무 섞여 있는 소리가 많아서 그런 거죠. 

내 속에서, 내 욕심과 고집과 선입관이 여러 목소리를 냅니다.
외부에서도 세상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셔도 잘 안 들려요. 

정말 하늘에서 오는 소리를 듣기 원하십니까?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33
그렇다면 여러분, 한적한 곳으로 가셔야 돼요. 다른 소리를 떠나셔야 돼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가장 많이 씨름하는 것도 사실 이거예요. 

어떤 때는 정말 세밀한 인도하심을 구해야 될 때가 있어요. 
그럼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면서 씨름 합니다. 
'하나님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씨름하게 되는 게 뭐냐면 
떠나는 게 쉽지 않아요. 
'말씀하십시오 듣겠나이다' 하지만,
그런데 제 안에 이미 원하는 게 있어요. 결론이 벌써 나 있어요.
'요렇게 말씀해 주십시요. (제 생각, 제 소원) 이게 맞죠, 주님?'

그래서 기도할 때, 그런 잡소리들,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다 꺼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예수님의 음성이 또렷이 들린다는 거죠!
안 그러면, 주님의 음성이 뚜렷이 안 들려요. 시끌벅적 하니까.

여러분, 그거 아세요?
진짜로 원하는 것이 도를 넘어서면요, 기도하면 환청이 들립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강력하면요. 기도하면 환청이 들려요. 
하늘에서부터 '옳도다 내 아들아!' 이런 환청이 들린다니까요.
그런 사람들, 목회하다 보면 만날 때도 있죠.
'유부남인데, 그 사람이래요. 정말 음성을 들었대요. 꿈도 두 번이나 꿨대요'

이렇게 하면 못 듣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세요. 
다른 소리가 안 들리는 곳! 

그곳에서 '에바다'하고 그의 귀를 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리만 들리게 하십니다.

이 자리로 우리가 가야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영의 귀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초자연적인 은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영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몇 명이나 듣겠어요? 그거 없어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모든 그리스인들은 다 성령의 내적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 안에 성령께서 계시니까요.

다만 시끌벅쩍한 곳에서, 혼잡한 상태에서
'말씀하십시오!' 해도, 
시끄러워서 못 듣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음성만 들릴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십시오.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위 구절은, 당황스럽습니다. 위생학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한다면, 큰 일 나죠.

우리가 진짜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음성들이 들릴 때가 있다는 거예요. 
내 생각하고는 전혀 다른 음성들이 들릴 때가 있다는 거예요. 

;아니 그 원수 같은 인간에게 양보하라고?' 
'아니 그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고?' 

에바다! 여러분의 귀가 열리려면 이 과정을 통과해야 돼요. 
예수께서는 나의 생각, 나의 논리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먼저 귀에 손가락을 꽂으시고, 침으로 흙을 이겨서 혀에 대신 후에
그 다음에 비로소 에바다 라고 예수님이 귀를 뚫어주십니다.

영의 소리가 아무리 들려도 
우리 안에 육의 확신이 있으면 
그 음성이 안 들려요. 안 보여요. 

진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원하신다면 
-사람을 떠나 
-손가락이 귀로 들어오고, 침이 혀에 발라지는 
이런 자기 부인, 자아 부인을 통화했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늘에서 천둥같은 소리로 '에바다. 열릴지어다' 하시면서
우리 꽉 막힌 귀를 열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