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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징조들

LNCK 2023. 7. 14. 11:02

마지막 때의 징조들 [마가복음37] - - YouTube

◈마지막 때의 징조들            막13:1~13            위 설교요약

◑서론                      마지막 때를 알아야 하는 이유(막36강)에 이어지는 글 

우리는 요즘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  그 수요일에 가르치셨던 
"마지막 때(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 
마지막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조금 몇 마디 하시고 
성찬식에 대한 말씀하신 것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거의 마지막 티칭입니다. 

아마 이렇게 하셨던 이유 중에 하나는 
이제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고난을 통과하시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수난을 통과하시게 되는데 
그것이 어떤 마지막 때에 대한 큰 그림이라는 거죠. 

마지막 때는, 교회와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얻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본질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의 치열한 전쟁이지요. 

그래서 마귀의 모든 권세를 꺾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 
그런데도 마귀 입장에서는 메시아를 죽였다고 하는 착각을 하게 하는.. 
이런 영적 전쟁의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마지막 때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마지막 때가 무엇이고 어떤 전쟁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본문에 제자들에게 자세히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마지막 때'라고 하는 용어는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마지막에 모든 복음의 증거를 다 마쳤을 때 
그제야 끝이 오실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종말에 대한 명확한 시기는, 교회가 그 사명을 완수하는 때입니다. 
전해야 될 천국복음을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 다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끝이 오리라고 마24:1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죠. 

그래서 '마지막 때'를 생각할 때 
우리는 보통 '시간의 끝'이라고 자꾸 생각을 하는데 
그 개념도 있지만, 
사실은 지난 2000년 교회 역사 전체를 성경은 '마지막 때'라고 얘기합니다. 


◑오늘은 이제 '마지막 때'에 대한 두 번째 시간으로 
이 마지막 때는 어떤 징조들이 있을까? 
마지막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억하셔야 될 것은, 이 마지막 때는 
어떤 특정한 2025년 8월.. 그런 때가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가르키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은 
지난 2000년 동안 매 시대마다 계속 일어났던 징조들일 수 있습니다. 

계속 있어 왔던 징조들이고 
그런데 특별히 정말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졌다는 거죠. 그건 무슨 의미예요? 
교회가 그 사명을 그만큼 감당했다는 거예요. 

보통 마지막 때에 대한 열쇠를, 마귀에게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마귀가 핍박을 심하게 하면.. '마지막 때가 왔어!' 이렇게 생각하는데 
(일면 맞지만) 아니에요.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중요한 열쇠를 마귀에게 주시겠어요? 
한 번도 마귀에게 열쇠를 주신 적이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그 열쇠는 교회에게 주셨어요. 믿는 자들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마지막 때'가 언제일까를 결정짓는 것은 마귀가 아닙니다.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고난과 핍박과 재난이 얼마나 많아지느냐?' 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그건 결과예요. 
교회가 그만큼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마귀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급한 거죠. 막말로 이게 똥줄이 타는 거예요. 
'이거 안 되는데.. 이 예수의 복음이 다 증거되게 되면 
그럼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내가 지배하던 시대는 끝나는데...' 하고 급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이 점점 증거되면, 마귀의 공격이 더욱더 치열해집니다. 
치열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우리가 보통 마지막 때 두려워하는 그런 현상들이에요. 

즉 핍박이 있고, 재난이 있고, 환난이 있는 것들은 
그거 자체가 마지막 때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당연히 마지막 때 그런 징조들이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영적 전쟁이니까.. 전쟁이 끝에 가까우면 당연히 치열해지는 거죠. 
전쟁이 끝에 가까우면, 당연히 생사를 걸고 마지막 전투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치열해지는 거죠.

'마지막 때'는 교회에게 열쇠가 있어요. 저와 여러분에게 열쇠가 있어요. 
그래서 이 마지막 때가 절대로 안 오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돼요. 

그러면 뭐 천년, 만년 예수님이 안 오실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때를 이해할 때, 자꾸 이런 두려움과 
어떤 핍박과 이런 걸로 이해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냥 마지막 때를 거쳐가는 한 과정일 뿐이에요. 

그리고 이런 핍박과 고난과 환난들은 
지난 2000년 동안 계속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진짜로 '마지막의 마지막'이 가까워오면,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진짜로 가까워오면.. 

즉 교회가 그만큼 사명을 감당하면 
그러면 이런 징조들도 훨씬 더 집중적으로 나타날 거예요.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 역사를 보면 
이런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인텐스하게 나타났던 때들이 띄엄띄엄 있었어요. 
그때는 언제예요? 

교회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치열하게 감당함으로 
'가만있어 봐, 이대로 계속 나가다 보면 한 50년 안에 끝나겠는데?' 
하는 그 타이밍이 되면, 이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아주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 때들이 띄엄띄엄 있었어요. 
대표적인 때가 언제냐면, 초대교회 때였어요. 

초대교회 때는 예수께서 그러셨잖아요. 
'너희 살아 있을 동안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있으리라' 마16:28

그래서 제가 사실은 이거를 계산을 해봤어요. 
초대교회 때, 바울 때 
과연 세계복음화를 끝낼 수 있었을까? 

(제가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니까) 충분히 가능했더라고요.
그 당시에 인구 계산하고, 아울러 바울이 복음을 전파했던 속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진짜로 계산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바울 당대에 잘 하면, 사도요한이 살아있을 때까지 
즉 한 AD 100년까지.. 그때까지 세계복음화를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헛소리 하신 게 아니에요. 

그때 정말로 모든 제자들과 사도들이 
사도바울과 같은 계시를 가지고, 모든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더라면 
당대에 끝날 수도 있었어요. 그럼 예수님이 오셨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예언을 하셨던 것이고 
그래서 초대교회 때 보면, 종말론적인 현상들이 다 나타납니다. 

(*마24장이 당시에 다 응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주의'는
마24장, 막13장의 종말론을 AD70년 예루살렘의 멸망 때로 해석합니다.
왜냐면 그때 일어난 사건으로 성경을 대입해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죠)

핍박과 재난과 이런 종말론적인 현상이 다 나타나요. 왜요? 
그때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잘하면 될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띄엄띄엄 그런 때들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21세기를 사는데 
21세기를 보면, 지난 2000년 동안에 이만큼 세계복음화에 근접했던 때는 없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을 '마지막의 마지막 때'라고 얘기해요. 
이만큼 세계복음화에 근접했던 때는, 과거 역사상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조금만 더 푸쉬하면 
'어쩌면 우리 당대에 이 세계복음화를 끝낼 수도 있어!' 
그런 가능성들이 이제 눈에 보이는 거죠. 

▲'종말'이라고 하는 원어적인, 헬라어적인 뜻이 뭘까요?
'종말'은 영어로 보면 eschatology (에스카탈로지)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에서 온 말이죠.    *'마지막 때', '종말'은 같은 말

이 단어의 뜻은, 시간적으로 맨 끝, 맨 마지막이라는 뜻도 있긴 한데 
그것은 부가적인 의미이고, 

원래의 뜻은 뭐냐면 '모든 것이 충만한 것에 이르는 때'라는 뜻이에요. 
'모든 것들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때'
'모든 것이 충만한 것에 다다르는 때' 

그렇다면 무엇이 절정의 클라이막스, 최고의 상태에 이를까요? 
적어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 인간의 죄가 절정의 상태에 이르는 때에요. 
죄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죄는 (업보처럼) 계속 쌓이고 쌓이고 쌓여갑니다. 

죄는 복수를 낳고, 복수는 또 복수를 낳고... 
그래서 죄는 점점 축적되어 가지, 이 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인이라든지, 간음, 거짓말이라든지 이런 죄는
이게 세대와 세대를 내려가서
가문 사이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자, 이렇게 죄가 계속 쌓여가는데 
이런 죄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이제 충만한 데까지 쌓이는 것이 
종말이라는 거예요. 

(*일례로, 하나님이 가나안 7족을 심판하실 때도, 그들의 죄가 관영해서, 
가득 찼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비로소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창15:16)

2) 두 번째는, 종말 때는 사탄의 발악도 극에 달하게 됩니다. 
사탄의 발악은, 인간의 죄와 함께 비례하기도 하고 
또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의해서.. 사탄이 급하기 때문에 
아주 발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의 역사도 아주 극에 달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교회를 향한 핍박이 옵니다. 
사탄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향해서 분노하는데, 그게 극에 달한다는 거죠.

3) 세 번째, 성령의 역사,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극에 다다르게 됩니다. 
사단이 극에 다다르는데 
하나님께서 '그래 너희들 한 번 놀아 봐' 이러고 계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도 남종과 여종에게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말세에 물붓듯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행2:17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성령의 역사도 역시 
동시에 극에 달하는 때예요.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인류 역사의 클라이막스를 이루는데 
교회, 마귀사탄, 성령님
이 세 주인공, 등장인물이 모두 각각 자기 역할에 있어서
절정, 극에 달할 때, 클라이맥스가 될 때가.. 종말의 때의 현상이라는 거죠.


◑종말, 마지막 때의 징조들

이때 나타나는 징조들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4~5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미혹,
-재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고 
-성령의 역사와, 세계 선교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징조들이 여러분 한꺼번에 다 인텐스하게 
항상 나타났던 것은 아니에요. 

지난 2000년 동안 역사를 보면, 이 5개 징조들 중에 
한두 개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몇 개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서 오르락 내리락 했어요. 왜 그렇죠? 

마지막 때의 강도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 열쇠는 누구한테 있어요? 교회한테! 

그래서 교회가 복음을 정말 땅끝까지 전하는 이 사명을 계속 감당해서 
'이게 한 몇 십년 내에 끝나겠는데?' 그런 감이 오면 
이제 그때부터 마귀의 공격, 미혹과 재난과 핍박.. 이런 것이 극에 달하죠.

반대로, 과거에 그런 복음전파 열정과 속도가 약해졌을 때는,
이 종말의 5가지 징조들도 내리막 곡선을 그리죠. (약하게 나타나죠)

교회가 받는 핍박도 누그러들어요. 
세상에 전쟁도 조금 약해 져요.

그래서 이 현상들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거예요. 
지난 2000년 동안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했어요.

(*오늘 내 주위에 핍박의 강도가 만약 약해졌다면
내가 복음 전파의 강도가 식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 때 end of end times 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즉 교회가 이제 복음전파의 사명을 거의 마무리할 수 있는 때가 가까워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이 모든 징조들이 총출동해서 아주 인텐시브(강력)하게 나타날 거예요. 

그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들입니다. 

여러분 징조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뭐라고요? 
마지막 때의 세 등장 존재가 (교회, 마귀, 성령)
전부 다 충만한 수준의 이르기 때문에 
그 긴장감이 제일 팽팽해 진다는 거죠. 충돌이 안 일어날 수 없죠.

그래서 세계 교회가 침체돼서, 전혀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는데 
이런 징조가 한두 개 나타났다고 해서 
'어휴 예수님 곧 오실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어요. 

▲흥미로운 것은 , 이것은 지역교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어느 한 교회나 어느 한 지역에 부흥이 일어나고 
그 부흥으로 말미암아 그 교회가 열정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하면 
그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거죠.  (교회+마귀+성령)

막13장에 나오는 5가지 마지막 때 징조들이 
지역교회에도 나타나게 되죠. 

그래서 본문의 5가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은, 
-글로벌하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로컬리, (지역적으로, 지역교회적으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 미혹  
마지막 때 징조들 중 첫 번째는 미혹입니다. 
저는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미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막13:5~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미혹은, 속이는 거예요. 
원수마귀는 사람들을, 특히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속여서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에서 떠나게 하려고 합니다. 

이 영적전쟁의 본질이 뭐에요? 
믿는 자들을 못 믿도록 하는 거잖아요. 지옥가게 하는 거잖아요. 

그게 영적전쟁의 본질이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속여서 
믿는 자, 믿지 않는 자 가리지 않고 속이는데 

하여간 믿는 자들도 포함해서 속여서 
믿는 자들로 믿음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 이 전쟁의 본질이지요. 
그래서 미혹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미혹은 여러분, 1차적으로 믿는 자들, 크리스천을 속이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속이는 것도 있겠지만, 크리스천들을 속여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하는 거예요. 그게 미혹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즉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배교'하는 일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세요. 
계시록에 보면 아주 큰 규모의 배교가 있을 거라고 암시합니다. 

살후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미혹이 종말의 징조들 중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는 거예요. 
미혹이 있고 난 다음에, 재난이 이어진다는 거죠.

미혹은 또한 적그리스도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그가 나타나면, 
주로 하는게 '미혹'이죠.
  
하여간 첫 단추가 뭐예요? 미혹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속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돼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크리스천들을 미혹해서 배교하게 할까요? 
구체적인 모습들을 좀 보려면 
지난 2000년 동안에 이 전쟁이 치열했던 사례를 뽑아서 보면 
대충 '이런 식으로 미혹하겠구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미혹의 대표적인 때는 초대교회 때였어요. 
그래서 이 초대교회 때 성경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았던 핍박을 '종말론적인 현상'이라고 묘사합니다. 

바울서신에도 보면, 그것을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묘사하고, 
계시록에는 아주 직접적으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받고 있는 핍박을 
종말론적인 현상이라고 묘사합니다. 근데 그게 사실이에요. 

'종말'이라는 것은 언제 끝이 올지 모르는 거니까요. 
(어쩌면 초대교회 때 끝이 왔을 수도 있어요.) 

▲자 그런데 이 초대교회 때 핍박을 조금 분석을 해보면 
크게 두 종류의 권력으로부터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핍박은요. 종교 권력으로부터 옵니다.  *음녀
그 당시 종교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핍박이 있었죠. 

두 번째 종류의 핍박은 정치 권력으로부터 왔어요. *적그리스도, 바벨론
로마 라는 정치 권력을 갖고 있던 로마 황제로부터 

도미티안의 핍박이라든지, 네로의 핍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이제 계시록과 또 바울서신의 어떤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이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하나가 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종교권력)과 또 로마로부터 온 (정치)권력들이 
하나가 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계시록을 보면 항상 두 가지가 나오죠.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 
음녀와 짐승.. 그런데 이게 뭐예요.?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입니다.

사실 권력이 없으면 핍박을 어떻게 하겠어요?
힘이 있으니까 핍박을 하는 거죠. 
'핍박'이라는 말 자체가 권력으로부터 온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어떤 힘이 있습니까? 
종교적인 힘이 있든지, 정치적인 힘이 있든지 
그 힘을 가진 자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이라는 것도 권력에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참 어려워요. 
단순히 속이는 것이 아니라, 속고 싶어져요. 
왜요? 권력으로부터 미혹이 오기 때문에 
이거를 그냥 속아 넘어가 주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보고, 뭔가 핍박을 받아야 돼요. 

적당히 속아 넘어가 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과거에 여러분, 중국 지하교회의 상황들만 보더라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여러 가지로 회유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 너희를 해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너희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굉장히 달콤하게 들리거든요. 
그런데 그 미혹에 넘어가면 교회가 풍비박산 되는 거죠. 

근데 참 달콤하게 들려요. 왜요? 
거부하면 그다음에 도망다니고 그래야 되거든요. 

▲먼저 종교적인 미혹이 있습니다.
이 종교적인 미혹은 또 두 종류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자신을 '재림 예수'라 그런다든지, 이런 사이비 이단들이 있습니다. 
사이비 이단은 종교 권력에서 오는 미혹은 아니죠. 
그냥 우리를 속이는 미혹이 있죠. 

-두 번째 종류는 '종교 권력'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기독교의 본질을 흩트리는 종교 권력, 
예를 들자면 종교 통합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 있죠. 

초대교회 때 역사를 봐도 두 종류의 종교 미혹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사이비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 같은 사이비 이단들이 있어서, 요한 1, 2, 3서가 나오죠. 

그와 동시에 뭐가 있었냐면 유대교로부터는 미혹이 있었어요. 
히브리서가 쓰여진 게 이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유대교의 미혹은 뭐였냐면, 크리스천을 향해서 

'야, 너희나 우리나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야. 
너희도 여호와 섬기는 거 아니야? 
차이가 있다면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거 딱 하나야.
예수가 하나님은 아니야, 그것만 너희가 양보해! 

만약 그게 어려우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 하나만 그냥 양보해, 
그러면 모든 핍박이 다 끝나고, 너희는 양지로 나올 수 있어!' 
그 유혹이 히브리서의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게 히브리서의 주제죠. 
거기엔 그리스도가 안 계시니까요.

그래서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과 함께, 종교 권력을 통한 미혹과 압박이 있어요. 
압박을 동반한 미혹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배교하게 했다는 거예요. 

오늘날도 비슷하게 종교적으로 두 종류의 미혹이 있습니다. 
-신천지 같은 사이비 이단의 미혹도 굉장히 심각하죠. 

△그러나 동시에 어떤 미혹이 있냐면, 종교 권력에서 오는 미혹이 있어요. 
제가 분별하고 판단하기로, 가장 심각한 종교적인 미혹은 
'인본주의 기독교'인 것 같아요. 

인본주의 기독교는 영적인 진리들을 교묘하게 속입니다. 
교묘하게 속여서 육체의 일을 만들어요. 
정의, 선행, 합리적 생각, 사회적 역할... 이런 것들은 좋은 말들이에요. 

문제는 뭐냐면, 그렇게 세상과 잘 어울리는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서 
핵심을 양보한다는 거예요. 그렇게는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사회를 섬기고, 사회를 이해하고 
기독교인들은 반사회적인 존재가 아니죠.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인데 
그런데 기독교의 가장 본질을 훼손시켜 가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죠.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건데,
종교다원론과 같이 할 수는 없죠.

자유주의나 종교다원론도 '예수의 가치를 이어받자, 예수의 정신을 이어 받자'
라고 말은 합니다. 그냥 논어 맹자식으로 성경을 받아들이는 거죠.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예수의 가치, 예수의 정신이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에요. 그 분과의 인격적인 관계죠. 그 분이 소중한 거예요.
그 분의 가르침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세요. 
성령님이 빠져버린 기독교는 여러분, 필연적으로 인본주의로 갈 수밖에 없죠. 

성령님이 빠져버리면, 인격적인 관계가 일어나지 않거든요. 

근데 성령님이 빠지면, 기독교는 학문과 종교와 철학과 사상으로 가는 거죠.
그거 말고 뭐가 남겠어요? 

그래서 마지막 때는 성령님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이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성령님이 없는 기독교는 
마지막 때 미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휘둘릴 수밖에 없어요.

정치 권력에서 나오는 미혹도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 때 당연히 그랬고요. 
로마 도미티안 황제, 네로 황제 라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아주 극심한 핍박이 왔죠. 미혹이 왔죠. 

또한 교회 역사를 보면 독일의 히틀러예요.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패전합니다. 
그래서 독일이 엄청난 전쟁배상금의 빚을 집니다. 

열심히 일해도 다 전쟁 보상금으로 뺏기고 뭐 이럽니다. 
그래서 아주 가난한 나라, 이제 거의 망하게 된 거죠. 
그것을 배경으로 히틀러가 등장합니다.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초기에 독일 (루터) 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해요. 
독일 교회가 뭐라고 생각하냐면 
'이 민족을 다시 가난과 패망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줄 
하나님이 보내신 지도자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히틀러를 지지를 했어요. 미혹을 받았던 거죠.
(히틀러는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통합니다)

잠깐 동안의 평화의 기간이 지나고 나자 
히틀러를 통해서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거라고 믿었던 
독일교회의 꿈은 악몽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아주 박살이 나고요. 
수많은 목회자들과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순교합니다. 이게 미혹이죠. 

△독일뿐만이 아니라 1차 대전 직후에 러시아도 살펴보면 
굉장히 재밌는.. 재밌다기보다는 경고가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1917년에 볼세비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죠.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 러시아의 많은 교회들 
특별히 정교회가 이 혁명을 지지했던 거 아십니까? 

레닌이 혁명을 일으킬 때, 레닌의 지지자들은 아주 소수였어요. 
그래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내전을 치러야 되는데, 훨씬 군대가 적었는데 
그때 누가 지지해줬냐면, 정교회의 '고의식파'였어요.  *전통의식파 
레닌을 전격 지지해주면서 그 혁명을 성공하게 돼요. 

그러니까 교회가 전격적으로 레닌을 지지를 해 준 거예요. 
왜 지지를 해줬냐면,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 
레닌, 스탈린 이런 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을 보면, 성경적인 거예요.
(당시는 공산주의가 뭔지 감이 없었을 때에요. 처음 등장한 생소한 거니까요)

근데 공산주의가 아주 성경적으로 보이는 거에요.
'뭐 빈부의 격차가 없게 하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자' 
이거 유토피아죠.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그렇게 살았잖아요. 
'오, 맞아! 이거 성경적인 가치네' 그래서 공산주의를 정교회가 지지했던 거예요.
그래서 소수파 공산주의가, 마침내 러시아를 장악하게 된 거죠.

이거 (미혹)를 조심하셔야 돼요. 
독일도, 러시아도
시대의 격변기 때
깨어있지 못하고
적그리스도 편을 지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내세우고 주창하는 사상과 가치만 보고서!
그 표면 아래에 숨겨진 '분노'를 분별하지 못했던 거죠.
(그리스도와 교제,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거죠)

억압받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용해서, 이 사회 시스템을 뒤집어 엎는 게 
이제 마르크스 주의인데, 근데 사실 이것은 성경적인 방식이 아니거든요. 

성경은 어디에도 분노 표출을 통해서, 선한 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항상 하나님의 방법은 희생과,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 일어나는 거죠.

그런데 이런 깊은 성찰 없이,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본 거죠.
'평등, 평화, 다같이 잘 살아 보자!' 이거 성경적 가치네? 그래서 지지한 겁니다. 
지금 러시아를 좀먹고 있는 이 부패한 왕정과 부르주아 계급, 
이거를 때려잡는 게 지금 러시아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교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한 거에요. 

물론 교회들 중에도 부르주아 계급이 일부 있었지만 
공산주의를 지지해줬던 교회층은 대중적인 교회였죠. *고의식파 정교회

그래서 이 20세기 초에 적어도 러시아 크리스천 들에게 '공산혁명의 미혹'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고 어떻게 됩니까? 

잠시 동안의 평화가 지나고 나자, 
교회는 정말로 문자적으로 참혹한 시간을 맞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했냐면요. 혁명 직후에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성직자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박탈했어요. 

공산주의 사회는 생필품을 배급을 받는데, 
배급을 안 주니까 굶어 죽는 거예요. 
굶어 죽거나 그냥 거리의 거지가 되거나 하는 거죠.

그리고 모든 교회의 교육기관은 공산당에서 국교화됐습니다. 
또 크리스천의 자녀들은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시민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최하층민이 됩니다. 

교회는 법적인 지위를 뺏겨버려서 
모든 유형의 자산들을 다 국가에 빼앗기게 됩니다. 
법적인 지위가 없어져버리니까, 소유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종교 행위는 허락된 건물 안에서만 
아주 제한적으로 허락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만 딱 모임을 갖고, 그 다음에 아무것도 하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극도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뒤늦게 이것을 깨닫고 저항했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때 몇 명이 순교했냐면, 크리스천 20만명이 순교했어요.

공산주의 혁명이 항상 그렇게 일어나잖아요. 
처음에는 '적의 적은 동지다' 그래가지고 연대를 한 다음에 
권력을 잡고 나서는 숙청하는 거죠. 

북한도 여러분 마찬가지예요. 
북한도 김일성이 들어와서 처음에 정권을 잡을 때 
많은 교회들은 뭐가 뭔지 잘 몰랐어요. 좋은 일 하는 줄 알았어요. 

'저거 봐라, 무슨 공평하게 살고, 평등하게 살고, 좋은 거 아니냐?' 
긴장의 끈을 놓았습니다. 

잠시 동안의 평화가 지나고 나서, 북한의 교회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625 직전에 다 사살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냥 없애버린 거예요.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 마지막 때 미혹의 한 축은요. 
정치권력으로부터 진행된다는 거예요. 
정치적인 아젠다가 주는 미혹이 있다는 거예요. 

'공정, 평화, 안전' 
그런데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걸 보면 안 돼요. 
겉으로는 좋은 말 하지, 나쁜 거 하자고 그러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젠다를 주장하는 근본이 뭔가를 살펴봐야 돼요. 
그 안에 정말 사랑과, 용서와, 자유.. 이런 힘을 가지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 안에 분노와, 저주와, 이런 힘을 가지고 하는 건지... 
여기에 미혹되면 안 된다는 거에요. 

이 분별력이, 마지막 때는 참 어렵고 또한 중요합니다. 
여기에 속게 되면 여러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의 등에다 칼을 꽂게 되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배교의 길로 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항상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정치 권력으로부터 미혹과 핍박이 와요. 다니엘서도 그렇잖아요. 

다니엘서도 마지막 때에 대한 예표 중에 하나인데 
모든 미혹과 핍박이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오잖아요. 

또 계시록을 보면, 모든 미혹과 핍박이 짐승, 적그리스도, 
이게 뭐예요? 그 당시의 로마 황제들, 거기로부터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때는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미혹의 영은 
믿는 자들을 미혹해서,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평화를 가장한 미혹에 특별히 속지 마십시오 

성경에 보면, 마귀가 평화를 가장해서 미혹해요. 
왜냐면 마지막 때는 재난, 전쟁, 난리의 얘기가 하도 많다 보니까 
평화를 준다고 하면.. 다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화를 가장해서 미혹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건 잠시 동안의 평안이지 
히틀러도, 볼세비키도 잠시 동안의 평안이 지나고 나서는 
교회는 참혹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속지 말라는 거예요. 

히틀러 때도, 볼세비키 혁명 때도, 사람들은 부패한 기존 권력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분노"로 부패를 척결하고자, 자유 대신에 통제를 선택합니다. 

"분노"를 가지고 뭔가를 이루고자 했다는 거에요. 
그게 교회가 미혹됐던 큰 이유예요. 
성경은 어디서도 분노를 허락하신 적이 없어요. 
뭐 죄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요. 

예수께서도 분노를 가지고 대처하신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희생하심으로 대처하셨잖아요. 
그게 성경적인 방식인데, 우리는 겉으로 나오는 단어들만 성경적인 것, 
뭐 그러면 취하려고 그래요. 
평화, 평등, 공정 뭐 다 좋은 말이지요. 성경적인 가치가 맞죠. 

그렇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파워가 뭐냐는 거에요. 그걸 볼 줄 알아야 돼요. 
그걸 볼 줄 모르면 미혹받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는 분명히 영적인 것이 있어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하는 이념이나 시스템 
그게 조금 더 극한까지 가면 파시즘이라고 그러죠.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 이런 것들은요. 
그 이념이 아무리 고상하고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국 보면 이상해져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인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지요. 

그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을 해줘야 
체크 앤 밸런스가 되면서  *견제와 균형
절대 권력으로 흘러가지 않는데 

인간의 자유와 인권까지 통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체크 앤 밸런스 할 게 없잖아요. 그러면서 절대 권력으로 갑니다. 
파시즘이 되는 거죠. *전제주의, 독재 

그렇게 되면, 그 이상과 주장이 아무리 고상하고 아무리 좋은 거라도 관계없이 
항상 교회를 핍박하게 돼요.  
세계사를 한번 뒤져보세요. 그게 아니었던 예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없어요. 

스탈린은 여러분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원래 조지아(그루지아) 정교회의 신학생 출신이에요. 
그런데도 이 사람이 통제 사회에서 정권을 잡게 되니까 
교회를 다 때려잡잖아요. 

레닌도 마찬가지고요. 
레닌은, 자기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줬던 세력이 정교회 세력이었는데도 
결국 정권을 잡고 나니까, 정교회를 다 때려잡았어요. 

그러니까 이게 통제 사회가 됐을 때 
과연 교회를 때려잡지 않은 예가 있는지... 한 번도 없어요. 

그 이야기는 뭐에요? 그 배후에 영적인 게 있다는 거예요. 
절대 권력을 잡게 되면, 마귀가 그 권력을 이용해요. 
(*엡6:12에 '정사'와 '권세'가 나오는데, '정치 권력'에 기생하는 마귀를 뜻함.
개정개역에는 '통치자들'과 '권세들'로 번역됨)

나머지 징조들은 짧게 짧게 살펴봅시다. 

◑2. 다음으로 마지막 때 징조는 <재난과 핍박>입니다.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재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이 3개는 분리된 개념이에요.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진짜 마지막 때인 이 세계에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되어 있어요. 
처음엔 재난이 있고, 그다음에는 핍박이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거예요.  
이 세 개는 분리돼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재난과 핍박까지는 교회가 계속 받아요. 
그렇지만 심판 때는, 심판 때는 교회가 심판을 받는 게 아니야 
그다음에는 악한 세력들, 하나님을 무시했던 세력들, 
거기가 심판을 받는 것이고, 교회는 심판에서부터는 제외돼 있습니다. 

나중에 게시록을 보시면 심판에 대한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나오거든요. 
근데 그건 교회하고 상관없는 내용이에요. 

근데 앞에 있는 재난과 핍박까지는, 교회가 받는 거죠. 
이 이야기를 지금 하시는데 처음에 보면 재난 얘기를 하십니다. 

난리와 난리, 민족이 민족을, 나라를, 지진이 있고 기근이 있고 
그래서 이런 핍박들이 있다는 거예요. 
전쟁, 기근, 자연재해 이런 재난들은 
마지막 때 인간들의 죄가 축적된 결과입니다. 

욕심이 축적되면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요. 
또 인간의 그런 자연을 향한 착취 욕심들이 축적되면서 자연재해가 일어나죠. 
그래서 뭐 핵을 사용한다든지, 또는 지구온난화가 온다든지 
이런 것들이 이제 재난을 가져오게 됩니다. 

재난은 신자/불신자를 구분하지 않아요. 
그냥 누구나 다. 재난을 받는 거야 누구나 다. 

재난을 받는 그래서 재난의 소문들이 늘어납니다. 

재난에 이어서 이제 핍박이 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재난 다음에 왜 핍박이 올까? 그거에 연관성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고 나니까 그냥 딱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재난 다음에 핍박이 오는구나..' 재난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통제가 강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난리와 난리, 전쟁과 전쟁 
그러면 여러분, 당연히 국가 권력이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난리가 나고 전쟁이 났는데 자유가 어떻고 인권이 어떻고 
이거 하나도 용납 안 되지요. 전쟁 났는데 자유와 인권이 어디 있어요?  
그냥 소집! 그럼 소집해서 싸워! 뭐 그럼 전쟁하러 나가야 되는 거고 
집도 내놔! 그럼 내놔야지 전쟁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 재난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요. 
통제 사회가 강해지게 돼 있어요. 통제가 강해지게 돼서 어쩔 수 없어요. 
재난을 극복하려다. 보니까 통제가 강해지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인권이고 뭐고 없습니다.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정부가 서지 않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코로나 한번 지나고 나니까 알겠잖아요. 
코로나 상황에 인권이고, 자유고, 종교고 뭐 있습니까? 
그냥 하지 마! 그럼 못하는 거지 이게 통제가 강해진단 말이에요. 

자 그래서 재난이 잦아지다 보면 당연히 통제가 강한 권력에 의한 
통제사회가 됩니다. 자유나 인권은 공익을 위해서 무시되고 제한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반드시 어떻게 된다고요? 
통제가 강해지면 반드시 교회를 때려잡습니다. 

통제가 강해지면요. 반드시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요. 
그래서 통제가 강해지면 그 통제된 것을 마귀가 이용해서 
교회들을 때려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재난 다음에 뭐가 따라오냐면, 핍박이 따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해서 매질하고, 또 재판장 앞에 세우고... 
이런 거죠. 

지금 여러분 작은 규모지만, 우리가 비슷하게 진행되는 거 보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사회를 보면서 흥미롭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배 중지
'아 마지막 때는 이런 식으로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성경에서 얘기한 거하고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맞냐?' 

난리의 소문이 났습니다.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난리와 난리로 몰아넣습니다. 

그 여파로 기근이 온 거죠. 경제를 완전히 그냥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진짜로 이 재난의 징조들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져요? 통제사회가 되기 시작하죠. 
파시즘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통제사회가 돼요. 왜요?  
사람들이 두렵게 되고, 지금 이 재난을 극복해야 되니까 
그랬더니 그게 결국 어떻게 돼요?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번 주 신문을 보니까 '교파라치'라는 단어를 썼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냥 교회에 불만 켜져 있으면 신고한대요. 
교회에서 불법으로 모임한다고... 
'교회 혐오'에 의해서 불만 켜져 있으면 신고하고...  

하여간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본문 막13장의 마지막 때 시나리오의 작은 축소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말세 때는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러분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규모가 크든 작든지 간에, 이런 징조들을 이런 패턴들을 계속 겪으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핍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십시오 

핍박을 억울해하거나 '언제 끝나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아, 이것은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교회에게 당연한 거다...' 

▲재난, 핍박 다음에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세요. 
교회를 무너뜨렸던 그런 존재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넘어가신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없어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실제로 보면 그래도 교회에 죄가 있지 않습니까? 
어쨌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교회 건드리는 걸 싫어하세요. 

왜요? 구약에도 보면 이스라엘이 정말 마지막에 막장 수준의 타락을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허락하셔서 교회를 치게 하지요. 

그러고 어떻게 하셨어요? 앗수르와 바벨론에 진노하십니다. 
그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아주 박살을 내죠.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3. 마지막 때, 또 한 가지 징조는 <성령의 역사와 세계 선교>입니다. 

막3:10, 11절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그런데 여러분 마지막 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마지막 때를 '전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학살'로 이해를 해요. 

무슨 얘기냐면 막 핍박과 순교와 
그래서 죄와 사탄에 의해서 교회가 학살당하는 때라고 이해를 해서 
도망다니고 두려워하고 이렇게 해요. 

아니요, 여러분 학살이 아니라 전쟁이에요.
전쟁은 뭐냐 하면, 이때는 무서워서 두려워서 도망다니는 때만이 아니라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하는 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지막 때는 여러분, 마귀에게 학살당하는 때가 아닙니다. 
마귀를 정복하고 승리하고 이기는 때지요. 아멘! 

그래서 마지막 때 뭐라 그러셨냐면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실 것이다.' 행2:17

그래서 마지막 때는 여러분,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이 증거되는, 사명을 감당하는 역사들이 일어날 거예요.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여러분, 
'아유 이런 큰 어려움과 환란이 있으니까, 무서워서 어디 숨어있자' 

아뇨 여러분, 그게 아니라 
교회는 우리가 선 곳에서, 우리를 보내신 곳에서 
순교를 감내하면서, 증인의 역할들을 감당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시고 
심판하시는 역사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좋은 모델이 사도행전의 모습입니다.
보면 분명히 핍박이 있습니다. 분명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이 증거되잖아요. 
그런 것이 마지막 때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13:12~13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지막 때는, 많은 속임들과 미혹과 두려움들이 있어서 
분열이 일어날 거라는 거예요. (이건 나중에 계시록 공부할 때 자세히 합시다)

미혹된 사람들은, 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몰라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므로 미혹되지 않도록 깨어 있으십시오.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