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마지막 때를 알아야 하는 이유

LNCK 2023. 7. 11. 10:29

마지막 때를 알아야 하는 이유 [마가복음36] - - YouTube

*위 동영상 11분경 부터 아래에 녹취

◈마지막 때를 알아야 하는 이유       막13:1~27     마가11~16장 설교모음

▲오늘날 교회가 '마지막 때'에 관한 관심을 잃어버린 이유
 
1) 다미선교회로 대표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잘못된 신학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는 아주 중요한 단어를 잃어버린 거지요. 
'마지막 때'라는, 성경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금기어'가 되면서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2) 둘째로 '마지막 때'에 대한 논의가 교회 안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것이 평화로워지고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하면서 사라졌습니다. 

크리스천들의 삶에서 고난이 사라지고, 사는 것이 편해 진 거예요. 
고난과 핍박 속에 있을 때 교회의 유일한 소망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나, 625 전쟁 직후나
60년대 70년대 까지만 해도 
그때 나온 찬송가들을 보면 
대부분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내용이었어요. 

'자나 깨나 주님 언제 오실까?' 그런 내용들이었죠.
그리고 천국과 본향에 대한 것들을 굉장히 갈급해 하는 찬양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런 찬양들과 오늘 날 부르고 있는 CCM 찬양 들을 비교해 보면 
뭔가 주제가 다르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양들은 
훨씬 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세적 삶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날 것이고 
-지금 내가 어떻게 더 성령님을 더 체험할 것이고
-지금 더 어떻게 진실한 예배자가 될 것이고 
-지금도 어떻게 회복될 것이고... 이런 것들에 훨씬 더 집중 돼 있죠.  

본향, 천국 소망, 예수님 언제 다시 오시나?
이런 내용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냐면, 종말론이 사라진 두 번째 이유는, 편해진 거예요. 

그러던 것이 90년대 이후에 한국 경제가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또 그와 더불어서 교회는 외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교회 건물도 크고 화려해 졌습니다. 
사는 것도 편해졌습니다. 굳이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게 된 거예요.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나오지요. 
겨울에는 분위기 좋은 교회 카페에서 셀 식구들과 여유롭게 커피 한 잔마시고..

그러면 예수께서 굳이 빨리 오셔서, 이 행복을 방해하실 이유가 없게 되죠. 
가급적이면 천천히 오셔서, 우리로 이 행복한 시간을 조금 더 누리게 해 주셔야지... 
빨리 오시는 게, 전혀 은혜가 아니라, 우리를 방해하는 거에요.

교회역사를 보면, 교회는 항상 고난, 핍박, 어려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천국을 소망하고 마지막 때를 소망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해지고, 화려해지고 
교회가 힘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갈망이 다른 데로 옮겨 가요. 현실로 옮겨가죠.

천국과 마지막 때, '주님 빨리 오셔서 주님 나라를 완성해 주십시오!' 하는 
갈망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 사는 삶을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뭐 행복하게, 
조금 더 럭셔리 하게 사는... 그런데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환난과 핍박 고난가운데 있지 않는 교회는 
마지막 때에 대한 관심이 점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언제 오실까? 재림이 언제 있을까?' 이런 관심이 아니라 
'조금 더 행복해지기, 내적치유, 회복' 이런 쪽으로 옮겨간다는 거예요. 

이런 주제들이 필요 없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 있느냐 하는 얘기죠. 
오늘날 우리의 관심이 그런데 있다고 하는 걸 보여 준다는 거예요. 

3) 셋째 신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신학적인 이해부족으로 인해서, 마지막 때에 대한 관심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아래 ◑1 에서 자세히 살펴봄) 

4) 교회가 종말에 대해 터부시하는 듯 보이는 네번째 이유는
사탄의 방해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래 ◑2 에서 자세히 살펴봄)

◑1.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란 언제를 얘기하는 걸까요?

'계시록이 기록하고 묘사하고 있는 마지막 재난과 환난의 때는 
정확히 언제를 얘기하는 건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됐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고 하면 
꼭 정해진 어느 때라고 특정지어 생각하려 합니다. 

그럼 마지막 때가 언제야? 
1999년이야? (이 때는 지나왔으므로 아니죠)
2050년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정해진 어느 때를 '마지막 때'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 정말 마지막 때인가, 아닌가?'
이런 것을 계산하고, 또한 알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마지막 때는 
기본적으로 어느 딱 한 포인트를 찝어서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이 얘기하는 마지막 때는 
예수님이 초림 하신 이후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거에요. 

성령께서 이땅에오신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이미 마지막 때가 시작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임할 재난과 환난에 대해서 얘기하시면서 
제자들중에 그걸 겪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얘기는 '너희도 마지막 때의 일부분을 맛 볼 거야' 이렇게 말씀하신거죠.

▲더 결정적인 증거는, 행2:17절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지요. 그 성령이 임하신 것을 보고 
베드로는 '요엘서의 예언이 성취됐다'고 얘기합니다. 

행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것을 보고 
'이게 뭐야?' 하며 놀라서 달려오니까

베드로는 '말세의 (마지막 때지요)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리니' 
"이 말씀이 지금 너희에게 응했다"고 선포하신거죠.

'말세의 일어날 일이라고 요엘이 예언했던 그 일이,
지금 오순절에 일어났다'는 거예요. 
즉 사도행전 오순절 이후, 그 때에 벌써 '마지막 때'가 시작됐다는 겁니다.

또한 심지어 예수께서는
'어쩌면 너희 제자들 중에 예수께서 다시 오심을 볼 자도 있을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마지막 때가 굉장히 가깝다고 말씀하셨어요. 

마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목사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예수님도 거짓말을 하시네요...'

하여간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나 하면 
'마지막 때 라는 것은, 딱 정해져 있는 기간이 아니고 
예수님이 언제 오신다고 하는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 시점에서 봤을 때 
10년 뒤 오실 수도 있고, 50년 뒤에 오실 수도 있고 
천년 뒤에 오실 수도 있고... 

그래서 이미 성령강림이 딱 시작된 순간부터 
'마지막 (종말의) 때'로 들어간 거에요. 
이제는 언제든지 오실 수 있으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어쩌면 아주 가까울 수도 있어. 
너희 당대에 내가 다시 올 수도 있어 
너희 중에 내가 다시 올 것을 볼 사람도 있을 수 있어. 

물론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어요. 훨씬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2천년 동안 길어지긴 했지만 
하여간 예수님도 그렇게 믿으셨고 *재림의 임박성
사도바울도 그렇게 믿었고, 제자들도 그렇게 믿었고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나 거짓말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거예요. 그럴 개연성 probability이 있었죠.    주1)

그래서 '마지막 때'라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부터는 
언제든지 마지막 때가 된 거예요. 마지막 때가 시작 된 거고 
예수님께서는 그 중간에 아무 때나 오실 수 있어요. 

▲그런데 다시 오시기 위해서는 충족되야 되는 조건들이 몇 개 있어요. 
그것은 조건이라기 보다는, 마지막 때를 두신 이유인데, 

그 조건은 뭐냐면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 이루게 되는 때! 
그것이 마쳐지면,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거에요. 마24:14 

그래서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바울 당대에 다 끝냈으면, 
그때 오실 수 있었던 거고, 

그렇지 않고 100년 뒤에 끝냈으면, 그때 오셨을 거고, 
천년 뒤에 끝냈으면, 그때 오셨을 거고...

그런데 (재림의 지연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가 그래서 태어났으니까 다행인 거고 
불행인 것은,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교회가 사명을 완수하기 못한 거죠.

그 사명이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명확하게 말씀 하셨잖아요. 
그 사명을 교회가 완수하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지금이 마지막 때인데, 이 마지막 때는 
교회가 사명을 완수하는 기간이라는 거에요.

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나요?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됩니다. 그전에는 교회가 없었어요. 

오순절날 딱 성령이 강림하시면서, 교회가 시작된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교회에게 예수님께서 선교의 사명을 주십니다. *대위임령
그 사명을, 성도들이 언제 마치는 가를 지켜 보고 계시는 거에요. 

그래서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었을 때 
그때 끝이 올 거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마지막 때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그 열쇠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교회가 언제 끝내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때가 결정된다는 거에요.

불행하게도 주님의 재림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열심히 잘 하면, 너희 당대에도 재림을 볼 수도 있어!'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거짓말이 아니지요. 실제로 가능성이 있었죠.
그러니 예수님이 거짓말 하신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마지막 때는 뭐냐면 
예수님의 초림,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성령강림 때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 때 까지에요. 
그러니까 초림과 재림 사이에 그 기간을, 마지막 때라고 성경이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또 다르게 표현하면, 이 기간을 "교회시대"라고 해요.
구약시대는 교회가 없었어요. 
그리고 재림하고 나면, 또 교회가 없어지지요.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기간은 교회시대가 되는 거죠.
즉 교회가 하나님의 몸이 되고, 주인공이 되어서 믿음의 싸움들을
싸워나가는 기간이에요. 초림부터 재림 사이! 

그래서 교회와 누가 싸옵니까? 마귀가 싸우는 거죠. 
마귀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을 싫어하고 저항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그 시대가 더 길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방해하고 저항하고 싫어합니다. 

반대로 교회는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완전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주시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마귀,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거예요. 
충돌하면서 영적인 전쟁 일어나는 기간이, 우리가 사는 '교회시대'입니다.

정리하면, [마지막 때]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기간, 
-그 기간은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시대'  
-그 기간은 마귀와 교회의 영적전쟁의 기간, 

그래서 성경이 얘기하는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죽고 순교하고... 아니요, 그게 본질이 아니라 

본질은 교회가 사명을 이루는 기간이에요. 
환난을 버티면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아니에요. 
교회가 사명을 이루는 기간이에요

그런데 그 사명을 이루려고 하다보니까,
방해하는 마귀 사탄이 있지요. 
그래서 그것과 충돌하기 때문에, 
충돌로 인해서 환난, 핍박, 어려움들이 파생되는 것이지,

핍박과 두려움이, 마지막 때의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 마지막 때는 교회가 마지막까지 사명을 이루는 기간이야.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영적전쟁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과 핍박도 있는 거지..'
이 개념을 갖고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종말론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마지막 때를, 먼저 '두려움, 환난, 무서움' 이렇게 잘못된 시각으로 접근하는 거죠.
이게 사실은 과거에 잘못된 어떤 가르침들이었죠.

과거에 종말론을 주장했던 분들이, 
그들이 물론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했다는 건 알겠는데 
부족했던 점은, 기독교 종말신앙을 
아주 패배주의적인, 아주 소극적이고 세상에서 도피적인, 
(왜냐면 환난, 두려움, 무서움을 강조했으므로)
그런 신앙으로 만들어서 큰 혼란을 가져온 거예요.

그래서 '도망가서 피해서 숨어 있어야 돼!'
그래서 실제로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어디로 피신하고.. 그러는 것을 봅니다.

마지막 때의 본질은,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렇게 증인이 되는 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사도행전의 연속되는 기간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당연히 그 안에 핍박도 어려움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 사도행전 내내 '마지막 때가 되니 너무 두렵고 무섭고... 
죽을까 봐 겁나...' 이런 분위기가 아니죠.

대신에 '우와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구나'
이런 느낌이 들지요.
이게 바로 마지막 때, 종말의 느낌이라는 거예요. 

'성령께서 임하셔서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거야!' 
그 증인이 되는 것을 완수하는 기간이 마지막 때고 
그것이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기간이고,
그 사명을 완수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거예요.

이게 '마지막 때, 종말'의 본질임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사명을 이루어가는 기간이에요. 
'교회의 사명'에 종말론의 초점을 맞추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이기는 전쟁이라도
일부 병력 손실과 부상이 발생하는 거죠.
그런다고 도망다니고 숨는 게 그 본질이 아니죠.

그래서 '마지막 때'는 벌써 2천년 전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종말'의 한 가운데 지금 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을 가리켜 '종말의 종말 때이다'라고 말들을 하죠.
('종말 시대 가운데 마지막 때' 라는 뜻) 

◑2. 교회가 종말에 대해 터부시하는 듯 보이는 이유는
사탄의 방해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교회가 마지막 때에 대해서 
가능하면 무지하고, 가능하면 무관심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자기 생존 시대가 길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교회를 속입니다. 
종말에 대해서 오해하게 하고, 
마지막 때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하고, 
또 어떤 때는 반대로 잘못된 종말론을 통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도 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니까, 기독교계가 전반적으로 
종말론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터부시 하도록 만들어 버렸어요.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영리하게 사탄이 종말론을 통해 미혹한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마지막 때에 대한 이해와 열정을 앗아가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종말, 또는 마지막 때'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 마지막 때에 내가 정말 성령님과 함께, 선교의 완성에 일조해야지' 
그 열정이 드십니까?  이게 정상적인 마음이죠.

-아니면 '그런 말은 듣기만 들어도 무섭고 찝찝해'
혹시 이런 감정들이 올라오십니까? 그게 마귀의 속임수가 통하고 있다는 증거죠.

◑3. 우리는 '종말론, 마지막 때'를 잘 알아야 
교회가 지상명령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교회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되는 사명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대해 성경은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째는 마지막 때는 환난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영광이 있다는 거에요. 

▲1. 마지막 때는 환난이 있습니다
본문 막13장 말씀을 보면, 이 마지막 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재난과 환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종말은, 사탄과 교회에 전쟁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안에는 환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쟁이 있는데 어떻게 어려움, 환난이 없겠어요?
적군이 계속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핍박이 없겠어요?

그래서 본질은, 교회가 사명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기 때문에 
반드시 환난이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환난이 다가오면 당황해요. 
혼란스러워해요. 그래서 낙심하게됩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를 알아야 되는 이유는 환난이 있기 때문에 
그 환난을 대비하기 위해서 알아야 돼요.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일면 맞아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고, 영원히 태평성대를 누리는 나라예요.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 속에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그 하나님 나라에 완성을 위해서 
교회가 치열하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거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란 말이에요. *already not yet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은 태평성대, 평화를 누리는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교회가 선한 싸움, 전쟁 중에 있는 중간 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위험한 게 뭘까요?
가장 위험한 것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전쟁 중이라는 걸 몰라요. 
그럼 여러분, 굉장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조심조심 다녀야 되는데, 
아무 개념없이 막 아무데나 돌아다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죠. 

또  전쟁 중이라는 걸 모르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전쟁 중 이라고 하는 걸 모르면, 아무 생각 없이, 경각심 없이 하게 됩니다.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놓고/풀고 있다가 
적군에게 잡혀가기도 하고...

예를 들면, 식사가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든지... 
전쟁 중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우리가 탄 배가 유람선인지, 군함인지 구분을 못해요. 
군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본질적인 것들, 
'이 배는 왜 이렇게 식사가 맛이 없어? 
아니 이 배는 안내하는 사람들이 불친절해?'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유람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귀한테 속은 거에요. 

그래서 마귀한테 미혹되는 거에요.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비본질적인 행동들을 합니다. 

△사탄이 하는 첫번째 일은, 미혹하는 거예요. 

막13:5~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사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미혹하고 속인다는 거에요. 
우리가 탄 배가 유람선이라고 속이기도 하고요. 
적인데 아군인 것처럼 위장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아군을 적으로 오인해서 자중지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아주 중요한 건 뭐냐면 '깨어있는' 거에요.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진리가 무엇인지 알도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됩니다. 

△바울이 종말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살전5:1~6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내가 너희에게 쓸 게 없대요' :1
지금 시대 전체가 종말의 때이고, 
그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모르신다고 그랬어요.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죠. 
심지어 예수님도 몸을 입으신 이상, 때와 기한은 언제인지 모른다는 거에요.

2절에 '주의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이른다'고 했어요.
'주의 날'은 유대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주의 날'은.. 심판의 때를 뜻하는데, 
마지막 때, 환난 때, 전쟁 때를 가리키는 유대인의 관용어에요.

그래서 마지막 때는, 주의 날이고, 
환난과 전쟁의 때라는 뜻이에요.

그 날이 도둑같이 임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는 거에요. 
정신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거에요. 

여러분 2천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쭉 둘러보면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들... 환난과 전쟁과 핍박이
똑같은 강도로 2천 년을 쭉 흘러온 건 아니에요. 

시간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그 강도가 오르락 내리락했습니다. 
그래서 어떨때는 굉장히 강력한 전쟁이 일어나면서 
환난과 핍박과 이런 것들이 아주 강력하게 진행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잠깐 휴전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전쟁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장기적인 전쟁을 할 때 
모든 전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강도로 싸우는 게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이 환난의 강도가 내려가 있는 기간이 오래 지속될 때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말에 속는다는 거에요. :3

지금 전쟁중이고, 잠깐 숨 고르고 있는 거지 
평안하고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이 기간이 조금 길어지다 보면 
사람들 귀에 뭐가 들리냐면 '평안하다. 안전하다'가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그 말에 속는다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냥 '평안하다. 안전하다' 라는 말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일제강점기 있었고, 625 전쟁이 있었죠. 
가난이 있었죠. 이 때는 절대로 평안하고 안전하지 않았어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예수 믿는다고 하는 건 생명 걸어야 되는 일이었고요. 
한 세대 전만 해도, 예수 믿는 거의 유일한 소망은 천국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치열하게 생명 걸고 그러면서 예수를 믿어왔는데 
이게 한 세대가 지나가고, 교회가 커지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잠깐 숨 고르기 기간에 들어갔거든요. 

잠깐 숨 고르는 기간이 30년, 40년 지속되다 보니까 
'평안하다. 안전하다' 를 당연하게 여기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는, 전쟁 중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사치와 여유 속에 
정말 여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미안하지만 셀 모임은 사교모임 비슷하게 돼버렸고요. 
신앙생활은 교양과 취미 수준의 사치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솔직한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아프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정말 여러분, 셀 모임 하나에 생명을 걸어본 적이 있으세요?
직장에서 짤렸다 그러면, 정말 죽을 것처럼 우리가 당황하고 긴장하지만 
셀모임에 안 나가는 것은.. 그저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이 여러분,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입니까? 
대부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위기, 건강의 위기, 직장의 위기... 
그게 몇 배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이게 '평안하다, 안전하다'며 신앙생활 하는 자세인 거죠. 살전5:3
지금 여러분 많은 크리스천들이 잠들어 버렸어요. 
평안하고 안전한 시간이 오래 되면서 다들 잠들어 버렸어요. 

성경이 얘기합니다.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리니' 5:2
마지막 때는 환난이 있습니다. 도둑처럼 임하는 '주의 날'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깨어서 
갑자기 닥치는 도둑처럼 임하는 '주의 날'에
깨어서 의연하게 대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 대규모로 배도가 일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여러분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그 속에 있거든요.

갑자기 이 전쟁이 극렬해 질 때 
환난의 수치가 올라갈 때가 갑자기 도적처럼 찾아온다는 거에요. 
'평안하다. 안전하다'에 익숙해져서 수 십 년 아무 일도 신앙생활을 여유롭게 하다가,
 
그냥 그게 노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성경에 의하면, 그게 전혀 노멀이 아닌거거든요. 
그건 잠깐 숨 고르고 있는 기간이거든요. 

도둑같이 환난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환난과 핍박의 시기가 오면,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은
당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마지막 때는
큰 규모의 배교가 일어난다는 거에요.

제가 목자로서 가장 마음 아프고 염려되는 것이 이 부분이에요. 
건강이나, 경제적으로야 
뭐 잘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고... 오케이 괜찮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영혼을 팔아먹을까봐 그게 제일 염려되는 거죠.
근데 영혼을 팔아먹지 말아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의 믿음은 지켜야 될 거 아니에요. 
상황이 어찌되든지 간에, 배교는 하지 말아야 되는 거잖아요. 
우리의 생명을 내려 놓다고 할지라도, 배교는 하지 말아야 되잖아요. 
이게 준비가 돼 있느냐는 거죠.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기간이 길게 지속되면, 이게 준비가 느슨해져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왜냐면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여러분 요즘이 비슷한 기간이 아닙니까?  *2020년 설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뉴노멀 이라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New Normal : 코로나 사태로 인한 변화를 노멀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건 뭐 환난이라고 얘기하기도 사실은 어려운데,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미혹되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지 몰라요. 

'이거는 환난과 핍박도 아니고, 교회가 조금 더 불편해진 거 뿐인데 
조금 더 욕 먹는 거 뿐인데 
그것 때문에 벌써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린다면, 
과연 진짜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해 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마지막 때를 살고 있고 
마지막 때는 반드시 환난이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깨어 있으십시오! 

▲2. 두번째로 기억해야 될 것은, 마지막 때에 사명이 있다는 거에요. 
교회는 그저 마지막 때에 환난을 버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지, 버티는 것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환난과 핍박과 두려움이라고, 앞서 살펴보았죠. 

그러나 마지막 때는 여러분, 환난과 핍박을 두려움 가운데 견디는 기간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는 교회가 사명을 이루는 기간이에요. 

사명을 이루다 보니까 어려움이 오는 거지 
사명을 안 이루려면, 어려움이 을 것도 없어요.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대한 이미지를, 여러분 다르게 그리셔야 돼요. 
마지막 때에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잘못하면 순교하고... 
이런 이미지를 그리면 안 되고 

마지막 때는 교회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기간이에요. 사명을 이루는 기간이에요. 
이런 이미지를 그려야 돼요.

13:9~11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큰 혼란이 있을 거라는 거에요.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고'... 사회적 핍박이 있을 거라는 거죠. 
'회당에서 매질하고' ... 종교적 핍박이 있을 거라는 거죠.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리라' ... 정치적 핍박이 있을 거라는 거에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다 이런 핍박들을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듯이 경험하지 않습니까? 
요즘 코로나 시국에 교회에 대한 고발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한 일주일 전에 질본(질병관리본부)에서 브리핑을 하면서 
서울에 있는 모 교회가, 대전에 내려가서 
서울에서는 소그룹 모임을 못하게 하니까 대전에 내려가서 
원정 소그룹 모임을 했다.. 라는 고발이 들어왔다고 질본에서 발표했어요.

여러분 이거 명백하게 실정법 위반입니다. 
확인이 안 된 것을 발표함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명예와 인격적인 손해를 보게 했거든요. 

원래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왜요? 
발표는 언제 해야 되는 거예요?
조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일주일 뒤에, 이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표하는 거죠...

그게 원정 모임을 한 게 아니고, 
원래 장로교가 총회를 해야 되는데, 
코로나때문에 비대면 총회를 하기로 한 거에요. 

그래서 비대면으로 방송을 하자 그래서 
총회장 후보 나올 사람들이 정견발표 하는 걸 녹화하기 위해서 
30명 정도가 모인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전국에서 봐야 되기 때문에 
중간 장소인 대전에 모여서, 녹화한 거.. 이게 팩트였어요.
그게 '원정 소그룹 모임을 가졌다' 라고 속보로 떴어요. 얼마나 분이 올라와요...
아니 그게 뭐 속보로 나갈 내용입니까?

속보가 난 후에, 약 40군데 되는 언론에서 일제히 다 보도했어요. 
포털에도 마구 올랐어요.
그러니까 댓글에 '미친 놈들, 쏴 죽여라. 다 총살시켜라'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서, 질본에서 정정해서 발표했어요.
'지난 주에 내가 팩트 체크해 보니, 
예배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또 댓글이 달렸어요.
'예배만 아니면 모여도 된다는 거냐?'

지금 마지막 때는 '사회적인 핍박'이 있을 것이고,
공회에 넘겨지는 '종교적인 핍박'이 있을 것이고,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는 '정치적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이 미리 알려주시는 거죠.

그러나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핍박으로 인해, 복음전파가 더 가속되어진다는 거죠!
교회는 그 가운데 지상명령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핍박에 대해서 '맞서 싸워라' 또는 '너희를 변호해라' 
그런 말씀이 없어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 그게 복음전파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교회는 이 핍박에 대해서 일희일비하며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호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묵묵히 우리가 해야 될 사명을 감당해 나가라는 거에요. 
그게 성경의 메시지에요. 

그렇게 할 때 11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거에요.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1

묵묵히 우리가 해야 될 사명을 감당하는 그게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이라는 거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있을 환난과 핍박에 집중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진짜 집중해야 될 것은 
우리에게 주신 본질적인 사명들, 

세상을 섬기고, 복음을 증거하고, 재난가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돌보고, 
위로하는 일들을.. 그냥 묵묵히 해 나가면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 성령께서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아니 코로나로 말미암아 나라가 엉망이되고, 교회는 더 엉망이 된 상황인데 
무슨 사명 감당?' 상식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은 이 상황 가운데서도, 환난과 코로나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거죠.
또한 승리가 약속되고, 보장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때에 대해서, 우리가 알 때,
여기서 대처하는 방향과 자세가 올바르게 나오는 거죠.
안 그러면 무조건 싸우고, 같이 힘겨루기 하다가... 복음전파가 방해받는 거죠!

원래 교회는, 말이 되는 상황이든,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든 
그 속에서 그냥 묵묵히 우리의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하는 거에요.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지금 코로나 시국을 사람들은 '뉴노멀' 이라고 말하지만 
아니에요. 교회에는 그게 그냥 노멀이에요.
원래 교회는 그런 상황가운데서 처하도록 돼 있었던 거고 
초림부터 재림까지 기간은, 원래 그런 기간 가운데 교회가 있는 거에요.
그게 '노멀'인 거죠.  *정상적인 상황

'평안하다, 안전하다'하는 그 때는.. 노멀이 아니고, 
잠시 전쟁이 소강상태에 있는 거죠.

지금 이 시국을 노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거 왜 이래?' 하면, 괜히 정신질환이나 홧병만 걸려요...
그래서 종말론에 대해서, 우리가 잘 공부하고 알아야 된다는 거죠.
우리의 멘탈을 올바로 가져야 된다는 거죠.

여러분,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은요, 
평온하고 무사안일한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고발하고, 매질하고, 환난과 재난에 넘겨지는 상황 가운데서
복음이 증거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그런 핍박의 상황을 '노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반드시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는 거죠!

▲3. 마지막 때에 환난과 핍박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면
영광이 있습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면류관이 있다는 거예요. 
환난과 시련이 닥치면, 사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여요. 그게 사람이죠.

저도 그렇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니까 
눈앞에 있는 것만 보여요. '어휴 이거 어떡하지?' 

길에서 누가 '목사님!' 하고 저를 부르면, '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저를 쳐다보는데, 막 째려서 보는 눈빛 처럼 보여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마지막 때를 알아야 돼요.
환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요. 
그렇지만 성경은 무엇을 약속하냐면, 조금 더 멀리를 바라보라는 거에요.
조금만 더 멀리 바라보면 영광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이 있다는 거에요... 

.........................................

주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계22:7, 12, 20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한 지 약 2000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2000년이 지났는데 뭐가 속히 되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더딘 일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속히 될 일’입니다. 
곧 이루어질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

▲잠깐 난감

어제는 기도집회와 사역집회 등 모임이 여럿 있어서
지체들이 제 차를 타고 많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이 차만 계속 타고 다니는 것 같애...” 라고 말하자
다른 지체가 하는 말,
“엉 맞어! 근데 이 차가 영광이지!”

(듣는 즉시 잠깐 난감 @#$%^&*? )

‘웬 적반하장?....
아니 수고를 해도 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내가 수고를 했는디...?’

‘아하, 그렇구나!
지체들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니깐...
그리스도를 태운 이 차가 영광일 수밖에..!’

“주, 예수여! 제가 어서 자라 당신을 태운 연(가마)이 되게 하소서!”

지난 토요일에는 명동 R호텔에서
어떤 형제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지체들이 하는 말....
“우리 지체들이 명동에 나오니깐 명동이 (환하게) 빛이 나더군!”
(듣는 즉시 잠깐 난감 @$#%^$&^???)

‘웬 자신감?
아니...강남에 밀려 명동이 옛날 명동이 아니라 해도...
토요일 저녁에 얼마나 많은 멋쟁이들이 명동에 몰려드는데...’
‘아하! 그렇구나! 우리가 빛이니깐,
지체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빛이 날 수 밖에...’

“주, 예수여! 나도 더 많이 당신을 누림으로....
더 많은 빛을 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