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말씀 사경회: 이지웅 목사 (7/6 저녁) - YouTube
◈에베소서 1강 엡1:3~4
◑에베소서의 저작 배경
사도바울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 서신서를 기록합니다.
사도바울이 기록한 13 서신들 가운데,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의 핵심, 복음의 정수가 담겨 있는 성경을 고른다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두 권입니다. 로마서와 에베소서입니다.
두 권 모두가 다 복음의 핵심, 복음의 정수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두 권이 복음의 다가가는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로마서는 인간의 완벽한 절망과 사망과 어둠과 무저갱의 제일 밑바닥,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원에 이르고,
에베소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 경륜, 섭리, 그 아름다움, 존귀로부터..
이렇게 위로부터 시작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로마서는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원에 이르고,
에베소서는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한 권만 보면 안 되고, 에베소서와 함께 두 권을 같이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저는 로마서를 참 중요하게 여기고 좋아합니다.
사실은 종교개혁에, 또 교회에, 개인적인 삶에, 이 세상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성경이 로마서 에요.
그러니까 로마서는 성도님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죠.
그러나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는 성경을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그건 에베소서 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 그 구원을 다루고 있지만,
즉 사실은 (구원의) 가장 기본적인, 가장 기초적인 것을 다룬다면
에베소서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너무 놀라운.. 읽기만 해도 가슴이 벅찰 정도의, 그런 진리가 담겨 있죠.
저는 지금도 기분이 우울하거나, 마음이 좀 불편하면
항상 에베소서 2장을 읽어요.
엡2장은 '어떻게 이런 말씀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보석이 담겨 있을까?' 그러고 싶을 정도의 깊은 말씀이 담겨 있죠.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장소에서 기록했는지
먼저 살펴볼게요.
AD 32년, 사도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행9장
14년이 지난 AD 46년,
이때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제 본격적으로 전도여행을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AD 57년까지, 약 11년 기간 동안에 1, 2, 3차의 총 3번의 전도여행을 합니다.
이때 사도바울이 방문했던 곳은, 구브로(사이프러스)섬,
그 위에 남갈라디아, 그 옆에 소아시아, 바다 건너서 마게도냐, 아가야 예요.
지금 제가 드리는 이 지명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별 감동이 없겠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11년 기간 동안에 3번의 전도여행을 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에요.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고, 대부분 걸어서, 도보로
또는 배로 이동했던 그 2천 년 전의 시대에
11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그 넓은 지역을 다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11년 기간 동안에, 바울은 최소 여덟 곳 이상에서 교회를 개척해요.
이건 불가능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11년의 기간 동안에, 사도 바울이 최소 여덟 곳 이상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은, 밤잠 안 자고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 사도바울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면.. 그건 한편으로 이해가 돼요.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어떤 방해가 있었는지
사도바울은 고후11장에서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11:24~27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
거의 죽도록 때리는 태형이죠. 아마 상당한 고통과 뼈에 이상이 갔을 겁니다.
건강이 약한 사람은, 맞다가 죽었을 거예요.
그저 맞고서 그 다음날 벌떡 일어나는 그런 태형이 아닙니다.
아마 그거 한 번 맞으면.. 몇 주간, 아니 몇 달 동안 회복되어야 했을 거예요.
만약 뼈에 이상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이 회복되는데 걸렸겠죠.
'태장은 세 번'
곤장 같은 것입니다. 이것도 한 번 맞으면
적어도 몇 주간 누워있었을 것입니다.
'한 번 돌에 맞았어요'
1차 전도여행 때, 남갈라디아의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았어요.
사람들은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해서, 쓰레기 버리듯 성 밖에 내다 버렸어요.
근데 깨어나서, 일어나서,
루스드라 성에 다시 들어가서 전도했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들에겐, 휴유증이라는 게 생깁니다.
돌에 맞았기에, 머리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을 거예요.
그래서 바울에게 지병이 있었는데, 아마 이때 돌에 맞은 충격에 의해서
뇌가 손상되어서.. 그게 간질이 되었을 것이다.. 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죠.
이 11년 기간 동안에 엄청난 박해를 당한 횟수를 다 합치면 12번입니다. 5+3+1+3
그러니 거의 매년 한 차례씩 이런 엄청난 환난을 겪은 거죠.
한 번 태장으로 맞아서 뼈가 부러졌어요. 1년 가량 지나서
그 뼈가 회복되어 다시 붙을만 하면.. 또 맞는 것입니다.
제 말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무려 11년 동안 여행하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정말 필사적이고, 결사적인 복음 전파였다는 것이지요.
건강한 사람도, 그렇게 돌아다니기 힘든데.. 바울은 부서진 몸으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그렇게 먼 거리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거죠.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여정이었던 것이죠!
또 '배가 세 번이나 파선'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비행기가 세번 떨어진 거에요.
이러면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공포증이 생겨서 배 타기 싫었을 거예요.
그 외 강도의 위험, 동족 유대인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기에다 '못 먹고 못 자고 헐벗고 춥고 배고프고'
11 년의 기간 동안에 이런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최소 여덟 곳 이상에서 교회를 개척한 거에요.
이건 불가능합니다. 지역이 굉장히 넓을 뿐만 아니라,
몸도 성치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도바울의 성화, 중세 때 그린 그림을 보면
사도바울의 어깨가 이렇게 쳐져 있어요.
그리고 다리를 질질끌면서 다녔을 것입니다. 부상당해서 그런 거죠.
그 상태에서 사도바울은 이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해요.
교회를 개척해요.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한 눈 팔지 않아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개척하는데, 온 힘을 쏟습니다.
▲이렇게 11 년간, 세 번의 전도여행을 마친 다음에
AD 57년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행21:15
그동안 했었던 모든 것을 보고하려고 해요.
아마도 지금까지 전도여행 했던 것을 모두 보고하고,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역을 하기 위해 예루살렘교회를 찾았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 사도바울의 소원 중에 하나가 뭐겠습니까?
아마 조금 쉬고 싶지는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AD 57년에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오자마자 붙잡힙니다.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에게 거짓 고소를 걸어요.
누명을 씌워요. 그래서 붙잡혀요.
그 당시 성전 사방 주변엔, 1.5미터 높이의 돌들이 중간중간에 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돌들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어느 이방인이라도 이 돌을 넘어 성전에 들어오면 죽을지니라"
근데 아시아에서는 어떤 유대인들이 거짓 고소를 했어요.
"내가 봤어, 저 바울 나쁜 자식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데리고,
저 돌을 넘어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에요. 완전 거짓말이죠.
그런데도 막 군중의 폭동이 일어나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천부장이 바울을 붙잡아요. 사실은 그런 식으로 바울을 보호했던 거죠.
그래서 예루살렘 감옥에서 2~3일,
그리고 가이사랴(로마군 본부) 로 호송해서 거기서 2년,
또 가이사에게 상소해서 무려 2년을 로마에서 가택연금,
도합 4년의 투옥생활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무려 11년 동안 두드려맞고,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위험을 겪고, 배가 침몰함을 당하고,
못 먹고 못 자고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도 사도바울은 11년 동안 복음증거 했어요. 교회 세웠어요.
근데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러시면 안 되죠. 11년 동안 뭐 놀았습니까?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았습니까? 아니요. 복음증거하고 교회 개척했어요.
근데 11년 전도여행 마치고, 예루살렘에 오자마자
거짓 누명을 쓰고 붙잡혀서, 무려 4년 동안 또 수감 생활합니다.
거기 감옥에는요, 갇힌 수인들에게는 적절한 음식이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못 사는 나라에 가면, 감옥에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밖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못 삽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이러시면 안 되지요.
왜 사도바울에게 섭섭한 마음, 서운한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가 이렇게까지 복음증거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교회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했는데..'
갑자기 사고가 나요. 질병이 와요. 재정적인 어려움이 와요.
그러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섭섭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그게 사람이에요.
사도바울이라고 왜 서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서운한 마음, 섭섭한 마음, '하나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는데 (셋집 얻어 가택연금 당했죠, 행28:30)
그 동안에 지난 11년 동안 8개의 교회를 개척했다고 했는데,
그 교회들부터 소식이 들려와요.
'당신이 개최했던 곳에서 지금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이 들리면 얼마나 좋아요? 근데 아닙니다.
개척했던 모든 교회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와요.
근데 바울이 11년의 기간 동안에 가장 오래 머물면서 복음을 증거했던 에베소,
무려 3년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증거했던 에베소로부터 소식이 들려요.
"사도 바울, 기억하세요?
바울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당신이 가장 애정을 쏟았던,
당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했던..
당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그 에베소 교회 안에
이방인 그리스도 인과, 유대인 그리스도 인사이에 지금 갈등이 생겼답니다.
그 갈등이 번져서 다툼이 됐답니다.
그래서 그 다툼 때문에, 지금 교회가 깨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바울이 개척했던 그 에베소 교회가 깨어지기 일보직전이에요.
그게 다 인가요? 아니에요.
신천지 같은 이단이 들어와서, 교회를 완전히 뒤집어 놨어요.
그래서 서로 싸워요.
그 외에도 죄들, 음란함, 욕심, 시기, 험담, 분열, 갈등...
수많은 죄들이 여전히 교회 가운데 있어요.
그거를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셋집)에서 듣습니다.
그리고 로마감옥에서 기록한 편지가 에베소서 입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기록한 편지가 에베소서에요.
▲그런데 오늘 엡3:1절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짧게 설명드린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했을 당시의 배경을
기억하시고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이 말씀이 이해가 되나요?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이방인을 위하여' .. *휘페르, in behalf of, for the sake of
여러분, 이 말은 틀렸어요. (진짜 틀린게 아니라 반어법)
'이방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방인 때문에'가 맞습니다.
에베소 교인 드로비모 때문에 자기가 갇힌 거거든요.
근데 사도바울은, '너희 때문에 갇혔다'가 아니고,
'너희를 위해서 갇혔다' 라고 말씀해요.
여러분, 우리 중에 사람 만나면 항상 핑계되는 사람이 있어요.
원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누구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부모 잘못 만나서..'
늘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러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는 아무 잘못 없어요.
늘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을 지금 보세요.
이방인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 때문에 잡힌 게 맞아요.
근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방인 때문에 잡힌 게 아니야,
이방인을 위해서 갇힌 거야!'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아무 원망이나 책임추궁이 없어요.
어떻게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근데 이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그 다음 구절이에요.
3:1b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감옥에 갇힌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을 위로합니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이,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권면한 것이에요.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4:4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사도바울은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본론 : 엡1:3~4절 강해
사도바울은 엡1:1~2절에서 짧은 인사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 짧은 인사말 다음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하고 싶었던
편지의 가장 첫 단어를 1:3절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게 '찬송하리로다' 이에요. :3
'하나님 내가 지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에요.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냐는 것이에요.
어떻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내가 지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에요.
그럼 도대체 사도바울이, 그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
'찬송하리로다, 기뻐하라' 1:3, 4:4
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뭔가 바울이 가진 게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바울이 가지고 있는 건 뭐냐는 거에요.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것은 뭐냐는 겁니다.
그게 1:3~14절에 나와 있어요.
▲1:3~14절은, 한글성경에 12구절로 나뉘어져 있어요.
영어 성경에도 여러 구절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시면 한 문장이에요. 1 sentence
그러니까 이것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동사(분사)가 여러 개 나오고, 형용사와 부사가 너무 많이 나오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문장이 길어서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헬라어를 직접 사용하는 그리스 신학자에게 물어봤어요.
자기들도 문장이 길어서 어렵대요. 그리고 고대어도 많이 섞여있겠죠.
그래서 복음주의안에서는 이 부분을 해석하는 방법은 두 세 가지입니다.
제가 오늘 그 중에 한 가지를 설명해 드려 볼게요.
3~14절은 한 문장입니다. 그러나 이 긴 한 문장에 후렴구가 있어요.
그래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찬송가에도 후렴이 있죠? 후렴이 어떤 구분을 지어줍니다.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후렴구가 보이시나요? '영광을 찬송하게 하심이라' 입니다.
그래서 한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3파트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3~6절,
7~12절,
13~14절
이렇게 나눠놨더니 뜻이 명확해져요.
3~6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7~12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13~14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언급됐어요.
여러분, 우리는 '구원'하면,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해요.
맞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게 맞아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만 사역하신 게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신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 구원하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능력을 다 쏟아부으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 극한 복음전도 사역 중에서, 또 갇힌 상태에서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찬송하리로다, 기뻐하라' 했다는 것이죠. 아래 계속 설명)
나 같은 것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지혜와, 모든 능력과, 모든 영광과,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존귀를
태초부터 모든 것을 다 계획 하여, 나같이 미천한 자를 구원하시는데
온 힘을 다해 다 쏟아부으셨다고 말한 것이에요. 1:3~14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 뭔가요?
그러면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뭐를 하셨나요?
성령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뭐를 하셨나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주시되'
이건 한글의 시제가 좀 애매하죠.
그러나 영어성경, 헬라어 성경에 보시면 시제가 명확합니다.
'이미 복 주셨으되' 입니다. *has blessed 아오리스트, 분사
'주실 것이다' .. 미래가 아니에요.
'주고 계시다' .. 현재 진행형이 아니에요.
'이미 주셨다' ... 라는 것이에요. 무엇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여러분 우리가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살때 필요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단 한 개도 빠짐없이 모두 다 이미 주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3
근데 우리는 이 구절을 안 믿습니다.
'지금 내 문제는 복이 없는 거예요.
지금 내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이유, 건강이 어려운 이유,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복이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우리가 늘 복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문제의 원인은 복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너희가 이 땅 가운데 살 때 필요한 모든 복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주셨다..' 고 말씀합니다.
성도인 우리는, 복이 부족한 게 아닌 것이에요.
문제는 복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이미 주신 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에요.
'에이, 그럴 리가 없어.. 나한테 무슨 복이 있어? 나같이 박복한 사람이 어딨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기도가 달라집니다.
계속 복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구하지도 않았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신 그 복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관련글 : 형제들아 속지 말라 https://rfcdrfcd.tistory.com/15981023
여러분, 우리 기도가 달라져야 됩니다. 신앙이 달라져야 됩니다.
왜 나의 신앙 수준이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왜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진리를 믿지 않고, 내 상식을 믿어요.
'그럴 리가 없다. 나같이 박복한 사람이 세상에 없어!'
아닙니다. 성경은 명확히 선포하는 거에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성도에게) 이미 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에요.
이걸 깨닫는다면 기도가 달라지죠.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성도가 되었으니,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죠.
그렇지만 '온전히 머물러야' 되는 것입니다.
(*호흡만 한다고 다 살아있는 게 아니죠.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산소호흡기 끼고 있으면.. 온전히 살아있는게 아니죠)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비유가 요15장의 포도나무 비유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3 서신을 기록하는 동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안에서, 주 안에서, 그 안에서' 라는 표현을
수백 번 반복해서 썼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새롭게 되는 조건은 뭔가요? 내 결단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에요. 즉 머무는 것이에요.
▲사복음서에 네 번 모두 기록된 행적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죠.
여자와 아이까지 계수하면 약 2만 명이 먹은 겁니다.
그 물고기가 크지 않아요. 어린아이 도시락에 들어간
물고기 다섯 마리.. 뭐가 크겠어요?
저는 마14:20절 말씀을 아주 좋아해요.
거기에 '다 배불리 먹고'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모인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다 배불리 먹었대요.
저는 지금 학교를 책임 맡고 있는데, 학교가 지금 총 3개가 진행되고 있어요.
간사들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저희 집에 놀러 오잖아요.
그러면 정말 그들이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들의 문화가 다 그렇잖아요.
배불리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고, 배불리 먹는 것을 좋아하죠.
저희 집에 온 학생들이 '빨리 우리 집에 돌아가서 라면 끓여 먹자' 그런 말 듣는 게 싫어요.
그런데 그 작은 아이 도시락 하나로 무려 2만 명이 다 배불리 먹었대요.
그 장소가 어딘가 하면, 빈들이에요. :13
어떤 식당도, 시장도, 빵가게도 없는 곳이에요.
요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가? ..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왜 이렇게 늘 배고플까요?
나는 왜 이렇게 늘 영적으로 허기가 질까요?
여러분, 누구랑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면, 내가 있는 곳이 들판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거친 들판, 아골 골짜기라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거기서 '배부름'을 경험하는 것이에요. (*엡1:3절의 '모든 신령한 복'과 연결)
정말 중요한 것은 뭐냐면, 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기만 하면, 포도나무 비유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이, 나를 부요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 그 사람이 어디 있든지 간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부요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억하세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진정 회개하고 회심한 자에게 해당
어디에서에요? 그리스도 안에서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 더 충만히 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을까?'
이것이 에베소서의 주제가 되는 거예요.
나는 예수를 믿는데요? 여러분 그래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어도 신앙의 수준과 성장단계는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온 힘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한 발은 예수 안에,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어요.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는 거죠.
그 부요함은 절대로 경험하지 못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주어지는 그 부요함은
여러분,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저는 감사하게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자,
제가 공부했던 곳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셨어요.
그래서 3년 반 정도를 가르쳤죠.
저희 동네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때 제 첫째 아이가 영국에서 태어났어요.
뭐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부모님도 한국에 계시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그때 저는 영국에 있을 때 감리교회를 출석했거든요.
감리교회가 영국에서 시작됐잖아요. 그러니까 동네마다 감리교회가 하나씩 있어요.
저는 감리교도는 아니지만, 영국에서는 감리교회에 출석했어요.
출석 성도가 한 60~80명 정도 됐어요.
근데 교회에 갈 때마다, 키가 작은, 머리가 하얀 영국 할머니가
'지웅아 얼른 와!' 하면서 안아주시는데
제가 그때마다 너무 좋았어요.
근데 그분이랑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 분의 일생의 소원이 있었어요.
저는 유럽에서 8년 반 정도 살다 왔거든요.
유럽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소원이 뭐냐면, 북유럽을 크루즈로 여행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뭐 3~4일짜리가 아니라, 보통 3~4주 짜리 패키지 여행이에요.
그러니 비쌉니다. 많이들 못 가요. 그러니까 소원만 갖는 거죠.
그 할머니 소원이, 크루즈를 타고 북유럽을 여행하는 거예요.
말도 마세요. 그 빙하가 녹은 바다 색깔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옥색이에요.
그 피오르 사이를 지나는 높은 산들과 빙하 구경, 그리고 밤에는 오로라,
은하수, 별이 쏟아진대요.
그리고 산이 얼마나 높은지, 구름이 산 허리에 걸쳐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가 구름을 뚫고 떨어집니다.
저도 못 가 보고, 그림으로만 봤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 소원이 그 크루즈 여행 가 보는 것이에요.
저희가 영국 중부 버밍햄 근처에 살았는데,
그 남편 할아버지는 시장에서 청소나 잔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세요.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서, 노인 부부가 그 여행을 못 가시는 거죠.
근데 할아버지가 밤에 할머니가 잠들면, 몰래 집을 나와서 알바를 또 뛰는 겁니다.
2년 반이나 돈을 모았어요.
그래서 이제 드디어 북유럽 크루즈 여행 티켓을 산 거예요.
교인들도 다같이 너무너무 기뻐해 줬어요.
서로 앞다투어 노인 부부에게 돈을 주면서 '이거 맛있는 거 사드세요. 재밌게 보내세요'
그런데 4주 뒤에, 노인 부부가 돌아와서 교회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 말씀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좋았대요.
막 오로라가 번쩍거리고, 은하수가 쏟아지고, 막 생선이 물 위로 뛰어다니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3등칸이에요.
그래서 바게트 빵을 많이 사갔어요. 영국 사람들 주식이 빵과 버터예요.
그런데 거기 배 안에 뷔페 식당이 있는데,
마치 축구장 만한 굉장히 넓은 그 뷔페 식당이 있었데요.
아침에 가서 보면, 막 갓 잡은 생선으로 온갖 요리를 다 해놨어요.
그리고 스테이크, 그 맛있는 치즈, 그 버터 바른 빵, 신선한 야채가 다 있죠.
근데 얼마나 비싸게 보여요? 그게 부부가 먹을 엄두를 못 내는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실화입니다, 또 배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할머니를 방에 재우고, 또 밤에 몰래 나가서 갑판에서 청소를 했어요.
그래서 돈을 제법 모아서, 그 때가 여행이 끝나기 3, 4일 전이었데요.
그래서 옷을 차려 입고, 이제 당당하게 부부가 아침 부페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래서 카운트에서 '이거 얼마야? 어른들 두 명 얼마야?' 하고 소리 지르니까
영국은요, 예의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노인 부부는 너무 흥분이 되어서, 말투가 톤이 높았던 거죠.
그러자 직원들이 놀라고, 급기야 매니저까지 달려 왔어요.
'신사님,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들이 뭐 실수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어른들 두 명 얼마야?'
그 말을 듣더니 매니저 얼굴 색이 확 변하더래요. 그러면서 딱 한마디 했대요.
'신사님! 조식 부페는 티켓 값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 노부부는, 아침 식사비가 비쌀 것으로 예상하고
크루즈 여행이 거의 다 끝나기까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거죠.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걸 모르면, 우리가 그 크루즈 탄 노부부 꼴 난다는 거죠.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 거예요.
'하나님, 제가 저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하나님, 왜 저를 그렇게 힘들게 하셨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주셨는데,
우리는 눈이 어두워서, 그 복을 전혀 보지도, 만지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엉뚱한 것만 좇아다니다가... 고생만 실컫 하면서, 이 세상을 사시겠습니까?
◑그럼 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과연 뭘까요? 4절에 나옵니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즉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이에요.
두 단어를 기억하세요. *창세 전에, *사랑 안에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은
'내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내가 무엇을 못한다고 버리지 않으신다'고요.
창세 전에 창조하신 거예요.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대요.
어디서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4
왜요?
'..사랑 안에서..' :4
죄송하지만 헬라어 잠시 설명할게요.
'안에서' 헬라어가 '엔 en' 이에요. 영어로 in 이죠.
근데 전치사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헬라어 전치사 '엔 en'이 '~ 때문에' 라는 뜻도 돼요. *because of
그래서 저는 '사랑 안에서'를 '사랑 때문에'라고 번역하는게 더 맞다고 봐요.
그러면 여러분이 한번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셨대요. 왜요?
'사랑 때문에' *개역에 '사랑 안에서'
*GNT, NLV 영어성경이 'Because of his love'로 번역했네요.
그런데 영어 in love 도 '사랑으로, 사랑 때문에' 라고 번역도 가능하겠습니다.
'에이 그래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 것은
내가 뭔가를 그래도 드렸으니까 그런 거지 뭐..
내가 헌신이라도 했기 때문에 그런 거지..'
물론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애당초 내가 뭔가 선행을 하기 전에
'창세 전에'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셔서'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난 지금 이제 늙어서 돈도 없어서 헌금도 못해.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 헌금 잘 하는 저 집사를 좋아하겠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부의 두 렙돈(현 싯가 천원)도 칭찬하셨어요.
우리는 인간적 시각으로, 주님이 유력한 자들을 사랑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의 시각으로는,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한 자를, 당신의 교회의 주축으로,
주된 멤버십으로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물론 우리 모두를 '창세 전에, 사랑으로' 택하셨어요.
그런데 주님의 눈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한 자가' 대체로 더 겸손하므로
그들을 더 눈여겨 보시고 '내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시는 거죠.
여러분, 오늘 한번 기도하시면서 제발 주님께 여쭤보세요.
'하나님, 이게 진짜 맞습니까?
진짜 나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미 주신 게 맞습니까?
그리고 나를 정말 선택하신 게 맞습니까? 창세 전에? 사랑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 내적 음성으로 말씀해 주실거예요.
'그래 맞아, 내가 너 사랑해서 그래!'
▲그런데 우리는, '창세전에 나를 사랑하셔서 택하셨다'는 :4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3
잘 느끼지 못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한테 뭔가 잘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섬김, 봉사, 헌금, 선교도 가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잘 보이고 싶어서요.
그것도 다 필요하죠. 그게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뭘 잘 해서, 내가 예쁜 짓을 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게 아니라,
창세 전에, 내가 예쁜 짓을 하기도 전에, 반대로 뭘 실망시키기도 전에
'사랑해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그걸 모르면, 크루즈 탄 노인 부부처럼,
계속 거기서도 알바해서, 아침 식사 사먹으려는 거예요. 포함된 줄도 모르고...
이런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병들게 하는 것이에요.
'남편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지? 오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해줘야지..'
여러분 그런 관계는 오래 못 갑니다. 기초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거죠.
'그래,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부터, 사랑하셔서 택하셨어!'
이게 굳건한 기초입니다.
(*근데 이게 그저 '지적 동의'로 예수 믿은 사람에게는 확신이 안 옵니다.
진정 회개하고, 회심하고, 변화된 사람에게만 이 확신이 옵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겁니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여기 3가지 '때'가 나옵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내가 잘할 때에, 내가 봉사 열심히 할 때에.. 나를 사랑하신 게 아니라
우리가 연약했을 때, 그 연약함 때문에 늘 죄 짓고 욕을 입에 달고 살 때에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도, 심지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이에요.
(진정 구원 얻은 성도는) 하나님이 진짜 내 존재 자체를 좋아하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내 존재 자체를 기뻐하시는 거예요.
근데 이게 믿기가 그렇게 어려워요.
여러분, 이게 믿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요?
진정 거듭나지 않은 성도는.. 이거 믿기가 어려워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보다 더 좋은, 귀한 복은 없습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오늘 엡1:3~4절 공부했어요.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이 진리를 편지를 써서 가르친 거예요.
그러니 자신의 힘들고 고달픈 삶도.. 전혀 힘들지가 않고,
또한 에베소교인들이,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알게 되기를 원한 거예요.
'와, 나 같은 것 하나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만 사역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지혜와, 모든 능력과, 모든 영광과, 모든 권세를 다 동원해서
창세전부터 나를 선택하셔서,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구나...'
오늘 이 진리를 붙잡으시겠습니까?
에베소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믿어야 되는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 사람인지.. 를 설교합니다.
보면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진리를 믿는게 아니라,
세상의 상식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너무 많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인이라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요?
나는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요?
그게 이 에베소 1장부터 3장까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 1~3장에는 그리스도 인이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그 영광과, 그 아름다움과, 존귀가 무엇인지 언급되어 있죠.
그리고서 4~6장은, 내가 그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이것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한국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많아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윤리, 그리스도 인의 삶을 많이 강조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복음이 강조하는 바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에요.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람이다' 를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강조합니다.
삶을 그 다음에 따라오는 마땅한 결과이고요!
오늘날 우리가 이 '복음의 능력'을 다시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