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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는 신앙생활 딛3:6~8 설교스크랩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딛3:6~8
▲문명 발전은 열심 있는 사람들 덕분
오늘날 우리가 문명을 누리고 혜택을 받으면서 편하게 사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힘써 연구 노력하여 문명, 문화, 과학을 발전 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살았을 때 늘 하던 말은,
‘요새 같이 편하고 살기 좋은 때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옛날은 잿물을 만들어서 빨래를 하고 다다미질을 하고,
밤을 새어서 하얀 옷을 지으면서, 농사짓고 일하고 하던 고생담을 말하면서,
빨래를 개면서, 항상 좋은 세상에 너희는 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사람이 비누를 연구하여 만들고, 세탁기를 발명하고,
전기를 발명하고 하여서 지금 문화생활, 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역시 노력하지 않고 힘쓰지 않고서는
퇴보가 되지, 진보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자기 의지적 요소를 발휘하지 않으면, 잘못된 믿음입니다)
신앙에 힘쓰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구원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도 지금 힘쓰면서 살아가는 힘쓰는 신앙인아 되어야
장차 좋은 일을 누리면서 편히 살수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떤 분야에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까요?
◑1.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일은 성도들이 모이기를 힘쓰지 않을 때
상당히 가슴 아프게 목회자들이 느끼게 됩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사람은 신앙의 우등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등생은 학기 마지막 때에 상을 받는 것과 같이,
신앙의 우등생으로 이 세상을 졸업하면, 마지막 날 천국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교육의 날에 충청북도에 있는 어느 학교 교장 선생님이 상을 받았는데,
그 교장 선생님은 학생이 학교에 빠지면 택시 타고 학생 집에 방문하니
학생들이 불량 학생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학교의 전체 학생들이 모두 좋은 학생들이 되었기에 교육의 날에 상을 받았습니다.
교회 예배 시간에 빠지고, 모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솔직히 말하여 문제가 생긴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4대 부흥 사건도 모두 모이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에벤에셀의 기적의 역사도 모일 때에 이루어 졌습니다. 삼상7:5~12
에벤에셀의 하나님 - 여기까지 도와 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모이는 무리 중에서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성전 재건의 역사도 모일 때에 이루어 졌습니다. 느8:11~
큰 기쁨의 역사는 모여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밝히 깨달을 때에 일어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에 우리에게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됩니다.
갈멜산의 불도 모일 때에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다. 왕상18:30~39
갈멜산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가까이에 모이게 한 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불로 응답하여 보이신 것입니다.
모인 후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순절의 성령도 모여서 기도 할 때에 임하였습니다. 행2:1~
모여서 힘서 기도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여서 기도에 전혀 힘쓸 때에 표적과 기사가 일어납니다.
◑2.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불세례를 받게 됩니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서는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받기 위하여, 성령 충만하기 위하여,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받은 성령은 산신령을 받은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오직 회개하고 기도로 구하는 성도에게 임합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으며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응답을 받고,
신비스러운 세계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는 가장 힘든 기도입니다.
힘써서 기도 한 것만큼 응답의 역사도 큰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나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7
하나님께서는 밤낮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지 않고
쉬이 응답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보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세에는 더욱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3.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불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라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 생활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께 자기를 드린다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에 내가 헌신하거나, 교회 일을 관리하는 일에 헌신하거나,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에 헌신하거나, 아니면 작은 직분이라도,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좁은 문은 힘쓰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들어 갈 수가 없는 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일을 다 하면서는
도무지 들어 갈 수 없는 것이 좁은 문입니다.
이 신앙의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만
천국의 문에 들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자기 의지’적 요소를 누락하거나 간과하면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의지적 결단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자기 의지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또한 화해하기를 힘쓰라 하셨습니다.
눅12: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우리가 육신일 입고 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 화해를 하여야 합니다.
한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화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을 놓치면, 영원히 화해를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때가 가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화해를 하여야 합니다.
나와 원수진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항상 주의 일 하기를 힘쓰라 하셨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가 일의 최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 일을 처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 일이 최우선 순위이고, 하나님의 일을 제일 먼저 하여야 합니다.
가정일, 직장 일등도 바쁘지만 그 보다 더 바쁘게, 정확하게 하여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회에 늦게 오는 사람들은 반성하여야 합니다.
잠자는 일이 더 좋아서, 무슨 다른 일을 더 하다가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에
교회에 늦는다면 이것은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일보다 주님께 예배하는 일이 주의 일을 힘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을 가장 답답하게 하는 일은 성령을 받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이요,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면서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을 받고 예수를 뜨겁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서 예수를 믿고, 힘써서 주의 일을 하고, 힘써서 기도하여,
성령 충만하고 능력 받고, 힘써서 전도를 하여야 합니다.
힘쓰는 우리가 될 때에 그 열매로 장차 좋은 삶을 보장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4.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살전5:16-18 2008.11.16.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우울하고, 부정적이며, 어둡게 삽니다. 습관적입니다.
그래서 웃음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사 훈련이 필요합니다. 칭찬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생 기쁘고 감사해서 웃는데 쓰는 시간은 - 고작 88일
재미있는 통계 하나를 보았습니다. 사람이 평생 70년을 산다고 했을 때
무엇을 하며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는가에 대한 통계였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7년, 잠자는데 23년,
일 하는데 26년, 먹는데 6년,
근심과 걱정을 하는데 7년을 보낸답니다.
그런데 정작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해서 웃는데 쓰는 시간에 대한 숫자도 나왔는데
몇 년이나 될 것 같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몇 년이 아니라, 고작 88일이라고 합니다.
▲기쁘고 감사해서 살지 못하는 것은 - 세상 잘못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살전5:16~17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구원의 의미/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삽니다.
그것을 위하여 살기도하고, 먹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직장에 나가 돈도 법니다.
그리고 예수도 믿습니다.
그런데 고작 우리가 70 평생을 사는 동안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뻐서 웃는 시간이 88일 밖에 되지 않는다니
얼마나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가를
그와 같은 통계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세상이 본래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88일 밖에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일까요?
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행복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럴까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300~500번을 웃는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7~15번 정도 밖에는 웃지 않는답니다.
▲자녀에게 감사를 가르치는 훌륭한 엄마
어느 날 TV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생일 상을 차려 주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아이가 생일 상을 받기 전에 먼저 엄마에게 큰 절을 하였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아이들이 생일이 될 때마다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좀 쑥스러워 보이지만... 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 감사는... 가르쳐야 터득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점점 기쁨을 잃어 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는 까닭은
우리들이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예禮를 가르쳤습니다.
예의 근본은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특히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영어와 수학과 피아노와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에만 올인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예전에 비하여 말도 못하게 똑똑해졌고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더 부요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이유는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세상엔 근심하고 걱정할 일보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은 다 당연한 일로 흘려보내고,
근심하고 걱정할 일은 억지로 만들어서까지 근심하고 걱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부모 효도도... 가르쳐야 합니다.
‘무자식 상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로 지혜로운 말도 옳은 말도 아닙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참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자식이 주는 기쁨이,
자식이 주는 힘듦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도 많은 부모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은 당연한 것으로 다 흘려보내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만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되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허튼 소리를 하며
스스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들도 다 부모가 자신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쓴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것만 가슴 깊이 묻어 둡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부모를 원수처럼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웃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으로 서울여대에서 전교인 수련회를 하였을 때
신학을 전공한 전도사 한 분이 웃음치료사라는 낯선 직함을 가지고
한 시간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복해 진다는 것이고,
놀랍게도 병도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병을 앓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하여
‘웃음 치료법’이 많이 이용되고 응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웃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좀 쑥스럽고 몸에 익숙하지 않지만, 소리 내어 웃는 일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에도, 당연한 일 같아 보이는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칭찬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참 좋아질 겁니다.
삶이 훨씬 더 밝아지고 아름다워 질 겁니다.
▲은혜가 고통보다 훨씬 큽니다.
머리가 아플 만큼, 터질 듯이 아플 만큼 삶이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제 머리의 피부 근육은 오른쪽과 왼쪽이 다릅니다.
오른쪽이 아주 조금이지만 마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저도 제법 나름대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훈장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보다 더 힘든 일을 당하면 머리가 터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조금 견딜 만 한 일을 당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을 당하면.. 마음이 허해지고
온 몸에서 힘이란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무기력감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맥이 빠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말 온 몸과 삶으로 경험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일들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제가 되지 않는 억울함이 분통함은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보다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받은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는 훈련을 합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저는 일부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을 기억합니다.
억지로라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고난보다, 어려움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저는 경험적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알겠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죽어도 백번은 더 죽었을 것입니다.
천 번은 더 죽었을 겁니다.
백번과 천 번의 죽을 자리에서 죽지 않았다면
앞으로 몇 번 더 당할 그 같은 자리에서도 우리는 죽지 않을 겁니다.
망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전과 같이 다시 일어설 것이고 결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은혜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양해야만 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시42:6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11
낙심이 될 때에는 하나님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낙심이 될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삽니다.
감사하면 삽니다. 감사를 훈련하고 연습하십시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지금부터 시작하십시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다. 늘 기도하며 사십시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며 사십시다. 그게 믿음입니다.
▲제가 하는 말을 한번 따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이 지금 당하는 어려움보다 큽니다.
백번 천 번 죽었어야 할 모든 자리에서 저를 건져 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백번 천 번 죽을 자리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건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앞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것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은혜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