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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

LNCK 2023. 8. 5. 14:05

 

지극히 작은 자 - 홍정길 목사 2011.11.07 - YouTube

*3:30초경부터 녹취

 

◈지극히 작은 자           마25:45

주님께서 이 세상에 사실 적에, 부자들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 주님은 별 시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 장애인들이 도와달라고 말씀하실 때는
한 번도 주께서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주께서 '민망히 여기사' 그렇게 말했는데
이 말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께서 여리고에서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그 동구 밖에 소경 바디메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시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에
걸음을 멈추시고, 그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장애우들에게) 그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 홍정길 목사는 이 (장애우)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가정이 9남매 입니다.

그래서 제가 맞이고, 막내가 저하고 20 살 정도 차이가 나니까 딸 같아요.
그런데 그 막내가 소아마비로 지체부자유자 입니다.

그 아이가 장애자로서 이 땅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제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습니다.

막내동생이 대학에 들어갈 적에도
'장애를 가진 네가 직업을 가지려면
아마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것은,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니까 될 수 있지 않겠냐?'
그래서 내 누이가 도서관 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졸업했습니다.
도서관학과가 대한민국에 몇 개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번 면접한 다음에는, '오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아버지에게 강청했습니다.

'아버지 미국 이민 가십시오!'
'웬 소리냐, 이 나이에!'

제 바로 아래 동생이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그 부모는 초청이 됩니다.
그러면 미혼인 막내 동생은 얼마 있으면 초청이 됩니다.

우리 막내 은선이가 평생 사는 거, 한국에서 제가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동생이 나를 의지해서 살다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채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다가...

제가 미국의 이곳 저곳을 다녀보면서 보니까,
미국은 장애인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몸이 불편한 사람은, 편리한 세상(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늘 막내딸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가 있던 저희 아버지가
나의 65세에 모든 것을 다 털고, 영어 한 마디 못하시는 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제 막내 은선이가 미국에 가서, 존스 홉킨스 라는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는데 (한국엔 도서관학과 였지만, 전공 바꿈)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미국의 전기통신회사인 AT&T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이 됐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할 것 없이
미국에 제일 월급 많고 그리고 가장 혜택이 많은 직장이 AT&T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야 은선아, 네가 좋은 회사에 단번에 취직한 것을 보니,
네가 대학에서 참 공부 잘했던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오빠, 내가 공부를 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제도 때문에 내가 취직이 된 거야'

무슨 제도냐고 물어보니까,
미국은 취직을 시킬 때, 백인보다 유색인종에게 우선권을 줘요.
조건이 똑같으면 우선권이 유색인종 입니다.
그것도 유색인종 가운데도 장애가 있는 사람은 또 더 우선권을 줘요.

또 미국에 10년 있은 사람보다, 1년 있은 사람, 짧게 있은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 케이스로 취직 됐다는 거에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그거 정말 공평한 제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하고 대학생을 복싱 시켜놓고, 그것을 공평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연약한 사람을 우선 배려해서 경쟁시키는
미국 사회를 보면서 '야,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내가 해야 될 오빠로서의 책무를 훌륭하게 감당한
현명한 오빠라고 혼자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저로 하여금 장애인들 문제에
눈을 번쩍 뜨게 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과거에 구반포의 남서울교회 목사였습니다.
거기에 어느 날 외국인 노부인이 오셨습니다.

한참 얘기하다 보니까, 미국의 법무장관인 손버그의 부인 미세스 손버그 박사에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는 <장애인과 함께 예배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캠페인을 하는 사람이래요.

그러다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미국에서 강영우 박사에게 물어서,
남서울교회를 소개 받아서, 여기로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제 교회 사무실에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같이 담소를 하면서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냐고?' 묻기에,

우리는 장애인들끼리 따로 예배 잘 드리도록, 예산도 지원해 드리고
그리고 장애우 담당 목회자 사례비도 도와드리고,
또 모든 설비를 그쪽으로 해준다고...
지금 휠체어 보내는 일도 열심히 해서, 한 동네 장애인들에게 우리가 다 해줬다고...'
(이렇게 나름 우리가 장애우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을 했죠)

그랬더니 손버그 부인은 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이
'목사님, 장애우도 하나님 앞에 똑같은 영혼인데
장애를 가졌다는 그 이유 때문에, 따로 예배드리는 것은 또 하나의 소외입니다'
*요즘에는 '차별'이란 말을 쓰죠.

그 말을 듣고서, 생각해보니까 그게 맞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야, 참 신선한 얘기구나'

그런데 그분의 행동은 저로 하여금 충격으로 계속 몰아갔습니다.
제게 영어로 얘기하는데 말을, 그냥 또박또박 합니다.
미국 사람이 그렇게 영어를 상대편을 위해서 배려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을, 이전에 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강영우 박사가(2012년 소천),
홍정길 목사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까봐, 말을 또박또박 하라고 부탁했나보다..'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때 이런 분이 찾아왔기 때문에
제가 비서에게 '손봉호 박사님을 오시라'고 했어요.

왜냐면 그분이 그때, 장애인에 대해서 가장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손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손박사님은, 서울대학교 영문과 졸업 했고
미국의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화란어, 독일어를 다 공부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라고 내가 소개했는데도, 그냥 또박또박 영어로 얘기를 하세요.
정말 우리들을 배려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정확하게 영어 발음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당시 법무장관인 손버그 박사는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돌아와서 '우리하고 같이 그러면 식사하자'
그래서 식사를 대접하는데, 자기 남편에게도 영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내 평생의 미국사람 만나는 중에,
당신처럼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 처음 봤습니다' 그렇게 말했더니

자기도 원래 남부 사람이어서, 미국은 남부 액센트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서던 액센트' 영어는 알아듣기가 더 힘듭니다.

그런데 자기가 손버그 박사와 결혼을 할 때, 그 집에 아이가 하나가 있었대요.
손버그 박사 전 부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부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뇌손상을 크게 입은 매튜 라는 아들 하나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병원에서 치료하는데, 4~5년 계속 그 병원에서 치료했대요.
그 집에 자기가 결혼해서 들어갔습니다. 아이를 낳았습니다.

바로 그 병원에 입원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모든 교회 사람들이 몰려와가지고는
'이 신생아가 언제 교회에 처음 나올 것인가?'
그러면서 그렇게 축복하더래요.

그런데 같은 병원에 있는 또 다른 자기 아들 매튜에 대해서는 *남편 전처의 아들
교회사람들이 '매튜는 교회 언제 나오느냐'고 전혀 관심이 없었대요.
그때 부인은, 속에서 분이 끌어오르더랍니다.

'하나님 앞에 이 어린 신생아 내 딸이나
그리고 옆 병동에 있는 또 다른 장애우 아들이나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영혼인데
어떻게 교인들 마저 영혼을 차별하는가?'

그래서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하는 교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가 반을 맡은 것이 청각장애자입니다.

우리 한국은 이렇게 수화를 하지요. 미국은 구화를 합니다.
입 모양을 가지고, 그 입 모양을 보면서, 그 말을 알아듣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러니까 입 모양을 바르게 해야 돼요.
그런데 일주일 내내 마음대로 말하다가, 주일날 한번 와가지고
입모양을 바르게 하려니까 잘 안 되더래요.

그래서 이 분이 '주님, 제 입술을 주님께 드립니다.
제 입술이 가장 온전한 영어,
입 모양을 보고 청각장애자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는 말 흘리는 것을 끊어버리고 새롭게 또박또박 말하는 법을 배웠대요.

그랬더니 이런 효과가 있더라는 겁니다.
피츠버그 공항에서 (손버그가 피츠버그주지사있거든요)
워싱턴DC로 가는 비행장에 갈 적에

자기가 자기 남편하고 얘기하고 있으면서
'지금 워싱턴 날씨가 어떨까?
상원의원 핸드릭슨은 어떤 사람일까?' 그런 얘기를 하면

청각장애자가 거기에 오면, 온 세상이 침묵아닙니까.
'그런데 한 사람 입을 보고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갑겠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나는 내 입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전되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다!'
'말이 사랑이 아니라, 떠드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

그러면서 저희 교회에서 장애인들 모임을 시작했고
장애인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때문에 마음의 장애가 있고, 상처가 큰 걸 알고
같이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발달장애아가 있습니다. 자폐아 라고도 합니다.
교회에 그 발달장애아가 다섯 명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그 동네에 장애아 숫자가 더 많았는데
그때 당시에 자폐아들은 집에다 가둬서 키우던지
아니면 다 요양소로 보내서, 반포의 돈 많은 부자들이
그런 자식이 있는 것을 숨겨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분들은, 장애인들을 섬기고 교회가 함께 예배하려고 하니까
(가둬놓지 않고) 내놓기 시작해서, 다섯 명이 나왔는데
같이 기도하는데 어느날 이런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 내 생명 끝나기 1년 전에 내 아들 먼저 데려가주소서!'
(자기가 먼저 죽으면,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 내가 마지막 기도하면서 '주님, 어떻게 부모가
자식이 내 앞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주님!
이런 슬픈 기도를, 우리 교회에서 끝나게 해달라고...
그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뭡니까?' 제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과정을 통해서, 삼성의료원 맞은편에 있는
발달장애아 전문학교인 밀알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때도 얼마나 주변의 반대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매일 텔레비전에, 데모대와 부딪혀서 싸우는 거 나오지요.

주민들이 우리 집에 몰려와서 '당신 끝까지 괴롭힌다'고 계속 어렵게 하지요. (주거지에 밀알학교 세운다고)

오전 수요기도회 끝나고 나면, 동네 주민들이 특별히 여자분들이 모여 가지고
한쪽에선 저를 발로 차고, 한쪽에서는 밀고, 어떤 사람들은 꼬집고...
저는 한국 여자가 그렇게 사나운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제가 남서울교회를 떠나라고 명령하시고
그다음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 그 학교 짓는 것을 순적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걸 내가 떠날 생각을 않고 지어서
밀알복지재단에 기증을 해서
밀알복지재단 당시에 이사장인 손봉호 박사가 (운영)하도록 그렇게 했지
내가 여기로 옮길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도 어려워서.. 기도 하는데 주께서 '네가 필요하다' 그래서
금요일 날 그 음성듣고, 주일 예배 끝나고, 임시 당회 소집해 가지고
'나는 떠납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기도 하시고 정했으니까 우리도 기도할 시간 주세요' 그래서
'기도하시라고.. 기도하되, 내가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까
후임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그리고 다음 주일 이임설교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왜냐면 남서울교회는 교인 6명 부터 시작해서 자란 교회인데
한 사람 한 사람 교인의 70%가 저희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교회였기 때문에, 제가 쉽게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개척한 교회라서, 교인들이 제 말을 잘 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한 가지 잘한 것은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고, 하나님 말씀이면 뭐든지 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영문도 모르고 그런가 보다 하고
저를 내보내주셔서, 그 일을 모두 잘 마쳤습니다.

▲문제는 (발달장애아가) 유치부부터 시작해가지고 13년 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2년 동안 전공과목으로 공부 가르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마치고 집으로 보내니까, 이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어릴 때는 이 자폐아 들을 엄마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5세 이상 다 크고 나면 몸이 장정이 됩니다.
어떤 아이들 경우에는 힘이 장사입니다.

얘네들은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속에 갇혀 있습니다.
화가 나면 엄마 머리채 잡고 땅에다 내칩니다.

우리 밀알학교에도 '기동타격대'가 있는데, 여선생들 머리 잡는 애들에게
얼른 달려가서 손 떼어주는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요.

근데 걔네들은 엄마인지 선생인지 구분없습니다. 화나면 그렇게 해버립니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냈더니, 그 집이 지옥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빠도 직장을 못 가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조그만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처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예배당 5층 꼭대기를 공장으로 만들어서
삼화전기 라는 그 전기회사에서 단순작업을 받아와 가지고
아이들을 직업훈련을 시켜가지고
걔네들은 일감 10 개 가져오면 처음에는 6~7개를 다 고장내더라고요.
코일 감는 건데, 한번 잘못 감으면 다시 못 감습니다.

그래가지고서라도 교회에서 돈을 줘서, 아이들에게
자기가 노력하면 대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알면서부터
욕심이 있으니까, 그 욕심때문에 아이들이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직업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야, 직업을 주는 것은 참 귀한 거구나' 그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남구청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직업 재활센터를 280억 들여서 만들었는데
그때 만들 적에 천주교, 또 조계종, 원불교, 또 월드비전 인가?
또 우리 밀알복지재단 등 다섯 단체가 그걸 서로 맡겠다고 경합을 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이것을 해야 되는가? 그것을 맡을 단체장의 각오를 한번 들어보자..'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봉호 박사가 갑자기 동덕여대 총장으로 가니까
총장이 학교를 가지고 있는 그 재단에, 재단법인장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내가 갑자기 재단 이사장이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아직 바꾸지도 못한 채 임기가 있어가지고
제가 아직 재단 이사장입니다.

그래서 소견을 얘기하라고 해서, 제가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장애인 학교를 운영하는 자로서, 장애인들을 위해서
이처럼 직업 재활을 하려고 하는, 앞선 4기관에 눈물나도록 감사하다고..
참 이거 귀한 일이라고, 좋은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좋고 착하고 뜻이 있어서 여러분이 할지 모르지만
나는 사정이 다릅니다.

내 가족 같은 교회를 떠나서, 460억 들여 건물짓고
300억 들여 15년 동안 아이들 교육시켰다고...

그런데 졸업해서 집으로 내보내니까
발달장애아들이 직업이 없으니까
내가 쏟았던.. 또 우리 교회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했던 15년의 세월이
다 무너지게 되었다고... 나 이거 맡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를 유치원까지 13년 시켰는데, "졸업 후 직업학교" 운영권을 놓고 경합.
이 건물은 강남구청에서 지었으니까)

그랬더니 이 전 정진석 주교가 *2021년 소천
'이것은 남서울은혜교회가 맡는 것이 옳다'
그렇게 판정을 내려줘 가지고, 저희가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재활학교를 지금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훈련만 시켜서 뭐하냐 말이에요. 직업이 있어야 되죠.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서, 이제 내 관심이 그거(장애우 취업)니까

'어떻게 장애인들이 이 땅에 살 수 있는..
자기 스스로 생명을 살 수 있도록.. 자활해서 살 수 있게 할까?'
이것을 관심 갖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에 가보니까, 유럽은 국가가 사회주의 체제가 되니까
노력하거나 수고할 필요 없이, 국가가 모든 걸 다 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미국의 모델 중에 '굿윗 스토어'를 저희가 하게 됐습니다. *중고의류등 판매

마천동에 있습니다. (그 외 분당굿윌, 밀알굿윌이 있다고 합니다)
한 가정이 일 년을 살면, 적은 사람은 20개,
많은 사람은 30~40개 정도,
쓸 만한 물건인데, 자기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 생긴 데요.

그러면 그것을 '굿윌'에 기증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수거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한 과정을 통해서 소비자한테 까지 안겨주는 과정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게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직업이 됩니다.

지금 마천동에, 거기 와서 수고하시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40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아니면 60명 정도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직업)를 줍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선이 아니고 삶의 기회를 주는 거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 삽니다.

그러면 정말 그 물건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사람이
물건값 1/10 정도의 돈으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삽니다.

그러니까 내게는 필요 없는 것이,
굿윌스토어에서, 그거 없으면 참 아쉬운 사람에게, 정말 쓸 만한 사람에게 전달되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할 때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할 수 없어'
이렇게 평생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기 계산대에 이런 말이 씌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지불한 이 현찰은, 이 달 장애인의 월급입니다'

사실 가장 적은 돈을 가지고 거기 와서 사주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월급주는 행위에요. 그거 보고 다들 웃고 나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천동에 가보시면요.
사람들이 그냥 때만 되면 와서 거기 커피점도 있으니까 커피 한잔 먹고 가든지
천 원짜리 숍이 있으니까 천 원짜리 물건 하나 사가든지 그럽니다.
얼마나 잘 되는지 모릅니다.

참 우리는 물건이 남아서, 그것을 처리하기도 곤란한데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참 소중하게 그것이 사용될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삶(직업)을 얻는단 말이에요.

이렇게 장애우를 돕는 일에, 여러 성도님들이
또한 자원봉사자로 나서 주셔서,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다음 문제는.. 장애인들을 학교교육시켰습니다. 직업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직업도 만들어 줬습니다.
그래도 그 피눈물 나는 '우리 아들, 내 앞에 먼저 데려가주소서' 하는 기도를
부모들은 그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애인 부모들은, '내가 세상을 떠나면 이 아이들을 누가 봐줄까?'
자기 외에 누가 봐줄까?
그리고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자기가 고통당했던 그 모든 고통을
자기 자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 때문에
자기 자식을 먼저 데려가 달라고.. 그렇게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그룹 홈"을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한 가정에게, 우리 교회에서 아파트를 사서 주면

네 개짜리 방 한 방은, 자기 부부가 쓰고
세 방에는 장애인들이 한 방에서 두 명이 같이 살게 됩니다.

월요일날 와가지고, 그룹 홈에서 지내다가 토요일날 자기 집에 가거든요.
근데 장애인 부모와 가족들과 주말 마저 떨어져 지내면,
가족애, 가족 사랑이 식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토요일날, 주일날은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월요일에 또 일터로 나갑니다.
월요일 저녁부터 "그룹 홈"에서 같이 삽니다.

그 다음입니다. 만약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이 그룹홈에 이 그룹이, 그대로 가정이 되어줍니다.
이거 두 개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집값이 비싸가지고 힘들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주님이 너무 기뻐하신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 계속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이 일이 너무 잘된 것이 소문나가지고
노동부에서도 굿윌 스토어 만들어 달라,
또 보사부 에서도 만들어 달라
서울시에서는 사대문에 각각 한 개씩 만들어 달라...
얼마나 참 재미있게 일이 진행되는지요...

하나님께서 계속 여러분들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시는 그 귀한 자원봉사 일들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 줄 압니까?
이태리 아시시에 불량배 청년 프랜시스 가 있었습니다.
사람 같지 않던 그 아들이, 어느 날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더니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 아버지가 감격했습니다. 기뻐했습니다.
자식이 돌아오니까 말할 수 없는 기쁨에 그 아버지가
자기 집의 가보처럼 여기는 털옷 외투 한 벌이 있었는데

그날 날씨가 추우니까 '야 이거는 할아버지가 있던 우리 집에 보배 옷이다.
이 털옷을 오늘 입고 나가라. 날씨가 싸늘하다' 하고 입혀 보냈습니다.

프랜시스가 그 옷을 입고 길가를 걸어가는데
피묻은 말 한 필 끌고서, 십자군 전쟁으로 중동 지방까지 갔다가
패잔병으로 돌아오는 늙은 노병사가, 옷은 다 해져서
군복사이로 바람이 들어갈 적마다 몸을 떨었습니다.

그 모습을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그 삶 속에 누리고 있던
프란시스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가정의 보배인 그 털옷을 입혀줬습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 고맙다' 하며, 그 노 병사는 떠나갔습니다.
그 밤에 예수님이 프란시스를 찾아오셨더랍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냥 오시지 않고, 그 털옷을 입고 오셨더래요.
(그 노병사가 주님이었다는 뜻)

'지극히 작은 자 중에, 내 이름으로 행한 그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자원봉사의 일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귀한 축복을 놓치면, 하나님의 축복은 중단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이 귀한 일을 계속하면
우리 주님은, 쌓을 곳 없는 축복을, 이 교회에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가정 가정을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계속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축복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할지라'

여러분 진정한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받는가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어떻게 쓰는가? 까지가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은
내게 주신 그 축복때문에, 주변이 축복을 받을 때까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내게 쌓여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다 같이 잘 돼야 됩니다.

자동차 운전하고 갑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이 정속 주행하고 있고
나는 아무런 잘못 없이 신호를 다 지키고 있고
나는 아무런 잘못 없이 내 차선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 취한 차가 반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면
내가 바로 운전 잘 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다 같이 같이 잘해야 합니다. 우리 집만 불 안난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한 아파트에 불이 나면, 아래 윗집도 다 함께 물벼락 맞더라고요. *스프링쿨러

여러분, 주께서 교회를 축복해 주심은
여러분을 그냥 축복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축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여러분께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 축복하기 위해서
애굽을 7 년이나 축복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한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
전 이스라엘에 태평성세를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잘 맡기는 법이잖아요.
돈 잘 쓰는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은 더 돈을 주실 것입니다.
능력을 바로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전능의 팔을 빌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통로로 우리가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