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신비입니다 엡4:1~3 2006년, 설교 두 편 정리
◑1. 다투는 교회에서도 은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신비입니다.
나(오성춘 목사)는 초등학교 시절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그만 두었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에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간 교회는 조신파(기독교 장로회)와 장신파 (예수교 장로회)가
갈라져서 한참 싸우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조신 : 조선신학교
처음에는 60평 예배당 건물에서 주일 11시에
조신파와 장신파가 따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약간 타협이 되어서, 한 달은 조신파가 11시에 예배를 드리면
장신파는 오후 2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회는 누가 인도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싸움이 생겼습니다.
한 번은 장신파 장로가 새벽기도회에 갔는데
그날은 조신파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조신파 청년이 장로님을 가로막고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장로님은 기도하러 왔으니 기도하고 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조신파에서는 억지로 새벽기도 하러 들어온 장로님을 고소를 하여
그 장로님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에 처음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런 교회에서 저는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고 목사의 소명까지 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렇게 싸우고 문제가 많은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찌그러진 쪽박 같은 교회를 통해서도
그 속에서 은혜의 생수를 흐르게 하셨습니다.
다툼과 분쟁이 있었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혜의 생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이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2~30명 정도가 모이는 조그만 시골교회였습니다.
기도시간이 되었는데 나이 드신 장로님이 기도 인도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나이도 많을 뿐 아니라 말도 아주 천천히 하여
기도시간이 한 없이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장로님이 기도하러 올라가니
성도들은 기도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잘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장로님의 기도가 끝나자 담임 전도사님이 나왔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성경책을 뒤적이면서 나왔습니다.
한참 혼자서 성경을 뒤적이더니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고자 하는데
그 말씀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지금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봅시다.”
저도 성도들과 함께 열심히 성경을 뒤적였지만 결국 그 말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그러면 이번 주간 동안에 그 말씀을 찾아서
다음 주일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겠습니다.
오늘은 다른 말씀으로 설교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 다른 본문을 읽고 설교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까요? 걱정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교회에도 하나님은 임재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 교회는 지금 아주 튼튼한 은혜의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열면 우리들 가운데 임재하여
하늘의 은혜와 구원의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서도 그 시골교회와 같이 시원치 않은 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받은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2. 엉터리 같은 실로의 성소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배출되었습니다
교회는 신비입니다.
실로의 하나님의 성소는 신비 가운데 신비입니다.
실로에 하나님의 성소가 있을 때에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실로의 성소에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무능하고 엘리의 아들들은 부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의 가족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주받은 제사장 엘리를 통하여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가 아들을 낳기 위하여 성소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 제사장이 한나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축복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나서 한나는 잉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에게 데리고 가서 맡겼습니다.
사무엘은 무능한 제사장 엘리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제사장, 선지자, 사사의 삼직을 모두 소유한
대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무능하고 저주받은 제사장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위대한 하나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 성소에 제사장 엘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임재 하여 계십니다.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성소에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 엘리의 지도와 교육을 받았지만
동시에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영의 눈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광장교회는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광장교회에는 오성춘 목사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집사님들과 성가대와
교회학교 등등의 외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역사하십니다.
오늘 이곳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하늘의 은혜와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면 이곳에서 신비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신비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조직이나 보이는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무리요,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신비한 역사를 행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가끔 찌그러진 쪽박같이 보입니다.
목사님과 지도자들과 모든 조직들이 찌그러진 쪽박같이 별 볼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교회에도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에도 생수를 공급하여 구원과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오늘 우리 광장교회 성도들은 모두 영의 눈이 열려서
이곳에 임재 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은혜와 생명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 라합 여인이 쓰임 받은 것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교회는 신비입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은 나 자신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삶 이후에 나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나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만 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나를 괴롭게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깊은 회의에 잠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의 나라 밖’에 아직도 살고 있는 것 같은 나...
때로 이러한 삶의 정황들이 가져다주는 절망감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라합’이라는 인물이, 참 제게 힘이 되어 줍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 극적으로 구원받은 한 여인입니다.
성경은 그녀를 ‘기생 harlot or prostitute’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대 장정에는, 좀 뒤로 빠져주고,
스스로 물어나주어야... 도움 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포함되는, 놀라운 영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다음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2:9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여리고 성의 이방인이었던 라합이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정말 구원은 하나님의 택함으로, 은혜로 받는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팔고 술을 팔던 라합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놀라운 시대를 읽는 통찰력이 있었는데,
광야를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될 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활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극적으로 탈바꿈 된 것은 아니었겠지만요...
그런 생활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게 되는 법이지요!
◑4. 하나님은 ‘C급’ 사람도 쓰십니다.
교회는 신비입니다.
땅의 판단과 하늘의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항상 무익하고 부족한 종(C급)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지도자 뿐 아니라 일반 사람이나 이 세상 물건도 평가 받고 또 구별됩니다.
대개는 상중하, 일류 이류 삼류, ABC 3등급으로 구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행기도 ABC급으로 구별됩니다.
일등석(first class), 이등석(business class), 삼등석(economy class).
세상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항상 A급만 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선교사를 지원할 때, 가장 연약하고 힘들어하는 선교사 위주로 지원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제한하지 않았던 에훗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압제를 당할 때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 가운데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바로 베냐민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 입니다.
'왼손잡이'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게 왼손이 익숙해서 왼손잡이가 된 게 아니라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오른손을 못 쓰니까, 당연히 왼손을 써야겠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어처구니없는 게 뭔지 압니까?
'베냐민'이라는 지파의 이름은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큼
베냐민 지파는 오른손을 쓰는데 탁월한 족속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오른손을 탁월하게 쓰는, '오른손의 아들들'가운데 누구를 택합니까?
왼손잡이를 택하신 거예요.
만약에 이게 (왼손잡이) 선천적이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거예요.
그게 보편적인 당시 사람들에 이해입니다.
'저주를 받아서 오른손이 불구가 된 자'
이게 만약 후천적이면, 하나님이 지지하지 않는 인생,
그러니까 왼손잡이로 살아야 했던 거죠.
그러니까 에홋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되는 인생'처럼 에훗이 보였다 라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이 '안 되는 인생 에훗'이
오늘 본문을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장수가 되어 쓰임 받습니다.
그럼 ‘왼손잡이’면 다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까? 아니죠.
그럼 장애우이면, 무조건 다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럼 에훗이 쓰임받은 이유가 뭡니까?
‘자신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왼손잡이라서 안 될 거야
-나는 장애인이라서 안 될 거야
-나는 베냐민 지파라서 안 될 거야 .. 이런 변명거리(제한하는 이유)가 없었다는 거죠.
대신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나는 오른손을 못 쓰면, 왼손으로 하면 돼!
-나는 장애인이지만, 정상인보다 약간 서투르지만 길고 오래하면 돼!
-나는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이 가지지 못한 정신력으로 버틸거야!
▲저는 이러한 대목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신, 우리의 배경, 우리의 신체적인 조건, 외적인 연약함...
뭐 어떠함에 의해서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어떤 연약함이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통로가 될 것이고,
'약할 때 강함이라'고 했죠.
우리의 미련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통로가 된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역설이라 그래요. 다른 말로 하면 반전의 은혜!
약할 때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련한 듯 하나 지혜로운 자가 되고요.
약한 듯하나 강력한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땅의 판단과 하늘의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항상 무익하고 부족한 종(C급)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길선주의 헌신
그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그 날 손을 들고 난 다음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이 웨일즈 부흥의 소문을 들은 미국의 하워드 존스톤 박사는
웨일즈로 배타고 가서, 그 부흥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 때가 1904년이 끝나갈 무렵부터~1905년초 즈음입니다.
존스톤 박사는, 1906년 9월 한국에 찾아와서,
먼저는 주한 선교사 집회에서 웨일즈 부흥 소식을 전하게 됩니다.
이어서 그는 10월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가 영국 웨일즈 지방의 부흥을 목격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그러면서 설교로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이 웨일즈의 부흥은, 에반 로버츠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온전한 굴복을 결단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한국 땅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원하십니까?
여러분 중에, 에반 로버츠처럼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조선사람 중에서 에반 로버츠처럼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 때 손을 든 사람이, 길선주 장로(다음해 목사가 됨)였습니다.
이 때가 1906년 10월이었습니다.
이날 밤, 길선주 장로는, 주님 앞에 진정한 헌신을 결단합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1907년 1월초,
드디어 그는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