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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의 기쁨

LNCK 2023. 9. 16. 19:59

◈영적 성장의 기쁨            벧전2:1~3         2018.01.07.스크랩    ☞▣ 영적성장

 

벧전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성장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이들이 자라가는 것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거듭난 신자들은 복음으로 거듭납니다. 그렇게 거듭나고 나면

그 안에 생명이 들어가고 생명은 자라게 합니다. 생명의 신비는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예쁘다고 해서

계속 아기로 있기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엡4:14절을 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장하지 않으면 사람의 속임수나 간사한 유혹에 빠집니다.

그리고 온갖 세상의 잘못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삶을 삽니다.

 

오늘 시대는 세상의 거짓된 메시지들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합니다.

그런데 어리면 그런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게 됩니다.

 

▲성장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2b절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서를 보면 베드로는 “자라감”에 관심이 있습니다.

베드로서 곳곳에서 “굳게 서라” “자라가라”는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베드로 사도의 과거의 삶에서 나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니면서도 영적으로 자라감이 따라주지 않아

제자로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많은 실수, 많은 넘어짐, 무너짐이 있었습니다.

 

약하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라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출발지에서만 계속 서 있다면 신앙의 세계가 험난합니다.

 

자라야 합니다. 자라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또 우리의 삶도 구원의 부요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영적 성장을 위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사모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버려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올해도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를 자라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많은 내 삶의 구습들, 옛 사람의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1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모든 기만외식시기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지만 남아있는 옛 생활의 방식들, 삶의 잘못된 태도들,

몸에 익은 옛 습관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반드시 버려야 할 태도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악독 all malice’ 입니다.

악독이란 의도성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발적으로 일으킨 행동이 아닌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모사를 꾸미고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질이 나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성적으로 악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실수로 나도 모르게 남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연약함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악의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죄는 나쁜 것입니다.

 

괜히 이웃을 괴롭히는 행위, 은근히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기쁨으로 맛보는 사람들.

이것이 구습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모든 기만 all deceit’ 입니다. 기만은 악독과 비슷합니다.

낚시 바늘과 같이 고기가 걸려들도록 유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게 하거나 연약함이 드러나도록 덫을 놓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의도적인 악함입니다. 의도성을 가진 죄는 피해야 합니다.

이런 고의적인 죄는 드러난 결과나 현상 자체보다, 그 일을 하는 내면적 동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 중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근히 피해를 주고

은근히 힘들게 하며, 사람을 괴롭히는 의도성이 가지고 있는 죄를 버리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외식 hypocrisy’ 입니다.

외식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마스크, 가면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정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가면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고 자신의 것들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마스크로 자기를 철저히 위장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부류가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을 포장했습니다. 겉치레 경건이었습니다.

말씀 앞에 정직히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떤 외적인 행위나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를 포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기는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스며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려면 정직해져야 합니다. 가면을 벗고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임하면 우리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결국 한 해 동안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내가 얼마나 정직하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그 봉사를 통하여 자신을 치장하는 쪽으로 간다면 위험합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러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헌신은

굉장히 멋있었지만 그것은 자기를 속이고 공동체를 속이고 성령을 속였기 때문에

그 결국은 즉사였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속은 그대로 둔 채 겉만 그럴 듯하게 꾸미는 행위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수록 정직해 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정직해지고 있다면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적인 행위나 열심히

계속 포장하고 마스크를 만든다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네 번째는 ‘시기 envy’입니다.

미성숙한 특징 중의 하나가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은 내가 안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이 잘 되는 게 문제입니다.

상대의 성공을 보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슬퍼하는 것이 시기심입니다.

 

왜 우울할까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능 안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죄의 속성입니다.

시기의 다른 얼굴이 결국은 교만입니다.

남이 나보다 잘 될 때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줄 수 있습니까?

그게 성숙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대 왕이었던 사울의 비극은 시기심이었습니다.

그 시기심이 그의 영혼을 죽이고 비참하게 끝나게 합니다. 이 시기심은 독과 같습니다.

남을 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죽이는 독이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은 인생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잠언 14:30절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시기심이 찾아올 때 극복하는 비결은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좋은 것을 누리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고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고 있으면 그를 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분깃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배 아파해서는 안 됩니다. 시기심만 극복해도 삶이 부요해 집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복만 해 주기만 해도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모든 비방 all slander’입니다.

시기와 비방은 친구입니다.

시기심이 깊어지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험담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가장 빠르게 해체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버리면 관계는 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뒤끝이 없다”고 합니다.

상처 줄 것 다 주고 난 다음에 “나는 뒤끝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는 뒤끝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 뒤끝에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후련할지 모르지만, 상대가 받는 상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의 반 이상도 말과 연관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목 안으로 삼켜야 합니다.

한 해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많이 삼켜 본다면 우리의 관계는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불행해집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있습니다.

이 나토(NATO)는 “No Action Talking Only”로 “행동은 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토(NATO)군이 가장 무섭습니다. 비방은 공동체를 깹니다.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우리 자신은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히 서다 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고

오늘도 나는 여전히 주님의 은혜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정죄하거나 비방할 자신이 없습니다.

 

성숙이 뭘까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무엇일까요? 덮어줌입니다. 우리의 약점과 허물과 실수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복음으로 덮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해 동안 비방하기보다 덮어줌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관계 안에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는 악독과 기만, 위선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라고 합니다.

미성숙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특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속성이기 때문에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관계를 깨뜨리는 주범들입니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면 자신의 삶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한 해 동안 우리의 모든 관계 안에서

이 연약함들이 벗겨져 모든 관계 안에서 풍성함이 넘치기 바랍니다.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만 부족합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나쁜 질환에 걸리지 않아야 하지만 좋은 영양소를 먹어야 합니다.

 

본문 2절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성장은 먹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갓난아이에게 모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 성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먹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을 자라가게 합니다. 오늘 본문 앞 부분인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영혼이 거듭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생명력 있는 그 씨로 된 것이다”에서 “씨”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씨가 영혼에 심겨지면 생명이 태어납니다.

 

거듭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일에는 이 말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힘을 냅니다. 사람에게 밥의 힘은 큽니다.

아무리 장사라도 먹지 않으면 힘을 못 씁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은 엄마의 젖을 사모합니다. 아이들은 엄마 젖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배가 고플 때는 다른 게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장난감을 흔들어도 소용없고,

다른 데 관심을 돌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의 젖을 먹기만 원합니다.

 

온갖 세상의 시험과 유혹과 환란이 있어도 그 젖을 먹어야 합니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젖을 먹습니다.

 

사모하는 아이는 먹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떼를 써서라도 배를 채우고야 맙니다.

이게 바로 성장의 욕구입니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 이처럼 사모하는 욕구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모함이 아이를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픈 아이들은 사모함이 없어집니다.

먹지 않으려 하고 그러면 성장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영적 성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신앙 성장의 뚜렷한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자라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모함이 있습니다.

 

시119: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말씀에 대한 헐떡임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간혹 하나님의 말씀을 약으로만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만 말씀을 찾고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면, 더 이상 말씀을 찾지 않습니다.

마치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찾듯이 말씀을 찾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 되면 끝나버리는 겁니다.

 

약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장은 밥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 먹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올림픽 때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힘을 내고자 약물을 복용하다가 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약 성분과는 다른 것입니다. 반짝 힘을 내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고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먹는다면

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에서 꾸준히 섭취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속적으로 성실히 대하고

그 말씀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때 영혼이 성장하게 됩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영혼이 성장해 가는 것보다 더 좋은 신앙생활이 없습니다.

충분한 양을 먹어야 합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먹는 양이 중요합니다.

젖 먹는 아이들도 아이의 몸집에 비해 하루에 먹어내는 양은 엄청납니다.

충분히 젖을 먹을 때까지 입을 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먹여야 됩니다. 끊임없이 먹여야 빠른 성장이 일어납니다.

어린아이 때 많이 먹으면 성장으로 반응합니다. 먹지 않고 자라나는 비결이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그냥 자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건강한 신자의 특징은 사모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만 겨우 유지하는 사람과 성장을 위해 먹는 것은 다릅니다.

축구 선수나 씨름 선수들이 먹는 양과

그냥 겨우 생명과 유지하려고 먹는 사람은 먹는 양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성장의 단계에서는 먹는 것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갑니다.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히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초보에 있는 사람은 간증을 좋아합니다.

말씀이 조금만 어려우면 귀를 닫아 버립니다. 먹지 않으려 하고 편식이 심합니다.

좋아하는 말씀도 따로 있습니다.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습니다.

영적 초보들의 특징입니다.

 

성장하려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의 편식이 없어져야 합니다.

고른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듯이 말씀도 골고루 먹어야 균형 있게 자라게 됩니다.

 

▲성장의 단계에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5:13-14절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신앙은 누가 대리로 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스스로 펴 놓고,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성경을 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령으로 기록된 이 말씀을 내 눈으로 내 지각으로 묵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에 눈이 뜨이고 그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본문 3절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는 말씀에서

“맛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맛을 본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아는 사람이 압니다.

 

맛을 볼수록 더 사모하고 갈망하게 됩니다. 시119:103절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진리의 맛은 엄청납니다. 진리의 만족은 내 영혼 깊숙한 곳을 건드려서 만족을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이 은혜를 누리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이 내 속에서 정말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내 삶을 이기게 만드는 경험이

삶 가운데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단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골3:16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입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가득 차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무엇으로 채우냐의 싸움입니다.

차 있는 것이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채워져 있으면 그 말씀이 생각나게 될 것이고

그 말씀이 입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말씀이 생각나며

모든 일에 그 말씀을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넘치면 악독과 기만과 시기와 비방과 이런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보약이 좋아도 사람에게는 세 끼 밥이 최고입니다.

일정 시간에 말씀을 계속 듣고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공적 집회에서 말씀을 열심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많이 듣는 게 중요합니다.

많이 듣는 사람을 당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영혼에 힘이 납니다.

기쁨이 넘치고, 믿음이 생기고 죄를 이기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은혜의 샘>으로 큐티하는 것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는 것에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어려우면 성경 해설서를 옆에 두고 읽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영적 투자를 하시기 바랍니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빌2:12절의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만들어가라, 완성해 가라, 키워 가라

 

이미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주어진 이 땅에서 천국 가기 직전까지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원 받은 자로서

그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의 초보를 버리고 연약함을 극복하고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고

장성한 자로 세워지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여러분! 2018년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장하면 유치한 게 떠나갑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유치한 것 때문에 정말 별 볼 일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거기에 우리의 삶의 관심을 쏟고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넘어지고 깨어집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그냥 교회에서 믿음 생활 잘한다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고

영적으로 성장하며 멋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나도 반듯하고 주변의 사람도 도와주며 공동체를 세워갈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승리의 삶을 삽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해도 그것 때문에 시험 들거나 어려움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그런 영적 성숙함이 일어나

세상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하고 또 어디에서나 인정 받는 탁월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장하여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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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는 때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부모님의 살과 피임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전에 한 폐륜아가 부모의 돈이 탐나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유산을 노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약유통을 하는 집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 부모님이 자녀에게 음식은 주었지만

양식은 주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음식은 고생하지 않고 마련한 것이고, 양식은 그 주는 이의 살과 피가 섞인 것입니다.

부모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다면 부모를 그렇게 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부모의 피땀이 서려있었음을 믿지 못하며 성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생명의 빵이신데, 그 빵은 곧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양식입니다.

그래서 그 양식을 먹고 마심으로써, 진정 우리는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한 자매의 간증

어떤 자매는, 옛날에는 신앙생활을 뜨겁고 열심히 했었는데,

그것을 다시 되찾으려고 아무리 기도하고 몸부림쳐도... 안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기도조차 오래 지속하기 힘들었다.

 

교회도 일주일에 두 번 꼬박꼬박 나오고,

헌금 생활도 다 하고,

비교적 성실히 교회 생활을 하는 데도... ‘미지근함’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뭔가 자기 신앙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겠는데,

그 근본 원인과 치료책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네가 TV를 너무 많이 보느니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시간보다

TV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자매는 그 내적 음성을 무시하고, 예전처럼 계속 일상생활을 해 나갔다.

애들도 키워야 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밤에는 연속극을 꼭 봐야 하고...

그렇게 2~3년이 또 지나갔다. 여전히 미지근한 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네가 TV를 너무 많이 보느니라...’

 

그 날은 아예 작심을 했다.

그래서 아까운 TV를 이웃집에 선사하고,

평소에 앉아서 TV를 보던 밤 시간에, 이제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 자매는 ‘항상 밤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데’

성경을 읽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밤이 그렇게 긴 줄,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TV를 안 보니까, 저녁 식사 후 밤 시간이 그렇게 길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씩... 3주간을 밤에 성경 읽으며 경건의 시간을 가졌는데,

자신이 그렇게 갈구했던, ‘과거와 같은 뜨거움’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움직여지고, 감동이 생기고, 눈물도 생기고, 주님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그래서 교회에서 간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