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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믿음의 DNA

LNCK 2023. 10. 2. 06:02

아브라함 2- 믿음의 DNA - 갓피플TV - YouTube

◈아브라함, 믿음의 DNA 창13:14~17

창세기의 아담부터 시작해서 데스티니 Destiny 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향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것을 데스티니 라고 불렀죠.

데스티니는 운명이나 팔자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지으시고 창조하실 때, 계획이 있으셨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계획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복되고,

훨씬 더 우리에게 충만한 그런 계획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을 이루는 것에 실패하죠.

그리고 사실은 이 지구상에 살았던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을 다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를 향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요.

왜냐면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어갈 수 있는가?'

또 '데스티니를 망가뜨리고 막는 요소들은 뭐였는가?'

이런 것들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재밌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영두 선교사님이 있잖아요.

영두 선교사님이 그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아주 특별한 애였어요. 머리가 굉장히 컸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그 아기를 이렇게 받아놓으시고는 굉장히 당황을 하신 거예요.

머리가 너무 크니까요. 일반 아기들 얼굴과는 확연하게 큰 거에요.

그래서 한참 당황하면서 아기를 바라보더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마침 그 시간에 아기의 아빠(영두 선교사)가 들어오는 걸 딱 보더니

말없이 그냥 나가셨다고 합니다. 아빠 얼굴이 무지 큰 걸 보고는, 정상이라 판단한 거죠.

그래요. 아이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모를 닮는 이유는, DNA가 우리 안에 있어서 그렇죠.

우리 몸에 DNA 구조를 하나님께서 두셔서,

이것이 대를 이으면서 계속 유전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가 갖고 있던 형상, 또는 어떤 생물학적인 정보들이

그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지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죠.

그런데 여러분 이런 육신의 DNA만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DNA를 두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습득한 우리 신앙에 어떤 경험들, 또 신앙의 연륜들,

신앙의 그런 체험들이 우리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를 이어서 계속 유전돼 가는 것입니다. 계속 영적 DNA를 대물림하는 거죠.

그래서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물론 문제도 많지만, 그 저력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어떨때 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저력들이 나와요.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나왔나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 부모,

또는 그 사람의 조부모의 믿음의 DNA가 그 사람에게 전수가 된 거예요.

물론 이것은 생물학적인 DNA를 통해서 전수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있는거에요.

그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그가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입니다.

그것들이 그대로 유전이 됐기 때문에

신앙의 DNA도 다음 세대에게 계속 전수, 전달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꼭 육신의 자녀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자녀(제자)들에게도 전달이 됩니다.

또한 내 삶을 통해서 영향을 받는 그 누군가에게도 계속 전달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이런 DNA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영향력을 미치도록 그렇게 디자인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보면

처음부터 크고 위대한 것을 한꺼번에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디서부터 시작하시냐면, 한 사람에게서부터 시작하세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실 때도

수백만 명의 사람을 한꺼번에 창조하신 게 아니라

한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담안에 DNA를 두셨어요.

그리고 그 DNA를 통해서, 계속 후손들과 자손들이 번성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근데 우리 하나님은 다양하시고,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복제인간 아담이 수억 명 존재하는 세상을 원치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하와 라고 하는 변수를 두시죠.

두 사람의 유전자 조합을 통해서, 굉장히 비슷하지만 아주 개성 있는 사람들이 나오도록,

수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나오도록 그렇게 만드셨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이라는 말의 의미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 가운데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방법은

다 멸하시고 다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선택하셨어요.

그 사람이 누구죠. 아브라함이었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한 샘플을 만들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였어요. 그래서 이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본질이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의 DNA가 무엇인지를

그 안에 다 새겨넣으신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해 내시는 과정이었어요.

그 DNA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인생이 다 마무리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DNA과정을 다 마무리하시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하나님의 인류, 새로운 백성을 만들기 시작하셨어요.

그것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삭과, 야곱과, 야곱의 12 아들을 통해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죠. 그런데 이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다고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평생의 과정, 그 인생의 평생의 과정은 뭐였냐면

그 후손들에게 물려줄...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이고, 정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하나님의 그 백성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회복하는 그 DNA를 형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DNA가 완성됐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닮은 사람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거죠.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을 막 만들어내신 거예요.

그런데 이름은 각자 다르고, 개성도 조금씩 다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또 그 안에 약간의 변수를 두세요.

사라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DNA 조합을 시키시면서

이삭과, 야곱과, 열 두 아들과.. 그런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내시죠.

그래서 그 DNA가 내려오고 내려오고 계속 내려온 것이 오늘날 이스라엘 이고

또 그것을 영적으로 계속 내려받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면 좀 독특한 게 있어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이 도를 넘었어요.

그래서 옆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면, 저들은 좀 DNA가 다른 것 같아요.

막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아주 약간 광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뭔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그 뿌리를 캐들어가면.. 뭐가 있냐면 아브라함이 있는 거에요.

아브라함이 여러분 얼마나 광적이었나 생각해보세요. 독자 이삭을 죽이려 했잖아요.

이게 정상적인 믿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믿음의 DNA 가.. 그대로 내려오고 또 내려와서

그의 육적인 자손들, 또 영적인 자손들에게, 이스라엘과 교회까지 그대로 대물림했듯이

아브라함의 인생은 영적인 DNA를 만들어가는 거였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데스티니는 뭐였냐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거였어요.

믿음의 조상라는 건 이런 얘기에요. 프로토타입(원형)이 되는 거예요. prototype

회사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려면, 처음에 그 제품을 만들기 전에 시제품을 만듭니다.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면서 완성된 프로토타입이 있어요.

이것이 완성되면 그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계속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내듯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얘기는 뭐냐면, '믿음의 프로토타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의 평생의 삶을 통해서, 어떤 프로토타입을 만드셨어요.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샘플을 만드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통해서는, 우리의 원래 모델이 되는 그 프로토타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우리도 그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 삶을 드려야 돼요.

그랬을 때 우리 데스티니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삶도, 또 다른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은 사용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삶을 보고 그대로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물론 배우지만,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 믿음의 창조적인 DNA들을 내가 또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안에 축적되고 쌓였을 때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육적인 자손들이 그 프로토타입을 통해서 또 재생산되는..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셨어요.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조상이 되도록 부르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열국의 아비, 천만인의 어머니'라고 부르세요.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호칭이에요.

이게 뭐냐하면, 여러분을 통해서 이어지는 영적인 계보가 있다는 거에요.

그것이 육신의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적인 자녀가 될 수도 있고요.

어쨌거나 우리를 통해서 이어지는 영적인 계보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계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 나라와 한 민족을 이루시고

그것들을 마지막 때 주의 나라가 완성될 때, 다 한꺼번에 모아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실 거에요. 할렐루야!

그때 가서 여러분 후회하지 마세요. 이렇게 밑을 내려다보니까

내 계보는 아래로 아무도 없어요.

'너는 누구로부터를 믿음의 계보를 물려받았냐?'

위를 쳐다보니까 있어요. 내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

그 위에 그 위에 쭉 가다보면... 쭉 나오겠죠. 몇 대를 올라가면 외국 선교사님도 나오겠죠.

그런데 내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내 대에서, 그 대가 끊겼어요.

여러분 이건 수치에요.

그래서 구약에서 여러분 끊임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자녀가 없는 것을 수치라 그러잖아요.

이것은 여러분, 육신의 자녀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이어지는 계보가 없는 것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에요.

우리를 통해서 이어지는, 계속 흘러가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없다면

그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지금은 그 부끄러움을 잘 못 느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인생과 삶을 정산하실 때는

그게 엄청난 부끄러움이 될 거에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의 세대에서 믿음의 유전이 끊어지면 안 돼요.

누군가로 아래로 계속 이어져서 흘러가야 돼요.

믿음들이 DNA들이 계속 계속 재생산을 되어져야 돼요.

여러분, 이 일을 이루고 계세요? 그것이 믿는 자들의 본질이에요.

나를 통해서 뭔가가 계속해서 이 믿음의 DNA들이 흘러가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됩니다.

'내가 뭐가 잘못된 건가, 뭐가 잘못되게 나로 통해 재생산되는 DNA가 없나?'

이것을 심각하게 돌아보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 때, 영광가운데 서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우리의 프로토타입이었다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그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이것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가운데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DNA들을 형성해 가실 겁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DNA를 형성하는 핵심에는

(물론 여러 가지 관점으로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핵심을 한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계속 무엇인가를 떠나는 거에요. 계속 무엇인가를 떠나보내는 거에요.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크게 <3 번의 떠나보냄>이 나옵니다.

▲1. 첫번째는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인생의 시작포인트에 보면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요.

그러다 중간에 하란에 머물러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서

'너는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래서 다시 하란을 떠납니다.

이야기는 뭐냐 하면 '옛 삶을 떠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의 믿음 DNA는 아비집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비 집'이 상징하는 건 뭐냐 하면, 옛 삶에 대한 상징이에요.

내가 자연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 모르고 그냥 자연인으로 살아왔던 옛 삶,

내 삶의 과거 습관들, 옛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

옛날에 내가 믿었던 것들, 옛날에 살았던 삶의 패턴들, 나의 세속적 가치관들...

하여간 내가 하나님 알기 전에 살았던 그 삶.

그것이 '아비집, 갈대아 우르, 하란'인 거예요.

우상을 섬겼던 네 옛적 삶을 떠나라는 말이죠.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옛적 삶을 떠나라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하나님 없이 살아오면서 잘못 살았던 삶들,

잘못 알고 있었던 가치들, 잘못된 관계들, 잘못된 비전들

이것이 다 갈대아 우르 이고 아비 집이라는 거예요. 이걸 떠나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뭐라 그랬어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거'라고 했죠.

'누구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이 바울의 고백이 뭔 얘기에요?

우리의 옛 자아를 떠나고, 옛 삶을 떠나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우리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첫째, 우리의 옛 삶을 청산하고 떠나는 거에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나서도 옛 삶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제가 주례할 때 종종 권면합니다.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게, 결혼이죠.

옛 삶을 떠나지 않으면, 결혼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내가 옛날에 살았던 그 삶의 방식들, 옛날에는 집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엄마 아빠 같이 자요' 그래서 엄마 아빠 침대 가서 자고...

그런 식으로, 자기 옛 삶을 그대로 가지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 삶을 청산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겠죠.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는, 옛 삶을 떠나야 되는 거죠.

내가 살았던 집도 떠나야되고, 엄마 아빠랑 함께 살았던 그 친한 관계도 떠나야되고..

그것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었던 가치관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

내가 아무리 중요하게 생각해도, 배우자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떠나야 결혼생활이 되는 거예요.

저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 있는데

저희 집사람은 1년만 안 쓰면 다 갖다 버려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못 버려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때 갖고 있던 워크맨도 갖고 있고 그랬죠.

그런데 결혼하면서 결국 제가 옛사람을 떠나야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이제 할 수 없이, 안 쓰는 물건들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워크맨(포터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갖고 있어서 뭐하겠어요?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분과 결혼하는 거잖아요. 예수님을 우리 신랑이시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우리 삶에서 결혼식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은

성경에 보면 항상 패러랠(평행) 하게 나와요. 그 본질이 같다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해서 살기 위해서는, 아비집을 떠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의 시작은, 아비 집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죠.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옛 사람을 그대로 가지고 가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대로 점치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대로 사기치고

학생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대로 컨닝하고,

예수 믿으면서 그대로 거짓말도 하고, 예수 믿으면서 간음도 하고...

물론 하루아침에 온전하게 변화되지는 않지만, 점차적인 변화와 성숙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도, 옛 삶 그대로인 신자들도 있죠.

여러분 이것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기억하시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이고, 아비집을 떠나는 거에요.

옛 삶을 청산해야 돼요. 옛 모습 그대로 살 수 없다는 거에요.

옛날에 살던 삶을, 본토친척 아비 집에 다 두고 나와야 되는 거에요.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으신 것이 만약 있다면, 빨리 빨리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이게 유전돼요. DNA가 있다니까요.

여러분 세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 자녀 세대, 그 아래로 계속 내려간다는 거에요.

좋은 것만 유전되는 게 아니라 나쁜 것도 유전데요.

열왕기서에 보면, 아주 명예롭지 못한 이름이 계속 반복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여로보암을 길을 좇아' 입니다.

하여간 왕이 잘못만 하면 '여로보암의 길을 좇았더라'

여로보암이 도대체 뭔 죄를 지었기에, 성경에 그 말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딱 살펴보면, 여로보암이 무슨 죄를 지었냐면

그 뒤에 짓는 모든 죄들에 시초가 되는 죄를 줬어요. 나쁜 DNA를 물려준 거죠.

즉 산당을 만들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로 제사장을 삼고...

하여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제 멋대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낸 사람이 여로보암이에요.

원래 모세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를 떠나서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걸 창조해냈어요.

그래서 북왕국의 우상숭배의 원형이 된 거죠.

그것을 보고 그 후손들이 '저래도 되는 거구나' 하고 배운 거예요.

그 악습이 끊어지지 않고, 대를 물리면서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그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니까 여로보암 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결정하셔야 돼요.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같은 소리를 들을 건지

'여로보암의 길을 좇아' 이 소리를 들을 건지... 우리가 결정하는 거에요.

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수많은 후손들이 나타나서

'OOO의 죄를 좇아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고 증언할 건지,

아니면 'OOO의 하나님, OOO의 믿음의 DNA를 좇아서 제가 살았습니다' 이렇게 증언할 것인지....

여러분 이게 현실로 벌어질 일이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선택하는 것들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겁니다.

▲2. 롯을 떠나보냈습니다.

본토친척아비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그걸 과감하게 못 떠나보내면, 그게 자기 잘못이라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롯을 떠나보내는 것은, 결이 약간 달라요.

신자들은, 롯을 계속 끼고 있으면서, 그게 잘못인 줄을 몰라요. 문제의식이 없어요.

창13장에, 아브라함이 롯을 떠나보내는데, 이유가 뭐죠?

아브라함의 양과 롯의 양을 함께 치기에는, 그 땅이 너무 좁은 거에요.

그때까지 롯이 뭐 크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롯을 굳이 떠나보낼 필요가 없었죠.

여러분, 믿음의 길이라는 것은, 항상 나쁜 것만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좋은 것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야 우리의 데스티니가 이루어진다는 거죠. 재밌는 건 뭐냐면

창13:14절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롯이 떠나니까 그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시는데

그 약속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롯을 떠나보내야만, 이 약속이 가능했다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의 선택은, 아브라함이지 롯이 아니었어요.

롯과 함께 있을 때는 이 약속이 무의미했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수 없었다는 거예요.

왜냐면 롯의 데스티니는, 또 따로 있거든요.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을 받을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롯이 물론 마지막에 비참하게 망가지는데

그거는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고

어쨌거나 하나님께서는 롯을 향해서도 축복된 데스티니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런데 이것이 아브라함과 똑같지 않다는 거에요.

그래서 롯을 떠나 보내야지만, 아브라함을 향한 데스티니가 정확하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지,

롯과 함께 계속 같이 있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에요.

왜냐면 그 두 양떼를 다 치기에는 우리 인생의 환경이 너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도 여러분, 이걸 알아요. 그래서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선택과 집중' 이잖아요.

다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문어발 식으로 다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기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될 만한 것을 선택해서 집중해야 되듯이, 우리 데스티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어렸을 때 보면 꿈이 큽니다.

그러나 커가면서 그 데스티니를 점점 좁혀가잖아요.

어렸을 때는 가능성이 무지하게 많아요.

하루는 꿈이 대통령 됐다가, 그 다음날은 장군됐다가, 그 다음날은 과학자되고 막 이러죠.

매일 매일 꿈이 바뀌어요.

그런데 나이가 조금 들면, 이제 여기서 많이 가지치기가 됩니다.

'내가 이걸 다 할 수 없구나...'

그래서 대통령도 떠나보내고... 장군도 떠나보내고.... 과학자만 남지요.

좀 더 나이가 들면, 과학도 자기가 모든 분야를 혼자서 다 연구할 수 없으니까,

물리학과 생물학도 떠나보내고... 그래서 계속 떠나보내다 보니까, 결국 자기 전공만 남는 거죠.

마지막에 보면,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내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인도 하신대로 따라왔다면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한 가지만 내 인생 가운데 이루어지게 돼 있지요.

모든 것을 나 한 사람이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롯을 떠나 보내야 되요.

오늘 여러분 인생에서 롯은 뭡니까?

그것은 어쩌면 직장이 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관계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계획일 수도 있고, 소원일 수도 있고, 비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떠나보내야 할 게 분명히 있다는 거에요.

이것은 꼭 죄 이기 때문에 떠나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걸 다 함께 덕지덕지 붙어가지고는, 끝까지 뛸 수가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12:1

'얽매이기 쉬운 죄' 이건 아까 얘기했던 갈대아우르를 떠나는 거겠죠.

근데 '얽매이기 쉬운 죄'뿐만 아니라 '무거운 것'도 벗어버려야 한다는 거에요.

왜냐면 우리가 지금 관광객이 아니라, 마라톤을 경주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거 보셨어요. 올림픽에 출전하는 마라톤 선수가

레이스 중간에 먹겠다고 간식 좀 집어넣고, 갈아입을 옷도 배낭에 넣어 등에 짊어지고...

그래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죠. 그런 경주자는 없죠.

근데 관광객들은 달라요. 다들 캐리어 끌고 다니죠.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해 뭐라 그러시냐면 '경주하는 자'라는 거예요.

'네가 정말 네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얻기 원하느냐?

아니면 너는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 관광객이냐?'

네가 정말 하나님이 정하신 데스티니를 받고, 그것을 이루기 원한다면

'롯'을 벗어버리라는 거예요. 그게 죄가 아니더라도 벗어버리라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롯'을 떠나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인생이 희석돼버려요.

원래 하나님의 하시려고 하는 일들이 다 희석돼버리는 거예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 간증을 할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교수 이외에, 제가 다른 일을 할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저는 뭔가 만드는 거 좋아하고, 연구하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제가 교수 이외에 다른 일을 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무사히 공부를 다 마치고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꿈을 이루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이제 그 꿈의 성취(교수)가 제 눈앞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때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것을, 내 데스티니가 아닌 것을'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셨어요.

그걸 어떻게 깨닫게 하시냐면, 제 안에 다른 열망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인생이 두 번이 아닌데... 딱 한번 사는 건데...

이게 정말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맞나?'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못 돌이킬 것 같은 거에요.

'이게 진짜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이 맞나?

이게 진짜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것이 맞나?'

그런데 그 안에 다른 열망들, 계속 포기할 수 없는 열망이 또 하나 있는 거에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생각도 있지만

또 한 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싫은 뭔가가 계속 안에서 끓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곰곰히 기도하다 보니까

'그게 (교수) 아니고, 이게 (목회자) 나의 부르심이구나!' 하는 걸 알겠더라고요.

여러분 부르심이라는 것은, 억지로 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억지로 목사, 선교사 시키시는.. 그런게 아닙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아무나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호와께서는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신데

그래서 부르심에는 반드시 열정이 따라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제 속에 (사역에 대한) 소원이 생겼는데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인생이 두 번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봤어요.

'그렇다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볼 텐데...' 근데 인생은 딱 한 번 밖에 없죠.

그래서 제가 '롯'을 떠나보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롯을 떠나보내기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롯'(교수직)은 어렸을 때부터 저와 쭉 같이 동행해왔던 오래된 친구이지만

떠나보낼 때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같이 있어서 즐거웠다. 잘 가라!' 하면서 그걸 보냈어요.

근데 저는 정말 즐거웠어요. 제 전공이 수학인데,

수학이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그동안 수학 공부하면서 참 많이 즐겼어요.

여러분 어떻게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도 좋아하시는 게 있잖아요.

근데 그게 저한테 수학이었어요.

그때 제가 35세 였는데, 하여간 30 년 넘게 나와 동행했던 롯을

'그동안 즐거웠다. 이제 잘 가라!' 하면서 보냈어요.

그다음에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근데 선교사로 나가려고 하다 보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국가장학금 받은 게 있었어요.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생활을 했는데

3년 동안 들어와서 일을 해줘야 되었어요.

대학에서 강의를 해야 되는 그런 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롯'을 떠나보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학위(버클리 수학 Ph.D)를 끝내자마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수 자리에 지원서를 내지 않아야 했어요.

만약 지원서를 내서 정식 교수로 채용되면, 거기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교수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계약직 자리를 찾았습니다. 일 년씩 계약하는 강사직을 찾았죠.

3년은 일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자꾸 여기저기 '교수 모집공고'들이 계속 제 눈에 밟히는 거예요.

또 주위에서 주선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죠.

또 수학과는 외국 학위가 희소가치가 있어서, 임용되기도 쉬웠어요.

아주 좋은 대학에 '이거 원서 내면 무조건 되겠는데?' 그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원서를 다 갖추고, 지원 준비까지 마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출을 안 하고 있는 거죠. 기도하면서 계속 분별하는 거죠.

'롯은 떠나보내야 되는데... 이게 정말 롯이 맞나?' 하는 거죠.

이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까, 내일이 접수 마감이에요.

그 전날 밤 이에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이걸 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냥 서원하고 결단할 때랑, 실제로 발을 완전히 떼는 때는 완전히 다른 얘기에요.

이게 말은 쉽지, 발을 떼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고민을 하다가.. 이제 아침 쯤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응답을 주셔서 이제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여러분 그때 제가 롯을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제 인생은 굉장히 달라졌을 거에요.

굉장히 달라졌을 거고, 아마 하나님이 제게 정하신 데스티니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 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을 거에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롯을 떠나보내는 게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요.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요. 그러나 떠나보내셔야 됩니다.

그것은 롯이 '죄'이기 때문에 떠나보내는 게 아니에요.

롯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데스티니는 스톱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이루실지.. 기대되지 않으세요?

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나를 통해 이어질 영적인 후손들..

여러분 기대되지 않으세요? 보고 싶은 소망들이 있으시죠?

그렇다면 여러분, 롯을 떠나보내셔야돼요!

롯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내게 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수가 없어요.

우리 인생이 이것저것 다 하기에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인생 낭비하고 여러분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딱 한번 사는 건데, 최고의 것에 여러분 인생을 드리고 싶지 않으세요?

그래서 여러분 롯을 떠나보내는 건 뭐냐 하면

최고의 것을 위해서 차선의 것들을 떠나보내는 거에요. 그래야 최고의 것을 얻으니까요!

여러분 우리는 바보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계획하고 계신 가장 좋은 것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최고의 것을 잡고 싶어서, 두번째 세번째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근데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멈춰버리는 제일 큰 이유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요.

두번째 세번째 가 너무 좋은 거에요.

아니 여러분, 그것에 만족하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진짜 주시려고 하는 최고의 것이 있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두번째 세번째는 손에서 놔야 돼요. 즉 롯을 떠나 보내야 돼요!

여기에 멈춰서지 않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0년 후에, 여러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그렇다면 자신의 데스티니를 분명하게 찾으시고,

그 최선을 위해서, 차선인 롯은 다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 아브라함이 떠나보낸 것이 있어요.

그건 뭐죠. 이삭이에요.

창세기 22장을 보시겠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