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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7장,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LNCK 2023. 10. 3. 11:48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6339487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창27:24~35       2013.12.15.    ☞ 창세기

 

서론

 

창27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는 한편의 재밌는 연극과 같습니다.

본문 창27장은 내용 전개에 따라 총 6개의 막으로 나눠집니다.

 

1은 1~4절입니다.

이삭이 늙어 시력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죽기 전에 아들 에서에게 마음껏 축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를 불러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주문합니다.

별미를 먹고 축복해 주겠다는 것이 1막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삭은 왜 눈이 안 보이게 되었을까? 이삭은 180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창27장에서의 이삭은 137세입니다. 그러니까 죽으려면 4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눈이 흐려진 것입니다.

 

제가 가진 의학상식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이삭이 혹시 당뇨병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이삭은 시력을 일찍 상실해서 더 늙기 전에

맏아들 에서에게 마음껏 축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은 5~7절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3은 8~25절입니다.

야곱이 리브가의 제안대로 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염소를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이내 이삭에게 줄 별미를 만들고 털을 뽑아 야곱의 몸에 붙여주었습니다.

 

리브가는 평생 이삭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이삭의 입맛을 잘 알겠습니까?

이삭의 입맛에 맞도록 별미를 만들어서 야곱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창 27:20).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까지 팔아가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물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야곱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아들의 음성을 들어보니 수상했는지 아들의 몸을 만져보고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리고 야곱은 다시 아버지를 속입니다. “그러하니이다” 같은 거짓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했습니다.

그러니까 제3막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장면입니다.

 

4은 26~29절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이삭은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인 줄 알았다면 축복하지 않았을 텐데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이슬도 네 것이고, 땅의 기름짐도 네 것이며, 풍성한 곡식도 네 것이고,

포도주도 네 것이다. 만민과 열국이 네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이고,

다른 형제들을 종으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야곱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고

야곱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은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이와 같은 삼대 권세를 다 가지면 세상을 이기고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는데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5은 30~41절입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고 뒤늦게 나타났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이 복을 받아간 것을 알고 방성대곡하였습니다.

에서는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라며 원망 섞인 말을 해보았지만,

에서에게 돌아갈 영권, 인권, 물권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6은 42~46절입니다.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는 말을 했고,

리브가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이 사실을 알려주며,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그랬는데 그 몇 날이 20년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6막으로 구성된, 긴장감 넘치는 연극의 최고 절정은 33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창 27:33).

 

누가 복을 받습니까? 야곱이 정녕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7장의 주제는 ‘축복’(blessing)입니다.

 

그러면 복의 원천은 누구입니까? 누가 복을 받습니까?

왜 어떤 사람은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은 받지 못합니까?

사람이 노력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창세기 27장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 받기 원하십니까?

27장에는 축복이라는 단어가 22번 나옵니다.

그 가운데 17번은 히브리 동사 바라크,

나머지 5번은 명사 베라카가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글이든지 그 속에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면, 그 단어가 바로 말씀의 주제입니다.

 

◑1. 복은 누구에게서 오는가? 복의 원천은 누구인가?

 

그럼 먼저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이 복의 원천은 아닙니다.

인간이 누구에게 복을 나누어준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통해서 나눠주더라도,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표면상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긴 했지만, 그것은 이삭 본연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 속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잘 만들어 주니까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이 가진 사랑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신은 ‘자기 배’입니다.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8).

 

이삭은 창27장 이후로 43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신의 건강과 시력이 점점 악화되니까, 유언을 일찍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삭의 의도는 에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4).

 

그러니까 야곱의 축복은, 이삭이 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은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의 계획은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이었고, 에서의 계획도 자기가 복을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서를 사랑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복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리브가는 태중에 에서와 야곱이 싸울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야곱이 정녕 복을 받은 이유는 이삭의 뜻도, 에서의 뜻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야곱의 뜻도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계획을 세워 노력한다고 복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의 계획도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의 계획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시고, 하나님의 의도시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원천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온 세상 사람을 똑같이 복 주셔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6).

이것이 창27장에 대한 사도바울의 주석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복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복 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노력해도 복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방탕하게 살던 사람도 하나님이 부르셔서 복을 주시면

그 사람은 복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 축복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심히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3   *제목

이 말은 비록 내 뜻은 에서를 축복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니 야곱이 정녕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야곱은 모든 영권, 물권, 인권, 정치권, 보호권 등 좋은 것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좋은 것들이 있다면,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내게 무슨 복이든지 있으면 그 원천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복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하고 그 앞에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 받기를 소원해서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긍정적인 언어를 입에 달고 살아서 복을 받은 것도 절대 아닙니다.

복은 그런 심리학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온 것도 아니고, 우리의 소원으로 온 것도 아니고,

우리의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깁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인생의 구덩이에 빠져 허덕이고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면 나는 복 있는 사람이고, 결국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삭이 막으려 했고, 에서도 막아보려 했지만,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시고 복 주시고자 하시니 야곱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축복의 대상자인 야곱 자신도 전혀 복 받을 ‘환경’이 아니었고,

복 받을 ‘이유’도 없었다

 

야곱이 복 받을 환경입니까? 야곱은 복 받을 이유, 공로, 조건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결코 화목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끼리 서로 음모를 꾸미고 속이며 엿듣고 고자질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쓴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의 가정은 식구가 넷인데 단 한 번도 같은 장소에서 식사하거나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몇 명되지도 않는 가족들이 한 번도 함께 모여 밥을 먹지 않습니다.

 

어떤 분을 보니 가정이 참 많은 복을 받았는데 왜 그런 가했더니

아버지가 가정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철칙이 있었습니다.

그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온 가족이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는 4시에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는 5시, 7시에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

일과를 제일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어 4시 전에 다 같이 모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할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며 식사를 하니까 복 받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집안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다 제각기 따로 행동했습니다.

 

▲첫째로 아버지 이삭은 평생 신앙인이었지만, 노년기에 추하고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야곱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서가 별미를 만들어준다는 이유로

에서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야곱에게 다 팔아넘겼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방 여인과 결혼해 마음의 근심이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46

별미라는 뇌물을 받고, 에서만 축복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주는 야생동물 특별요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당시에 가장이 자식들을 축복하는 풍습은 모두를 불러다 골고루 축복하는 것입니다.

 

창49장에 야곱이 열두 아들을 불러다 골고루 축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삭은 몰래 에서만 불러다 축복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노년기에 완전히 자기 절제력과 판단력이 무너진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어머니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여자입니다.

이삭보다 판단력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 주심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월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다가, 결국 남편을 속이고 자식들도 다 잃게 됩니다.

리브가는 자기 남편 이삭을 가리켜 한 번도 ‘내 남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남편’이라고 말하지 않고 창세기 27장 6, 9, 10절에 걸쳐 세 번씩이나 야곱에게 말하기를

‘네 부친’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내 남편이라고 하고, 남편은 아내를 내 아내라고 해야 정상적인 가정인데,

돌려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이삭과 리브가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남편의 말을 몰래 엿듣고 남편의 입맛에 맞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속이기 위해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털 가죽을 붙였습니다.

자기 남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사기꾼입니다.

 

▲셋째로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대상자입니다마는

나이가 들어 시력을 상실한 아버지 속이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야곱도 사기꾼입니다. 창27장에서 야곱의 말을 가만히 보면 이삭을 향해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이 말 한 마디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야곱은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입니다. 야곱의 말은 진실한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입 맞추었지만, 그 입맞춤도 거짓된 입맞춤입니다.

야곱의 이름은 그 의미가 ‘사기꾼, 찬탈자’입니다.

사기를 쳐서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복 받을 이유나 조건, 공로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사기꾼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야곱만큼 부모에게 사기를 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야곱을 보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로 에서는 어떻게 보면 동정심을 이끌어 내는 불쌍한 인물로 보이지만,

그 역시 아주 결정적인 잘못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무관심합니다.

 

그러니까 장자권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말1:2~3).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에서는 지옥에 갔고, 야곱은 천국에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서가 더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야곱은 사기꾼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긍휼을 얻은 야곱과 긍휼을 얻지 못한 에서 롬9:12~14 rfcdrfcd.tistory.com/15980237

 

그러므로 이삭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네 명밖에 안 돼도,

전혀 복 받을 환경이나 조건이 없는 역기능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큰 복을 받고 자자손손 복을 받아

다윗 왕과 이스라엘의 열왕들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주신,

거저 받은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 복 받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 지옥가야 합당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영영한 불못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그것이 바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택하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천국이 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명예, 물질, 건강의 복을 주시는 것을 두고

우리는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교만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교만한 사람은 은혜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은혜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이 자격없는 자에게 복 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은혜로 복을 주신다는 진리가, 죄를 지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도의 삶 속의 죄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죄가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죄가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받은 복을 즐길 수 없게 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삭은 창세기 27장 이후로 43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180세에 죽었습니다.

“이삭의 나이 180세라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8~29).

 

이삭은, 27장 이후로 43년 동안의 기록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43년이라는 세월은 완전히 무의미한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에서를 축복하려고 한 그의 죄가

그의 여생을 의미 없는 삶이 되도록 대가를 치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노년기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리브가는 어떻습니까?

거짓말로 이삭을 속인 죄로 인해 자식을 둘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가게 되었고,

맏아들 에서는 어머니가 싫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식들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창 35:8).

 

성경에 리브가의 유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리브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리브가도 천국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속인 리브가의 죄는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타향살이하며 외삼촌 라반에게 10번이나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남을 속일 때는 기분 좋지만,

자기가 속을 때는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처절하게 경험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사기꾼 왕국입니다. 사기꾼이 너무 많습니다.

야곱은 사기꾼인데 남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물론 이삭이나 리브가나 야곱은 모두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복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로 인해서 받은 복을 완전하게 즐기고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은 성도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죄는 복을 오염시킵니다.

자신의 삶을 의미 없게 만들고 자녀들에게도 고통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죄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여기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복 받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땅에 속한 기름진 복도 다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상상치도 못할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고, 복음을 듣게 되었고, 내세를 알게 되었으며,

부활을 알게 되었고, 영생을 알게 되었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상상도 못 할 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의 원천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 받을 이유나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복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죄를 경계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